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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설교요약] 2012년 7월-12월 말씀요약 조회수 : 1753
  성경본문 :  설교일 : 2012-07-01
  설교자 : 김성진목사
  첨부파일:   2012년 설교요약-2.hwp(110K)

~2013-01-07 AM 11:44:27
 
 2012.12.30 버릴것과 취할것
 
제    목 : 버릴 것과 취할 것
성경말씀 : 고린도후서 9 : 6 ~ 12

  2012년을 마무리 하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버릴 것과 취할 것이 있다. 우리 생활에서 버릴 것도 많고
취할 것도 많이 있지만 그걸 다 논할 수는 없고 본문 말씀에
의해서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한다.

 본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연보(헌금)에 대한 말씀이다.
당시 이스라엘에 흉년과 기근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믿음을 전수받고 신령한 은혜를 받은
여러 나라 여러 지역의 교회들이 하나님 앞에 연보를 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도와주기로 했다.
 이 선한 일들이 원만하게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권면과 그에
대한 축복의 말씀인데, 단순히 헌금 하는 문제만 아니고 우리
삶의 모든 문제에 적용되는 말씀들이다.

 버릴 것이 무엇인가?
첫째, 인색함이다.
“인생”의 원어는 뤼페 인데 슬픔, 고통 등의 뜻이 있다.
하나님 앞에 헌금 하는 것을 비롯하여 무엇을 하든지 고통스
러워하거나 슬퍼하면서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왜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인색하게 하는가?
헌금을 하는 것이 허비하는 것 같고 자기만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부담을 느끼며 그래서 슬퍼하고 인색하게 하는 것이다.
가정에 일을 할 때나 직장에서 일 할 때도 그런 마음 때문에
몸을 사리며 인색하게 하는데, 이것을 버려야 한다.

둘째, 억지로 함이다.
“억지”의 원어는 아낭케 인데 간제, 강요, 압박, 곤란
등의 뜻이 있다, 즉 강요받거나 압박을 받아서 어찌할 수 없이
안 할 수도 없어 곤란함을 느끼며 억지로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이렇게 일하면 능률도 안 오르고 힘들에 되며
가정 일에도 이렇게 하면 불화가 일어나고 불편하게 된다.
헌금을 하거나 믿음의 봉사를 할 때도 이렇게 억지로 하게
되면 자신도 힘이 들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신다.

셋째, 보이려고 함이다. (이사야 1:12)
“보이려”의 히브리 원어 “라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생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는데 많이 사용했는데,
사람들이 수많은 제물(헌금)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자신을 과시하고 나타내 보이려고 제물을 바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물을 헛된 제물이라 했고 자신을 뽐내고
보이려 하는 제물은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고 질책을 하셨다.
마가복음 12:44절에서는 여러 부자들이 많은 헌금을 하고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헌금을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부자들의
많은 액수의 헌금보다 과부의 적은 돈이 더 많은 헌금이라고
칭찬을 하셨다. 그러므로 직장이나 가정이나 교회 어디에서든지
헌금을 하거나 어떤 봉사를 하고 직임을 감당할 때도 자신의 한
일을 과시하고 나타내 보이려고 하는 이것은 이제 버려야 한다.

 취할 것은 무엇인가 ?
첫째, 즐거움이다.
 무슨 일이든지 죄가 되지 않은 이상은 즐거움으로 해야 한다.
가정에서 밥을 짓든 세탁을 하든, 직장에서 어떤 사무나 직무를
감당하며 일을 할 때도 즐거움으로 해야 한다. 또한 교회에서
믿음의 일을 하거나 헌금을 할 때도 즐거움으로 해야 한다.
 본문에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즐겨”는 원어
힐라오스 인데 호의, 즐거운, 기분 좋은, 희망 이란 뜻이
있다. 이러기에 어떤 일을 하든지 좋은 마음으로 희망을 갖고
즐겁게 해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사람들도 좋아한다.

둘째, 감사함이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앱5:20)”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즉 헌금이나 봉사나 구제나
가정 일이나 직장 일이나 교회의 직분을 맡아 감당할 때에도
“나에게 이렇게 헌금 할 수 있게 하시고, 나에게 이렇게 건강한
 몸과 좋은 환경을 주셔서 봉사를 하고, 이러한 직무와 직분과
 가정 일을 감당하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리며, 사람에게도 감사하며 해야 한다.

셋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라.
  인색함을 버리고, 억지로 함을 버리고, 과시함을 버리고,
즐거움으로 감사하며 모든 일을 감당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
하셔서 수고하고 노력하는 일들이 다 잘되게 하신다.
 그때 자기가 잘해서 잘된 것처럼 자기가 공로를 취하고 영광을
받으려 하면 안 된다. “나에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고 자신은 온유 겸손하게
낮아져서 다시금 맡겨진 모든 일에 충성해 나가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더욱 축복하신다.

 
2013-01-02 PM 10:42:24
 
 2012. 12. 23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제    목 :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성경말씀 : 요한복음 3 : 13 ~ 18

  구주 예수님의 탄생 절기이다.
본 요한복음 3:16절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
하셨으며,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 성경 66권을 한 마디로 요약
한 핵심의 말씀이 바로 본 말씀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셨다. 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역시 우리를 사랑하고 사랑하시려 오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목적은 또한 무엇인가?
우리 영혼이 잘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는 이
말씀은 우리 육신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 영혼이 지옥 멸망을 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시겠다는 뜻이다. 곧 영혼이 잘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우리 인생은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돼 있다.
인생의 주체는 영혼이고, 육신은 이 세상을 살 동안만 잠간 필
요한 것이며, 영혼은 영원무궁토록 사는 존재이다. 따라서 그
누구든지 육신보다 영혼이 잘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인생은 잉태될 때부터 죽은 영혼으로 잉태된다.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은 죄
값으로 영혼이 저주를 받고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이 죄 값을 해결해 줘야 영혼이 잘될 수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 죄 값을 담당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의 값을 다 해결하신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려고 하늘 보좌를
내놓으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이 예수님의 탄생의 절기다.
그래서 천하 만민 모든 백성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육신이 잘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다가 실망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히 해야 한다. 영혼이 잘되면 육신도
자연히 잘되지만, 육신이 잘되어 가지고 영혼이 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다.

성탄절, 주님 성탄의 은총을 다시금 입어야 하는데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 죄를 예수님께 고백해야 한다.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님을 비난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 고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으며,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 말씀의 뜻은, 인생 모두가 다 죄인인데, 자기 자신의 생각이
자신은 죄가 없다고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사죄의
은총을 내려 주시지 않고, 자기 죄를 알고 자백하는 사람에게만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데,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고 사죄의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은 기뻐할 자격조차도 없다.

둘째, 기쁘고 즐거워하되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를 죄와 형벌에서 건지시고 천국 백성으로 삼아서
영원토록 행복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탄생의 절기를 맞이해서 우리가 당연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축하를 하고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그렇다하여도 인간들끼리의 육신적인 쾌락을 누리려는 것이나
즐거움을 빙자해서 방탕하고 죄를 짓는다면 이는 복 받을 일이
아니다. 기쁘고 즐거울수록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우리는 평소보다도 더 경건하고 신실한 생활을 해야 한다.

셋째,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억만 가지 죄악을 다
용서해 주시려고 자신께서 십자가에 죽어주시기까지 하셨는데,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의 죄를 앙갚음 하려 하면 되겠는
가?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잘못을 많이 했든지 적게
했든지, 우리도 우리 주위 여러 사람들의 잘못을 깨끗하게 용서
해 주어야 한다. 우리 자신도 잘못한 것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 용서 받아서 살고 있고,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한 일이 있지만 그들로부터 용서 받아서 살고 있다.
 용서라는 것은 상대의 잘못한 것을 잊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에 성삼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예수님의 탄생의
은총을 다시금 누리게 되는 것이다.
 2012년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살펴 바른 신앙에 선다면 금년을 잘 보내는 것이다.

2012.12.16 한 해가 가기 전에 축복하라.
 

제    목 : 한 해가 가기 전에 축복하라
성경말씀 : 로마서 12 : 14 ~ 21

  2012년이 며칠 후면 마감을 한다.
불과 10여일 남짓한 날들, 어떻게 보내야 마무리를 잘할까?
이루고 싶은 크고 좋은 일들이 있어도 시간적으로나 또한 우리
능력으로 볼 때, 금년 내에는 이루지 못할 일들이기에 그런 일
은 일단 접어놓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살펴본다.
 하나님께서 감동시켜 주시는 말씀은 오늘 본문에서의
"축복하라“는 말씀이다.

첫째,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14절)
“핍박하는 자의 원어“디오콘타스”는 진지하게 따
라다니며 계속적으로 핍박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연약한 인생들이다. 사노라 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있고, 사람 사이에서도 갈등과 문제가 생겨 억울하게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미움이 있고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도 있다. 그렇다고 갈등과 불편함이 있는 그대로 금년을 마무
리하고 말 것인가? 이는 주님의 뜻도 아니고, 우리도 믿음의
사람으로서 행복한 연말연시를 맞이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고 축복을 해야 한다.
오늘 말씀이, 우리를 진지하게 따라다니며 핍박하는 자에게도
축복하라 하시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20절) 하셨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사랑하는 가족들이며 친지들이며 이웃
들이며 직장 동료요 천국까지 함께할 사랑스런 교우들이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갈등이 좀 있었다 해도 그런 편치 못한
관계로 이 해를 마무리하는 것은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아니며
우리 자신이 마귀와 부패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말씀을 순종하여
축복을 해야 한다. 우리와 관계가 좋은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우리와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까지도 믿음의 아량을 가지고
진정으로 상대에게 축복을 하는 것이다.
 부부간에도 서로 축복하자! 부모자녀 간에도 서로 축복하자!
이웃에게도 축복하고, 직장 동료에게도 축복하고, 나를 욕하고
비방한 사람에게도 축복을 하고, 원수에게도 축복을 하자!
 상대가 받아 주지 않고 함께 할 수 없다 해도 내 쪽에서 먼저
축복하고, 상대는 나에게 계속 핍박을 한다 해도 나는 축복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근거가 된다.

둘째, 동고동락(同苦同樂)하라. (15절)
 주위에서 누군가가 잘 되었을 때, 시샘이나 질투를 하지 말고
내 일이 잘 된 것처럼 같이 즐거워하고 축하해 주는 것이다.
 주위 누군가가 고통을 당할 때, 내가 고통을 당할 때처럼
같이 아파하고 울어주며 위로해 주는 것이다.
 이웃의 즐거움이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음도 좋은 일이며,
나의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해 줄 이웃이 있음도 복 된 일이다.

셋째, 교만하지 말라(16절)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두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이 말씀의 뜻은
교만하지 말고 겸손 하라는 말씀이다. 잘난 척 하고 교만하면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온유 겸손하면 사람들 마음이 함께 한다.
3절에도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 하셨다.
각자 자기 분수를 알고 자기 자리를 벗어나지 말라는 말씀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하셨으며,(잠언16:18)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적으로 대한다.“고 하셨다.(벧전5:5,)

넷째,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17절)
 상대가 악하게 나올 때 그 상대를 이기려면 상대보다 더 큰
악을 행하고 음모 술수를 부려야 그 상대를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승리는 곧 패배이다. 이미 성도로서 거룩함을 잃고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것이며 하늘의 상급을 잃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상대를 이기려면,(20~21절)
상대보다 더 큰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다.

다섯째, 원수는 하나님께 맡겨라.(19절)
 내가 선하게 잘 해주고 있는데도 상대는 계속 약하게 나온다.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이 악하게 할 것인가? 아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위 말씀의 원어적 의미를 살펴보면,
“주님께서 원수를 갚을 것이니 주님께 원수 갚을 기회를 드려라
는 뜻이다. 그렇다. 주님께 기회를 드리면,
전지전능하신 우리 주님께서 가장 적절하게 징벌을 하신다.
 이렇게 주님이 맡기는 것이 우리의 걸어가야 할 길이다.

위와 같이 2012년의 남은 시간들을 보낸다면
성삼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이웃들도 좋아할 것이며,
우리에게도 가치 있고 보람 있는 복 된 마무리가 도리 것이다.
 자! 이제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축복하자 !!
가까운데서 먼데 있는 사람에게까지 모두에게 축복을 하자 !!

 
2012-12-19 AM 11:15:54
 
 2012.12.9 잃은 양을 찾아라.
 

제    목 : 잃은 양을 찾아라.
성경말씀 : 누가복음 15: 1 ~ 10

  예수님께서는 천하 만물을 시청각 자료로 삼아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하시고 진리를 가르쳐 주셨다.
오늘 말씀에도 예수님을 목자로 성도들을 양으로 비유하셔서
“잃은 양을 찾아라.” 하시며 “잃은 양을 찾았을 때의 기쁨”을
말씀하셨다. 시편 23에서 다윗도 자신을 양이라고 칭했다.

 예수님의 양 중에 잃은 양은 누구일까?
잃은 양이라 할 때에 잃은 양의 원래 주인은 누구였는가? 를
확실히 하면 된다. 어떤 교회가 그 잃은 양의 주인도 아니고
어떤 목사나 단체가 그 잃은 양의 주인도 아니다.
 그 잃은 양의 주인은 다름 아닌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이런 사례에는 결코 잃은 양이 아니다.
첫째, 더 잘되려고 어떤 교회를 떠날 때는 잃은 양이 아니다.
우리 신암교회와 담임목사의 목회 방향과 그 목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말씀 성경중심의 참 교회 순수한 신앙을 세워 나가며,
 성도들의 영원한 축복을 위하여,
성도들의 영혼이 잘되도록 양육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는데 있다.
 그러나 우리 교회보다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더 잘하고
담임목사보다 더 헌신하고 충성하는 좋은 목사가 있어서 그를
찾아 가는 성도가 있다면 이는 잃은 양이 아니다.
둘째, 믿음의 스타일이 달라서 떠날 때는 잃은 양이 아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취향과 스타일이 다르다. 정상적인 교회에도
교회마다 목사마다 특성이 다르다. 거기에 맞는 교회를 찾아
어떤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는 것은 잃은 양이 아니다.
셋째, 예수님의 양이 아니라서 떠날 때는 잃은 양이 아니다.
 관원이요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키고 부자인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 영생 얻기를 청한다. 예수님께서 여러 교훈을
하시고 예수님을 따르라 하셨지만, 그 사람은 예수님을 떠났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설득하고 감화시킬 능력이 있
으셨지만, 그를 붙잡지 않으셨다.(눅18:18, 마19:16, 막 10:17)
 그 사람의 권세, 그 사람의 많은 돈, 그 사람의 계명을 지키며
경건하게 산 것을 예수님을 위하여 유용하게 쓰실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나도록 두셨다. 왜,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담임목사나 우리 교회에도 주님께서 맡기신 양들이 있다.
주님이 맡기신 양이 아니라서 우리 교회를 떠나서 세상이나
다른 곳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잃은 양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은
잃은 양이 아니라면, 근심할 것도 없고,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
해서도 안 되며, 붙잡거나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아 나서야할 잃은 양은 어떤 사람들인가?
첫째. 예수님을 믿다가 세상으로 나간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믿었음에도, 세상 것 즉 돈 명예 권세 학식 쾌락 등을
더 좋아하고 사랑해서 교회를 떠나 세상에 빠진 사람들이다.
둘째, 예수님을 믿다가 상처받고 주저앉은 사람들이다.
 연약한 인생들이다. 교회를 다니다가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교인들에게 어떤 사유로든지 어려움을 당하고 상처를 받아 교회
를 떠나 주저앉아 쉬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잃은 양이다.
셋째, 예수님을 믿다가 환란풍파 불행한 일로 쉬는 사람들이다.
 사람의 한 평생에는 누구든지 환란 풍파 질병과 사고 등
불행한 일도 따라 온다. 그런 일을 당할 때에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은혜를 받고 이겨내서 승리하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믿어도 이런 어려움을 당하니 차라리 믿지 말자, 하고
낙심하고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잃은 양이다.
넷째, 교회를 다니다가 이단에 빠진 사람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사람은 이단에 빠지질
않는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은,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은 했지만
예수님을 우리 속죄와 구원의 주님으로 믿지를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를 않았기 때문에 이단 사이비에 빠진다.
그렇기에 이단에 빠진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듣지 않으면
망할 자로 정해진 줄 알고 멀리하라 하셨다.(디도서 3:10-11)
다섯째, 예수님을 믿어야할 사람인데 믿지 않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천하에 모든 인생들 중에서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
을 창세전에 이미 선택해 놓으셨다.(엡1:3-4)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천국복락을 누려야할 사람인데, 아직 믿지를 않고
있는 사람이 가족들을 비롯하여 우리 주위에 많이 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잃은 양이다.
(요10:16) 그러므로 잃은 양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현재 시점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거나, 정상적인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잃어버린 양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잃은 양을 찾았을 때 그 기뻐하심은
곧 교회를 다니지 않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서
교회로 인도하라는 뜻이고, 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을 때
성삼위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기뻐하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믿음으로 인도한다면, 멸망 받을 그 사람의 영혼을 천국
복락으로 인도한 것이며,(약5:19-20) 전도하여 많은 사람을
믿음이 옳은 데로 인도한 사람은 영원한 축복을 받는다.(단12:3)

2012.12.2 인간 영혼과 몸 그 주체는 누구인가?
 

수님을 믿지 않는 영혼은 그 종점이 지옥 불바다이다.
제 목 : 인간 영혼과 몸 그 주체는 누구인가?
성경말씀 : 요한3서 1 : 1 ~ 4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영혼과
흙에서 취해 만든 육신으로 결합된 생명체이다.
이리 살다가 영혼이 육신을 떠나가면 그것이 사람의 죽음이다.

  그렇다면 육신과 영혼 중 어떤 것이 사람의 주체(主體)일까?
많은 사람이 육신, 곧 몸을 사람의 주체로 생각하여 혼동하고
육신의 생활에 너무 집착하고 치중하여 삶을 허비하고 있다.
  사람의 주체는 영혼이다.
육체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필요한 임시적 존재요
영혼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주체는 영혼이며
사람이 진정 행복하게 될 수 있는 길은 영혼이 잘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요한 사도가 제자 가이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사랑하는 가이오,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 사랑하는 자여!!
연이어 세 번이나 사랑한다하며 사도 요한이 가이오를 얼마나
간절하게 사랑하는 가를 표현했고, 그 사랑하는 자가 진정 잘
되기를 바라면서 그 첫째로 영혼이 잘되라고 말씀했다.
그렇다. 영혼이 잘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제아무리 육신이 잘
되었다 하여도 그 사람은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기 때문이다.

 이제 영혼이 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의 영혼이 아담의 선악과를
따먹은 범죄와 그 죄 값으로 인하여 죽어 버렸다.
 영혼은 죽었다 하여도 비물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썩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는 고통스러운 자리 흑암과 단절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영혼이 원죄로 인하여 죽었다”고 하는 것이며,
이 원죄가 유전되어서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죽은 영혼
으로 태어난다. 이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생들의 원죄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지은 모든 죄 값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 죄 값 때문에 죽으신 대속의 주님과,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셔서 나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신
생명의 주님으로 믿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
예수님을 믿어 모든 죄를 용서받으니까 죄 값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영혼이 살아나니까 영혼을 창조하신 생명의 주님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 이 세상을 사는 동안도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가면 찬란한 영광과
평화와 행복이 있는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 그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으면
그 영혼이 죽은 그대로요 잘 될 수가 없고, 영혼이 잘되지 못하면
그는 인생의 실패자요, 이 세상을 사는 동안도 영혼이 고통을
당하며 마귀의 종노릇이나 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면 그 영혼이
활~ 활~ 타오르는 지옥 불바다의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이다.

둘째, 진리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진리란 생명을 살리는 것이요 영원불변하는 것이니, 곧 성경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요17:17)
 몸이 음식물을 먹고 자라며 힘을 얻듯,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먹고 자라며 능력을 얻는다. 그러므로 착하고 좋은 마음
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서 기쁘고 즐거움으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영혼이 나날이 잘되고 행복해 진다.

셋째, 교회의 제도에 순종해야 한다.
 교회의 제도란 필요에 따라서 세워지기도 하고 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 세운 제도를 주를 위해 순복하라”(벧전 1:13)
하셨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이 의를 이루는 것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때에 따라 세우는 모든 제도를 순종할 때 그 영혼이 잘된다.

넷째, 잘못을 회개해야 한다.
 연약한 인생이라 잘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회개하면 된다.
옷이나 손이 더러워지면 세탁하고 물로 씻으면 깨끗하게 되듯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그 어떠한
죄든지 깨끗하게 용서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 영혼은 점점 잘되어 신령한 축복을 받는다.

 이와 같이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된다. 생각하고 노력하면 모든 일이 다 잘된다.
강건해진다.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평안하며 행복해진다.
구주로 믿어야 하고, 이미 믿은 성도들은 영혼이 잘되도록 진리
말씀을 순종하고, 제도에 순종하며, 잘못은 회개해야 한다.
  영혼이 잘되면 천국에 영원한 축복까지 보장된다.


 
2012-12-04 AM 10:15:00
 
 2012.11.25 인간 그 영혼의 출발과 그 종점
 

제 목: 인간 그 영혼의 출발과 그 종점
성경말씀 : 누가복음 8:49~56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영혼과(창 1:27-8) 흙을 취해 만든
몸이 결합되어 (창2:7) 생명의 기운을 받아 산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 그 몸과 영혼의 출발 그 기원은 하나님이시다.

 오늘 본문에서, 회당장의 딸이 죽어서 사람들이 슬퍼하며
통곡할 때 예수님께서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비웃었다. 아니 예수라는 분이 사람이 죽은 것인지,
자는 것인지 분별도 못하나, 그러나 예수님은 분별을 못해서가
아니라, 자는 사람이 깨어 일어나는 것처럼 죽은 사람이라도
벌떡 일으켜 살려내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했다.
  예수님이 죽은 아이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하시니
떠났던 죽은 아이의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되어 있는데,
영혼이 그 육신을 떠나는 순간 그 사람은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떠났던 영혼이 다시 돌아와 몸과 결합하면 살아난다.
이것이 부활의 신비이자 원리요 예수님의 대속의 능력이다.

  혹자는 요한복음 8:44절 말씀에 의거하여
“모든 사람이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단들도 주장하지 않는 심히 위험한 말이다.
신학과 성경 전체 말씀을 헤아려 보지 않은 무지의 소치이다.
 요한복음 8:44절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그리 말할 수도
있으나,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오류를 범하기 쉬우며
이단에 빠지게 된다. 실례로 계시록 7:4절에 “십사만 사천”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서 이단들이 자기들의 수를 뜻하는 것이라
하며, 그러므로 자기들을 떠나면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한다.
 특히, 신천지 이단은 “십사만 사천”이 이만희를 교주로 한
자기들의 수이기에 신천지에 들어와야만 구원이 있고 신천지
외에 사람들은 구원을 못 받는다고 미혹을 한다.
  십사만 사천은, 상징적인 숫자로 창세 이래로 예수님 재림 때
까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천국백성이 된 총 숫자를 뜻하며,
실제 수는 5조 8천억이 될지 14조 4천억이 될지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예정수요 가득 찬 충만한 수이다.
 마태 10:34절 말씀부터를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예수님을
가정 파괴범으로 볼 수 있으며, 마가 9:42~47절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우리가 다 팔다리를 잘라내야 하고
우리 눈도 다 뽑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들은 문자적
으로만 해석하면 오류를 범하게 되고 이단으로 빠지게 된다.
 성경 해석에 4가지 원칙이 있으니
⓵ 문자와 문법에 맞춰서 해석한다.
⓶ 역사적 배경과 그 시대를 살펴서 해석한다.
⓷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말씀인 것을 살펴서 해석한다.
⓸ 신령한 영적 해석으로 현재에 주시는 교훈을 살펴 해석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8:44절은 상징적 비유적 말씀으로,
“자식이 아버지를 따르듯, 믿음 없는 유대인들이 마귀의 하는 일
 마귀를 따라 그 영향력을 받아 행한다는 뜻이며,“ 결코 사람이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뜻이 아니다.(창 4:1, 25)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과 육신(인간)을 창조하여
에덴동산에 살게 하시고, 하나님을 대리하여 만물을 다스리며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 “아담”이 선
악과를 따먹고 범죄 하므로, 인간 그 영혼이 죽었고, 그 후로 태어
나는 모든 인간은 그 원죄가 유전되어 죽은 영혼으로 태어난다.
 이와 같이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원죄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저지르는 죄 값으로 인해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도 고통을
당하며 살다가 육신의 죽음과 더불어 그 영혼이 지옥 불바다에서
영원한 고통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들의 죄 값을 짊어지고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그 공로가 헛되지 않
도록, 누구든지 예수님을, 인간 자기 죄 값으로 죽으신 주님이요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으로 믿기만 하면, 인간 그 사람의 원죄와
인간으로 살면서 행한 모든 죄를 단번에 모두 다 용서해 주신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원죄와 모든 죄를 다 용서 받으니까
죄 값으로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고(거듭나고)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니까, 생명의 근원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믿게 되어, 이제는 창조의 주요 생사화복의 주님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요1:12)
 하나님의 자녀가 되니까 이 세상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살다가, 이 세상의 삶이 다하면, 육신은 흙에서
취했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혼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에게
받들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으로 들어간다.(눅16:22)
 이같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생육하고 번성시키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유전되는 질서를 따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터 온다.(시127:3) 그렇기에 그 영혼의 종착역은 천국복락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영혼은 그 종점이 지옥 불바다이다.

2012-11-27 AM 10:03:04
 
 2012.11.18 감사하지 않으면 고통이 온다.
 

제목: 감사하지 않으면 고통이 온다
성경말씀 : 디모데후서 3:1~5

너는 이것을 확실히 알라! 무엇을? 말세에 고통을 당하는 때가 이를 것이다. 왜? 사람들이 감사하지 않음으로 여러 가지 죄악에 빠져서 그로 인한 징계로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세”란 전체적으로 이 세상 끝 날들을 뜻하며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삶이 끝나가는 죽음을 앞둔 시점들을 뜻 하는데 그때 고통을 당하므로 저는 거기서 돌아서라는 것이다. 본문에 말씀한 열아홉 가지 죄악을 분류해 보면,

첫째①자기를 사랑 ② 돈을 사랑 ③쾌락을 사랑한다.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고민하고 사는 것은 잘못이며, 돈과 물질을 무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또한 인생을 즐겁게 살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 일로 말세에 고통이 따라온다.

둘째 ① 자랑하며 ② 교만하며 ③ 자고한 것이다. 자랑의 원어는 “알라존” 인데 효과 없는 약을 과대선전 한다는 뜻이며, 교만은 자기를 최고로 여겨 하나님의 뜻 말씀을 듣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며, 자고는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것이다.

셋째 ① 무정하며 ② 원통함을 풀지 않으며 ③ 사납다. 정이 없어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무심하게 지내며, 너그럽지 못하여 섭섭한 것을 풀지 않으며, 야수처럼 부패한 성질을 드러내며 사납게 성질을 부리는 것이다.

넷째 ① 참소하며 ② 배반하여 팔며 ③ 훼방한다. 참소의 원어는 “디아볼로스”인데 마귀의 영향력을 받아서 헐뜯고, 불평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며, 자기 이익을 위해 믿는 도리와 은혜를 저버리고 배반하는 것이며, 훼방은 곧 하나님의 뜻이나 말씀이나 일을 방해하며 신성을 모독한다.

다섯째 ① 거룩하지 않으며 ② 선을 좋아하지 않으며 ③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선을 좋아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경건한 삶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 터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생활은 하면서 말씀을 진심으로 순종함이 없는 것이다.

여섯째 ①부모를 거역하며 ② 절제하지 못하며 ③ 조급하며 부모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니 잘못 된 일도 절제를 하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다 보니 일들을 조급하게 처리하여 잘못을 저지르게 되며, 이런 일로 그 말세에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일곱째 ① 감사하지 아니했다. 위에 말한 열여덟 가지의 죄악을 행한 원인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서 1:21절 말씀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 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스스로 지혜 있다하나 어리석어서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들과 바꾸었다“고 질책을 하셨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했더라면 생각이 허망해지거나 어두워지지 않고 지혜로워져서 죄를 분별하 여 물리치고, 썩지 아니하고 영원한 상급이 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복을 받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알면서도 영화롭게도 않고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련하여져서 여러 죄악을 저지르고 인생 끝 날에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경영하 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지고하신 은혜를 생각하며 다시금 감사를 드려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감사의 조건을 찾아보면

첫째, 하나님께 사람으로 생존케 하신 것을 감사드리자 우리를, 나 자신을 개미나 쥐나 뱀이나 돼지로 생존케 하지 않으시고, 파리나 원숭이나 개구리로 태어나게 하지 않으셨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으로 생존케 하심을 감사드리자.
둘째, 하나님께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리자. 지구상 200여 국가 중에서 상위권 10% 안에 드는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하셨다. 아프리카 후진국이나 사람으로서 생존키 어려운 미개지나 독재자의 폭정아래 태어나게 하셨다면 어떠하겠는가?
셋째, 하나님께 북한에 태어나지 않게 하신 것을 감사드리자. 같은 대한민국이면서도 북한데 태어났더라면 어찌하겠는가? 김정일 김정은 공산당 독재아래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하며 신앙도 없이 비참한 고통 가운데 죽어갈 것이다.
넷째,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에게도 감사하자. 우리 삶에서 우리가 만나는 상대는 현존하는 인구 70억 명 중에 한 사람이다. 그 얼마나 존귀한 대상인가? 그 상대가 아내이든 남편이든, 자녀이든 이웃이든, 친구이든 교우이든, 그 누구든지...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가 상대를 보고 감사하면 상대도 나를 보고 감사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기뻐 받으시고 다시 우리를 축복하신다.
 
 

2012-11-20 AM 10:23:54
 
 2012. 11. 11 엘리사의 헌신
 

제 목 : 엘리사의 헌신
성경말씀 : 열왕기하 4 :29~37

  지금부터 2,700년 전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수넴이라는 동네에 들어갔더니 그 곳에 한 귀한 여인이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알아보고 청하여 음식을
대접했고 엘리사가 지나갈 때마다 대접하더니, 어느  방 하나
를 만들어서 침상과 책상과 의자를 준비하여 엘리사로 편히
쉬게 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섬겼다.

 엘리사가 이 여인의 믿음과 섬김이 고마워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녀가 없던 그 집에 아들이 출생해서
잘 자라는데, 하루는 아이가 밖에 나갔다가 열사병이 걸려서
신음하다가 죽어버렸다. 이 때 여인에게 생각난 것은 아들을
출생케 기도해 준 엘리사 선지자였다. 아들을 출생케 해준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낸 선지자라면, 자기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역사를 또 다시 이끌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들어서 선지자 엘리사에게 쉴 새 없이 달려갔다.
  여기서 수넴 여인의 믿음은,
1) 엘리사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알아보고 섬기는 믿음이었다.
2) 알들의 출생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믿었다.
3) 하나님은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엘리사가 여인으로부터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자기 지팡이를 내어 주며 사람을 만나
거든 인사도 하지 말고 곧장 가서 죽은 아이 얼굴에 지팡이를
놓으면 살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러나 이때 누구보다 기뻐하며 앞장서야할 여인은 움직이지
않고 엘리사가 가지 않으면 자기도 엘리사를 떠나지 않겠다
하며 엘리사를 붙잡고 있었다. 여인에게 좋은 믿음이 있었지만
여기서 자기 믿음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가 사환에게 한 말은 사람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엘리사가 직접 안가도 하나님께서
는 사환 게하시를 통해서 죽은 아들을 살려 내실 것인데,
여인은 게하시를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믿지 않고
엘리사가 가야만 자기 아들이 다시 살아날 줄로 안 것이다.
 마태 8장에서 백부장의 자기 하인이 죽을병에 걸렸다.
처음엔 예수님께서 백부장 자기 집에 가셔서 하인의 병을 고
쳐달라고 하다가 이어서 우리 집에 가실 것 없이 여기서 말씀
으로만 하셔도 하인의 병이 낫겠다고 믿음을 고백했다.
백부장 자기에게도 부리는 졸병이 있어서 어떤 일이든
자기가 직접 안 가도 말만 하면 부하들이 척척 다 해놓는데
예수님은 부리는 천사들이 다 해줄 것이라고 믿음을 고백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 자리에서
네 하인의 병이 나을 것이다 하시니 하인의 병이 나았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고 순종만 하면 사환 게하시를
통하든 엘리사를 통하든 그 누구에게든지 역사가 일어나며 새 생명
으로 살아나는 은혜가 있는데, 이것을 믿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TV에 나오는 대형교회 유명한 목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만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몇 사람 안 되는 작은
교회의 목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도 누구든지 믿고 순종만 하면
새 생명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인데, 이러한
사실, 곧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지 않은 것이다.
이 여인이 사환 게하시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불신한 결과
불신한 그대로 살아나는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죽은 자기 아들이 살아나기를 소망했지만 자기의 불신으로 인해
오히려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것이 방해되고 늦어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자신도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원이 있으면서도 말씀의 역사와
능력을 불신하므로 오히려 우리에게 일어날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
하고 지연시키고 있지는 않은지를 깊이 살펴봐야 한다.

 이제 엘리사가 갔다. 아이가 죽어서 침상에 누워있어
자기 입을 아이 입에, 자기 눈을 아이 눈에, 자기 손을 아이 손에
맞추고 힘쓰며 하나님께 기도하니 아이 몸이 점점 따뜻해졌다.
힘이 다한 엘리사가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 힘을 보충하여 다시
아이 위에 온 몸을 대고 엎드려 힘을 다 기울여 기도하였더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
 엘리사 선지자가 처음 게하시에게 말한 대로 엘리사의 지팡이를
죽은 아이 얼굴에 갔다 대면 아이가 살아날 것이라는 말씀을,
수넴 여인이 믿고 순종했더라면 그때 아이가 즉시 살아났을 것을
여인이 하나님께 대한 ALE음이 있었어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정작 엘리사 선지가 갔어도 아이가 쉽게
살아나지 않았고 엘리사가 온 몸의 힘과 정성을 다 쏟아 바치며
헌신하고 기도한 후에야 아이가 살아난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불신이 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으면서도 그와 똑같이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믿기를 더디 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더디 일어나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와 능력을 믿고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순종하며 헌신하여 섬기는 것이다.


 2012-11-13 PM 6:01:38
 
 2012.11.4 열매 없는 자가 되지 말라.
 

제 목 : 열매 없는 자가 되지 말라
성경말씀 : 디도서 3 : 12 ~ 15

  디도서는 바울 사도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디모데 전후서와 함께 목회서신이라 구분한다. 사도 바울이
디도를 아들처럼 믿음으로 양육하여 하나님의 교회 사역자로
세워서 지중해의 그레데 섬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단들의 잘못 된 가르침에 대하여 바른 대처를 하고 교인들을
잘 인도하도록 목회에 관하여 교훈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당시 이단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며 가증스럽게
악을 행하고 선한 일을 버리고 나갔다. (1:16) 거기에 미혹되지
말고 참 믿음에 따르는 선한 열매를 맺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 오늘 말씀에 중심이다. (2:14, 3:14)

  본문 12절, 아데마, 두기고는 바울 사도와 함께한 제자들로
디도 다음으로 그레데 교회의 사역을 감당하라고 보낸 것이며,
디도는 사도 바울과 함께하며 그리스 해안 도시인 니코볼리에서
겨울을 보내며 다음 선교를 위하여 준비하고자 했다.
 13절, 율법을 잘 가르치는 선생 세나와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낼 것이니 그들의 생활에 궁핍함이 없도록 그레데 교인들이
물질로 잘 섬기라고 했다.
 14절, 교인들로 하여금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잘 준비하여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라고 했다.
  과연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에 따른 선한 행위의 열매을 맺기를
원하신다. 이사야 5장에도 극상품 포도나무인 성도들이 좋은
열매 맺기를 바라셨고, 마태 3장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하셨고, 요한 15장에서는 포도 열매를 맺으라 하셨다.
 이 열매들은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럽게 맺혀지는
것이 아니고 배우고 익혀서 끊임없이 노력하므로 맺혀진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결실의 계절이다. 항금 들녁에서 쌀알을
거두었고, 사과 배 밀감 등, 보기에 아름답고 맛있는 과일
들이 풍성하다. 이 좋은 열매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과연
금년 한 해, 우리는 주님께 어떤 선한 열매를 맺혀서 기쁨을
드렸는가? 자기 자신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선한 열매는 무엇인가?
갈라디아 5:22에 성령의 열매와 그 외 여러 열매들을 뜻한다.
1) 사랑 열매 = 하나님을 사랑함에 어떤 열매를 맺혔으며
 가족과 이웃과 교우들을 사랑함에 얼마나 열매를 맺혔는가?
 우리 인생이 한 평생을 살고 마무리할 시점에서 정리해 보면
 가장 값지고 남는 것은 사랑뿐이다.
2) 희락 열매 = 좋은 일에 기뻐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불편할 때나 나쁜 일에도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 하셨으니
 항상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을 사랑
하기만 하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고 복이 되게 하신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하신 것이다.
3) 화평 열매 =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리낌이 없이 평화롭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불화가 없이 평온함을 누리는 것이다.
이런 일 저런 일을 만나도 자신의 마음을 평화롭게 가꿔 나간다.
4) 인내 열매 = 오래 참고 또 참아 나가는 것이다.
좋지 않은 상황, 마땅치 않은 일들, 자기감정대로 폭발하고 싶은
충동과 쏟아내고 싶은 말들에서 자기 자신을 잘 가다듬으며
참아내는 것이다. 자신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나도 큰 일,
자기 무력함과 무능함을 느끼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때,
어떤 일을 시도하려 하지 말고 묵묵히 참기만 해도 인내 열매다.
참으면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참고나면 더 좋은 일이 온다.
5) 자비 열매  =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 자기보다 부족하고 뭔가
모자란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측은히 여겨 도와준다.
6) 양선 열매 = 선한 일을 많이 하고 키워가며 쌓아가는 것이다.
7) 충성열매 = 각자가 처한 위치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한다.
가정에서 아내로서 남편에게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더 좋게 잘할
수는 없는가? 직장일도 자기 직책에 더 잘할 수는 없었는가?
신앙도 하나님을 섬기며 맡은 직분에 더 잘할 수는 없었는가?
더 잘할 수 있는데 잘하지 못한 것은 충성한 것이 아니다.
8)온유 열매 = 따스하고 부드럽고 친근하게 순종하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 따스하고 부드럽게 예, 하고 순종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온유가 아니다.
9) 절제 열매 = 잘못된 것은 끊어버리는 것이다.
 잘못 된 말과 마음 씀과 습관과 행동을 자제하고 바르게 한다.
 이외에도 빛의 열매인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열매들이 있고,
전도의 열매, 기도의 열매, 봉사의 열매, 헌금의 열매 등
우리 주님께서 기뻐 축복하시는 믿음의 열매들이 많이 있다.
 여러 과일 들이 열매를 맺히는데 봄에 꽃을 피우고 늦추위와
가뭄과 태풍과 여러 병충해 등을 다 견디어내면서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 좋은 날씨만 계속된 것이 아니다. 우리도 삶에서
당하는 고난과 시험을 이겨내면서 믿음의 선한 열매들을 맺혀야
한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2012-11-05 AM 11:07:18
 
 2012. 10. 28 3대 발견
 

 제   목 : 3 대 발견
성경말씀 : 이사야 6 : 1 ~ 8

 웃시야는 유대 나라의 제 10대 왕으로서 16세에 왕이 되어
52년을 통치만 유다 왕들 중에 좋은 왕으로 손꼽히는 왕이다.
그러나 그가 강성한 나머지 교만하여 제사장이 하는 일을
겸하려 하다가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문둥병이 걸려 쫓겨나서
별궁에서 외롭게 살다가 죽어갔다. (대하 26:4~23)

 나라를 부국 강성케 한 좋은 왕이 죽었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유다나라와 백성들의 장래를 위하여 기도하던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세계가 보였다.
 하늘 문이 열려 이사야가 깨닫고 발견한 것은,
 첫째, 하나님을 발견했다.(1~4)
1절~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발견했다.
 이는 단순히 보좌가 높다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는
천상천하 만물들의 지존(至尊), 즉 그 권세와 능력과 영광이
최고로 높으신 분임을 깨닫고 발견한 것이다.
2절 ~ 천사들의 경배와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천사들이 여섯 날개가 있는데,
두 날개로 얼굴을 가렸고 = 하나님께 최상의 경배를 드림이다.
두 날개로 발을 가렸고 = 하나님 앞에 최대한 겸손함이다.
두 날개로 날았다 =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로 순종함이다.
입으로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송을 했으니 이는
하나님의 완전무결하심을 찬양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천사들의 경배와 찬양을 배워
하나님께 최상의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3절 ~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발견했다.
 에베소서 2:2 절에서 마귀가 공중 권세를 잡았다 했는데 그렇
다고 악령이 공중 권세를 다 잡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허
용한 일부분일 뿐이며, 천상이든 공중이든 지상이든 모든 권세
는 하나님께서 다 장악하시고 그 영광이 천상천하에 충만하신
것이며 이 하나님을 다시금 발견하고 깨달은 것이다.

둘째, 자신을 발견했다. (5-7)
5절 ~ 자신은 부정하여 화 받고 망할 사람임을 발견했다.
이사야가 이미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선지자로 쓰임을 받고
있음에도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망할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어떤 직분이나 지위에 올라 있으면 자신이 당연히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것으로 우쭐대고 자신을 내세우는데
이는 영적 무지와 교만에서 나온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발견한 사람은 그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정한 존재인가를 알고 낮아지게 된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구별하지 못
한다. 그러나 밝은데 나갈수록 더러움과 깨끗한 것을 구별하듯
영적 광명이신 하나님께 가까이 간 사람은 완전무결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고
그 앞에 굴복하여 불쌍히 여기심을 구할 수밖에 없다.
6,7절 ~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악을 사함 받았음을 발견했다.
 천사가 제단에서 핀 숯을 가져다 이사야 입에 대며
네 악과 죄가 사하여졌다 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죄악을
사함 받기 위해 양이나 소를 피를 흘려 불태워드리는 속죄제사와
번제를 드렸다. 죄인 자신이 소나 양처럼 피를 흘리고 불사름을
당하는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데 죄인 대신 이 양과 소를 제단에
불태워 바치니 용서해 주옵소서. 하는 뜻이며,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인생들의 죄 값을 지고 희생제물이
되어주심을 믿습니다. 하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천사가 제단의
핀 숯으로 이사야 입에 대어 악과 죄를 사함 받게 한 것은
곧 우리 죄 값의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어주신
예수님의 구속의 공로를 적용시켜 죄악을 사함 받게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처음 믿을 때가 아니고 이미 믿고 선지자로서
사역을 감당하면서 다시금 죄를 발견하고 다시금 사죄의 은총을
받은 것이다. 우리도 이런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셋째, 사명을 발견했다.(8절)
 주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실 때
이사야 선지자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자기
사명을 다시금 발견하고 힘써 충성하여 구약시대에 4대 선지자
중에 으뜸가는 선지자가 되었던 것이다.
 즉 직분도 없이 있다가 처음으로 사명을 발견한 것이 아니고
이미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면서 다시금, 새롭게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 발견하고 충성하여 업적을 이룬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요 성도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또한 각각의 직분을 받은 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직분과 사명의 중차대함을 알고 충성하고 있는가?
 성도로서 사명과 직분자로서 사명의 존귀함을 다시금 깨닫고
발견해서 남은 시간들을 우리 직분과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도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고
우리 삶의 발자취가 가치 있고 빛나게 되며,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찬란한 상급과 칭찬을 받아
누리게 된다. 우리 모두가 이런 축복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2012-10-29 PM 7:23:41
 
 2012. 10. 21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제   목  :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성경말씀 : 요한복음 8:41~47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으나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어디서 왔는가를 바로
알면, 사람이 어디로 가는 가도 알게 되고 그 인생살이가
순조롭게 되고 가치와 보람 있는 축복 된 삶이 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하시는데
유대인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배척하며 죽이려 한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낳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고 거짓을 말한다.” 고 (44절) 질책을 하셨다.
 이 말씀을 자칫하면 오해할 수 있고 오해를 하는데,
“모든 사람은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된 깨달음이요 말씀을 오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참됨은 무엇인가?
 먼저 마귀의 정체를 살펴보면, 마귀와 사탄은 같은 무리로서
하나님께서 범죄 한 천사들을 용서치 않으시고 징벌하시는데
곧 어둠의 구덩이 흑암의 세계로 내 몰아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 (벧후2:4, 유1:6, 엡2:2~3) 이것들이 마귀인 것이다.
 흑암의 세계는 지상위의 공중세계인데, 천국의 그 찬란하고
영광스럽고 평화롭고 광명한 세계에 비하면 이 지상이나 공중
세계는 죄로 어두워진 흑암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 마귀가 부분적으로 공중 권세를 잡고 인간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하나님을 배척하며 예수님을 불신하도록 하는데
예수님께서 그에 대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낳다.” 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지, 사람이 마귀로부터 태어난다고 한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권세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며,
이제도 천상천하 만물의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의 주권과 경영권을 모독하는 큰 죄가 된다.

 성경에서 사실적 증거를 찾아보면,
아비멜렉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앙의 사람인데 이 집안에
태를 닫으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태를 열어 사람이 생존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창 20 :17 -18) 이삭이 자기 아내가
불임으로 잉태하지 못하자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셔서 쌍둥이 아들을 잉태케 하셨다.(창 25:21)
모태에서 잉태되고 사람의 모양으로 만들어지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시 139:13-16)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든지 창세전에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다가
때가 되매 남녀의 결합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
마귀나 그 어떤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단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사람은 그 삶의
모든 죄를 용서받아 정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보
호와 사랑가운데 살게 되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마귀의
영향력을 받아 죄를 짓다가 지옥 형벌로 저주를 받게 된다.

 이제 우리가 다시 한 번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첫째, 천상천하 만물의 생성과 쇠멸은 하나님께만 있다.
최초에 만물을 만들어 존재케 하신 분도 성삼위 하나님이시오
이제도 인생을 비롯한 천상천하 만물들의 생존과 쇠멸도 오로지
성삼위 하나님께서만 주관하시고 경영하신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으니, 참새 한 마리
개미새끼 한 마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까지도 모두가 다
하나님의 생존케 하심에 따라 만들어지고 태어나서 존재하다가
쇠하고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상천하 만물들이 다
성삼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둘째, 마귀는 그 무엇이든 전혀 생존케 할 수 없다.
 마귀 자체가 하나님의 생존케 하심을 따라 생존하다가 멸망을
당하는데, 마귀나 무슨 권세와 능력으로 만물의 하나인들 또한
사람을 자기 자식으로 태어나게 할 수 있을까? 마귀는 풀잎
하나, 티클 하나, 먼지 하나도 생존케 할 수 없다.

셋째, 마귀의 소유는 하나도 없다.
 마귀는 그 무엇 하나도 생존케 할 수 없기 때문에
마귀의 소유물 역시 하나도 없다. 천상천하 만물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소유물이며 그 생사화복을 하나님께서만 주장하신다.

넷째, 천하 만물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천상천하 만물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생존
케 하시는 하나님의 소유물들이기에 만물들을 비롯한 인생들의
잘하고 잘못에 대한 심판과 형벌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세상을 살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 가운데 살다가, 죽으면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으로
들어가 영원한 생명으로 복락과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은 사람은 마귀의 영향력을 받아
죄를 짓고 살다가 죽음과 더불어 자기 죄 값으로 지옥 불바다에
떨어져 영원토록 불타는 형벌을 받게 된다.


 
2012-10-22 AM 10:20:11
 
 2012. 10.14 선택받은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이다.
 

제 목 : 선택받은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이다.
성경말씀 : 누가복음 4 : 25 ~ 27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기에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기
위해 30세 될 때 까지는 가정을 돌아보시다가 30세가 되시므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공적 생애를 시작하셨다.

 40일 동안의 금식 기도를 통해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시고
권능으로 말씀을 선포하시며 자라나신 동네 나사렛에서 말씀
을 가르치시는데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다.
 이에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하시며,
구약에 훌륭한 선지자였던 엘리야와 엘리사의 실례를 드셨다.
 엘리야 시대에 3년6개월 동안의 흉년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
당할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도 있고 사람도 많은데 그들에게는
환영 받지 못하던 엘리야 선지자를 이스라엘 북쪽의 이방지역
사렙다의 한 과부가 대접을 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렙
다 과부를 축복하시고자 많은 사람 중에 선택하신 결과이며,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이나 중동지역에 문둥병자가 많이 있
었는데 그 사람들은 엘리사 선지자를 환영하지 않아 고침을 받
지 못했지만, 오직 먼 곳 아람나라 군대장관인 문둥병자 나아만
이 선지자 엘리사를 신임하고 찾아와 그 인도를 받아 문둥병이
깨끗이 낫게 되었다. 이 역시도 이스라엘이나 이방나라를 불문
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지자를 환영하는 자를 축복하시려고
선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환영하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려 선택하신 결과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선택
받는 사람은 예수님을 환영하고 믿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이 예배의 자리에 모인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려 선택하신 결과이며,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기 때문에 이 거룩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 선택받은 것은 엄청난 축복이요, 인생 최고와
최대의 축복이다. 그럼에도 인생의 이 엄청난 최고의 축복을,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여기며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으니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책이나 신문 같은 것도 독자의 선택을 받으며 제 값에 팔려
귀하게 읽히고 제 기능을 다하지만, 독자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하면 제 값 제 기능도 못하고 폐지로 처분된다.
  옷이나 다른 물품도, 주인에게 선택을 받으면 제 값에 팔려
제 기능을 다하고 귀하게 쓰임을 받지만,
선택받지 못하면 덤핑이나 땡 처리 되어 가치 없이 사라진다.
서울대나 하버드에 합격한 것은 그로부터 선택받은 것이다.
삼성이나 애플 같은 국제기업에 입사한 것도 그 기업으로부터
선택받은 것이다. 그렇게 선택받은 사람들은 한평생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그런 회사를 다니고 학교를 나와도 인생의 행복이
보장되지 못하고 사후세계는 고통스런 형벌의 연속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사는 동안도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다가, 죽는다 해도 천국의 영생복락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어마어마한 축복임을 알고 자부심을 가지고
존귀하게 여기며 우리의 삶을 자랑스럽게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최고의 축복을 받은 우리는,
첫째, 성삼위 하나님을 감사함으로 섬겨야 한다.
 50년간 감옥살이 할 죄 값의 형벌을 누가 대신 받아주었다.
이 고마움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며, 과연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 죄 값으로 우리가 영원토록
지옥 불바다 형벌 받는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아 주시고
영원한 천국 복락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주셨으니
이 가치와 존귀함을 세상 그 무엇으로 비교하며 견주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삶의 좋은 때나 나쁜 때나 변함없이 항
상 성삼위 하나님을 감사함으로 섬겨야 한다.

둘째, 기쁨으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축복하시는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며 이루어 나가라는 것이다. 그리함으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지고
우리의 영육간에 품성이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말씀을 순종하기에 난관이 있다하여도 선택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기쁨으로 말씀을 순종해 나가야 한다.

셋째,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한다.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르는 직무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늘나라 일군으로서 교회에 직분과 할 일
사명들이 있고, 가정에서도 아빠 엄마 남편과 아내 자녀들로서
감당할 일들이 있으며, 직장에서 또한 사회적으로 처한 위치에
서 각자가 맡은 직무들이 있다. 직무에 최선을 다해 충성했는가?
엄마 역할 아빠 역할, 아내 역할 남편 역할, 교회 직분자요 각
부서의 책임자로서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게으름을 부린 것은
아닌가? 최선을 다해 충성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2012-10-17 PM 4:12:39
 
 2012. 10. 7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함을 받아라.
 


제   목 :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함을 받아라.
성경말씀 : 사도행전 3 :14 ~ 21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예수님이 우리 죄 값을 위해 죽으셨다가 3일 만에 살아나셔서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셨고
승천하신 후 10일쯤 된 오순절에, 보혜사 성령님이 강림하셔서
초대교회에 믿음의 역사가 시작 된 직후의 일들이다.

 베드로 요한이 오후 3시에 기도하러 성전으로 가는데
성전 문 앞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구걸을 한다.
이에 베드로 요한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
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어라.!!” 하니
그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 했다.
 이 역사를 본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 요한을 섬기려 할 때에
베드로가, 어찌하여 우리 개인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처럼 생각하느냐, 우리가 아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했다. 증거
하며,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함을 받으라, 고 권면을 했다.
 그렇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돈도 없어서 성전 문 앞에서
구걸이나 하고 한 평생 그렇게나 살아야할 희망이 전혀 없는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앉은뱅이에서 완전히 고침을 받고,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불행한 삶이 변하여 행복한 삶이 시작된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정신적인 질환으로 인하여
삶에 희망이 없고, 영적 어둠으로 인하여 죽음의 길을 달리며,
불행한 사건사고로 인하여 괴로움과 절망 속에 사는 인생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주(救主)로 믿고 회개하면
육신의 질병도, 정신적인 질환도, 영혼에 어둠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며, 불행한 사건사고에서도 건짐을 받고, 희망을 가지고
행복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처음 구주로 믿을 때,
그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부정하게 죄 된 생활을 한 것에
후회와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하게 된다.
이것이 “기본회개”라고 한다.
이 기본회개를 통하여 받는 축복을 “기본구원”이라 한다.
1) 모든 죄를 사함 받고 2) 죄 값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며
3)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4) 천국에 영생복락을 누린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믿음의 길에 선 사람도
때로는 육신의 질병과 정신적 질환과 삶에 불행한 사건사고에
휘말려 원치 않는 고통을 당하며 어둠에 삶을 살기도 한다.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죄를 짓고도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개”라는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도하고 반성도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다짐을 하며 결심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회개도 아니며, 전혀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
어떤 죄든지 하나님께서 사해주셔야만 용서를 받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바로 우리 죄 값 대신
죽으신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회개할
때에만 죄를 사해 주시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으면 절대로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회개
하는 일 외에는 그 무엇으로도 죄를 용서받을 수가 없다.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처음 구주로 믿을 때 회개를 했다.
이 기본회개를 통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단 번에 용서
받고 구원을 받았지만, 현실의 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죄는 또한 회개해야 한다. 이것을 “중복회개”라고 한다. 
 기본회개는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단 한 번으로 끝나지만
믿은 후 저지르는 죄는, 죄 지을 때마다 다시 회개해야 하므로
거듭거듭 회개한다는 뜻에서 중복회개라고 한다.
  그러므로 기본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회개를 하므로 기본구원의 축복을 받아야 하고,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사람은, 현실 삶에서 죄 지은 것에 따라 중복회개를
하며 말씀을 순종해 나가므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더 많은
축복을 받게 되는데, 이 축복을 “성화구원”이라 한다.
점점 깨끗해지고 점점 거룩해져서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므로
거룩하게 변화되는 구원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성화구원을 잘
이룰수록 천국에서 더 많은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되는데 이를
“영화구원”이라 한다. 천국에서 더 찬란하고 영광스런 지위의
복락과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이다.

 지난 여러 날 동안 명절이라 하면서 주일을 거룩히 지키지 못
하고 미신적 풍속과 타락된 문화를 즐겼다면 회개를 해야 한다.
 회개하면 받는 축복은, 1) 지은 죄를 깨끗이 용서 받는다.
2) 유쾌한 날이 온다. 육신의 질병, 마음의 고통, 영적 어둠에서
해방되고 불행한 사건사고에서 벗어나 기쁘고 즐거운 날이 온다.
3) 재림하시는 예수님 앞에 칭찬받을 사람으로 서게 된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을 만날 때나 재림하셨을 때
주님에 칭찬과 사랑을 받을 사람으로 기뻐하며 서게 된다.
 2012-10-08 AM 9:57:04
 
 2012. 9. 30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다.
 

제    목 :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다.
성경말씀 : 사사기 17 : 1 ~ 6

  사사기는 지금부터 3.300년 전에 일들이다.
에브라임에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어머니가
은 일천일백을 잃어버리고 도적질해 간 사람에 대하여 저주를
했다. 그 저주 소리를 듣고 미가가 어머니한테 자기가 그 은을
취했었다고 말하면서 다시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이를 기특히 여긴 미가 어머니가 아들 미가를 위하여 그 은을
하나님께 거룩히 바친다고 하면서 신상 두 개를 만들어 신당을
세웠고 미가는 자기 아들 중에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워서 그것
을 하나님을 섬기듯 섬겼다.

 위의 일어난 일들에서 모든 일이 잘못된 일이었으니,
1) 미가가 어머니의 은을 몰래 취한 것은 도적질이다.(잠28:24)
2) 미가 어머니가 은을 아들을 위하여 여호와께 거룩히 바친다,
  고 하면서 그것으로 신상 두 개를 만든 것도 큰 죄악이다.
3) 미가가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도 중죄이다.
 그런데 6절에서 “이스라엘에 왕이 없음으로 사람마다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했다“고 말씀했다. 즉 다스리는 왕이 없다
하면서 사람이 자기가 옳게 생각되는 대로 했는데 그 일들이
다 죄를 짓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 때 그럼 왕이 없었는가? 국가를 통치하는 육신의 왕은 없
었지만 육신의 왕보다 천만 배도 더 뛰어난 하늘에 계신 만군
의 여호와 하나님이 계셨는데 그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육신의 왕들보다 천만배도 더 뛰어나시니,
첫째, 하나님은 만왕(萬王)의 왕이시다.
 이스라엘이나 어떤 나라의 왕이라도 그 국가에서는 위세가
최고인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한 국가의 왕 정도가 아니고 천상
천하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그것을 통치시키는 만왕의 왕이시고
만유(萬有)의 주이시다.(계19:16) 또한 천하 각국 모든 왕들을
세우기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며,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
시는 전지전능하신 만왕의 왕이시다.(단2:20-21)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이 통치는 천상천하를 다 아우르신다.

둘째,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왕이시다.
 세상에 현존하거나 존재했던 모든 왕들은 그 수명이 길어야
백년이다. 즉 어떤 왕을 지극 정성으로 섬기며 충성을 다해도
그 왕을 섬겨서 받는 혜택은 그 왕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그 수명이 백년이 아니고 천만년도 아니고 수천억 년을 넘어
영원무궁하여 끝이 없고 한이 없이 영원토록 계속된다.
(시10:16, 29:10~11). 그러므로 영존하시는 만왕의 왕이신
성삼위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면, 영존하시는 그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은혜와 혜택이 조금도 변함없이 영원히 계속 된다.
 또한 만왕의 왕으로 영존하시는 하나님은 현상세계뿐만 아니라
죽음의 세계와 영적 세계와 천상세계도 통치하시는 왕이시기에
그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사람은 현실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죽음의 세계와 영적 세계와 천상세계 곧 하늘나라에서까지도
그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영원토록 받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섬겨야 한다.
 다윗은 인류 역사의 왕들 중에서 위대한 왕으로 손꼽힌다.
그런 다윗도, 즉 자기가 인류 왕들 중에서 뛰어난 왕이면서도
자기가 왕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을 자기 왕으로 모시고 섬겼다.
(시5:2). 이스라엘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의 고라 자손들도
당시에 국가를 경영하는 왕이 있었지만 그 왕보다도 하나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고 찬양하며 살았다.(시44:4)
 좋은 믿음으로 앞서간 선진들을 보면 하나같이, 육신의 왕이나
국가의 왕보다도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고 섬기며 살고 축복을 받았다.(사6:5, 렘10:10, 딤전6:15)
 이제 우리도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섬겨야 한다.
일반 국가에서 현존하는 왕을 배척하고 다른 왕을 섬기거나
세우려 할 때에 구족(九族)을 멸하는 형벌이 있었다. 하물며
만왕의 왕이시고 영존하시는 왕이신 하나님을 배척하거나 다른
것을 왕이나 신으로 섬기려  할 때에 그 징벌이 어떠할 것인가?

넷째, 하나님의 통치와 법도를 따라야 한다.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이시고 영존하신은 왕이시며 우리 왕이
시니, 이제 그 분의 통치와 법도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하면 안 된다.
무엇을 생각하고 계획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의 법도에 맞아야
하고, 무엇을 실천하고 목표로 하든지 하나님의 법도인 성경말
씀에 맞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게 하면서 자기 뜻과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하는 것은 다 죄악이다.
 목사나 장로나 대통령이나 왕이나 그 누구라도 모두 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법도에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자기 뜻에 옳은 대로 할 때에는 곧 죄악이 되고 그런 일들은 사람
보기에는 잘한 일 같아도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받게 된다.
 십계명을 순종하며 누구의 잘못에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며 하나님께 충성하면 영원토록 축복을 누리게 된다.

2012-10-04 PM 12:43:00
 
 2012.9.23 우리가 힘써 여호와를 알자
 

제 목 : 우리가 힘써 여호와를 알자
성경말씀 : 호세아 6:3-6

  호세아는 지금부터 2,700년 전에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선지자로 이사야나 미가 선지자와 동시대에 사역을
했으면서도 먼저 사역을 시작했고 약 60년이란 긴 세월동안
사역을 감당한 훌륭한 선지자이다.

 사역 내용은, 잡신 우상을 섬기며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켜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도록
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 육간에 복 받도록 하는 일이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를 힘써 알자는 말씀으로
3~6절에서 거듭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과연 그렇다. 부부
간이나 부모형제친구 사이도 상대를 바로 알지 못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이 생겨 행복
은커녕 오히려 불행을 초래하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것은 현재의 삶
에서도 행복해지고 장차 하늘에 영광스런 축복을 누리는데 꼭
필요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첫째, 전지전능하여 천지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칭호는 우리가 기도 때나
평소 신앙생활에서 자주자주 칭호하고 익숙하게 사용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로 믿고 섬기
는 가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부족함이 있다.
  진정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로 하나님을 바로 안다면,
①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신으로 인정하거나 섬길 수가
없으며 그 어떤 것에게도 기도할 수가 없다. 왜냐?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시고 하나님께서만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신데, 과연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을 신으로 인정하며
섬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호세아 당시에나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성삼위 하나님 외에 다른 잡것들을 신으로
인정하며 섬기기도 하고 소원을 비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② 성삼위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찬양하게 된다.
  천상천하 만물들, 그 어떤 내 노라 하는 신이란 것들도 모두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이며 하나님께서 죽이기도 살기
기도 하시는데, 이 성삼위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을 경배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 외에는 경배할 대상이 그 아무 것
도 없으며 찬양하거나 믿고 의지할 대상도 전혀 없는 것이다.
③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과 인도만 받게 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 가르침 외에 과연 또 어떤
것이 필요하단 말인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무결하며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되며 영원불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으면 천상천하의
모든 비밀과 생성쇠멸의 이치와 영 육간에 모든 것을 바로 알게
된다. 따라서 성경 말씀 외에 모든 것은 그 어떤 것이든지 믿거
나 의지할 것이 못되고 그저 참고사항쯤 되는 것이다.

둘째, 만물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세상 만물 그 어떤 것도 만물을 심판하거나 형벌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만물을 살펴 심판하고 형벌하실 권세와 능력이 있으시다.
하나님께서만 “어떤 것이 죄다”고 규정하실 수 있으며
또한 “심판하셔서”그에 따르는 “형벌을 가하실 수 있다.”
천상천하에 생명으로 알게 모르게 존재했던 모든 것들과, 지금
생명으로 현존하는 모든 것들과, 앞으로 알게 모르게 생명으로
존재할 모든 것들은, 그 어떤 것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잘한 일에 상과 못한 일에 형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성삼위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며, 그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생각하며 그 하나님의 뜻
하심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려고 최선에 노력해야 한다.

셋째, 사랑으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죄악을 심판하는 하나님이신가 하면
인생들을 사랑하고 구원하여 천국복락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얼마나 사랑하시든지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우리 죄 값 대신
십자가에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해 주셨다.
이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아는가? 바로 안다면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 감격할 수밖에 없고,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혹시 죄를 지었다 해도 합리화 시키지 않고 핑계대지 않으며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의지하며 회개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인애(仁愛)
어질고 착한 사랑을 하게 된다. 어질고 착한 사랑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려 자신과 아들을 희생시키신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희생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몸을 희생하고, 마음에 감정이나 자존심도 희생
하고, 물질이나 귀한 것을 희생하여 하나님의 나라 교회를 사랑
하며, 또한 이웃을 사랑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겨서 많은 축복을 받아 누리자!!

2012-09-23 PM 6:02:40
 
 2012.9.16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제 목 :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성경말씀 : 디모데후서 3:13~17

  세상의 있는 모든 책들은 사람의 창작물이다.
사람의 지식이나 깨달음이나 학문이나 경험이나 사상들을
기록하고 지어낸 것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창작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셔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계시”란 헬라 원어로 아포칼맆시스 인데
“감추었던 것을 열어서 보여 준다”라는 뜻이다.
이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그동안 나타내지 아니 했던
자신의 뜻을 열어 보여 주셔서 문자로 기록하도록 한 것으로
성경은 곧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어떤 국가의 헌법이다 국제법 또는 어떤 조직이나 단체 또는
민족의 풍습이나 여러 가지 문화를 초월하여 최고의 지위에
있으며, 천하 만물의 모든 것은 그 어떤 것을 막론하고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앞에 다 굴복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을 보면,
하나님께로 계시를 받아 직접 기록한 원본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원본에서 한자 한자 베껴 써서 복사본을 만들었고 이것이 사본
이다. 당시는 인쇄술이 없었기에 사본에서 다시 베껴 쓴 사본
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므로 기록자가 실수로 더하거나 빠트린
부분도 더러 있어서 여러 사본들을 대조하여 원본에 합당하게
편집하고 번역한 것이 오늘날의 우리가 신임하는 성경이다.
 수많은 사본 중에 정통서을 인정하는 사본이 3개가 있는데
① 알렉산드리아 사본: 대영제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회에서 보존하고 있다.
② 바티칸 사본 : 로마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로마 천주교회가 보존하고 있다.
③ 시내 사본 :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박물관에 소장되었으며
 그리스 정교회가 보존하고 있다.
 구약 성경은 39권 인데, 분류하면
율법서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이다.
역사서 :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등등이다.
지혜문서 : 시편 잠언 전도서 욥기 아가서 등등이다.
성문서 : 거룩한 문서라 하여 에스라 느헤미아 에스더 등등이다.
대선지서(예언서) : 이사야 예레미아 에스겔 다니엘 등이다.
소선지서(예언서) : 호세아 요엘 아모스 등등 12선지서이다.
신약은 27권인데,
복음서 : 마테 마가 누가 요한복음 등이다.
역사서 : 초대교회 활동사로 사도행전이다.
성문서 : 로마서 고린도전후 데살전/후 갈라디아 히브리 등이다.
목회서신 : 디모데전/후 디도서 등이다.
옥중서신 :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 등이다.
공동서신 : 야고보 베드로전후 요한 1,2,3서 유다서 등이다.
예언서 : 요한 계시록이다.

이렇게 신구약 66권의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인가?
여러 뜻이 있지만 본문 말씀에서는 2가지로 말씀을 하셨다.
첫째,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서 구원받게 하심이다.(15절)
 모든 인생은 다 죄인이다. 죄에서 그 죄에 해당하는 형벌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구원이라 ?  ① 과거 현재 미래 의 모든 죄를 사함 받는다.
 ② 죄를 용서 받았기에 죄 값으로 죽었던 영혼이 거듭난다.
 ③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④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에 언제 어떤 모습으로 살다가 죽어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으로 올라가서 영생복락을 누린다.
 이 위대하고 숭고한 구원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내 죄 값 대신 죽으신 주님으로 믿으면 되고, 믿을 때 단번에
성취되며, 성취 된 것은 영원히 변치 않고 그 복락이 보존 된다.
 구약 39권은, 장래에 이 구원의 주 메시아 예수님께서 ,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갈 것이니, 장차 탄생하실 예수님을 믿으라는
예언의 말씀이고, 신약27권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으라는 말씀이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의 축복된 결과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고 배척한 자들의 멸망 받을 결과를
계시로 기록한 예언의 말씀들이다.(창세기 3:15, 이사야 53:4~6)
(요한복음 3:16, 5:24, 5:39~40, 11:25~26, 20:30~31)
 구약시대엔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 받았고
신약시대엔 이미 오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다.(16절)
 성경 말씀은, 인생을 바르게 교훈하시며 잘못을 책망하시며
의롭게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하신다. 그러기에 성경 말씀을 배우고 익히고 순종해 나가면
점점 의로워지고 지혜롭게 되며, 점점 거룩해지고 아름답게 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들어져 선을 행하므로, 천국에서
찬란한 영광과 상급 축복을 누리게 된다. 즉 성경 말씀의 지식을
익히고 온전해져서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천국에 가고, 말씀 순종으로 상을 받는다.

2012-09-17 PM 1:26:53
 
 2012 . 9. 9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시다
 

제    목 :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시다
성경말씀 : 이사야 31 : 4 ~ 9

  예수님과 하나님과 성령님은 하나이시다.
이를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 칭한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가
어려워도 이는 성경에 나타난 확실한 사실이고, 이런 사실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 그대로를 믿는 것이다.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사람이나 교파
는 이단이었고 사이비였으며, 이미 멸망을 당했고 또한 멸망을
당할 자들이다. 오늘날도 여호와 증인이나 통일교나 신천지나
안상홍 하나님의 교회 같은 이단들이 삼위일체를 부인한다.

본문에서 친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의 “하나”는 헬라 원어로 보면,
헤이스는 지위, 명예, 권세, 영광, 능력 등이 하나 됨을
뜻하고, 헨은 성품, 본질, 뜻, 사역 등이 하나님을 뜻하는데
예수님과 하나님과 성령님 세 분은 “헤이스”나 “헨” 모든 면
에서 동질이시며 동등하시며 하나이시다.

이렇게 하나가 되신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
첫째, 인생들을 사랑하시는 일에 하나가 되셨다.
 요한복음 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
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서 나타나 있듯이,
그 누가 그 어떤 신이,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기 위해 하나뿐인
자기 아들을 죽음에 내 줄 수 있는가? 그 누구 그 어떤 신도
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만 하신 일이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 예수님이 하나가 되셔서, 하늘 보
좌를 내놓으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사
랑하시기 위해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신 것이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과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함께 우리에게 역사를 하셨다.
 이 사랑의 넓고 크고 깊은 위대한 의미를 아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
켰다면 이는 미쳤다고 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하나가 되셔서 이 위대하고
거룩하고 숭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다.
♬~ 내가 연약할수록 ♪~ 더욱 귀히 여기사 ♬~ 높은 보좌
위에서 ♪~ 낮은 나를 보시네 ♬~ 날 사랑하심 ♪~
날 사랑하심 ♪~ 날 사랑하심 ♪~ 성경에 쓰여 있네 ♪~
이제 우리는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성삼위 하나님의 이 위대하신 사랑을 받아들여서
마음과 영으로 믿고,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겨야 한다.

둘째, 하나가 되어 우리를 죄와 죄의 형벌에서 건져내셨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인생들은 모두 다 죄인이다.
조상들로 물려받은 원죄가 있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
지 짓는 언행심사간의 수천억 가지의 죄가 있다.
 죄에는 죄의 고통과 죽음이 따르고 또한 육신의 목숨이 죽은
후에도 지옥 불바다의 영원한 형벌을 당하게 된다.
 창세 이래 인간 중에서 죄와 죄의 고통과 형벌에서 벗어날 인간
이 그 누구도 없고 단 한 사람도 없다.
 이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인생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 죄의 형벌에서 건져주시려고 하나
뿐인 자기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아들 예수님께서는
그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값을
다 담당하시고,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죄의 고통과 형벌
에서, 영원한 지옥 불바다에서 완전하게 건져 내신 것이다.
 자. 내가 내 죄 값으로 15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15년간의 내 죄 값을 지고
내 대신 감옥살이를 해줘서 나는 감옥살이를 안 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며 은혜를 갚아야할 일인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셔서 영원토록 받아야
할 우리 죄 값의 형벌을 다 받아 주시고 우리를 죄와 죄의 형
벌에서 완전하게 구원하여 주신 것이다.

셋째, 천국에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시는데 하나이시다.
 우리 인생은 육신과 영으로 결합되어 있어 육신의 목숨이 다
하면, 죄 있는 사람의 영혼은 지옥 형벌을 받게 되고, 죄가 없
는 사람의 영혼은 천국에 올라가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의 죄 값을 다 감당하여 우리 죄를  모두다 사해 주셨기 때문에,
이 세상 우리의 육신이 목숨이 다하면 육신은 흙에서 취했기에
흙에 산화되지만, 위리 영혼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으로
올라가서 그 찬란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서, 시들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으로 복락을 누리게 된다.
 이 축복되고 영광스런 일들을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가 되셔서 완전하게 이루어 주신 것이다.
 사람의 예를 들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하나 된 사랑을 받는
자녀들은 행복한 자녀들이다. 그렇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성삼위 하나님의 하나 된 사랑을 받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2012-09-09 PM 6:45:41
 
 2012. 9. 2 자기 소유를 빼앗기지 않으시는 하나님
 
제 목 : 자기 소유를 빼앗기지 않으시는 하나님
성경말씀 : 이사야 31 : 4-9

 누구나 자기 소유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자기 것은 자기가 지키려 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보다 큰 세력이나 흉악한 사람을 만나면
자기 것을 빼앗기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주
이시며 만물을 통치하는 주이시기 때문에 자기 소유를 그 누
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시고 지키시며 보호해 나가신다.

 당시 중동 지역을 주름 잡던 앗수르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략
해왔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강대국인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서 앗수르의 침략을 막아보려 했다.
 이에 하나님께서 섭섭해 하시면서 “너희를 구원한 내가 있는데
왜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너희를 지키려하느냐“ 하시며
“나는 내 소유를 빼앗기지 않고 보호한다.”고 말씀하셨다.
①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것으로 삼으셨다.(이사야 43:1-3)
② 만유보다 크셔서 우리를 빼앗기지 않으신다.(요 10:28-29)
③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지키신다.(시 12:2-8)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러하신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전쟁이나 태풍이나 질병이나 불행한 사건사고 등 그 어떤 것
에서도 우리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현실의 삶의 그 어떤 것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전진하며 정복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잘 살펴보면 전제조건이 있다.
5절에 “예루살렘을 보호하고 호위하고 구원하신다.”고 하셨다.
예루살렘은 당시 이스라엘의 수도이나 단순이 수도라고 해서
보호하신다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는
성전 중심 생활하는 성도를 보호하고 지켜주신다는 뜻이다.
  성전 중심 생활이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께 경배함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전에서는 하나님께 제사함이 중심이다.
인간의 삶에 여러 가지 분주한 일이 있고 마땅치 않은 일이
있어도, 성삼위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생활을 첫째로 하며,
인간 삶의 그 어떤 일보다 최우선으로 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드리는 모든 공식적 예배를 최고로 존중
하여 최우선으로 하고 정성을 다해 경배하며
성삼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이런 성도를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악에서 지켜 주시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 말씀 순종함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또 말씀이 선포되고 있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
이 우리에게 좋거나 좋지 않음에 관계없이 그 말씀을 존중하며,
말씀 순종에 생명과 축복이 있음을 믿고 기쁨으로 순종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성전 중심 생활하는 성도의 삶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환경과 형편에 핑계를 대며 말씀 순종
하기를 더디 한다. 그러나 성전 중심 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열악한 환경과 험산준령이 있어도, 믿음으로 그것을 넘고 극복
하며 말씀을 순종하여 나간다. 이런 성도는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보호하심과 축복으로 전쟁이나 태풍이나 질병이나 그 어떤 재난
중에라도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셋째, 찬송 중심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성전에는 성삼위 하나님을 찬송함이 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의 예배와 찬송은 물론, 자기 삶의 평소 생활에서도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집에서,
길을 가면서, 직장에서, 차를 운행하면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성삼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런 성도는 인생 삶의 그 어떤 험악한 일에서라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고 역사하셔서 삶의 평화를 누리게 된다.

넷째, 기도 중심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이 말씀대로 성전에서는 성삼위 하나님께 기도함이 이어진다.
그러나 성전 중심 생활하는 성도들은, 이 기도 생활이 성전에서
뿐 아니라 집에서 평소 생활 중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듯이, 집에서 직장에서 생활의
터전에서 틈틈이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며 삶을 이루어 간다.

이와 같이 생활하는 성도는 성전 중심 생활을 하는 것이며
이는 곧 예루살렘을 보호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생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성도는 인생살이에 천재지변이나
인재나 질병으로 인한 그 어떤 환란이나 재난이 온다 하여도
자기 소유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총을 힘입어,
인생으로서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전쟁이나 태풍이나 흉악한 사건 사고나 질병을 무서워 할 것
없다. 우리가 예루살렘 성전 중심 생활만 잘 이루어 가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보호하고 지켜 주신다
2012-09-03 PM 3:34:54
 
 2012. 8. 26 삼손과 그 부모의 믿음
 

제 목 : 삼손과 그 부모의 믿음
성경말씀 : 사사기 13:15~25

 “사사”는 이스라엘 통치하는 왕과 같은 직위로서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기 전 BC1,400 ~ 1,000년쯤에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에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통치하던
지도자들을 뜻한다. 그중에 “기드온” “입다” “삼손”등
쟁쟁한 사람들이 있었고 오늘은 삼손에 관한 말씀이다

 때는 이스라엘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고도 회개할 생각도
않고 바로 설 생각도 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짓밟힘을 당하게 하셨다.
식민 지배 하에서 어언 40년,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지도자를 출생케
하시는데 그 이름이 바로 “삼손”이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결혼한 10여년 넘게 아이가 없었다.
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마노아 가정에 아들을 주겠다.
약속하셨고, 이를 확인하고자 마노아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는
과정에서 나타난 마노아 부부의 믿음이 오늘 핵심 말씀이다.

 마노아는
첫째, 손님 접대하기를 좋아하는 믿음이 있었다.(15절)
 하나님의 천사가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났기 때문에 마노아는
하나님의 천사를 나그네요 보통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나그네, 그러나 마노아는 염소새끼로 음식을 만들어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자 자기 집에 머물기를 간청했다.
 믿음이 있다고 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믿
음의 사람들이 대접을 받기도 하고 남을 대접을 하기도 하지만,
자기와 관계가 좋은 사람이나 상대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때는 쾌히 대접을 하지만, 즉 자기가 대접하고서 그
습관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접을 하고서 그로 인한
이익을 얻지 못할 사람에게 잘 대접하라 하셨다. 그에게서는
받을 것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고 하셨다.
  마노아 부부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둘째, 겸손히 인도를 잘 받는 믿음이 있었다.(16절)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호의를 베풀어 음식을 준비해서 잘
대접 해주고자 하는데 그 호의는 무참히 거절당하고, 오히려
“번제를 드리려면 하나님께 드리라”는 충고를 받았다.
마노아 자신으로는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 나쁜 일이지만
처음 보는 나그네의 권고해 주는 말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서
자기 계획, 자기의 하고자 하는 일을 멈추고, 그 나그네의 권고
그 인도와 가르침을 잘 받았다.

셋째,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제사를 드리는 믿음이 있었다.
 염소로 번제를 드리고 고운 가루로 소제를 드렸을 때,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천사가 불꽃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이는 마노아가 드린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 증표이다. 번제는 제물을 통째로 불살라 바치는
제사이고, 소제는 밀이나 보리의 고운 가루로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 값을
지고 통째로 희생을 당하시고, 온 몸과 마음이 가루가 되기까지
희생하심을 뜻한 것이며 그렇게 믿는 믿음으로 제사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 제사 곧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하늘에 상달되는 예배
를 드리는지를 살펴보면 죄송스런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가 시간에 따른 형식적인 예배를 드릴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한 예배로 하늘에 상달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드리러 교회에 올 때부터 정성으로 준비하여 참여하고
찬송과 기도와 말씀과 봉헌 등 예배의 모든 순서 하나하나에
뜻을 모아, 자기 마음과 몸과 영과 예물의 정성을 다하여 예배가
마치기까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믿음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넷째, 믿음의 지혜가 있었다.
 처음 만난 나그네가 제사 중 불꽃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서야 마노아는 그가 하나님의 천사인줄을 알았다.
 “아이쿠! 큰 일 났구나! 연약한 인생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천사
와 대면했으니, 이젠 죽었구나.“ 하는데, 마노아의 아내가 믿음의
지혜로 잘 대답하여 남편 마노아의 근심을 덜고 평안을 주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번제와 소제를 받으셨고 아들을 낳겠다는
 말씀을 주셨으니 우리를 죽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마노아 부부가 근심을  덜고 천사의 말대로 경건한
삶을 사는 가운데 약속하셨던 아들을 얻었으니 곧 삼손이다.
 삼손이 장성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팔레스타인 사람에게서
압박받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에 태평성대를 이뤘다.

 마노아 부부가 천사를 대접한다 할 때, 천사는 대접을 안 받겠다
하면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고 권고했다. 이것이 천사들이나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이 할 일이다. 이단이나 사이비들은
예수님을 빙자하여 명예 영광을 자기들이 가로채서 누린다.
모든 찬송과 영광은 오로지 성삼위 하나님께서만 받으셔야 한다.


 2012-08-28 PM 4:30:43
 
 2012. 8.19 중심을 보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제    목 : 중심을 보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성경말씀 : 사무엘상 16 : 1 ~ 7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사울을 세웠으나 사울이 왕이 된 후에는 점점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하고 자기만 위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위에서 폐하기로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사무엘 선지자는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가 언제까지 슬픔에 있겠느냐?”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의 아들 중에 하나를 왕으로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이 이러하기에 사무엘 선지자가
슬픔을 접고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의 아들들을 제사에 청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 누구인가 살펴보았다.
 이새의 큰아들인 엘리압이 나오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훤칠한
키를 보고 감탄을 하며 아~하~!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왕으로 세우라 하시는구나! 생각을 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고
하시며 중심이 바른 사람을 왕으로 세울 것을 말씀하셨다.
 그렇다 ! 사람은 외모와 외부적인 조건을 보고 평가한다.
얼굴이 예쁘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키는 얼마나 되냐?
직장은 어디며 월급은 얼마나 받느냐? 집은 있느냐?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외모나 외부적인 조건을 따라서
평가하거나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중심을 보고
cud하고 역사를 하신다. 그 결과 이새의 여덟 아들 중 일곱이
다 불합격되고 막내둥이로 들에서 양을 지키던 다윗이 왕으로
예선이 되어 기름부음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어떤 중심을 보셨을까?
첫째,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중심이 있었다.
 다윗은 이때 15세 쯤 되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 중심엔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언제나
살아 계셔서 자기 현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고
믿는 산 신앙이 있었다.

이 때 사울 왕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장수들과 병사들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기본적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들의 현실의 삶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는 믿지
아니했기에 적군의 대장 골리앗 앞에 낙담하고 두려워하고
주눅이 들어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15살쯤의 소년인데도
자기 현실에서 삶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골리앗에게도 두려워하지 않고 마주하여 나갔던 것이다.

둘째, 어떤 역경에도 낙심하지 않고 전진해 가는 중심이 있었다.
 다윗은 소년이고 골리앗은 3m20cm이나 되는 거구요 용장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비교할 수 없이 다윗이 약하고 무능했지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중심이 있었기에 골리앗이나
죽음의 위험이나 그 어떤 역경이나 열악한 환경에서도 담대하게
전진하며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중심이 있었다.
  우리의 삶에도 크고 작은 역경과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때마다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슬퍼하고 주눅이 들면 안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전진해 나가야 한다.

셋째, 전심으로 말씀을 순종하는 중심이 있었다.(왕상 14:8)
 다윗은 소년이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에
온 마음을 쏟아 바쳐 받들고 순종하여 나가는 중심이 있었다.
그 중심은 왕으로 세움을 받고 환경이 변해도 변함이 없을 것이
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을 보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다.
 과연 다윗은 장성하여 장군이 되고 왕이 되어 우리네보다 훨씬
분주하고 많은 일들을 감당했지만 그 중에도 하나님 섬기는 일과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는 언제나 우선으로 하고 제일로
존귀하게 여겨, 온 마음을 쏟아 바쳐서 받들고 순종해 나갔다.

넷째, 맡은 일에 충성하는 중심이 있었다.
 다윗이 들에서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움키려 하면
 양 한 마리를 지키기 위해 사자와 곰과 싸워 양을 지켜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실 때, 양치기에도 저렇게 충성을 하는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맡기면 더 충성하겠구나, 생각하시고
어린소년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예선을 하신 것이다.
 사회나 직장 일이나 신앙의 일에서 맡은 일에 충성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알아 역사하시고 사람들도 인정해 준다.

다섯째, 잘못은 철저하게 회개하는 중심이 있었다.
 다윗도 사람인지라 크고 작게 잘못한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잘못을 질책 받았을 때 화를 내거나 핑계대지 아니하고
그 앞에 거꾸러져 회개하고 바로 섰다. 그 증거로 시편 6:6절에
“내가 탄식하므로 곤핍하며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기술 하였다.
 잘못할 수도 있다. 감추려거나 합리화 시키지 말고 하나님께
고백하여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한다. 다윗의 이런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신 것이다. 우리도 이런 중심으로 살자.
2012-08-21 PM 6:13:30
 
 2012.8.12 선동을 한 자와 선동 받은 자의 결국
 

제    목 : 선동을 한 자와 선동 받은 자의 결국
성경말씀 : 사사기 9 : 1 ~ 6


    믿음의 용사요 훌륭한 사사인 기드온.
그가 안타깝게도 부인을 여럿 두어 아들만 70여명이며,
딸까지 하면 백여 명쯤의 자녀를 두었다.

 그 중 기도온의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자기 외갓집이
있는 세겜으로 가서 외조부와 외가의 형제들을 선동한다.
“이스라엘을 기드온의 아들 70명이 다스리는 것과
 자기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좋겠는가?
 또한 아비멜렉 자신은 세겜 사람들의 골육지친이니
 아비멜렉 자기 한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좋지 않은가?!“
이에 선동을 받은 세겜 사람들이 자기들이 숭배하는 우상의
신전에 모아두었던 은 70개를 아비멜렉에게 자금으로 내주고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에 힘을 얻은 아비멜렉은 그 돈을
가지고 불량한 무리들을 모아서, 기드온의 아들이며 자기 형제
들인 70명을 한 곳에 모으고 다 죽여 버렸고, 자기 자신은
외갓집 세력과 세겜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서 왕 곧 이스라엘
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위의 일은 지금부터 3,300년 전의 사건이다.
그러나 오늘날도 정권에 욕심을 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와
비슷한 선동을 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또 그런 일에 많은 사람
들이 선동을 받아 집단적으로 악을 행하고 있다.

 아비멜렉이 어떻게 선동을 했는가?
첫째, 혈연(血緣)에 기대어 선동했다.
 자기 외갓집에 가서 자신은 외가와 세겜 사람들의 골육지친
임을 내세워 선동을 했다. 이에 외가와 세겜 사람들은 그 선
동의 진위나 의나 불의를 판단하기에 앞서 혈연의 관계라는
것에 연연하여 악한 일에 선동을 받고 협력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선거 때만 되면, 일가다, 친척이다,
종씨다, 하면서 그런 혈연에 기대어 선동을 하고 선동을 받는다.

둘째, 지연(地緣)에 기대어 선동했다.
 아비멜렉 자기 어머니가 세겜 지방 출신이기 때문에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 자신을 밀어줘야 한다고 선동을 했다.
 오늘날도, 고향이 같다. 동향이다. 같은 지방 출신이다. 하며
지연에 기대어 선동을 하고, 또 그 지방 사람들이 그런 말들에
선동을 받아서 여러 가지로 불의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 영호남의 지역 갈등이 왜 일어났는가?
각 지역민들 상호간에 어떤 원인이 있어서라기보다 정권에 눈이
먼 사람들이 자기 야욕을 위해서 갈등을 부추기며 선동을 하였고
지역민들은 이에 선동을 받아서 불화가 일어난 것이다.

셋째, 학연(學緣)에 기대어 선동을 한다.
 오늘날 동문이다. 같은 학교 출신이다. 선후배다. 하면서
학연에 기대어 선동을 하고 선동을 받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 그 진행하는 일이 합당치 못하고 불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감싸주고 밀어주며 상호간에 도모하며
정당하지 못한 이익을 취해 나가는 것이다.

넷째, 거짓말을 지어 선동을 한다.
 기드온의 아들들은 아버지 기드온의 명을 따라 권세를 멀리하고
보통 사람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비멜렉이 거짓말로
선동을 한다. 마치 기드온의 아들 70명이 다 권세를 잡고 이스
라엘을 다스려서 어지럽게 할 것처럼... 이에 선동을 받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과 합작하여 죄 없는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죽이고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다.

  이렇게 선동을 하고 선동을 받아 합작한 결과 아비멜렉은 왕
이 되었고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공로로, 3년
쯤은 혜택을 누리며 생활했지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멸하시려 악한 신을 보내셔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서로 불신케 하고 배반케 하여 아비멜렉이 자기를 도와준 세겜
사람들을 다 죽이게 되었고, 아비멜렉은 여인이 던진 맷돌 짝에
맞아 머리가 깨져 죽게 되었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서로 협력하여 정권을 잡고 혜택을 누렸
지만, 좋은 세월은 3년쯤으로 끝이 나고, 서로가 죽이고 죽인
끝에 비참하게 멸망을 당하게 된 것이다.

 요즘도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비멜렉의 길을 가고자
한다. 우리가 여기에 속아 넘어가거나 선동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혜를 얻어 바르게 분별하고 결정해야 한다.
 정책이 바로 되었는가? 정의로운가? 공공성이 있는가?
리더쉽이 있는가? 참모진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도덕성은
깨끗한가? 물론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 좀 더
나은 사람은 눈여겨보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아비멜렉처럼 정권을 잡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혜택을
본 사람들이 여전히 감언이설로 선동을 하고 자신들을 미화한다.
그들에 선동을 받아 합작을 한다면 같이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바로 분별하여 선택한다면 함께 번영할 것이다.
2012-08-14 PM 5:22:16
 
 2012. 8. 5 면류관을 얻도록 너희도 달음질 하라.
 

제 목 : 면류관을 얻도록 너희도 달음질 하라
성경말씀 : 고린도전도 9:24 ~ 27

  요즈음 런던 올림픽으로 온 세계가 떠들썩하다.
그러나 올림픽 시조는 오늘 본문말씀을 배경으로 한 헬라,
즉 그리스다. 최초에는 192m 쯤의 직선거리를 한 번에 달리는
경기만 하다가 얼마 후에는 왕복 달리기로 경기가 열렸고
또 얼마 후에는 복싱이 추가 되었다가 시간이 가면서 레슬링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등 여러 종목이 추가 되었다.

  오늘 말씀은 당시의 달리기와 복싱에서의 우승자를 견주며
우리도 그와 같이 상을 얻도록 달리기를 잘하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경기장에 선수로 뛰지 아니해도 우리 역시 인생 삶의
경주를 하고 있으며 이미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선 탈락을 하거나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미 인생에 삶의 경기장에 들어선 이상
우리도 상을 받도록 뛰어야 한다. 딴 사람을 비교해 보라. 똑같이 올림픽
에 출전하지만 그 결과와 대우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다.

 상을 받고 면류관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목표 목적 방향을 바로 설정해야 한다.(26절)
 달리기에서 아무리 빨리 잘 달려도 결승점으로 달리지 않으면
상이 없고 헛수고다. 야구선수는 홈런이 목표이고 축구선수는
골인이 목표다. 골대와 골인은 불과 10cm 차이지만 아무리
골대를 많이 맞혀도 그건 상이 없고 오히려 부끄럽게 되며
오직 골인을 시켜야만 점수가 있고 상이 있다.
  이렇듯, 우리 인생과 신앙의 삶에 경주에서도 목표점 방향을
바로 정해야 하는데, 그것은 천국에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고
면류관을 받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든 인생들의
삶의 종착역은 천국이 아니면 지옥인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천국의 하나님 앞이기 때문에, 막상 한 평생 삶을 살고
상이 없다면 그 얼만 안타까운 일인가?
  천국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 외에 다른 것을 목표로 한
삶의 경주는 모두가 헛된 것이며 오히려 부끄러운 것이 된다.

 둘째, 절제를 해야 한다.(25절)
 이때 최고의 승자에게 주는 면류관은, 담장이 넝쿨을 동그랗게
해서 올리브 잎과 미나리과의 파슬리 식물의 잎을 엮어
만든 것으로 며칠만 지나도 말라 버리는 그런 것이다.
며칠이면 말라비틀어지고 하늘나라에서는 인정받지 못할 썩어질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도 많은 것을 절제하며 몰두하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찬란한 면류관이며 영원히 영광스럽게
빛나는 것인데, 이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더더욱
절제를 해야 마땅하다.
  잘못된 습관을 끊어버리고, 말과 행동과 마음 씀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말고 절제해야 하며, 돈도 자기가 번 돈이라고
해서 사치나 방탕한데 쓰지 말고 꼭 써야 할 데 쓰고 절제해야
한다. 시간도 허비하지 않도록 절제하고, 음식도 절제하여
몸 관리를 해야 하며, 천국의 상급을 위하여 경주를 하는데 유익
하도록 자신의 생활을 잘 살펴서 절제하며 가다듬어야 한다.

 셋째, 법대로 해야 한다. (딤후2:5)
 “경기하는 자로 법대로 하지 않으면 면류관을 얻지 못한다.”
수영에 박태환선수가 출발신호 전에 발가락을 움직였다고 해서
실격을 당해 문제가 일어났고, 경기에 여러 가지 규칙이 있는데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잘 했어도 상이 없고, 혹시
금메달을 받았다 하여도 다시 박탈당한다.
  우리 인생과 신앙의 경주에서의 법도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대로 인생과 신앙의 삶을 살지 않으면
제아무리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을 벌어서, 최고의 삶을 살았다
하여도 그는 지옥 불바다 형벌을 받아야 하고, 믿음의 사람이라
해도 천국의 하나님께는 받을 상이 없다.

넷째, 자기를 쳐서 말씀에 복종시켜야 한다. (27절)
 인간에게는 부패한 성질이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기질이 있다. 이 부패한 기질을 쳐서 하나님 말씀에 굴복시켜
우리 자신이 말씀대로 만들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 자신도 자기 몸을 쳐서 말씀에 복종시키지 않으면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했어도 자신은 버림을 당한다 했다.
 여기서 “버림 당 한다”는 뜻은 천국에 못 간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상 받을 자리에서 자격 미달로 통과하지 못하고
거절당했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고 직분도 있고 활동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말씀에 복종시키는 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말씀대로 만들어 진 것이 없어서, 겉으로만 잘 믿는 것처럼
한 위선(僞善)이 들어나서 상 받을 자리에서 거절당한다는 것이다.
  그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앞에까지 섰으면
서도, 막상 상 받을 자리에서는 거절당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 얼마나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인가? 이제 우리 자신을
말씀에 복종시켜서 자격을 만들고 면류관을 받아야 한다.


 
2012-08-05 PM 6:41:55
 
 2012.7.29 기드온의 승전비결
 

제    목 : 기드온의 승전 비결
성경말씀 : 사사기 7 : 15 ~ 23

  “사사”(士蒒)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믿음의 족장시대를 이어, 왕과 비슷한 권세와 종교적 영향력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며 다스리던 직위였는데
“기드온”은 이 사사 중에 한 사람이었다.

  기드온 시대에 적국 미디안이 여러 부족과 연합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침략해 왔다. 적군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해변의 모래처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기드온이 이스라엘 군사를 모집하니 총수가 3만 2천명이다.
수십 수만의 적군에 비하면 이스라엘 군은 턱없이 부족한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사의 수가 너무 많으니
전쟁 앞에 두려워서 떠는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신다.
두려움에 떠는 자, 2만2천명을 돌려보내고 1만 명만 남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많다고 하셔서 9천7백 명을 돌려보내고
3백 명만 남았다. 그런데 이 3백 명이 수십 수만의 적군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것이다.

 기드온의 대승의 비결은 무엇일까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었고, 기드온과 함께한 자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또한 기드온이 사람 편에서 준비하고 바로 하였으니,
첫째, 나팔을 준비하여 불었다.
 삼백 명이 오른 손에 나팔을 들고 한 순간에 다 같이 불었다.
둘째, 빈항아리를 준비 했다.
 삼백 명이 빈항아리를 왼 손에 들고 다 같이 깨뜨려 부쉈다.
셋째, 횃불을 밝혔다.
 빈 항아리 속에 횃불을 숨겨서 왼 손에 들고 있다가
일시에 항아리를 깨뜨려 부수고 횃불을 높이 들어 밝히며
“하나님의 칼이여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함성을 지르고
또 삼백 명이 다 같이 나팔을 부니 그 광경이 장관이었다.
 잠을 자다 깬 적군들은 갑자기 일어난 예상치 못한 광경에
당황하여 우왕좌왕 하였고, 그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혼란케
하시니, 미디안 적군들은 자기들끼리 칼을 들어 죽고 죽이는
싸움이 일어났다. 또한 적군들 서로 간에 불신이 깊어져 도망
하다 짓밟혀 죽고, 살아서 도망간 자들을 얼마 안 되었다.
 그러나 기드온과 삼백 명 용사들은 한 사람도 상함이 없고
죽음도 없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 일은 지금부터 3천 3백 년 전에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미 끝난 것이 아니다. 그때 기드온에게 역사하시는데,
우리도 우리 삶의 생활전선에서 싸워 이겨야 행복을 누리는데
기드온의 승전 비결이 곧 우리의 승전 비결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생활전선에서 승리하려면
첫째, 나팔을 준비하여 불어야 한다.
 기드온 당시는 실제로 나팔을 준비하여 불었는데
오늘날은 실제 나팔이 아닌 “복음 나팔을 불어라”는 뜻이다.
복음이란, 예수님께서 우리 죄 값을 지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 죄 값을 완전히 담당하셨으므로, 우리의 모든 죄는
깨끗이 용서받고 해결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죽으신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셔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 천국 생명을 주신 것이다.
입으로 나팔을 불듯이, 이 구원의 복음을 일을 열어 전파하고
전도하는 것이며, 멸망 받을 자들은 미련하게 여겨 복음을
배척하지만, 구원 받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임해 사죄와
천국 생명을 얻어서 인생의 삶에서 승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빈항아리를 깨뜨려 부숴야 한다.
 빈 항아리는 곧 질그릇이며 질그릇은 곧 우리 연약한 육체와
육체의 부패한 성질을 뜻한다.(창 2:7, 고후 4:6~7)

셋째, 횃불을 밝혀야 한다.
 횃불은, 하나님의 말씀과 착한 행실을 뜻한다.(램5:14, 마5:16)
즉 우리 육체의 연약함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그로 인한 착한
행위를 실천할 능력들이 있는데, 이 좋은 것들이, 빈항아리 즉
육체의 부패한 성질, 욕심, 자존심, 이기심, 잘못된 습관, 고집,
잘못된 사상, 풍습 등에 가로막혀 좋은 행위로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자존심, 이기심, 욕심, 고집, 잘못
된 사상과 풍습 등을 깨뜨려 부수고 벗어나야 하며, 그 때에
우리 속에 있던 하나님의 말씀과 착한 행위들을 밖으로 나타나고
행함으로 보여 지며, 이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역사
하시고, 사람들도 감동을 받아 믿음에 굴복하고 믿음으로 돌아오게
되어, 우리 삶에 생활전선에서 승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삶에 생활전선에서 승리를 해야 얻는 것이 있고,
승리를 해야 누리는 것이 있고, 승리를 해야 믿음과 영이 자라
나서 하늘에 신령한 축복 찬란한 상급을 받게 된다.
 빈항아리를 깨뜨려 부수고 횃불을 높이 밝혀야 한다.

2012-07-30 AM 10:08:34
  2012.7.22 때에 맞는 말은 아름답다
 

제    목 : 때에 맞는 말은 아름답다
성경말씀 : 잠언 15 : 15 ~ 21

 때에 맞는 말은 아름답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다 (잠25:11)등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다.
 과연 인생의 삶에서 때에 맞는 합당한 말을 하는 것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사는 지름길을 가는 것이다.

 때에 맞는 아름다운 말은 어느 것인가 ?
첫째, 하나님의 말씀 성경말씀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어떤 때이
든지 그 때에 필요한 말씀들이 다 기록이 되어 있다.
 국가나 민족의 흥망성쇠와 어느 개인의 생사회복이나 희로
애락의 때, 진퇴양난의 길이 꽉 막힌 때나 승승장구의 때에도
그에 필요한 적용할 수 있는 말씀과,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잘
되게 할 말씀들이 다 기록이 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때그때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적용시키고
그 말씀을 전파하며 그 말씀으로 가다듬고 살펴나가는 것이다.
낙심한 자에게 소망의 말씀을, 상함이 있는 자에게 위로의 말
씀을, 범죄 한 자에게 회개의 말씀을, 교만한 자에게 겸손의
말씀을, 그때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적용시켜 나가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축복 받을 말을 하는 것이다.

둘째, 원망불평 하지 않고 감사의 말을 하는 것이다.
 인생의 한 평생 삶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일들을 당한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으나 사람의 심리는 좋은 일에는
감사하기를 더디 하고, 나쁜 일에는 원망불평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인생 삶의 어떤 역경이라도 원망불평 하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니다. 인생 삶의 그 어느 때든지 그때에 합당한 말은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과 감사한 말을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길이 막히고 난관을 만나고 궁핍을 만나서 원망 불평을 했다.
인간적으로 보면 물론 원망할만한 환경과 처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원망과 불명한 죄로 인해서 출애굽 한 20세 이상의
사람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다 죽음을 당했다. (고전 10:10-11)
 그 어느 때든지 감사한 조건을 찾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감사한 말을 하는 것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필요하며
합당한 말이며 아름답고 유익한 일이다.
 한 예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한 달 용돈을 주는데
다른 때보다 갑절을 주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감사하고 고마움
을 표하는 말을 한다. 감사한 일에 감사한 말을 한 것이다.
 한 번은 자녀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부모가 자녀를 호되게 책망
하고 꾸짖었다. 그런데 자녀가 기뿐 나빠하기는커녕 이번에도
부모에게 “잘못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하고
사례의 말을 한다. 이런 자녀가 있다면 얼마나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운가?!! 감사한 말은 어느 때든지 아름다운 말이다.

셋째, 선한 말을 하는 것이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 내지를 말고 오직 덕을 세우
 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은혜를 끼쳐라“(엡4:29)
   선한 말은 인생의 삶에서 그 어느 때든지 필요한 말이고
어느 때든지 그때에 알맞은 합당한 말이며 듣는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은혜로운 말이다. 악한 말이나 저주의 말이나 욕설을
하거나 미워하는 말은, 그 어느 때든지 허락된 것이 아니며,
금지해야 할 말들이고, 자신과 이웃을 해치는 해로운 말들이다.
상대가 나에게 악한 말을 하고 저주와 욕설을 한다고 해도
나는 선한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이 아름답고 복 받을 일이다.

넷째,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완전히 부정적인 잘못 된 일도
없고, 완전히 잘될 수 있는 긍정적인 일도 없다.
그 어떤 일이든지 다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일이나 상황에 부딪치면,
“못 한다” “실패할 것이다” “안 될 것이다” “나쁘다”라고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두려워하고 낙심하며 포기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일과 상황이 부정적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 “해 보자” “잘 될 것이다” “좋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긍정적으로 좋게 생각을 하
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분투노력을 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면을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나쁜 면을 보고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나 나쁜 면을 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나가면 그 일들이
나쁘게 되고 실패하게 되며, 좋은 면을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진행시켜 나가면 그 일이 좋게 되고 성공을 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
이다. 이것은 통계나 많은 사람들의 체험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하나님께서도,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고 긍정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을 도와주신다. 부정적으로 보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자는
그 누구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고 스스로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말을 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
이고, 성공할 사람이며, 축복을 받을 사람이다.
2012-07-24 PM 9:58:39
 
 2012.7.15 하나님께 숨기려는 자는 화가 있다.
 

제    목 ; 하나님께 숨기려는 자는 화가 있다.
성경말씀 : 이사야 29 : 15 ~ 16

  사람들은 무엇인가 숨기기를 좋아한다.
또한 사람들끼리는 숨겨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숨기려는 자들은
화를 받을 것이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왜 하나님께 숨기려고 하는가?
첫째,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자기의 일을 숨기려 한다.
왜 그런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상대를 온전하게 신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알리지 않고 상대에게 숨기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시며,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장
하시는 만능의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을 바로 믿고 인정한다
면, 어찌 감히 그 하나님께 인간의 하는 일들을 숨기려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숨길 수도 없는 것을 숨기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
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화를 내리시는 것이다.

둘째, 욕심으로 하는 것이라 숨기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숨기고자 하는 것 중 하나가 욕심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분명코 욕심으로 하는 일인데도, 정작 본인
자신은 욕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자신은 욕심이 없
는 사람이라고 자신 스스로를 비호한다. 그러나 진정 욕심이
없는 사람이 누구인가? 다만 숨기려할 뿐이다.

셋째, 의롭지 못한 것이라 숨기려 한다.
 언행심사를 의롭게 가지는 사람은 그 어디에서나 당당하고
스스로를 밝히려 한다, 그러나 자기의 일을 자꾸 숨기려 하는
사람은 자기의 언행심사나 어떤 계획이 의롭지 못하고 부정한
데가 있기 때문에 알리지 않으려 하고 비밀스럽게 진행시키려
고 한다. 그러나 의로운 일이든 불의한 일이든 하나님 앞에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러함에도 자꾸자꾸 숨기려 하며 불의한 일을 이루어 보려고
계속하여 진행시키는 것은 화를 부르는 안타까운 일이다.
넷째, 죄 된 것이라 숨기려 한다.
 죄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모든 일이 다 포함되어
있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내놓지 못할 부끄러운 일들이기에
어찌하든지 숨기면서 죄 된 계획을 세우고 이루어 보려고 하는데
그런 죄 된 일들은 잘 이루었다 하여도 그것이 복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로인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크기 때문에, 그것을
숨기면서 이루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이루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것이며 포기하고 내버리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다섯째, 자기 영광과 유익을 구하는 것이라 숨기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상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의 주인이시기에
모든 만물들은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성삼위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옛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 영광을 구하다 범죄 한 것처럼, 오늘날도 수많은 인생들이
자기 영광과 명예를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자기 이익을 찾아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뛴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밝히 들어낼 수가 없기에 그것을 숨기고
자신이 마치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처럼
미화시키고 포장하여 자랑을 한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까지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속이려 하는
것은 죄에 죄를 더하고 망할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인생은 감히 하나님을 속이려 하지 말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다 내어놓고, 그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비추어서 자신의 삶의 계획과 진행을 바르게 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 숨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첫째,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왜 기도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 앞에 숨기려는 뜻이 있기 때문이며, 좋은 일에도 기도하
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기 교만이라, 그래서 하나님께 노하시는 것이다.
둘째, 말씀에 비추어 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계획과 하는 일이 하나님 뜻에 합당한가? 아니한가?
하나님 말씀인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고 견주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지 않고 계획하고 진행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계획과 진행이 하나님 말씀에 견주어 볼 때, 합당치
않고 어긋나기 때문에 감추고자 해서 그런 것이다.
셋째, 사명과 은사를 안 받은 것처럼 숨기는 것이다.
 한 달란트 받아가지고 시시하게 여겨 안 받은 것처럼 숨겨 논
사람은 화를 받았다. 우리도 다 하나님께로 받은 은사와 재능과
어떤 실력들이 있는데, 마치 안 받은 것처럼 주님 일에서 멀어
진다. 크건 작건 받은 대로 충성해야 한다. 이것이 복이다.

 
2012-07-16 PM 11:03:10
 
 2012.7.18 세상을 의지하지 말라.
 

제 목 : 세상을 의지하지 말라
성경말씀 : 이사야 30:1~5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 것을 의지해서
우리를 잘되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하늘나라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고, 도리
어 세상 세력(이집트)을 의지하며 그 도움으로 살려고 했다.
(이집트나 바벨론은 믿음의 세계와 반대인 세상세계를 뜻한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고의로 반감을 가지고
거역하고 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패역한 자식들이라 질책하며
화가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역한 것은,
한마디로 세상 것을 의지하여 잘 살아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2절에 네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첫째, 세상 지혜를 의지하여 잘 살려고 했다.(2절 초)
 우리가 지혜로워야 하며 지혜로워야 잘 살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지혜를 어디로부터 얻어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혜를 베푸나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지 아니했다고 책망하셨기 때문이다.
 지혜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이루고 그 목적을 성취하는데
그 계획과 시작부터 진행 과정의 방법이며 완성해서에 필요한
제일 좋은 생각이 다 지혜이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 지혜롭지 못해서 실패하고 어려움을
당한 일이 많이 있기에 그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지혜이다.
그렇기에 지혜의 근본이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하나님께 기도해서 지혜를 얻어 사용해 나가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사상이나 철학 인간의 꾀를 의지하고
악한 영의 술수에 의존해 나가기 때문에 책망을 하신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

둘째, 인간적인 맹세를 믿고 잘 살아보려고 했다.(2절 중)
 이때 이스라엘은 약소국가로 자기들의 존립을 위하여 주변에
있는 강대국과 동맹을 맺고 그 힘을 의지하여 살려고 했다.
약소민족으로 그럴 수도 있으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강대국보다도 강대하시며 전능하시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을 믿고 하나님과의 관계와 약속을 존중해 나갔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변의 강대국과 원수로부터 보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평화롭게 살게 하실 것인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 것들과 동맹을 맺고 그 것을 귀중하게
여기며, 그것들을 자기를 보호해 줄줄 알고 하나님은 멀리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태는 사람들에
게도 도움을 못 받고 하나님께도 버림을 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으니
 수에 칠 가치가 없느니라.”(사2:22)

 셋째,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했다. (2절중)
 바로는 세상 이집트의 왕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 왕과 그 권세와 세력을 의지하여 강하게 살아보려고 했다.
세상 왕들의 권세도 대단하다. 심지어는 “공중 나는 새들도
 떨어뜨린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그 내노라 하
던 세력들이 다 어디로 갔는가? 제 아무리 대단한 왕과 그 권
세라 할지라도 몇 년, 혹은 몇 십 년으로 끝이 나고 만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왕권과 그 나라와 권세는 영원무궁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신임하고 의뢰하고 도움을 청하여 나가면
우리 하나님께서 자신을 믿고 의뢰하는 모든 사람들을 강하게
붙들어 주시고 만능으로 역사하여 주신다.
  그 누구나, 가장 강하신 분 안에 있을 때 그는 강하게 된다.

 넷째, 이집트 그늘에 피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다. (2절하)
 이 세상은 천재지변을 비롯하여 불행한 사건 사고와 인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 때에 그런 것들을 피하려고 세상
곧 이집트로 내려가서 이 세상 것들을 의지하여 보호 받고
살려고 하면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왜냐, 천재든지 인재든지 불행한 사건 사고나 질병이든지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도 하시고 잠재우기도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을 떠나서 세성 것들을 의지하여 천재
나 인재를 모면해 보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래서 다윗은 천재나 인재나 삶의 고통과 죽음의 위험이 있
을 때에, 오로지 하나님만을 방패로 삼고, 요새로 삼고, 자기를
보호해줄 산성으로 삼고, 인간이 당하고 모든 역경과 고난들을
극복하고 이겨내어 승리의 삶을 살았다.
 인간이 제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천재나 인재 앞에서 그 얼마나
무력하고 연약한 존재들인가?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안할 때나 큰 소리를 치는 존재들이다.
 현재도 우리들의 삶에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그에서 보호받고 이겨내어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은 오로지
성삼위 하나님만 믿고 의뢰하는 것이다.

2012-07-10 PM 4:07:27
 
 2012.7.1 사사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
 

제 목 : 사사(士師)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
성경말씀: 사사기 1:16~23

 “사사”(士師)는 “지도자” “구원자”라는 뜻으로
주전(B.C)1,400년쯤에서 1,050년까지 약 350년간 이스라엘을
지도하던 사람들을 뜻한다. 그 훌륭한 지도자 모세와 여호수
아 시대 후로 뚜렷한 지도자가 없던 시대에, 정치 행정 군사와
신앙까지 아울러서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며 왕에 버금가는
권세로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지도자들이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세우신 뜻,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셨느데,
첫째, 이스라엘 백성을 노략하는 자들에게서 건지려 하심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안착을 했지만
주위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여러 부족들이 국가를 형성하여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많은 것들을 빼앗아 갔다.
이렇게 주변족속들이 이스라엘을 노략질 하는 것에서 건지시고
해롭게 하려는 것에서 보호하시려고 사사를 세우셨고 오늘날
하나님의 종 목사들을 세우셨다.
1) 불의한 세력, 마귀, 이단, 사이비한 것들의 노략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시고 보호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악하고 불의한 세력들이 있고, 사단 마귀
귀신 악령들과 함께한 이단들과 사이비한 세력들이 있다. 이것
들은 틈만 나면 믿음의 사람들을 괴롭깋고 해롭게 한다.
사사난 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잘 가르쳐서
믿음의 사람들이 불의한 세력이나 마귀 이단 사이비한 것들을
분별토록 하여, 그들의 접근이나 노략질이나 해롭게 하는 것에
서 건지고 보호하고 물리치도록 하기 위함이다. (마7:15)
2)타락된 문화나 잘못된 풍습에서 건져내려고 세우셨다.
 세상에는 타락된 문화가 너무 많이 있다. 인터넷, 스마트 폰,
TV 등에서도 타락된 문화를 얼마든지 접할 수가 있고, 현실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면 타락된 문화나 잘못된 풍습 등이 사람을
미혹하고 유혹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길로 이끌어 간다.
  믿음의 사람들이 이런 것들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사나 목사를 세원 것이다.
3)죄악에서 건짐 받고 보호 받으라고 사사를 세우셨다.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과 그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나 순종
함에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사나 목사들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잘 가르쳐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과 말씀에 거역하지 않고 순종하여 복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4) 불행한 사건 사고와 질병에서 건지시고 보호하기 위해서다.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시대이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불행한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우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사사나 목사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은, 이런 불행한 사건과
사고와 질병들이 믿음의 백성들을 노략질하는데서 예방해주고
건져주고 보호해 주도록 하려고 세우셨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사사나 목사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잘 받들어 순종하여
생활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는 천사를 보내 지켜주셔서
믿고 순종하는 백성들이 안정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사사를 세우셨다.
 사사들이 왕이 아니라하여도 그와 비슷한 명예와 권위가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백성들 위에 세력을 쓰고 군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사나 목사를 세우신 목적은,
사사나 목사들 자신을 위하여 그 명예와 지위에 세우신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와 그 백성들을 위해서
세우신 것이다.
 오늘날 자칫하면 교회나 교인들이 목사를 위해서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 쉬운데, 이것은 사사나 목사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하나님께 진노를 받을 일이다.
 따라서 사사나 목사 자신들도, 행여나 자신들을 위하여
백성이나 교회나 교인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며,
백성이나 교인들 스스로도 사사나 목사가 교인들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세워진 것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때로는 사사나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며 잘못을
질책할 수 있고,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며 삶에 간섭을
하기도 하며, 삶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사나 목사를 거리낌의 대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대립 관계에 서서, 예나 지금이나 믿음의 세계에 끊임없이 시험
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어리석은 일이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복 받을 일이 아니다.
 마음을 열고 사사나 목사나 친근히 하며, 이들이 전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찾아오는 삶에 어려움, 진퇴양난의 질곡에서 목사와 의논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도우심을 받아 어려움을 해결하고, 그 질곡
에서 벗어나서 영 육간에 행복한 삶으로 전진해 나가야 한다.
 사사나 목사는, 교인들 자신의 영 육간에 행복한 삶을 위하여
세워졌으며 그렇기에 존재함 알고, 자신들의 삶에서 목사를
유익하게 이용하고 선용하며 살아 나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행복한 신앙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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