제 목 : [설교요약] 2014년 4월 설교요약 | 조회수 : 1226 |
성경본문 : | 설교일 : 2014-04-06 |
설교자 : 김성진 목사 | |
첨부파일: 2014년 4월설교요약.hwp(25K) |
4월 6일 주일오전예배 | 설교요약 txt
제 목 : 언약(첫 언약)과 새 언약(둘째언약)성경말씀: 히브리서 8 : 6 ~ 13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말씀으로 천하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말씀으로 만물을 다스리
시며, 말씀으로 우리 인간과 약속 하시고 그 말씀하신대로 축복과
영생을 주시기도 하고, 또 저주와 영벌을 주시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와 약속하신 것을 언약이라 하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하신 언약을 “구약” 또는 “첫
언약“(7절 상)이라 하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부터의
언약을 “신약” 또는 “새 언약” “둘째 언약”(8절하)이라고 한다.
구약, 첫 언약에3가지가 있다.
첫째, 행위 언약이다.(창세기 2:16-17)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만물을 정복하며 다스리도록 위임하시
고,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고 온전한 에덴동산을 창설 하셨으며,
그 아름다운 동산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자유를 주시고 복을 내리셨다. 그러나 “선악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언약을 하셨는데, 즉 선악과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 의 행위에 따라서 살게도 되고 죽게도
된다는 말씀으로서의 약속, 이를 “행위 언약”이라고 한다.
둘째, 율법 언약이다.(출애굽기 20:1-24:12, 신명 28:1-15-68)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수 백 가지의 율법과 규
례를 주셨고 율법을 잘 지키고 순종하면 복을 내리시고, 율법을
지키지 않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말씀으로 약속을
하셨는데 이를 “율법 언약”이라 한다.(신명기 11:26-29-32)
셋째, 은혜 언약이다.(레위기1:1-4, 4:20-21-35, 5:1-17:11)
하나님께서 행위 언약과 율법 언약을 사람들에게 복으로 주셨
지만, 사람에게는 부패한 성질이 있고 연약한 기질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행위 언약과 율법 언약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
를 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사망과 저주와 영원한 지옥 형
벌이 찾아 왔다. 이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행위 언약
과 율법 언약에서 죄인으로 낙인이 되고 사망을 당할 인생들에
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으니, 곧 “은혜언약”이다.
죄 값으로 저주를 받고 멸망당할 자리에서 사죄 받을 길로,
양이나 염소의 생명과 피를 희생하여 속죄 제사를 드리고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하여 어떤 죄든지 용서를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신 것이다.(창세기 4:4)
이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멸망을 당할
인생들에 속죄 제물이 되셔서 저주와 사망과 지옥 형벌을 받을
인생들을 구원하신다는 것 까지도 포함한 “은혜언약”이었다.
신약에 새 언약에도 3가지가 있다.
첫째, 은혜언약이다.(마16:16, 요3:16,롬6:22-23, 고전15:1-6)
구약시대에 양과 소와 그 피를 제물로 드려 죄 사함, 곧 속죄를
받은 은혜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림자였다.
이제 속죄의 실체인 예수님이 오셔서 친히 자신의 몸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그 누구든지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새 생명을 얻어서,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천국복락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속죄 제물을
드리는 제사나 정결케 하는 의식은 소멸되었고, 믿음 안에서 복음
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히9:11-15, 골1:13-23, 2:11-17)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속죄의 은혜 언약이 완성된 것이다.
둘째, 율법언약이다.(마5:17-20, 19:16-22, 23:1-3, 롬3:31)
은혜 언약으로 예수님을 믿어서 모든 죄를 용서 받고 천국복락
을 누리게 된 백성들이,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값
없이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뜻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다.(요14:21)
이것이 구원의 은혜를 알고 보답하는 복 받을 신앙생활이다.
셋째, 행위 언약이다.(약2:14, 20-26, 계14:13-13, 22:7, 11-12)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며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도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구속의 은혜로 사죄 받고 천국 백성이 된 성도들이 어떻게 행
하며 살았느냐에 따라서 찬란한 상급과 영광을 누리기도 하고
부끄럽게 되기도 한다.(고전3:15, 15:39-44) 이것이 행한 대로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신 “행위 언약”이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모든 영욕(榮辱)은 우리의 현재 행위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
착하고 좋은 마음의 언행과 사랑으로 최고의 축복을 누리자!!
4월 13일 주일 오전예배 설교요약 | 설교요약 txt
제 목 :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는 일
성경말씀: 베드로 전서 2 : 9 - 25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게 되려고 한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아름답게 보이고자 해서다.
또한 아름답게 되었을 때 만족감을 가지고 기뻐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사람끼리는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나, 정작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는 일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고 우리의 축복이 되는 일은?
첫째,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여 참는 것이다.
“애매히”는 원어 “아디코스”로 “부당하게”라는 뜻이
기도 하다. “고난을 받아도”는 “파스콘”인데 “마음과
몸의 고통과 괴로움”을 다 포함하고 있다. “아름답게”는 “카리
스”인데 “은혜”라는 뜻이다.
즉 “애매하게 부당하게 고난과 괴로움을 당해도” “슬픔을 참
아 나가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혀 주시고 아름답게 보신
다.”는 것이다. 참아 나가는데 마지못해서 또는 어쩔 수 없이
참거나, 아니면 상대를 미워하거나 원망 불평하면서 참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참아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생각하여 참는다는 것은,
①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믿고.
② 이 일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뜻을 찾아서
③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참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애매하게 잘못한 것도 없이 고난을 당하고 참으면, 자기가 바
보 천치가 되거나 많은 손해를 보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그래서 참지를 못하고 같이 대응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기회와 복 받
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으로 아주 불행한 일이다.”
둘째,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는 것이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는 것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칭찬
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죄가 있어 매를 맞으면서도
반항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회개하며 순하게 잘 받으면,
이일도 그 사람 자신에게 복이 된다. (욥:5:17-19, 히12:5-8)
심히 안타까운 것은, 부패한 인생들은 자기의 잘못으로
인한 징벌인데도 반항하며 안 받으려 하는 것이다. (창4:13)
셋째, 선을 행하므로 받는 고난을 참아내는 것이다. (벧전 4:1-5)
가정이나 사회나 신앙생활에서, 말씀대로 바르게 살려고 하면,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다.(마5:10, 딤후3:12)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나, 잘못한 일로 고난을 받을 때나,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을 때에,
억울하고 분한 맘이 들면서 참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① 하나님과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고,
② 말씀을 붙들지 않으며,
③ 자기의 부패한 감정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복 받을 기회를 차버리는 불쌍하고도 어리석은 일이다.
이때도“하나님을 생각하여” 달게 받으며 참아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아름답게 보시며 하늘에 상을 주신다.
넷째, 예수님을 본받아 참아내는 것이다. (21-25)
“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 말씀의 뜻은,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참고, 잘못해서 고난을 받아도 참으며,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다 고난을 받으면서도 참아내서,
“하나님께 아름답게 보이고, 하늘에 축복을 받아 누리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이다.
이미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이시며 따라 오라 하셨으니,(21-)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인간적으로 볼 때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바보처럼 당하시고
허무하게 당하시며, 비참하고 가련하게 죽어가셨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 죄를 깨끗하고 완전하게 대속(代贖) 하시고, 마귀의 권세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리하셨으며, 이러므로(빌2:5-10)
“하나님이 저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도 고난을 참아낸 만큼 영광과 축복을 누리게 된다.
4월 20일 주일오전예배 | 설교요약 txt
예수님 부활의 목격자들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 15 : 1-8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다는 것은,인간으로서는 전혀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죽음이 오게 된 원인과 그 원리를 살펴보면죽음을 이기고 부활한다는 것이 그리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다.
(사람에게 죽음이 오게 된 원인)
① 사람이 불완전하여 죄를 짓게 되었다.
② 죄지은 값으로 죽음이 왔다.
③ 죄 값으로 당한 죽음이기에 죄 값을 해결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다.
(부활의 원리)
① 예수님께서 의를 행하여 완전함을 이루셨다.
② 예수님께서 인류의 모든 죄 값을 담당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③ 죄 값을 다 해결하셨기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이를 확실하게 증명하였고,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인간으로서 모든 죄를 단번에 용서 받고 죽어도 다시 사는 새 생명을 얻고 천국 복락을 누리게 된다. 이는 우리 인간들에게최고의 복 된 소식으로 곧 복음(福音)이라고 한다. (1-4) 이는 말이나 글로서 이뤄진 이야기나 신화가 아니고예수님께서 친히 자기 몸으로 이루신 역사적 사실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과 특별 제자인 사도들까지도 다 도망을 갔다. 그런 제자들이 어찌하여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기뻐하며,자랑스럽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순교까지 하게 되었는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40일이나함께 생활을 하며, 예수님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모든 죄는 깨끗하고 완전하게 용서받았고,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죽는다.하여도, 예수님처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해서 영원한 천국 복락을 누린다는 확신과 소망으로 충만했었기 때문이었다. 본문 말씀에서는예수님께서 부활하여 40일간 이 땅에 계실 때의 모든 목격자를다 기록한 것이 아니고, 그 대표로 몇몇 사람만 기록을 했다.
첫째. 베드로(게바,시몬)가 예수님 부활의 목격자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에는“죽을지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가, 막상주님이 잡혀하시니까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다. 그런 베드로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복음을 전하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 순교까지 했으니,이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때문이었다.
둘째, 열 두 제자가 예수님 부활의 목격자다. 유다 대신 맛디아가 포함된, 열 두 제자가 예수님의 부활을목격했고,(행1:21~26) 예수님을 통하여 죽어도 다시 산다는 확신을 가졌기에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면서 순교까지 한 것이다.
셋째,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 예수님의 죽음을 이기신 부활은 한 두 사람이 본 환상이나비밀스럽게 된 일이 아니고, 당시에 예수님께 관심을 가진 모든사람이 목격한 역사적 사실이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때는 33년 경이고, 고린도전서 본 말씀을 기록할 때는 55-6년경이었다. 즉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22-3년이 지난 때인데 이때까지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500여 형제 중에 반수 이상이 살아 있었기에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넷째, 야고보가 부활의 목격자다. 이 야고보는 주님의 육신 동생, 즉 마리아의 아들 야고보다.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를 아니했다.(요7:2-5) 그러나 죽음을 이기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자신의 형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으로서의 형 예수가 아니요,창조주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신 것을 믿고, 복음을 전하고 야고보서를 기록하는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
다섯째, 바울 사도가 예수님 부활의 목격자다. 바울은 사울이라는 이름의 사람으로,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 구원의 부활의 주인 되심을 부인하는 자였다.살기등등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핍박하다가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자기 죄를 깨닫고,180도로 변하여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 이 바울이 자랑스럽게 증거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믿는 사람들의 부활이다.”라고,이제 우리는 구속과 부활의 생명을 얻은 천국 백성들이다.영광과 찬송을 성삼위 하나님께 돌리며 감사함으로 살아가자!!
4월 27일 주일오전예배 | 설교요약 txt
오늘 말씀 요약 ( 4 / 27 ) 2014
제 목 : 부활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성경말씀 : 욥기 1 : 18~ 22
“욥”은 주전(B.C.) 2,000 경, 아브라함 시대에 실존한
사실적인 인물로서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서 떠나 사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었다.(욥1:1, 약4:11)
아들 일곱에 딸이 셋으로 열 명의 자녀가 있어, 다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루는 큰 아들 집에 십 남매가 모여서 담소를
하며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태풍이 불어와 집을 쳐서 무
너뜨리므로 열 명의 자녀가 다함께 압사를 당하였다.
너무도 기가 막히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열 명의 자녀가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다 죽은 것이다.
그 시신도 성한 것 하나가 없이 뭉개지고 일그러지고 부러지고
비참하여, 차마 바라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욥은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으로 나왔으니 또한 적신으로 돌아가리라
주신 분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분도 여호와시니
여화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리라.“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것이 바로 부활신앙의 진수이며 믿음의 진수이다.
어떠한 비참한 사건 사고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도, 초연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이 제 아무리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하여도 영혼은 살아서
(부활) 즉시로 천국에 복락을 누리거니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천사들처럼 신령한 몸, 처음 몸보다 천만 배나 더 좋은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무궁한 축복의 세계를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확실한 증거로,
하나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완전하게 대속하여 주셨고,
죽으신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예수님을 믿는 모
든 사람에게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이란?
첫째, 어떤 죽음 앞에서도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누구이든지
죽음을 피할 수가 없다. 또한 각 사람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형태는, 자연사도 있고 질병이나 참혹한 사건 사고나 화재나
지진이나 수재도 있어, 천차만별의 여러 가지 형태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어떤 죽음의 형태이든 믿음 안에서 죽었다면 죽음의
형태와 관계없이 천국복락과 부활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결코
슬프거나 괴로워할 일이 아니요, 오히려 소망을 가지는 것이다.
둘째, 어떤 죽음 앞이든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이 무섭고 두려운 것은, 죽는 과정에의 고통과 죽음 후에
무서운 심판과 형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예수님의 은혜가 임하고
(단3:19-27, 행7:54-60), 죽은 후에도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들어가 복락을 누리기 때문에 무서워하거나 벌벌 떨 일이 아니요
주님께 영혼을 의탁하며 감사하는 것이다.
셋째, 어떤 죽음이든 죽은 자를 불쌍하게 생각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의 죽음은, 그 죽음의 형태와 관계없이
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먼저 벗고,
② 천국에 먼저 가서.
③ 사랑하시는 주님 품에서 천국복락을 먼저 누리기 때문에
결단코 불쌍한 일이 아니요, 진정 “복되다”고 하셨다.(계14:13)
넷째, 어떤 죽음 앞에서든 원망불평하지 않는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이고 불행한 사건사고인 것 같아도
그 생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취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욥은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시리라”하고, 원망 불평
하지 않고 오히려 천국복락을 주신 하나님 이름을 찬송 했다.
다섯째, 어떤 죽음 앞에서든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양한다.
천하만사 모든 일은 성삼위 하나님의 주관하심 아래 일어난다.
물론 사람의 실수와 판단착오와 자연 재해 등도 있으나 그런 것
까지도 포함하여 심지어는 참새 두 마리의 생사까지도 천하의
모든 일이다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일어난다.(마10:29)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다 알 수가 없다.
그렇다 해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그 어떤 일이든지 다 합력해
서 선을 이루시며 의로우시고 은혜로우시다.(시145:17)
다윗도 자기 아이가 죽었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경배하고 정상
적인 생활을 이뤄 갔다.(삼하12:19-23) 믿음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도 욥이나 다윗의 부활 신앙을 본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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