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설교요약] 2013년 1월-6월 말씀요약 | 조회수 : 1409 |
성경본문 : | 설교일 : 2013-01-01 |
설교자 : 김성진목사 | |
첨부파일: 2013년 설교요약-1.hwp(9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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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PM 10:39:41
2013. 6. 30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제 목 :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
성경말씀 : 잠언 22: 4~6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른들과 아이들을 생각할 때
어른들에게 너무 많은 무게를 두고 아이들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주님의 뜻을 살펴보면
주님께서는 어른들 못지않게 아이들을 매우 귀중하게 여기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축복의 언약을 세우실 때
아브라함과 어른하고만 세우신 것이 아니요 대대로 그 후손들
과 세워 하나님으로 축복을 말씀하셨고, (창세기 17:6-7 9-12)
출생한 8일 만에 할례를 행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기
이삭을 하나님의 축복의 백성으로 삼으셨으며.(창세기 21:4)
또한 집을 나와 어려움을 당하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
하여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창세기 21:17)
신약에도, 어린아이들이 주님께 오는 것을 꾸짖는 제자들에게,
아이들이 주님께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시며,
아이를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하셨다.(마가복음 10:13-16)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 두 바구니를 거둔 오병이어의 기적이,
어른들의 헌물이나 헌금이 아니었고, 한 아이가 점심으로 가져
온 것을 헌물 한 것에 대한 대 역사였다. (요한복음 6:8-13)
천국에서 큰 자, 천국에 들어갈 자가 어린아이와 같은 자라
하시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주님을 믿는 작은아이 하나라도 실족시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바다에 빠지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까지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8:1-6)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새롭게 대해야 한다.
첫째, 작은아이라 업신여기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은 한 생명이요 영혼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대상이나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마태복음 18:10)
대게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벼운
대상으로 알고, 어른들의 마음과 감정대로 좌지우지하려 하고
어른들의 뜻대로 지도나 인도를 하려 하는데,
이는 주님의 말씀에 합당치 않은 일로 삼가 해야 하며
어른과 같은 인격체로 알고 잘 대우해 주어야 한다.
둘째, 귀중하게 여겨 사랑해 줘야 한다.(마태복음 18:5, 10:40)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
는 것이라.” 하셨는데, 어찌 귀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고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귀중히 여겨 사랑하되 자기 아이들이나 손자 또는 친척이나 가
족들과 관계가 있는 아이들만 귀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어린아이들을 귀중히 여겨 사랑해야 한다.
셋째, 어린아이들의 영혼이 잘되게 해주야 한다.
본문 1절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하셨고, 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 하셨다.
5절에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고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고 하셨다.
“은총”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뜻하고, 하나님의 사랑
을 받는 길은 곧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성삼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세상에서 많은 재물과 명예를 얻었다 하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그는 불행한 인생, 멸망당할 인생이 된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들이
1. 교회에 출석하여 믿음을 같도록 잘 해 주어야 한다.
2.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 줘야 한다.
3. 성경 말씀으로 잘 가르쳐 줘야 한다.
주일학교나 여름 겨울 성경학교에서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잘 가르쳐 주어야 한다.
어떤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나 동화 같은 것으로 어린아이들을
재미있게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살릴
수는 없고, 그들의 영혼을 아름답게 성장시킬 수는 없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이라”(로마서10:17)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 하라.”(요한3서 1:2-4)
어른들 자신들이 먼저 말씀을 잘 익히고 순종하여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며 따르도록 잘 가르쳐야 한다.
이 길만이 생명을 살리는 길이며 영원한 축복을 받는 길이다.
이 일이 잘되면 이일에 관계된 모든 이가 다 같이 축복을 받다.
2013-06-25 AM 9:15:51
2013. 6. 23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와 모친
이곳저곳 다 두고 초가삼간을 찾아왔네
제 목 :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와 모친
성경말씀 : 마가복음 3 :31 ~ 35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혈통과 관계를 중요시 한다.
그래서 가문과 문중을 보기도 하고 자기 가문이나 문중에서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를 내세우며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문에서 혈연과 가문보다 더 중요하고 존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셨으니 우리의 모범이자 표준이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시작하신
얼마 후,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30세까지는 가난한 목수집안의 큰 아들로서 성실하게 집안 일
을 돕던 예수님이, 어느 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고
사모하는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시니,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친 사
람으로 취급했으며, 심지어는 예수님의 부모와 형제들까지도
예수님을 미쳤다하여 찾아 나선 것이다. (마가3:21)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친
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음으로, 중간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께 말을 전한다.(누가8:19)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이때 예수님의 말씀이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하시며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향하여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
이라”고 말씀하셨다.
육신적으로는 아무리 부모요 형제요 자매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는 예수님과 관계가
없고 가족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것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하나님 말씀대로 실천하고
행하여야 하는 행위적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그렇기에 마태 7: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도 행위적인 것으로 왜곡하여 미혹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말씀의 실천이나 행함이 아니고,
예수님을 인간 예수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으로 믿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
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 6:40, 신154)
제 아무리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또 실천과 실행을 한다 하여도
예수님을 인간 중에 뛰어난 한 사람이나 성현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이 아니요 예수님의 형제자매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이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약에 위대한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할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보셨다. (마태16:13~19)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고백했다.
“그리스도”란 구약 히브리 원어로는 “메시아”요 우리말로는
“구세주”이다. 즉 나(우리)를 죄악과 마귀의 올무와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시고 부활과 천국의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왕이시며 선지자시며 제사장으로 믿고 만족해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네가 복이 있다”
“이를 알게 한 이는 사람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라 하시며 음부의 권세를 이길 천국 열쇠를 주겠다."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인간 예수가 아니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한 것이
며, 이렇게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육신의 가족이나 혈연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다하여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만 한다면 곧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형제자매가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우리 육신의 목숨이 죽는다 하여도
우리 영혼이 살아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은, 성삼위 하나님이 너무도
고맙고 감사해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의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고
말씀을 순종함으로 받는 축복까지 상급으로 받아 누리게 된다.
2013-06-18 PM 10:58:31
2013.6.16 하나님의 기뻐하심
하나님의 기뻐하심
성경말씀: 사도행전 1 : 6 ~ 11
예수님께서 우리 죄 값을 지고 십자가에 죽어 가시면서
유언으로 가상칠언을 하셨다.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
셔서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사죄와 죽음을 이기신 것에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시고, 믿는 우리에게도 죽음을 이기는
새 생명과 천국 복락이 있음을 확신시켜 주시려고 천국으로
승천하시고자 한다.
승천하시기 바로 전, 최후적으로 하신 말씀이 오늘 말씀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라.”
그 누구 어떤 사람이든지 이 세상을 떠나며 최후적으로 하는
말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며 꼭 실현되기를 희망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최후적으로 하신 이 말씀이야말로,
1) 그만큼 중요한 말씀이요,
2)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가 꼭 이루고 순종해야할 말씀이며,
3)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시는 내용의 일들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10일후 오순절 절기에
보혜사 성령님의 세례 곧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를 체득했고
한 번 임하신 보혜사 성령님은 제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시며
권능으로 역사하셔서 세계만방에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셨고
세계만방에서 주님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구원하여 주셨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 말씀은 그대로 유효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에 보혜사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믿을 때 한 번 임하신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영원토록 권능으로 역사하신다.
이어서 우리가 할 일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라 하셨으며,(시126:5~6, 구897)
“산을 넘는 자의 발”이라 하셨다.(사52:7, 구1031)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일인 만큼 하나님께서는 아주 기뻐하시는
일이며, 이일을 감당하고 이일에 참여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영원토록 축복이 되며 상급이 되는 일이다.
예수님의 증인이란?
1.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 값을 감당하신 것이며,
2.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은 곧 우리에게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을 주신 것이며,
3. 믿는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하면 예수님이 가신 천국에
올라가 영원한 생명으로 행복을 누리는 것이며,
4. 세상에서 말씀을 바로 익혀 순종하고 증인의 일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하늘에 찬란하고 영광스런
축복이 영원토록 계속된다는 것을 행하고 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해야할 대상은, 인종이나 국가의 차별이 없이
세계만방 모든 민족이며 모든 사람이 대상이다. 그렇기에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 교단이 비교적 작은 교단이면서도 해외 선교에 열심을 내는
것은 이런 이유이며, 우리가 이번에 중국 단기 선교를 한 것도
주님의 이런 말씀에 근거하여 순종한 것이다.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고 전하는 일은 여러 과정이 있다.
① 자신이 직접 증인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② 물질로 후원하여 감당하는 것이다.(빌4:15~19, 신322)
③ 기도로 후원하여 감당하는 것이다.
④ 증인의 일, 전도하는 사람을 여러 가지 면에서 돕는 것이다.
이 일은 우리 예수님의 지상 최후의 명령이자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이며, 성령님의 충만하신 역사가
함께하시는 일이다.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고, 좋은 소식을 전하며 산을 넘는 자는
그 발까지도 아름답다 하셨다.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증인의
일을 잘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원한 축복을 누리자!!
2013-06-02 PM 9:59:17
2013. 6. 2 원수를 잘못 안 사람들
제 목 : 원수를 잘못 안 사람들
성경말씀 : 갈라디아서 4 : 12 ~ 18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사리(事理) 분별을 잘 못하고
상황판단을 잘 못해서 실패하고 불행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본문에 갈라디아 교인들도 그 중에 한 예이다.
갈라디아는 지금의 터키 지역인데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46 ~ 48년경) 개척하여 세운 교회이다.
사도 바울을 통해 처음 복음을 받고 구원에 은총을 깨달았을
때는, 바울의 몸에 약함과 질병이 있었음에도 싫어하거나 멀리
하지 않고, 바울을 천사처럼 예수님처럼 영접하고 따르며 순종
하여 축복받을 믿음에 서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다른 곳에서
몇 년간 전도하며 교회를 세우는 동안, 거짓 선지자들이 들어
와서 다른복음, 곧 예수님을 믿어도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
야 구원을 얻는다고 전하니까, 갈라디아 교인들이 분별을 바로
하지 못하고 그걸 좋게 여겨 믿고 따르게 되었다.
이에 사도 바울이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외에 다른 복음을 전
하거나 다른 복음을 믿으면 저주를 받는다(1:6-9)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며 갈라디아 교인들의 잘못을 지적하니까,
갈라디아 교인들이 천사처럼 여기며 따르던 바울을 싫어하고
원수처럼 대하며 미워했다.(16절)
사도 바울이 누구인가? 비록 늦게 부름을 받았지만 신약시대
사도들 중에 제일 전도에 역사를 많이 이루고, 신약성경 27권
중 14권을 계시로 받아 기록했으며,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하고 목숨까지 바치며 충성
하는데 (고후12:14-15), 이런 사도를,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기들
의 잘못을 지적한다고 하여 원수처럼 생각하고 미워한 것이다.
이는 사리 분별을 못한 것이며, 자기들의 원수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지 못하고 흑암에 갇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신앙의 역사를 보면 구약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니,
아담이 아들 “카인”은 자기 동생 “아벨”을 원수로 여겨 미워하
다가 죽였다. 그러나 죽임을 당한 아벨은 최초의 순교자가 되어
인생 최고의 축복을 받았고,(마23:35)
동생을 원수로 여겨 죽인 카인은 인생 최초의 살인자로 흉악범이
되어 자손만대로 저주를 받는 불행한 가문이 되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자기의 충성스런 장군 “다윗”을
원수로 여겨 미워하며 죽이려고 쫓아다녔으나, 오히려 다윗에게
서는 생명을 건짐 받는 은혜를 입었고, 블레셋 전쟁에서 패하여
자기는 자살하고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하는 벌을 받았다.
신약에서도 초대교회 때에 “스데반”집사가 유대 지도자들의
죄악을 지적하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것을 전하는데
유대인들이 스데반 집사의 말을 들었으면 구원의 축복 곧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복락을 누리게 됐을
것인데, 오히려 스데반 집사를 미워하며 원수로 여겨 돌로 쳐
죽였다. 그 결과 죽임을 당한 스데반 집사는 신약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영원한 축복을 받았고, 스데반을 죽여서 승리한 것 같
은 유대인들은 영원한 저주를 받았다.
이런 불행은 원수 아닌 사람을 원수로 잘못 알고 미워한 결과였다.
우리는 어떤가? 과연 우리는 원수를 바로 알고 있는가?
원수가 아닌 사람을 원수로 잘못 알고 미워하며 살인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요한1서 3:13-16 신391, 마태 5:21-24 신6)
우리의 원수는 바로 이런 것이다.
첫째, 내 욕심이다.(야고보서 1:15) 신371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하느니라.”
물욕 : 물질 돈에 대한 욕심, 정욕 : 정과 이성에 대한 욕심,
사욕 : 명예 영광 권위 자존심 체면 출세 승진에 대한 욕심 등,
이런 것이 자기 자신을 망하게 하는 원수이다. (빌립보2:5-11)
둘째, 내 속에 있는 죄악의 성질이다.(마가복음 7:21 -23) 신65
사람의 속에는 부패한 죄악의 성질이 있다. 이것이 원수이며
이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사람은 망하게 되는 것이다.(창4:7)
셋째, 마귀이다.(요한복음 8:44 신160, 에베소6:12 신316)
마귀 사단 악령의 무리들은, 우리가 잘 되는 것을 시기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혹하고 충동하여 멸망 길로 끌어간다.
믿음에서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케 하는 것은 다
마귀의 미혹이다. 이 원수를 바로 알고 물리쳐야 승리한다.
2013-05-27 AM 9:27:31
2013. 5. 26 정당방위는 참 믿음이 아니다.
제 목 : 정당방위는 참 믿음이 아니다.
성경말씀 : 마태복음 5:38 ~ 42
세상 법에, 정당방위 (正當防衛)를 했을 때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어도 면죄가 되고 그 잘못이 정당화된다.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정당방위를 했을 때는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가책을 받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을 한다.
구약에 율법에도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여서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그에 기준한 생활습관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따를 것은 세상 법도 아니며 관습적으로
내려온 어떤 문화나 생활풍습도 아니고, 오로지 우리 생명의
주이시며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과 그 말씀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뭐라 하셨는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하시며
1.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도 돌려대라.
이는 단순히 뺨을 친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고, 곧 인격적인
모독까지도 함께 한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분해하지 말고
상대의 뺨을 똑같이 치려고 대들지 말고, 상대의 감정을 녹여
주기 위해 왼 뺨도 맞을 준비를 하고 돌려대라는 것이다.
2. 속옷을 취하려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라.
옷이니까 물질을 뜻하는 것이고, 속옷이니까 보이지 않고 드
러나지 않게 교묘하게 내 물질 취하여 나를 부끄럽게 하려는
사람이다. 그러나 속옷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거나
다투지 말고 원하는 그대로 주고, 겉옷까지도 주라는 것이다.
3.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도 동행하라.
상대가 자신이 혼자 걸어서 외롭고 힘들기에 그걸 면해보고자
나에게 몸의 수고와 희생을 요구하며 함께 걷기를 원한다.
오리면 2키로 미터쯤 되는 거리로 약 30분이 소요되는 거리다.
내 시간과 몸의 수고와 희생이 따르는 것인데, 오히려 십리 곧
4키로 쯤을 동행하여 상대가 원하는 이상으로 상대의 외로움
과 힘든 것을 달래주고 함께 해주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정당방위가 아니다.
정당방위란 상대가 내 오른 뺨을 치려하면 안 맞으려 해야 하고
내 오른 뺨을 때릴 때는 나도 상대의 오른뺨을 치는 것이다.
속옷을 취하여 내 것을 앗아가려 하고 내 부끄러움을 드러내
려는 사람에게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방비를 해야 하고, 내 것을
찾고 오히려 상대가 부끄럽도록 공격하는 것이 정당방위다.
오리를 함께 가자하는 사람에게는 못 간다고 거절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고 그때 응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첫째, 그대로 당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누가 뺨을 치려하고, 속옷을 취하려 하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항거하려거나 거절하려 하지 말고, 섭섭해
하지도 말고, 그대로 당하고 그대로 적응하라는 것이다.
당하지 않으려 하고 응하지 않으려 하는데서 인간의 다툼과
고통은 더 커지고 또 다른 죄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순하게 당해 주라는 것이다.
둘째, 상대가 원하는 것 이상 더 내어 주라는 것이다.
오른 뺨을 맞았는데 왼 뺨도 내어 주고, 속옷을 취했는데 겉
옷까지 내어 주고, 오리를 가자하는데 십리를 가주어서, 상대가
원하는 것 이상 당해주고, 상대가 원하는 것 이상 응해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도 양심이 있는지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바로서든지, 아니면 도 다른 악을 행하려는 자리에서
멈춰 서게 되어 제 2, 제3의 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라
그대로 당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 이상 내어 주면, 당하는 사람
만 손해를 보고 억울하게 되며 바보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마음속 숨은 비밀까지
아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롬 12:19)
넷째,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고 기뻐하라.(롬8:16-18)
우리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
시며, 믿고 순종한 대로 되게 하신다.(계22:10-12, 마5:11-12)
우리의 현생은 길어야 백년 잠간이면 지나간다. 그러나 현생을
말씀대로 순종하고 잘 감당하면 영원한 축복과 영광이 있다.
2013-05-20 AM 9:43:04
2013.5.19 사랑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라.
제 목 : 사랑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라
성경말씀 : 요한1서 4:7 ~ 12
우리의 삶과 이세상은, 우리가 어떤 마음과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
파란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파란색이다.
노란색 안경을 쓰고 보면 온통 노란색이며, 검은색 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우리 주위는 온통 검은색이고, 맑은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은 아주 맑아 밝게 보인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에도 어떤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 주위와 이 세상이 좋게 또는 나쁘게도 뵈는 것이다.
마음에, 분노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분하게
여겨지고, 미움의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것이 밉게 보여 지며,
원망 불평 의심의 안경을 끼고 보면 이 세상은 그 사람에게는
원망스럽고 불평스럽고 의심스럽게 보여 평화로운 삶을 살기가
어렵게 되고 고단하고 불평한 삶이 된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에 어떤 안경을 끼고 세상
을 보고 어떤 안경을 쓰고 이 세상 살기를 원하시는가?
본문 말씀을 보면 “사랑”이란 이름의 안경을 끼고 이 세상을
보고, “사랑”이란 이름의 안경을 쓰고 이 세상 살기를 원하신다.
그 이유는?
첫째, 사람은 사랑하고 살아야 행복한 삶이되기 때문이다.
7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 말씀은
사람은 사랑을 주고, 받고, 먹고 살아야 행복한 삶, 가치 있는
삶, 보람 있는 삶이되기 때문이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조사한 것에 의하면,
“내가 돈을 얼마 벌었어야 했는데 그 액수를 채우지 못해
아쉽다거나, 승진을 더 했어야 되는데 승진을 못해서 한이다
거나, 회사를 더 키우고 사회적인 명예를 더 얻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후회한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거의가 다
“내가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라, 내가 너무했다, 사랑한다.”등
자기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고 더 사랑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었다고 한다.
우리 역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런 삶만이 우리를 삶에 종착점에서 후회하지 않게 해줄 것이다.
둘째,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7~8)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시기 질투 미움 등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야고보서 3:13~18. 신약374)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또한
미움과 원망 불평을 버리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 하게 된다.
물론 연약한 인생들이라 순간순간 부패한 성질에 사로잡혀서
분노 다툼 미움 등에 자신을 더럽힐 때도 있다. 그러나 정말 진
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은 부패한 성질을 회개하고
다시금 사랑하는 마음, 사랑이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랑이란 이름의 안경을 통해 주위 사람을 보게 되어,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모든 것이 아름답고 좋게 되어가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사랑하는 것이다. (9~11)
우리가 이미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고,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 잘한 것도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는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우리의 속죄 제물로 내어 주셨다.
하나님의 이러한 지극하신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그런 사랑
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야 어찌하든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한다.”
“상대가 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기 전에
내 자신과 감정을 희생시켜 먼저 사랑해야 한다.“
사랑을 하되 “상대의 잘못까지도 덮어주고 관용할 때까지 사랑
해야 한다.”(베드로전서 4:8, 신약381)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다.”(잠언17:9)
이제 다시금 우리 마음과 눈에 사랑이란 안경을 쓰자!!
그러면 세상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이고 사랑을 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것만이 우리 삶을 행복
하게 해 주고 우리 삶을 가치 있게 해주며 후회 없게 해 준다.
집에서도 서로 사랑하자! 사회생활에서도 먼저 사랑하자!
교우들끼리도 서로 사랑하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2013-05-13 PM 8:43:00
2013. 5. 12 하나님께서 의롭게 보시는 사람
제 목 : 하나님께서 의롭게 보시는 사람
성경말씀 : 누가복음 18 : 9 ~ 14
어떤 사람을, 사람 자신들이 아무리 의롭게 보아도
우리 하나님께서 옳게 보아주시지 않으면 그것은 헛된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옳다 인정해주시길 바라기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아주느냐에 더 관심이 많다.
물론 우리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느냐”
가 중요하며 그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을 해야 한다.
<스스로 옳게 여기는 사람 = 하나님께서 인정 안하심>
이 사람은 자부심을 가질 만큼 잘한 것이 많이 있었다.
1) 토색하지 아니했다 : 잘못된 방법으로 재물을 얻지 아니했다.
2) 불의하지 아니했다 :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의롭게 행했다.
3) 간음하지 아니했다 : 몸의 정절을 지켰다.
4) 세리와 같지 아니했다 : 권력과 물질에 아부하지 아니했다.
5) 이레에 두 번씩 금식했다 : 자신을 다스려 경건생활 했다.
6) 십일조를 드렸다 : 물질로도 하나님을 섬겼다.
잘못한 일
1) 스스로 옳게 여겼다 :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을 사람이 없다.
오직 예수님의 구속과 부활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롬3:20)
2) 다른 사람을 멸시했다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잠16:18)
그를 지으신 주님을 멸시한 것이다.(잠 14:31)
이 사람은 도덕적 율법적으로 잘한 일이 있었어도, 근원적인
잘못으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함을 얻지 못했다.
<죄인임을 고백한 사람 =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심>
1)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 겸손히 낮아졌다
2) 다만 가슴을 치며 : 죄를 깨닫고 원통히 여겨 회개했다.
3)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소서 :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다.
4) 죄인임을 고백했다 : 하나님께서 심판과 사죄의 권세가 있음을
믿고 긍휼과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갈망한 것이다. 이러므로
엄연한 죄인임에도 죄 용서를 받고 “의롭다” 인정을 받았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1) 잘 한 것이 있어도 그걸 내세워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2) 다른 사람을 멸시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된다.
3) 위선에서 벗어나 솔직히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목사부터 회개합니다.
첫째, 종의 역할을 바로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목사는 성삼위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며
주님께서 피 값 주고 사신 몸 된 교회와 맡겨주신 성도들을
섬기는 종입니다. 잘 알고 마음에 담고 있으면서도
목사가 너무 앞서나가다 보니까 섬기는 것이 아니고 주장하는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회의 어쩐 절차나 논의들을
생략하여 본의 아니게 당회원이나 교우들을 무시한 일이 되어
여러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데 이 일을 회개합니다.
앞으로는 좀 더 낮아져서 종으로서 섬기는 자리에 서겠습니다.
둘째, 강함을 회개합니다.
저에게는 약간의 강인한 성품이 있습니다. 이 성품이 어려움과
난관을 돌파하는 데는 일정부분 유익한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평상시에는 독선적인 것이 되어 장로님들과 여러 교우들 마음
을 힘들고 아프게 한 것을 회개합니다.
좀 더 온유 겸손하게 낮아지겠습니다.
셋째, 원만치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언어사용이나 행동에 있어서 적절하고 원만하게 했어야 되는데
말과 행함에 실수가 있어서 교우들에게 오해가 일어나게 하고
교우들끼리 설왕설래하게 되어 불신을 가져오게 한 것을
하나님 앞에서도 회개를 하고 장로님들과 여러 교우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너그러이 받아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넷째, 대책.
1) 진리와 생명운동을 위해서는 순교를 각오하고 헌신하겠습니다.
2) 교회의 제반사항들은 반드시 당회의 의결을 통한 것만 진행
하도록 할 것이며 제직회에서 논의한 것만 이뤄질 것입니다.
3) 교회 일은 당회, 제직회, 각 부서에 맡기고 기도와 말씀선포,
심방에 전념.
하겠습니다. 모든 교우들의 성원을 바랍니다
2013-05-06 PM 9:13:59
2013. 5. 5 어린아이를 축복하시는 예수님
제 목 : 어린아이를 축복하시는 예수님
성경말씀 : 마가복음 10 : 13 ~ 16
사람들이 예수님이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다. 이를 본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이 뭘 안다고 이복잡한 중에 데리고 나와서 우리
예수님을 번거롭게 하는가?" 하고 꾸짖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분히 여기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어린아이들을 안으시며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다.
제자들의 생각은, 어린아이들이(1~2세 쯤 되는 아이들)
율법도 모르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며, 헌금도 하지 않고,
그저 돌봐주기나 해야 할 번거로운 대상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도 어른들과 같은 한 영혼을
가진 존귀한 생명체요 어린아이들에게 있는 좋은 점들을 아시고
기쁘게 맞아주시며, 오히려 어른들도 어린아이와 같이 되기를
원하시며 아이들에게 안수하시고 축복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른들도 어린아이와 같이 되기를 원하시며
축복하신 일에 어린아이들의 좋은 점들은 어떤 것들인가?
첫째, 순수(純粹) 함이다.
어린아이는 죄악에 오염되거나 더러운 것이 없이 그냥 깨끗
하다. 아장아장 걷는 모양이나 방긋방긋 웃는 해맑은 얼굴 등
쌔근쌔근 잠자는 모습은 천하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깨끗함이며 그야말로 천사들과 같다.
둘째, 욕심이 없다.
필요한 것을 찾음은 욕심이 아니다. 필요 이상의 것을 찾고
분수 이상의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것이 욕심이다.
어린아이들의 욕심은 기껏해야 두 손에 검어 쥐는 정도이지
어디다 숨기면서 더 쌓고 또 쌓으며 자기만 누리려는
욕심이 없다. 물욕(物慾), 정욕(情慾), 사욕(私慾) 등 자기만을
위한 이기심이 없이 먹고 입고 자는 것으로 족하다. (딤전 6:7~12)
셋째, 단순하다.
말이나 행동이나 어떤 사건들에 있어서 2중 3중으로 추측하여
확대하지 않고, 말과 행동 사건들 그대로를 깨끗하게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밥 먹어라” 하면 아 밥 먹으라고 하는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왜 밥 먹으라고 했을까? 미운아이 떡 하나
더 주라 했는데 나를 미워해서 밥 먹으라고 했을까? 아니면
내 밥에 안 좋은 약을 넣고 먹으라고 하는가? 추측의 나래를
펴거나 오해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으며 깨끗하게 받아들인다.
넷째, 좋은 감정으로 회복이 빠르다.
어린아이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꾸중을 듣고 엉덩이를 맞았다.
한 시간도 못가서 웃으며 엄마 아빠에게 안기고 재롱을 부린다.
어른들은 어떻게 하는가? 몇날 며칠을 분한 맘을 가지고 생각
하며 되 뇌이고 몇 년을 가도 회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그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좋은 감정으로 회복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기뻐
하시고 복을 주시며 자신도 마음에 천국을 누리게 된다.
다섯째, 부모를 알아보고 따른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아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알고 따른다. 부모가 나이가 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지식적으로 알고 따르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냄새, 부모의 숨결, 부모의 목소리를 그냥
본능적으로 알고 느끼며 좋아하고 따르는 것이다.
부모가 아닌 사람은 따르지 않고 멀리하며, 부모가 안 보이면
엄마 아빠를 찾으며, 찾을 때까지 울면서 애를 쓴다. 찾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품에 안기어 평화를 누리고 편히 쉰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른다.”
(요10:27) 이와 같이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좋아하며
본능적으로 믿고 따르며 배운다. 이제 우리가 어린아이의 성품
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의 하늘나라,
마음의 천국을 누릴 수가 없다. (눅17:20-21, 마12:28)
2013-04-29 PM 1:10:32
2013.4.28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
제 목 :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
성경말씀 : 마태복음 1 : 1 ~ 6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얽매어 산다.
잘 한 일은 잘 한 일대로 회상하며 그리워하며 살고
못한 일은 못한 일대로 거기에 얽매여 괴로운 삶을 산다.
때로는 과거에 잘 한 일을 내세워서 현재에 잘못하는 일들을
덮으려 하거나 현재에 잘못하고 있는 일들을 합리화시키기도
하고, 또는 과거에 잘못한 일들에 발목이 잡혀서 발전을 못하고
고민과 갈등 속에 후회의 삶, 자책의 삶을 살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를 않고 잘한 것만
내세우며 교만하게 나가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잘한 것은
잊고 잘못한 것만 생각하며 자포자기의 열등에 삶을 산다.
그러나 위에 말한 여러 가지, 즉 잘못된 과거에 얽매여 살거나
잘한 과거를 내세우며 교만하게 사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
주 싫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의 과
거에 삶보다는 현재의 삶이 어떤가에 관심을 가지시고, 이에
따라 축복도 하시고 이에 따라 징벌을 하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중요한 것은, 과거나 미래의
삶이 아니라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본문말씀은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과 그 족보인데,
남자만의 혈통으로 이어져가는 족보에 기이하게도 네 명의 여
인이 나온다. 3절에 “다말” 5절에 “라합”과 “룻” 6절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이다. 위 네 여인은 훌륭한 여인들이
아니다. 인간의 상식과 윤리로 보면 부도덕하고 아주 잘못된
연인들이다. “다말”은 첫 남편이 죽고 둘째 남편도 죽어서
결혼에 실패한 여자로 시부와 동침한 부도덕한 여자요.(창 38:18)
"라합“은 몸을 파는 기생으로 민족과 나라를 배반한 여인이다.
(수2:1) “룻”은 첫 남편이 죽어 결혼에 실패한 여자로 하나님
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모압 여인이었으며(룻1:3, 신23:3)
“밧세바”는 전쟁터에 있는 남편을 외면하고 다윗 왕과 간음을
한 부정하고 불륜을 저지른 여인이다.(삼하11:2-5)
이러함에도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되고
그 영광스러운 족보에 참여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4
되어 하늘에 축복을 받고 기념되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이 여인들에게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으니,
첫째, 상천하지에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었다.(수2:8-11) 구 321
몸을 파는 기생, 결혼에 실패한 여인,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
오지 못할 이방 여인, 불륜을 저지를 부정한 여인이었지만,
이 여인들이 잘못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하늘과 땅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며 하나님께서만 천하 만물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임을 믿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섬겼다.
둘째, 구원의 주 예수님을 믿었다. (창49:8-10) 구79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유다
의 후손으로 오셔서 사람들의 원수인 죄와 마귀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셔서 만민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 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 예수님을 사모하며 구주로 믿은 것이다.
자신들의 삶이 비록 부도덕하고 불결한 삶이었지만, 그에서 벗
어나고 사죄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길뿐임을
알고, 장차 오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고 소망하였다.
셋째, 믿은 대로 행동하고 전진했다.(룻1:15-18) 구402
하늘과 땅에서 오직 하나님께서만 참 신이심을 믿고, 죄악과
사망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뿐임을 믿은 다음,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된 삶, 더럽고 누추한 삶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그 믿음을 따라서 담대하게 행동하고 실천해 나갔다.
자기 나라와 민족과의 관계를 끊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였고
말씀에 약속되어 있는 구원과 축복을 사모하며 전진해 나갔다.
여인들의 이런 믿음과 행동을,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그들의 과거에 부정한 행적을 묻지 않으시고, 현재의 믿음과 그
행동을 축복하셔서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되게 하고, 족보에
참여케 하며, 성경에 기록케 하여, 이 여인들의 믿음과 행동을
영원히 기념하도록 영광스럽게 하신 것이다.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현재의 믿음과 행함을 보시는 하나님!!
현재 내 믿음과 행함은 어디에 서 있는가?(겔33:11-16) 구1202
2013-04-22 AM 9:06:27
2013. 4. 21 선한 일군을 세워라..
제 목 : 선한 일군을 세워라
성경말씀 : 사도행전 6 : 1 ~ 7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일군들,
곧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워서 생명운동을 이루어 가시며, 그
자격에 대하여 신, 구약 성경에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다.
본문은 초대교회에 안수집사를 세울 때의 과정인데,
오순절에 임하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고
말씀이 왕성하게 전파되어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날마다 늘어나
불과 몇 달 만에 수천수만의 성도로 부흥하게 되었다.
수만 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유무상통하고 동고동락하며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데, 불과 12명의 사도로서는 그
많은 성도들을 원만하게 보살피기가 어려워 여러 교우들에게서
불편한 일과 원망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교회에 선한 일군들을 세우게 됐는데,
3절에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라 했고
5절에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이라 했다.
위 말씀을 합하면 1)성령 충만 2) 믿음 충만 3) 지혜 충만
4)칭찬을 듣는 사람인데, 이는 서로가 다 연결되어져 있다.
즉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믿음이 충만하게 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지혜가 충만하게 되어, 자신을 믿음과 말씀에
순종시켜서 충성하므로 자연히 칭찬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같이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은?
첫째, 모든 예배에 참여하여 신령과 진정한 예배들 드린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의 근본이며 제일 중요한 일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신령한 예배드리는 일이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성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림을
세상 그 어떤 일보다 제일 존귀하고 기쁘게 여기며,
그 자리에 늦거나 빠질 수가 없으며
눈을 감고 졸거나 방관적인 자세를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선포되는 말씀이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고 압박을 한다 해도
겸손히 회개하며 그 말씀에 자기를 굴복시켜 나가는 것이지
감히 거부적이거나 불편한 자세를 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린다.
둘째, 말씀에 순종하고 사명에 충성하며 제도에 협력한다.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그 말씀이 자기에게
좋고 좋지 않음에 관계없이 그 말씀을 순종하면 자기 자신에게
축복임을 알고, 선포되는 말씀에 착한 마음으로 순종해 나간다.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과 사명에 적극적으로 충성하고,
교회에서 진행하는 여러 가지 제도에 즐거운 마음으로 협력한다.
교회에 일군을 세운 목적이 교회에 불편한 일을 줄이고, 원망할
일들을 해결하는데 있는데, 정작 교회에 일군 된 자가 교회의
일을 불편하게 하거나 비판이나 원망을 하고 수수방관한다면
이는 성령과 믿음과 지혜도 없고 칭찬 받을 수도 없다.
셋째,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린다.(말라기 3:8-12)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나 헌금
을 아까워하며 부담스러워 할 수 있는가? 믿음의 지혜로 보면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영, 육간에 더 많은 축복을 받고 하늘에 상급을 얻는 일이라,
오히려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넷째, 경건하고 깨끗한 생활을 한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될 수 없고
타락된 문화와 술, 담배, 도박, 마약 게임 중독 등에 빠질 수가
없다. 돈에 사로잡히거나 술, 담배, 도박, 게임 등의 타락된
문화와 미신적인 풍속이나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곧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며, 이런 사람은
교회의 귀중한 일군으로는 자격이 미달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의 일군이 되는 것은 축복된 일이다.
직분을 사모하고 그에 합당한 자격을 만들어 가는 것은 축복을
받을 일이며 하늘에 찬란한 영광을 누리게 될 일이다.
이제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칭찬 받는 길로 걸어가자!!
2013-04-16 AM 8:42:43
2012.4.14 믿음의 생명을 살려라
제 목 : 믿음의 생명을 살려라
성경말씀 : 출애굽기 1 : 8 ~ 22
본 말씀은 지금부터 약 3,500년 전에
이집트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실인데, 이와 같은 일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기에 과거 역사를 거울
삼아 현재를 바로 살아가라는 뜻으로 기록하여 주셨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이집트의 뜻은,
1) 이 세상이다. 2) 불신앙의 대표다. 3)마귀의 세력이다.
이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믿음의 세력들이 번성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반대하며 약화시키려 하는데 그 방법은? (8~22)
1. 힘든 일로 괴롭힌다.(11~14)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자꾸 생겨나게 해서 그런 일들로 고통을
당하게 하고, 삶에 괴로운 일들이 일어나서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 생활을 잘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어렵게 한다.
2, 여러 가지 일들로 분주하게 한다. (11~14)
여기저기 성을 건축하는데 동원을 하고, 흙 이기기와 벽돌을
만들어 굽게 하며, 농사에 여러 가지 일들과 세상일에 등에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쁘게 하여서, 성도들이 믿음을 키우고 믿음
의 일을 하는데 시간을 낼 수 없도록 분주하게 한다.
3, 죽이려고 한다. (15~16)
“여자는 살리고 남자를 죽이라”는 것은, 여자가 남편을 따라
살 듯, 성도가 세상 것을 따라 살아가면 그런 사람은 여자로
생각하고 그들은 그대로 두고, 남자처럼 주관을 가지고 믿음
의 대를 이어가며 참 믿음을 지켜가려는 성도들은 참 믿음이
자라나지 못하도록 하고, 어린 아이나 연약한 사람들에게 새로
운 믿음이 생겨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4. 물에 떠내려가게 한다.(22)
여기 물은 나일강물 인데, 이는 사람으로는 거스릴 수 없는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이 세상의 타락된 문화나 물질만능
주의와 죄악 된 것들의 흐름과 어떤 유행이나 악 사상 등을 뜻
한다. 사람들이 이런 것들에 빠져들고 중독되게 해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여, 사람들이 참 믿음 갖지 못하게 하고,
그 물에 허우적거리다가 한 평생 죄나 짓게 하고
비참하고 불행한 가운데 살다가 생을 마치게 하는 것이다.
위 네 가지는 출애굽 시대에 그 세상과 하나님을 불신하는 그
세력들과 악한 영의 세력이 그렇게 했고, 오늘날도 여전히
현 세상과 하나님을 불신하는 세력들과 사단 마귀의 세력들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런 방법으로 접근하고 둘러싸고 침투해서
참 믿음이 세워지지 못하게 하고 믿음의 대를 끊어버리려 한다.
이때에 참 믿음을 세우고 믿음의 대를 이어가려면,
첫째, 핑계대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12,15~17)
어떤 일이든지 핑계대고 두려워하면 이미 그 일에 지고 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힘들다. 바쁘다. 위험하다. 재미없다. 등
핑계대지 말고, 세상이나 불신세력들과 악령들의 세력을 두려워
하지 말고, 믿음으로 당당하고 담대하게 부딪혀 나가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믿음을 세우고 생명을 살려야 한다.
둘째, 믿고 기도하며 돕고 섬겨라. (17~19)
산파들이 하는 일이 새 생명이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듯,
모든 직분자들과 먼저 믿은 성도들은 어린 생명들과 새로운 생
명들의 영혼이 믿음으로 잘 살 수 있도록 돕고 섬기는 것이다.
어린 생명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사랑으로 섬기며 보살펴주고
그들의 영혼이 믿음 안에서 아름답게 성장하도록 섬겨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줘야 한다. (롬10:17)
섬기며 사랑하는 목적은 그 영혼이 잘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영혼이 잘되는 길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말씀을 순종함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속에 다 계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부터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잘
익히고 순종하면서 어린 심령들에게 말씀을 심어줘야 한다.
영적 생명이 태어나는데도 말씀이 필요하고, 이미 살아난 영혼
이 아름답게 성장하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다.
또한 나 자신이 잘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도 말씀을 잘 익혀 전해줘야 한다.
위 세 가지를 잘하면, (20~21)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시고,
산파역을 한 성도도 축복을 받고, 모든 백성이 축복을 받는다.
2013-04-08 PM 7:41:21
2013. 4. 7 모든 사람이 칭찬하면 화가 있다.
제 목 : 모든 사람이 칭찬하면 화가 있다.
성경말씀 : 누가복음 6 : 22 ~ 26
사람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감정이 민감하다.
감정이 민감하다보니 희(喜) 노(怒) 애(哀) 낙(樂)에도 민감하여
주위 사람들의 말과 환경과 느낌에서 그때그때 영향을 받아
돌이킬 수 없는 흑암의 구렁텅이 빠져 불행해지기도 하고
웃음꽃을 피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책망을 받으면
싫어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같이 했다“
고 하시며 칭찬이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을 말씀하셨다.
물론 잘한 일에 칭찬과 상급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주의하지 않으면 위선이 되며 죄악이 된다.
첫째, 칭찬을 받을 것을 생각하여 일을 하지 말라.
많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칭찬 받을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하여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어떤 일이든, 칭찬과 상급이 있든지 없
든지 그 일이 좋은 일, 옳은 일, 선한 일이라 행하는 것이고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고 올바른 일인데도 행하지 않은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일을 하고도 실망할 수가 있다.
인류역사와 현실 세상의 흐름을 보라!
그 어느 시대나 옳고 좋은 일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 칭찬 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시는 나쁘고 악한
일임에도 그것을 좋게 여겨 찬양하며 따르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일임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정치적으로 공산 독재주의가 얼마나 낙후되고 잘못된 사상인가?
그런데도 그것을 찬양(칭찬)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종교적으로도 성삼위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님을 믿는 일은
모든 인생들의 마땅한 도리이며,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인생
최대요 최고의 축복임에도 이를 칭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이 옳고 바른 일이라 칭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에 맞고 자기 생각에 좋게 여겨지면 칭찬을 하고,
자기에게 유익이 있고 도움이 될 때에만 칭찬을 한다.
그렇기에 칭찬을 받으려고 어떤 일을 하다보면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춰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 다니는 인생이
된다. 그러므로 이 일을 하면 사람들이 칭찬을 해줄까 안 해줄
까를 생각하여 하지 말고, 옳은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
한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칭찬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낙심하지 말라.
좋은 일 바른 일을 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칭찬을 안
해주면,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했다." 고 생각하고,
낙심하거나 후회하고 자기가 손해 본 것처럼 여긴다.
또 좋은 일, 옳은 일을 했음에도 칭찬이 없음으로 섭섭하게 생각
하거나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다시는
그 좋은 일들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진정 올바른 일을
했다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사람들이 칭찬을 안 해주어도,
우리의 “하나님께서 알아주신다.” 믿고, 바르고 선한 일들을
기쁨으로 감당해 나가야 하고 그것이 참 믿음이다.
셋째,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려 하지 말라.
제 아무리 바르고 좋은 일을 했어도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이것은 욕심이며 교만이다. 창세 이래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 값 대신 목숨까지 바치
시며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하여 천국복락까지 누리게 하셨지만
그 예수님도 모든 사람에게서는 칭찬 받지 않으셨다.
링컨, 에디슨, 간디, 세종대왕, 이순신 등 인류 역사에 공헌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라! 그들도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은 것
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려 한
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며 화 받을 일이 되는 것이다.
바르고 좋은 일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다음의 우리의
자세는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눅17:10) 하고 겸손히 낮아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2013-04-01 PM 10:11:58
2013. 3. 31우리가 누리는 부활
제 목 : 우리가 누리는 부활
성경말씀 : 누가복음 20 : 27 - 40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은,
사람의 지혜나 능력으로는 전혀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일로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생각하는 것이 비슷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사람이 부활한다.”고 말씀하실 때에
사두개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반대와 비난을 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비난과 불신을 깨뜨리고, 자신께서 하늘
에서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심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죽어서 나흘이 되어 무덤에 있어 썩어서 냄새가 나는 “나사로”
를 이미 살려내셨고, 자신께서 우리 죄 값을 지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살아나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해결하셨고,
우리가 죽어도 부활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 시켜 주셨다.
이런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한 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의 부활이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때문에
이미 부활의 생명이 있는데 그 과정은 어떤 것이겠는가?
첫째,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영혼과 흙에서 취해 만든
육신으로 결합돼 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죄 값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영혼이 죽어버렸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영혼이 죽고 육신만 살아 있음으로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
하여 죄만 짓고 살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훨훨~ 타오르는
지옥 불바다에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고 저주를 받게 되었다.
죄 값으로 영혼이 죽었고, 죄 값으로 지옥 형벌을 받게 됐는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 값을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죄 값에
형벌을 완전히 담당하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내 죄 값 대신 죽으신 구원의 주님으로 믿으면,
억만 가지 모든 죄악을 깨끗하고 완전하게 용서를 받는다.
모든 죄를 깨끗하게 용서 받았기에 죄 값으로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데 이것이 거듭남이요 곧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영의 부활이며 첫째 부활이다.
둘째, 육신이 죽어도 영혼은 천국에 가서 다시 산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지금부터 약 4.000년 전에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로부터는 약
2.000년 전인데, 2.000년 전에 살다가 죽었으니 그 육신들은
썩고 또 썩고 산화되어서 아무런 흔적이 없이 되었다.
썩어 없어졌든지 안 없어졌든지 죽은 것은 사람들도 싫어하고
하나님께서도 싫어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칭하셨
으니, 이것은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죽어서 육신은 소멸되어
없어졌지만 그 영혼은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며 살고 있기에,
하나님은 살아 있는 믿음의 성도들의 하나님으로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당당하게 칭하셨다.
몸이 죽어도 영혼이 천국에서 다시 사는 이것이 둘째 부활이다.
셋째,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예수님께서 천사들의 호위와 나팔소리로, 만왕의 왕이시며
만물을 심판하실 주님으로 다시 오신다. 이때에 천국에서 살던
성도들의 영혼과 땅에 산화되어 없어졌던 성도들의 몸이 재결합
하여 천사들처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데살전 4:16-18)
이것이 셋째 부활이며, 이때에 죽지 않고 그 현실을 살고 있는
성도들은 죽음을 당하지 않고 몸이 변화되어 천사들처럼 신령한
몸체가 되어 천년왕국과 영원무궁한 천국복락을 누린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이 죽어도 죽지 않고
행복을 누리는 영원한 축복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 축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 예수님께서 약 2.000년 전에 하늘에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 값을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죽으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이다. 그 시기가 이때쯤이며 안식 후 첫날
곧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기에, 일요일을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님의 날, 곧 주일이라 하여 주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이 축복을 주신 성삼위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릴지어다.
2013-03-25 AM 7:27:38
2012.3.24 내 원대로 마옵시고
제 목 : 내 원대로 마옵시고
성경말씀 : 마태복음 26 : 36 ~ 46
예수님께서 죽으실 시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순조로운 죽음도 애석한 일인데, 온 인류의 죄 값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니 진정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구세주로서의 사역을 잘
감당하시려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 한 곳에 머물러 제자들에게도 기도할 것을
말씀하시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땅에 엎드려 기도를 하신다.
“내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내용의 기도를 세 번이나 반복하셨다.
예수님께서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육신으로는 우리
와 똑같은 몸의 살과 뼈와 피와 신경과 세포를 가지셨다.
즉 우리가 주사 바늘에만 찔려도 피가 나고 아픔을 느끼듯이,
예수님도 사람이 느끼는 슬픔과 모든 고통을 다 느끼신다.
이런 예수님이 우리 죄 값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찔리고 찢기는 아픔을 당하며 죽을 때까지 고통을 당하신다.
이 때문에 느끼는 마음의 고민과 고통이 그 얼마나 크시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이 당할 고통의 극심함을 생각하며, 아버지께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의 소원이고, 하나님의 뜻이 다르시다면,
예수님 자신의 뜻보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소서.”하시므로
자신의 소원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러한 기도와 순종은?
첫째,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욱 존귀하게 여겼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계획, 자기 뜻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려 한다. 자기의 어떤 소원이나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범을 동원하려 합리화시키며
감히, 하나님의 뜻, 말씀까지도 무시하고 나간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 소원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이루려고 분투하기보다는,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의 원하시
는 대로,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했다.
예수님 자신의 원함보다 하나님의 원하심이 더 존귀하고
예수님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아름답고 좋음을 알고,
자신은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고 버림당하고, 자신은 십자
가에 못 박혀 찔리고 찢기는 아픔을 죽음을 당한다 하여도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일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맘을 다 바치신 것이다.
둘째, 자신의 뜻보다 사명을 더 존귀하게 여겨 감당했다.
예수님은 이름의 뜻까지도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주시라“ 하여 모든 인류의 죄 값의 형벌을 다 담당하시고 구원
할 사명을 받으셨다. 한 두 사람의 죄 값, 그 형벌도 무거운데
온 천하 택한 백성들의 모든 죄 값의 벌을 담당하시는 일이니
그 형벌의 무게와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시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몸과 마음의 고통이야 어떻게 되든지,
오로지 자기에게 맡겨주신 “구원의 주”로의 사명과 그 존귀함과
위대함을 알고, 그 일에 자신의 몸과 맘을 희생시키신 것이다.
셋째, 자신의 뜻보다 사랑을 더 존귀하게 여겨 이뤘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원하는 것을 버리고 아버지의 원하시는 것을
따르고, 자신을 희생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올인 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의무감이나.
그로 인한 자신에게 돌아올 명예나 영광을 얻으려 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사랑에 근거하여
그 쓰라린 십자가 죽음의 고통과 형벌을 달게 받으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도 예수님의 발
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나의 뜻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존귀하게
여겨 이루어 가고,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내 몸과 마을 희생
하여 감당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나가는데
나 자신을 바쳐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축복이 된다.
2013-03-18 AM 9:04:47
2013. 3. 17 명분의 존귀함과 그 축복을 알라.
우리는 이미 믿는다. 이제 가르침을 받은 대로 행하면 된다.
제 목 : 명분의 존귀함과 그 축복을 알라.
성경말씀 : 창세기 15 : 24 ~ 34
본문 말씀 지금부터 약 3,950년 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 에서와 야곱에 관한 말씀이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에서가 형이며 야곱은 동생인데
에서는 장자로서 영 육간에 큰 축복을 받을 자리에 있었다.
하루는 에서가 사냥을 하고 다니다 배가 고파서 허기진 체로
돌아오는데, 마침 동생 야곱이 길에서 팥죽을 끓이는 것을 보고
그 죽을 달라고 요청했다.
야곱은, “형의 장자의 명분을 팔면 팥죽과 떡을 주겠다.”고
말했고, 에서는 장자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주겠다고 약속하고
팥죽과 떡을 먹고 허기진 배를 채우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에서로서는 말할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니, 장자에게 보장된 영 육간에 큰 축복을 무시한 것으로
자손 대대로 불행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장자에게 보장된 축복은 무엇인가?
첫째, 가문에 족장이 되는 축복이 있다. (창 12:2~3, 47:7)
가문에 족장이 되어 가솔들을 다스리며 지도하는 권세가 있고
선대 족장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축복할 권세를 위임받았으며
또한 후손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할 권세가 주어졌다.
둘째, 유산을 두 배나 상속받는다.(신12:15~17)
조상으로부터 재산을 상속 받을 때, 다른 형제들의 두 몫을
받도록 보장 되었으며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셋째, 영적 축복을 승계 받는다.(마8:10~11)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영적 축복을 조상으로부터 승계 받아
자손에게 전수해주며,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받아 누린다.
넷째, 예수님의 육신적 조상이 된다.(마1:1~2)
후손들이 잘되어 다윗과 솔로몬 같은 왕가를 이루게 되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실 때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되는 인생 최고의 축복이 있다.
위 네 가지가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가? !!
사람으로서 이 이상 더 큰 축복이 있을 수가 없으며, 이 세상에
그 어떤 축복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런 축복인 것이다.
이 엄청난 축복을 에서는 왜 버리게 됐는가?
첫째, 장래보다 현실을 더 중요시 했다.
위 장자에게 보장된 축복은 다 장래에 될 것들이었다.
현실은 당장 배가 고프니, 장차야 어떻게 되든 그것이 아무리
엄청난 축복이라 하여도 현재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실이 좀 어렵다고 해도 장차 엄청난 축복이 보장돼
있다면, 현재를 좀 희생해서 장래의 엄청난 축복을 소망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며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비결임을 알아야 한다.
둘째, 영의 축복보다 물질을 더 중요시 했다.
동물들은 물질로 배부르면 그것으로 만족하게 살 수 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영혼이 있어서 물질만으로는
만족을 누릴 수가 없고 참 된 행복도 누릴 수가 없다.
그럼으로 영혼이 축복을 누리고 평화를 누려야 인생이 참 된
만족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에서는 오히렬 영의 축
복을 버리고 물질을 취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이다.
잠간 있다 없어질 물질에는 영혼의 축복이 전혀 없다.
우리는 물질보다 영혼의 축복을 더 사모하고 취해 나가야 한다.
셋째, 잠간의 만족을 얻으려 영원한 축복을 버렸다.
육신의 축복은 제 아무리 길어야 백년쯤이다.
영혼의 축복은 천년, 만년, 수천억 년에~ 헤아릴 수 없이 영원한
축복이 보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에서는 장자의 축복에 보장
돼 있는 영원한 축복을 무시하고, 길어야 백년쯤 되는 육신이
잘되는 길을 따라간 것이다. 그 결과 자신도 불행하게 되었고
자신과 함께 자손 대대로 불행을 당하게 되었다. (히12:16~17)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와 성도라는 존귀한 명분이 있다.
또한 영적으로 영원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자리와 그
에 따르는 직분을 이미 받아 놓고 있다.
에서의 자리에 설 것인가? 아니면 야곱의 자리에 설 것인가?
우리가 택하는 대로 영원한 축복과 영원한 부끄러움이 좌우된다.
2013-03-11 PM 7:16:41
2013. 3. 3 믿음을, 행함으로 온전케 하라.
제 목 : 믿음을, 행함으로 온전케 하라
성경말씀 : 야고보서 2 : 14 ~ 22
야고보서 말씀은 행함을 중점으로 말씀하셨고
2장은 야고보서의 핵심으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하시며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하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세계 기독교와 우리나라의 기독교계를 살펴보면
크게 3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1) 믿음이 바로 되지 아니했다.
성삼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기독교의 핵심이다.
이 믿음이 잘못 되면 바른 신앙은 그 자체가 세워질 수가 없고
이미 세워졌다 하여도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바른 믿음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천하 만물은 빅뱅을 통한 진화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천하 만물의 창조주이시기에 오직 하나님께만 만물
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고, 하나님께만
만물을 심판하실 주권이 있으시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 혹은
다른 신이라는 것들은 풀 한포기도 만들지 못하고, 파리 한 마
리도 움직일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자연 통치 아래 만물의
생사화복과 그 생성쇠멸이 좌우된다. 이것만이 바른 믿음이다.
예수님은, 인간이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죽으심을 믿음으로만 죄 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으며, 천국복락을 누리게 된다. 이 구원은
돈이나 선행이나 성경 지식이나 비밀을 아는 것 등 그 어떤 것
으로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얻는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우리에게 임하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선하고 유익하게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고
이미 믿는 성도는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를 받아야 한다.
2) 말씀을 비뚤어지게 가르친다.
신구약 성경 66권 말씀은,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해석하고 가르치고 믿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나 천주교를 비롯한 수많은 이단들이, 성경 말씀을
자의적으로, 또는 철학적, 과학적, 미신적, 인본주의적으로 풀
고 가르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원래의 본뜻을 훼손하고,
자기들 욕심을 채우고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이익의 수단으로
사용을 한다. 이제 우리는 말씀 그대로 순수하게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본래의 뜻을 그대로 가르치고 믿어야 한다.
3)행함이 따르지 않는다.
바른 믿음과 바른 가르침을 받아도 행함이 없음이 문제이다.
우리 주변과 우리나라와 세계적인 문화와 사회상을 살펴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악과 불행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런 중에도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침
받은 그대로 실천하고 행동하였다면 우리 주변과 사회는 훨씬
죄악이 줄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말씀을 많이 가르침 받고 배우지만
종교적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는 면이 적고, 현실에의 타락된
문화와 죄악의 흐름에 휩싸이다보니, 정화되어야할 이 시대의
문화와 흐름은 오히려 더러워지고 죄악일 더 판을 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나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믿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가르침 받은 그대로, 옳게
행동할 것을 실천하고 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른 믿음과 말씀의 가르침을 받았어도 행함이 없으면?
첫째, 아무 유익이 없다. (14절 상)
성삼위 하나님을 믿고 섬김에는 영, 육간에 유익이 있다.
우리가 기본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죄 용서를 받고 천국백성
이 되었다. 그렇다 해도 또한 몸을 가지고 현실 세상을 살아가
는 동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믿음과 말씀이 있어도 그에 따르는 행함이 없을 때는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도우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영, 육간에 아무 유익이 없게 된다.
우리가 마음에 원하고 수고하고 노력하는 모든 일들에 좋은
열매를 거두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도록 행함이 따라야 한다.
둘째, 구원이 없다.(14절 하)
여기 구원이 어렵고 힘든 자리에서 건짐을 받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미 천국복락의 구원은 받았고 누리게 된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여러 가지 흉악한 사건사고와 위험한 일들
이 도사리고 있으며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
인간은 연약하기에 이런 것들을 다 감당하기가 어렵다.
믿음이 있어도 행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전능하신 역사가 없어서 이런 흉악한 사건사고에서 구원을 얻지
못하고 그 일들에 휩싸여 그대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말씀의 가르침을 받은 대로 행해야 한다.
믿고 행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믿고 행할 때에 은혜가
임하며, 믿고 행할 때에 보호하심과 축복이 있다.
우리는 이미 믿는다. 이제 가르침을 받은 대로 행하면 된다.
2013-03-04 PM 5:55:07
2013.오해와 오판을 하지 말라.
제목 : 오해와 오판을 하지 말라
성경말씀 : 요한복음 21:28~23
우리 죄 값 대신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우리 죄 값을 다 해결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명하신다.
이에 베드로는 “ 예수님 요한은 어떻게 됩니까?” 여쭈었다.
예수님 대답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형제들에게 “요한은 죽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오해한 것으로, 예수님 말씀의 뜻은
“요한의 일은 상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이었다.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 받은 자기 사명과
직분을 잘 감당하려 하기 보다는, 옆에 다른 사람은 어떨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오해를 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인간 역사에 죄악과 불행은, 작은 오해(誤解)에서 시작되어
그것이 큰 불행 역시 오해 오판(誤判) 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오해로 인한 불행한 역사를 신약에서 살펴보면,
1) 헤롯이 오해로 인해 수천 명의 아이를 죽였다.(마2:2-16)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을 찾을
때, 헤롯왕은 예수님을 자기와 같은 유대나라의 정치적 왕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베들레헴의 2살부터 아래로
젖먹이들 몇 천 명을 다 죽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로 인한 크나큰 살인 죄악이었다.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세상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적 육신적 왕
이 아니고, 영적 생명의 왕이시고 우주만물의 왕이신데, 헤롯
은 예수님을 자기 자리를 넘보는 정치적 왕으로 오해를 하여
예수님을 없애려고 이런 잔인한 죄악을 저지른 것이다.
2)오해로 인해 수많은 제자들이 생명 길을 떠났다. (요6:47~66)
사람의 육신이 밥을 먹고 물을 마셔야 사는 것처럼,
사람의 영적생명, 영혼도 무엇인가 먹어야 사는데, 그것은 곧
우리 죄 값 대신 희생하신 예수님의 몸을 믿는 것이고, 우리
죄 값 대신 희생하신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이다. 이 믿는 것을
먹는다고 표현을 하셨다. (요 6:47,54) 이 말씀을 들은 유대인과
제자들은, 예수님 육체의 살과 육체의 피를 실제로 먹어야 하는
식인종이 돼야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다 떠나갔다. (요6:66)
이렇게 오해를 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에 섰던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 불바다 멸망 길로 떨어지게 되었다.
성경 역사나 일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로 인하여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그로 인한 저주와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
오해와 오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붙들어야 한다.
어떤 사람과 사건이나 사물을 판단할 때, 자기 개인 주관이나
철학이나 이념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성경 말씀을 붙들고 성경
말씀을 표준삼아서 살펴서 이해하고 분별 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벗어난 이해는 오해이며 죄악에 속하는 것이다.
둘째, 말씀 전체의 원리에 맞아야 한다.
성경을 한 절이나 한 부분만 해석하고 이해한다고보면 엉뚱하게
해석하고 이해를 하게 된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하도 중 수제자인 베드로가 직접 들은 말씀이다. 그러함에도
베드로가 오해를 한 것이다. 성경말씀 전체 원리에 맞지 않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말씀의 원리로 보면 “요한이 죽지 않는다.”
고, 어찌 그리 말 할 수 있는가? 창세 이래로 죽지 않는 사람이
없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법칙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 전체 원리에 비춰서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신천지를 비롯하여 멸망 받을 이단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성경 말씀을 해석하되 전체 말씀의 원리에 맞게 해석하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거나 마귀의 미혹을 받아 해석하기 때문이다.
섯째, 나쁜 상상 악한 생각을 하지 말라.
오해는 상상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이나 사물
이나 말씀을 듣고 볼 때에 나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좋고 선하게 생각하면 바르게 이해를 하게
되지만, 나쁘고 악하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오해를 하게 된다.
의부증이나 의처증 같은 질병 역시 오해해서 시작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분별하고 이해한 것들이 사실은 오해일수도
있고 착각 한 것일 수도 있다. 는 여분의 생각도 해야 한다.
“내가 이해하고 판단한 것은 다 정확하고 옳은 것이다.”라고 하
면, 이미 자신은 교만과 오류 오해에 빠져 있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자신도 어떤 일을 오해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로 도움을
청하고, 상대도 나를 오해하지 않도록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모든 것을 바르게 이해를 하게 되지만,
주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오해와 오판을 하기가 쉽다.
또한 상대가 나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나도 어떤 오해를 했다
고 생각이 되면, 서로 바르게 이해하도록 화해의 노력을 하고,
모든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내 믿음의 길을 바로 걸어야 한다.
자신이 이해를 바르게 하면 모든 것이 바르게 된다.
2013-02-27 PM 8:37:39
2013.2.17 오해와오판
제 목 : 오해와 오판
성경말씀 : 요한복음 21 : 18 ~ 23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심으로 우리 죄 값을
다 담당하시고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실 때 일이다.
예수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하시며, “나를 따르라”하신다.
그때 베드로는 요한을 보고 궁금하게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요한은 베드로 자신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있는데
베드로 자기에게만 예수님을 따르라 하시고 요한에게는 아무
말씀을 안 하시기 때문이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신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형제들
에게 “요한은 죽지 않는다.” 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오해한
것으로, 예수님 말씀의 뜻은 “요한은 어떻게 하든 상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이었다.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께 받은 자기 사명과
직분을 잘 감당하려 하기 보다는, 옆에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될까에 관심을 갖고 오해를 하여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이같이 인간 세상에 최악과 불행은, 안타깝게도 오해(誤解)와
오판(誤判)에서 시작 되었고, 오늘날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죄악과 불행 역시 오해 오판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지나간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어서, 오늘의 삶에서
오해와 오판에서 벗어날 믿음과 지혜를 길러 나가야 하겠다.
오해와 오판의 역사를 살펴보면
1) 인류 최초의 범죄와 죽음이 오해에서 왔다. (창31~6)
하나님께서 축복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이 맘대로
즐기며 누리도록 하셨지만 오직 “선악과는 먹지 말라” 하셨다.
죄가 없어 사람과 만물이 서로 소통할 때라, 인류 최초의 여인
“하와”(이브)가 뱀과 대화하는데 뱀이 하와를 미혹한다.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고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이 말을 하와가 그대로 받아들여 선악과를
따 먹고 아담에게도 먹게 하므로 인류 최초로 범죄가 일어났고
죽음이 찾아오는 비극이 일어 난 것이다.
하와가 뱀의 말을 받아들인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선악과를 따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오해 하였고,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오해한 것이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겠고, 선악과를 먹어도 하나님처럼 될
수 없음을 바로 이해를 했더라면 결코 선악과를 먹지 아니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오해가 범죄와 죽음을 몰고 온 것이다.
2) 인류 최초의 살인이 오해에서 왔다.(창1~8)
가인과 아벨 형제는 아버지 아담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는데 한 날 한 시 같은 장소에서 드렸다.
아벨은 양을 제물로 제사를 드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으나,
가인은 곡식을 제물로 제사를 드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
아벨은, 모든 인생과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제가 죄 값으로 이 양처럼 죽임을 당해야 하는데 이 양을 저
대신 희생 제물로 드리오니 받아주소서. 또한 예수님이 저희
죄 값 대신 희생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는 믿음으로, 양을
희생 제물로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 것이다.
가인은 생각하기를,
“죄는 무슨 죄, 그냥 곡식으로 제물을 바치면 되지”하고
오만한 마음으로 말씀과 믿음에서 벗어난 제사를 드렸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인데,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기 제물을 안 받으신 것이 아벨 때문이라
오해하고, 아벨만 없으면 하나님께서 자기 제물을 받으실 것이라
고, 또 오해를 하여, 마침내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된 것이다.
이 오해로 인해 가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
3)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여 심판을 받았다.(창19:14)
소돔 고모라의 죄악으로, 하나님께서 “심판 하신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롯이 자기 가족과 사위될 자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러나 사위될 자들은, 진실하게 이루어질 하나님 말씀을
농담으로 오해를 하여 믿지 않으므로 유황불이 비처럼 쏟아지게
하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멸망을 당하였다.
“하나님 말씀은 말씀하신 그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진다.”고
바르게 이해를 하고 믿음으로 준비했더라면, 멸망을 당치 않고
생명을 얻고 축복을 받았을 것을, 하나님 말씀을 거짓된 것으로
오해를 하여 농담으로 여기므로 멸망을 당하게 된 것이다.
4) 사울은 오해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삼상22:13~19)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자기에게 충성하는 다윗장군을
자기에게 반역할 사람으로 오해하여 내내 죽이려고 쫓아다녔고,
하나님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배고픈 다윗에게 떡 몇 개 준 것을
제사장들이 다윗과 공모하여 반역을 하고, 왕인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오해를 하여, 하나님의 제사장 85인을 쳐 죽였고,
그 지역에 사는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이까지 다 죽였다.
대략 살펴 본대로 오해로 인하여 수많은 죄악과 불행이 시작
됐다. 오늘날도 부부사이나 부모자녀사이, 또한 직장 사회생활,
신앙생활에서도, 오해로 인해 불행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오해로 인해 잘못한 일이 없는가? 살펴서 회개해야 한다.
2013-02-18 PM 9:52:13
2013. 2. 10 빛의 자녀답게 행하라.
제 목 : 빛의 자녀답게 행하라
성경말씀 : 에베소서 5 : 5 ~ 10
어렵고 힘든 일, 난관이 있을 때에
보통 사람은 근심 걱정하며 좌절하고 주저앉는다.
그러나 인생을 성공한 사람들은, 난관이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
오히려 새로운 길을 찾는 기회와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는다.
우리의 명절이 즐거운 날들이 되기도 하면서
또한 많은 사람들이 부담을 갖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명절증후군이라는 가슴 아픔을 겪을 정도로 어려움을 당한다.
그렇다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명절을 부담스러워 할 것이 아니고 오히려 믿음의 사람으로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
본문 5절에서, 이런 때에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➀ 음행 죄를 저지른다. 합법적인 부부가 아닌 이성간이나
동성 간의 부적절한 관계는 다 음행 죄이다.
안타깝게도 명절을 전후해서 이런 죄를 많이 일어난다.
➁ 더러운 죄이다. 일반적인 더럽고 타락한 문화다.
술, 담배, 도박, 게임, 채팅, 마약, 등 사람을 더럽게 하며
타락시키는 문화가 명절 전후에 많이 일어나고 있다.
➂ 탐욕이다. 가족들끼리 모여서 재산 분배로 다투기도 하고
작게는 참깨 몇 됫박의 욕심을 부리다가 서로 의가 상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한다.
➃ 우상 숭배하는 죄다. 전통문화라는 이름아래 잡신 미신을
섬기고, 풍수지리, 택일, 작명, 제사 등 여러 가지 우상을
숭배하는데 제 아무리 전통이고 고유문화라 하여도, 말씀에
어긋난 것은 다 징벌 받을 죄악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위와 같은 일을 하면, 천국에서 누릴 상이
없다. (5절)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천국 그 아름답고 영광
스러운 곳까지 가는데 막상 주님께로 받을 상이 없고 그곳에서
누릴 영광이 없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또한 위의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위와 같은 것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말고, 그런 죄에
참여하지 말고,(6~7절)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빛” 이란 성삼위 하나님을 뜻한다.(요1:1~14)
빛은, 생명 그 자체이며 모든 생명을 생성(生成)시킨다.
또한 생성되어 존재케 된 생명들을 보존하고 유지시켜 준다.
빛은 또한 따스한 것이며 모든 것을 밝게 한다.
이러한 빛의 자녀로서 빛의 자녀답게 행할 것을 8~9절에
말씀하셨으니 빛의 열매가 곧 빛의 자녀답게 행하는 것이다.
첫째, 모든 착함을 행하라.
명절에는 여기저기 오고가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부담스럽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런 기회에 믿음의 사람으로
아름다움을 보일 수 있는 착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착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좋게 보고, 말도 착하게
좋은 말을 하며, 원망 불평하거나 남을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감사하는 말을 하여 듣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이다.
가족들이나 사람들이 모이면 음식을 접대하는 일도 많아
몸으로 수고하고 힘써야 할 일도 있다. 이때에 뒤로 물러서지
말고 자기 몸을 희생하여 착한 행동으로 솔선수범 하는 것이다.
“나만 힘들게 고생하는구나!” 가 아니고,
“믿음의 사람으로서 아름다움을 나타낼 좋은 기회이구나!” 하고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착함을 행하는 것이다.
둘째, 의롭게 행하라.
무엇이든지 옳고 바르게 해야 한다.
언행과 삶의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하나님께도 기쁨을 드릴 수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덕을 세울 수가 없다.
물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다 연약한 인간들이다.
그렇다 하여도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들은 무엇에든지 옳고
무엇에든지 의롭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셋째, 진실하게 행하라.
거짓말을 하거나 위선된 행위는 당시에는 그럴듯하게 보이나
그 거짓됨과 위선이 사람들에게 곧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진실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말씀대로 하면 참되고 진실하게 할 수가
있다. 또한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 바르게 분별을 하고
자신의 언행에도 잘못한 것은 그대로 시인하여 하나님께 회개
하고, 사람에게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잘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알고 자신도 느끼고 있는데, 자기의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시켜
나가는 것은 죄에 죄를 더하는 것이며 거짓된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것을 좋아하시며
사람들도 진실하고 참된 것을 좋아하고 따르게 된다.
또 자신이 착하고 의로우며 진실하게 했을 때는 그 어디서나
떳떳하고 당당하며 행하는 일에 좋은 열매를 맺히게 된다.
2013-02-14 AM 10:34:30
2012.2.3 하나님께 받을 상을 사모하라
제 목 : 하나님께 받을 상을 사모하라
성경말씀 : 마태복음 6 : 1 ~ 4
“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義)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의(義)의 원어 “디카이오쉬넨‘인데, 단순하게
의로움만 뜻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과 말씀 안에서 행하는 착
하고 아름다운 모든 말과 행위를 다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순결, 덕, 믿음, 착함, 의무, 거룩함, 희생, 봉사
올바름, 정의, 성실, 인내, 사랑, 화평, 겸손, 헌금, 선행 등
인간의 성품과 생활의 좋은 것의 모두를 다 포함하고 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는 것은,
➀ 처음 시작부터 계획적으로 사람에게 잘 보이고 사람에게서
칭찬과 영광과 어떤 이익을 얻고자 하여 하는 것이다.
➁ 시작은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면 된다고 시작했는데,
선행과 의를 행한 후, 은근히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사람들이 몰라주면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➂ 하나님 한 분 알아주시면 된다고 의와 선행을 했는데
사람들의 반대와 비난이 일어났다. 이때, 의와 선행한 것을
후회하거나 멈추거나, 반대하는 사람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일어난다면 이 역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 것이 된다.
“하나님 한 분 알아주시면 된다.” 하고 의를 행한 사람은,
사람들이 알아주던 몰라주던, 사람들이 비난을 하든지 칭찬을
하든지, 그에 따르는 마음의 요동이나 갈등이 없이 담대하며
겸손하게 꾸준히 의를 행해 나가는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사람의 생각과 그 중심에는
우리 주 하나님은 아니 계시고, 이미 사람 생각으로 차 있으며,
사람에게 잘 보여서, 사람에게 보상을 받고, 사람에게 어떤 이
익을 얻으려 한 것이며,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칭찬이나 보상
이나 명예나 어떤 형태로든 이미 유익을 얻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한 일이 제 아무리 착하고 좋은 일로 업적을 이루
었다 하여도, 하나님께로 받을 상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몇 가지를 말씀하셨으니,
2절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구제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15절에서 하나님께서 드리는 기도에 대한 말씀을 했으며,
16절에서는 금식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말씀 하셨다.
이웃을 사랑하는 구제와 헌금에 대한 말씀에서
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지 말라.
이웃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사랑을 나누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좋은 일이라도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알아주시면 된다. 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겸손하게 의를 행하는 것이다.
남에게 도움을 받기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에 세워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는 것이다.
➁ 사람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
이때 당시는 교회(회당)에서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이 있을 때
그를 높여주고 알아주며, 또한 다른 사람이 헌금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뜻에서 크게 나팔을 불어 주었다고 한다.
오늘날 나팔은 불어주지 않지만 그와 비슷한 일들을 교회에서
행하고 있으니, 목사가 강대상에서 헌금한 사람만 호명하며 공개
적으로 축복기도를 해주는 것이나, 주보나 어떤 인쇄물에 헌금한
사람을 일일이 기록하여 발표해 주는 것들이다.
➂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라.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라”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잘 생각해 보자.
이 말씀의 참된 의미는, 개인이나 교회적으로 행한 의나 선행을
의와 선을 행한 당사자 자신들도 잊어버리라는 뜻이 있다.
자신이 한 헌금이나 의로운 일이나 구제와 선행을 기억하며
“ 나는 이렇게 의와 선을 행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렇게 했다”
“누구를 이렇게 도와 줬다” 고 자위 (自慰)하거나 자축하거나
스스로 만족한 마음을 갖고 자랑스러워하는 것 역시 순수한
믿음으로 볼 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익한 종이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누가17:7~10)라는
마음과 자세를 갖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 믿음의 자세요, 복을 받을 자세인 것이다.
이를 확증하는 말씀이 더 있으니, 마태 25:31~40절 말씀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하시는데, 의인들에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고 칭찬을 하신다.
그러나 의인들은, “우리가 언데 그렇게 하였습니까?” 반문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잘못 알고 계셨을까? 아니다. 예수님께서
정확히 아시고 칭찬과 상급을 주시고자 하는데, 의인들 자신은
“무익한 종이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하고 잊고 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의와 선을 은밀하게 행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갚아 주신다.”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갚아 주시는 축복은 최고의 축복이다.
2013-02-04 PM 6:47:10
2013. 1. 27 귀히 쓰는 그릇이 되자
재와 천국에 찬란한 영광과 상급을 누리게 된다.
제 목 : 귀히 쓰는 그릇이 되자
성경말씀 : 디모데후서 2 : 19 ~ 22
본문 20절에 말씀한 “큰 집”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다.
“그릇”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을 뜻한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금 그릇, 은 그릇, 나무나 흙 그릇 같은
여러 모양의 성도들, 각양 각층의 성도들이 함께 하고 있는데,
위 말씀을 자칫하면 오해를 할 수 있다.
교회에서 금이나 은그릇 같은 성도만 좋고 귀하게 쓰임 받으며,
나무나 질그릇 같은 성도는 아주 가치가 없고 천하게 쓰이는
나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참뜻은,
금 은 그릇 같은 성도나 나무 질 그릇 같은 성도 그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 값을 주고 산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이기 때문에
모두 다 존귀하게 여기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데,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일에서 귀하게 쓰임 받느냐?
아니면 천하게 쓰임 받느냐? 여기에 있다.
“귀하게”와 “천하게 쓰임 받는”의 어원도 오해를 하고 있으니,
어떤 일 그 자체가 귀한 일이나 천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 임 받을 때는 어떤 일이든지 다 존귀한 일이다.
“귀하게”의 원어 “티메”는 영광, 존경, 가치, 명예로운,
유용한 등의 뜻이 있는데,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 매일 존귀
하게 유익하게 쓰임 받는 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나 대기업 사장이 어떤 사람을 매일매일
자주 불러서 일을 맡기며 쓰는 것이 영광스럽고 존귀한가?
아니면 1년에 한두 번쯤만 불러서 쓰는 것이 존귀한 일인가?
물론 매일매일 자주 불러서 쓰임 받을 때 영광스러운 것이다.
“천하게”의 원어 “아티미아”는 불명예, 치욕, 수치 등
의 뜻인데 일 자체가 천한 허드레 일이 아니라, “공동체 바깥”
“시민권 박탈당하고 쫓겨났다”는 뜻으로. 일하는 자리에서
곧 하나님께 선하게 쓰임 받는 자리에서 밀려 났다는 뜻이다.
21절 말씀이 위 내용들을 증거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여...“
누구든지 : 금, 은, 나무, 질그릇 등 그 어떤 그릇 그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 이런 것은, 이 앞서 말씀한
14~19절 말씀의 내용으로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말씀대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임을 받는다.
첫째, 말다툼을 하지 말라.(14절)
“말다툼은 유익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듣는 자를 망하게 한다.”
왜, 말다툼을 하는가?
각자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그 대부분은,
상대로부터 자신이 당한 것에 대한 억울함, 자존심 감정의 상함,
상대의 의중을 오해한 울분, 자신의 생각은 옳고 상대는 잘못이란
생각에, 자기주장을 하다가 서로 대립이 되어 말다툼이 된다.
그러나 착한 믿음으로 생각해보면,
아무리 억울하고 자존심 감정이 상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 해도
주님께서 말씀하신 화평을 위해 자신이 모든 것을 참고 감당해
나간다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알아주시며,
하늘의 위로와 신령한 상급을 합당하게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이나 직장, 교회나 그 어디에서 누구와의 관계든지
말다툼을 피하고 참아내는 것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며,
주께서는 이런 사람을 어디에서나 존귀하게 쓰고 세워 주신다.
둘째,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15절)
하나님의 말씀은 다 진리인데 성경말씀을 통해서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임 받을 사람이 하나님의 뜻 성경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한다면 어찌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겠는가?
신천지를 비롯한 수많은 이단들은 사단과 악령에 사로잡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하고 삐뚤어지게 믿고 나간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전히 죄악의 더러움과 멸망 가운데 있는 것
이다. 진리를 옳게 분별하여 순종할 때 깨끗해져 쓰임을 받는다.
셋째.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16절)
사람의 생각 아집과 이념, 그 시대를 주름잡는 타락한 문화와
미신적 풍습, 거스르기 힘든 유행과 대세 등이 다 망령되고 헛
된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사람보기에는 제법 합리적이고 좋아
보여도, 하나님 말씀에 합당치 않은 것들이라면 그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징벌 받는 망령되고 헛된 것들이다.
여기서 벗어져날수록 깨끗한 것이 되어 귀하게 쓰임을 받는다.
넷째, 불의에서 떠나라.(19절)
믿음과 말씀에 어긋난 일들은 다 불의한 것이다.
마음에 거리낌이 되며 자책이 되는 불의한 일들을 끊어 버리고
성경말씀에 비추어 올바른 언행심사를 이루어 가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할수록 몸과 맘이 깨끗해져 귀하게 쓰임 받는다.
나무나 질그릇도 깨끗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신다.
금 은 그릇이라도 더러우면 쓰임 받지 못하는 천한 것이 되어
축복의 자리에서 밀려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나님께로부터
귀히 쓰임 받음은 인생 최고의 영광이며 축복이다.
2013-01-28 AM 10:35:16
2013.1.20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제 목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성경말씀 : 마태복음 5:1~ 12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인생들이 받을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셨으니 곧 본문 말씀이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복 받기를 원해서 세상 사람들도 오복을
말했는데 ➀ 수 : 오래 살고, ➁ 부귀 : 부자로 귀하게 되고,
➂ 강녕 : 건강하고 평안하며, ➃ 유호덕 : 좋은 소리를 듣고,
덕이 있으며, ➄고종명 : 죽음이 비참하지 않고 고상하며 품
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오복을 아무리 크게 많이 누렸다 하여도 , 죽음과
더불어 모든 것이 없어지고, 최악의 심판 지옥 형벌을 당하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만이 인생 최고의 축복이라 할 것이다.
팔복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일이고,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갔을 때에도 그로 인한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일이라, 우리 모두가 사모하고 이루어 가야 할
것인데, 이 시간에 그를 다 증거 할 수가 없으므로, 오늘은
일곱째 복인 “화평케 하는 자의 복”에 대한 말씀이다.
화평, 평화, 화목, 화친 등이 다 비슷한 뜻의 말이나
개개인이나 작은 규모에서는 화평, 화목을 쓰고 국가적 국제적
으로는 화친이나 평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렇다. 개인이나 가정, 직장이나 사회, 국가나 국제적으로
그 어디 어느 곳에서든지 불화와 불평, 분열과 반목을 일으키는
사람은 복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화평과 화합과 협력관계를 이루어 가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데,
첫째,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한다.
화평케 하는 일이 사람의 감정과 노력으로도 어느 정도는 될
수 있으나, 그것은 잠간이며 한계에 부딪쳐 끝이 난다.
그러므로 진정한 화평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화평을 자기 자신
이 누릴 때에야, 비로소 화평케 해 나갈 수가 있다.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모두가 다 죄인이다.
➀ 그렇기에 모든 인생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 죄 값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성령님의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하셨고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은 죄라”고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사랑하심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우리를 어여삐 여기셔 화평 관계가 된다.
➁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성삼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므로 하나님과 화평관계를 누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불편한 관계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들은 대로 하나하나 순종해야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의 말을 거역하면 화평이 깨어
지듯,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하나님과의 화평관계가 깨어진다.
➂ 회개를 해야 한다.
믿고 말씀대로 순종한다해도 언제 어느 일에서 말씀을 거역하게
되고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이 때 얼버무리지 말고 즉시로
회개하는 것이다. 우리 죄 값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하면 깨끗이 용서해 주신다.
회개하므로 용서를 받았을 때에 그 평안함 기쁨과 소망은
회개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이 때 화평이 충만하게
임하고 이 화평은 삶의 모든 것을 이겨낼 원동력이 된다.
둘째, 주위를 화평케 해 나가야 한다. (고후 5:18,19)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케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께로 화평을 받아 누리는 사람은 그 심령이 천국이 되어
어려움을 이겨내고 주위와 이웃들을 화평케 해 나갈 수가 있다.
주위와 이웃을 화평케 해 주려면, 주위 사람들이 믿음을 갖도록
복음을 전해주고 그들을 섬기며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이웃들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므로 하나님과 화평관계
가 이뤄졌을 때, 그때 나 자신과 이웃들과의 진정한 화평관계가
이뤄지며 심령천국 가정천국 교회천국 지상천국이 이뤄진다.
이는 단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부터 하나님과 화평관계를 유지하려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중단하지 말고 복음을 전할 때에
조금 씩 조금 씩 이루어져 나간다.
<<평케 하면 받는 복>>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이미 하나님
자녀가 되었지만, 화평케 해 나갈 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고
우뚝 서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고 우뚝 서게 되면
영, 육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시고
현재와 천국에 찬란한 영광과 상급을 누리게 된다.
2013-01-21 AM 10:08:40
2013. 1. 13 좋은 습관 축복받을 습관을 길러라
제 목 : 좋은 습관 축복 받을 습관을 길러라
성경말씀 : 예레미야 22:18~23
여호야김 왕은 유대 21대 왕이다.
11년이나 왕으로 통치를 했으나 마침내는 바벨론에 잡혀 가
짐승의 하나처럼 비참한 죽음을 당했는데, 유대 백성들 중에서
그 누구도 여호야김이 적에게 잡혀 가 짐승처럼 죽임을 당하
는 것을, 애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18절)
집에서 키우는 개나 짐승이 죽어도 슬프고 안타까운 것인데
하물며 자기들의 왕인데, 이렇게도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이 얼마나 불행하고 비참한 일인가?
왜 이렇게 까지 됐을까? (21절)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장성하여 왕이 되어서도 그 습관대로 하다가 망한 것이다.
우리말에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듯이
습관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데 우리의 올 한해의 습관은
연초인 지금 만들어지며 이렇게 한 해 한 해 한 것이 우리의
평생의 습관으로 굳어져서 축복을 받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습관이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다보면 그것이 익숙해지고 굳
어져 생활의 한 부분이 되고 자리 잡아진 것이 습관이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살펴서 잘못된 것은 끊어서
중지 시키고, 좋은 것은 살려서 그것이 우리 습관으로 자리를
잡도록 가다듬어 나가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우리가 마음의 습관을 좋게 길러야 한다.
여호야김 왕이 어렸을 때 하나님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거역
하던 것이 한 번 두 번 반복되다 그것이 습관이 돼서 망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마음엔 하나님 말씀 듣기를 싫어하는 것이 없는가?
우리 마음은 길가인가? 돌밭인가? 가시덤불인가? 옥토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들어서 참으며
순종해서 백 배, 육십 배, 결실하려는 것이 축복받을 마음이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자기 마음과 생각과 형편에 그 말씀이 맞으면 잘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하며 순종하려 하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계획하는 것에 합당치 않고 자기 환경과 형편에 어렵게 여겨
지는 말씀들은 듣기를 싫어하고 거역하며 반항을 한다.
한 두 번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잘못 된 것이 무의식중에 자주 반복되어져서
우리의 습관이 된다면 여호야김 왕처럼 망할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생각에 좋든지 좋지 않든지,
우리 형편에 맞든지 안 맞든지, 설사 우리 계획과 생각에 안 맞는
다 해도 그 말씀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 우리 마음에 심
어나가며,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우리 맘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 이런 좋은 마음이 반복되어 익숙해져서
하나님 말씀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
마음에 심고 가꾸어 나가고 이것이 우리 마음의 습관이 되고
우리 생활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축복을 받는다.
둘째, 말의 습관을 좋게 길러야 한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이나 사회활동 또한 신앙생활에서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해서 밤잠을 못자며 고민
하고 고통스러워 한 일이 여러 번 있을 것이며, 우리 자신 또한
알게 모르게 좋지 않은 말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 험담 비난하는
말을 버리고, 감사하는 말 착하고 좋은 말을 해야 한다.
착하고 좋은 말을 하다보면 마음으로 연결되어져 마음이 착하고
좋아지게 되고, 마음이 착하고 좋아지면 다시 말로 연결되어져
말을 착하고 좋은 말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마음과 말이 선
순환을 하여 그 사람의 인격이 점점 거룩해져 축복을 받는다.
그러나 잘못된 말을 하다보면 그게 마음으로 연결되어 마음까
지 잘못된 마음으로 굳어지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어 그것이
습관이 되고, 그런 사람은 축복에서는 점점 멀리 떠나가게 된다.
셋째, 행동의 습관을 좋게 길러야 한다.
우리에겐 좋은 행동도 있지만 잘못된 행동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도 많이 있다. 이것을 그대로 두면 우리는 점점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내 자신의 행동을 잘 살펴서 잘못된 행동은 버리고
좋은 행동을 익혀서 바로 해 나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서
기쁨으로 순종하는 행동을 익혀가고, 무엇이든지 정해진 시간이
있는데 게으름부리다 늦게 참석하는 것을 버리고, 이제는 무슨
일에나 시간에 앞서 참여하는 좋은 행동의 습관을 익혀가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음주, 흡연, 도박, 게임, 쇼핑중독 등 여러 가지
잘못된 행동과 생활이 습관이 되어 그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가족까지 힘들게 하며 불행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내 마음과 말과 행동의 습관을 착하고 좋게 가꾸지 않으면
우리의 2013년 한해가 헛되게 되며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
착하고 좋은 습관을 길러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2013-01-14 PM 1:11:12
2013.1.6 내 생각 내 길은 너희 보다 높다.
이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더욱 축복하신다.
제 목 : 내 생각 내 길은 너희보다 높다
성경말씀 : 이사야 55 : 6~13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누리던 유대 백성들,
풍부하게 되니까 하나님을 외면하고 잡신들을 섬기며 세상의
타락된 문화에 빠져 범죄 하고 나간다.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세워서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
하시고,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할 것을 선포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를 않고 더욱 거역하므로
그 징벌로 북쪽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의 침략으로 망하고.
남쪽 유대 백성들에게도 여러 가지 징벌이 내려졌다.
유대 백성들은, “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나봐”
근심걱정하며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유대 백성들을 격려하고자 오늘 말씀을 주셨다.
내가 너희의 잘못을 징계했다고 해서 너희를 버리거나 미워
하는 줄 아느냐 ?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과연 그러하다. 이스라엘이나 유대 백성들은 자신들이 죄를
지었다 해도, 누구나 징벌이 없이 다 잘됐으면 생각하고 그런
길를 가고자 했다. 그러다 징벌을 받아 고달파지니까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으로 생각하여 낙심하고 주저앉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백성들의 잘못을 징벌할지언정,
하늘나라 그 찬란하고 영광스런 축복에 참여시키려고 회개시켜
바로 세우고자 하는 뜻이요 그런 길로 인도하시는 것으로
백성들은 땅에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축복, 곧
하늘 같이 높으신 생각과 그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었다.
이렇게 높으신 하나님의 생각과 인도하시는 길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 생각은 땅에 것이나 생각하고 근시안적이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 인도하시는 길은 천국에서까지
영원한 행복과 상급을 누리도록 하시는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라.
참새 두 마리 떨어지고 안 떨어지고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되
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좋든 나쁘든 어찌 하나님의 뜻하심이 없이 일어나겠는가?
설사 내 생각대로 안 되었다 하여도, 내 뜻은 땅에 것이요
하나님의 뜻은, 하늘 같이 높으신 원대(遠大)하고
고상하고 우리에 영원한 축복이 되는 일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는 우리 현실 앞에 이루어진 일들에 대하여 내 자신의 생각에
안 맞는다고 반항하거나 뒤집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하심과
인도하심을 살펴서 그 앞에 굴복을 해야 한다.
둘째, 기쁨으로 나아가라.(12절 상)
어떤 일들이, 우리의 생각, 우리의 계획대로 이뤄졌을 때는
하나님께서도 그런 뜻과 계획을 하시고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계획대로 안 된 것은 곧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셨기 때문이다. 그 때 내 생각대로 안 됐다
고 슬퍼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오히려 내 생각, 내 계획보다 천배
나 더 잘 된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 기쁨으로 나가야 경배 드려야
한다. 또한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의 그 현실을 못마땅해
하거나 방관하지 말고, 기뻐하며 대응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셋째. 평안히 인도를 받고 순종하라.(12절 상)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뜻 자기 생각대로 안 된 일에 대하여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하며 비난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히
해야 한다. 내 뜻대로 안 됐을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기
때문에 내 뜻대로 안 된 일을 원망 불평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과 생각대로 된 것을 원망 불평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내 생각대로는 안 된 일이라 해도 평안한 마음으로
인도를 받고 그에 따르는 말씀들을 순종해 나가야 한다.
넷째, 가라 하는데 까지 가고, 서라 하면 서라.
하나님의 생각과 뜻하심의 대부분은 성경 66권 말씀을 통해
나타나 있다. 그렇기에 성경 말씀에 행하라 하면 행하고, 멈춰
서라하면 그 자리에 서야 한다. 말씀에, 가라 하는데 서 있거나
서라 하는데 계속 가는 것은 둘 다 잘못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말씀보다 더 나가다가 사단 종이 되고(마16:22)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말씀에 행하라 하는데 자기 맘대로
멈춰 섰다가 왕위에서 폐함을 당했다.(삼상15:17~23)
금년 한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쳐올지 알 수 없으나
위 네 가지의 자세로 나가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고, 주님께서
주시려고 예비하신 축복을 다 받아 누릴 수 있다.
➀ 산과 작은 산들(크고 작은 장애물들)이 변해 노래를 한다. 12절
➁ 가시 찔레가 변하여 잣나무 꽃 석류가 된다.(전화위복)13절
➂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 (신28:1-6)
우리 생각 우리 뜻은 기껏해야 땅에 것들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뜻은 현재와 장래에 영원한 축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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