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설교요약] 2012년 1월-6월 말씀요약 | 조회수 : 1896 |
성경본문 : | 설교일 : 2012-01-01 |
설교자 : 김성진목사 | |
첨부파일: 2012년 설교요약-1.hwp(105K) |
~2012-07-01 PM 11:04:48
2012. 6. 24 성경을 기록케 하신 목적
제 목 : 성경을 기록케 하신 목적
성경말씀 : 요한복음 20:27-3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과 말씀을 글로 기록케 하여
신구약 성경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신구약 66권의 말씀이
어찌 보면 많은 것도 같지만 사실은 많은 말씀이 아니다.
어느 개인의 전집이나 국가의 역사 기록도 많은 분량을 차지
하는데, 성경 역사는 창세로부터 약 4,000년간의 유구한 역사
이며, 흥망성쇠를 거듭한 인류의 역사와 수많은 선지자들의
기록이기에 사실은 양적인 면에서 적은 분량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행적이나 베푸신 신적 역사와 능력만을
기록해도 그대로 다 기록한다면 이 세상에 둘 곳이 없다고 할
만큼 많이 있다고 비유적 표현으로 말씀하셨다. (요 21:25)
그러면 무엇 때문에 구약 39권, 신약 29권만을 기록케
하셨을까? 그 답을 본문 31절에서 두 가지로 말씀하셨다.
첫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간 예수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4대 성현 중에 한 사람이나 선지자 죽에 한 사람, 또는 인권
운동을 하는 해방가나 사상가나 도덕군자쯤으로 알고 있다.
과연 우리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탄생하셨기에 완전한 사람이시다.
그러나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며
함께 하시던 하나님의 아들로서 다만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하여
마리아의 몸을 빌린 것이라, 창조주 하나님의 온전한 아들이시
며, 하나님과 동등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온전한 인간 예수이시면서도,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외아들 그리스도시라. 이를 믿게 하시려고
성경 신구약 66권 말씀을 기록케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자세하게 풀면,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분”
이라는 뜻이니, 자기 백성을 사랑하사 자기 백성의 죄 값을 대
신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백성의 죄를 다 사해 주시려고, 하늘
보좌를 내놓으시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모든 인생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원죄가 있고
자기가 잉태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저지르는 범죄가 있다.
이 죄 값으로 죽음과 더불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훨~훨~타
오르는 지옥 불바다에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는 인생들이 자기 죄 값으로
지옥 형벌의 고통을 당하는 것을 차마 보실 수가 없어서
차라리 자신께서 그 죄 값을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음의 형벌과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케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이며
①왕 ②선지자 ③제사장 등 이 세직분이 기름 부음을
받았는데 그 때 성령님이 함께 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런데 그리스도란 위의 세 직분을 한 번에 다 받은 것으로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오직 예수님께서만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왕은 오직 예수님뿐으로 우리를 통치하며 보호하며
인도하시는데 예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며,
하늘과 땅의 신령한 비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도, 그 누구도
필요 없이 오직 예수님 한 분 선지자로 완전하다는 뜻이며,
우리 죄를 대속하며 우리 죄를 깨끗하게 용서받게 해줄 분은
오직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여 다른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기 위하여 성경 66권을 기록케 한 것이다.
둘째, 새 생명을 얻게 하심이다.
우리의 생명은 죄 값으로 죽은 생명이요 저주 받은 생명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요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인하여 새 생명,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는데 이 새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성경
신구약66권 말씀을 기록케 하셨다.
우리 인생이 전쟁이나 천재, 또는 질병과 궁핍으로 인하여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또 비참한 여러 일들을 당한다.
그렇게 해서 그 최악의 경우와 최후에는 죽음이 온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인하여 모든 죄를 용서받은 새 생명
이 있고, 죽어도 다시 사는 천국에 부활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 악조건이라 해도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죽음과 더불어 천국 복락을 누리는 더 좋은 생명, 천사들처럼
신령한 생명으로 사는 신비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믿고 천국 생명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가지고 살며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정복하여 승리의 삶을 살라고 성경
말씀을 기록케 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죽어도 다시 사는 천국의 생명,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은
신구약 66권 말씀만으로도 충만하고 만족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계시나 말씀이 전혀 필요치 않다.
새로운 계시나 말씀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는 마귀나 이단의
미혹이기에 이를 배격해야 한다. 이미 주신 66권 말씀을 익혀서
순종하여 더 좋은 생명 빛나고 영광스런 생명을 누려야 한다.
2012-06-25 PM 10:46:21
2012. 6.20 사모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
제목 : 사모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
성경말씀: 시편 107 : 4~9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도 우리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며
우리가 무엇을 구하고 원하는지도 다 알고 계신다. 그렇기에
굳이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해도 때로는 우리 필요한 것을
먼저 아시고 공급해 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신구약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구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
시편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편 119:131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벧전 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그렇다면 어떤 때에 사모하고 간구할 것인가 ?
물론 좋은 때는 좋은 그대로 어려운 때는 어려운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열심을 내어 간구해야 하지만,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는,
첫째, 안정을 하지 못하고 방황할 그때 은혜를 사모하라. 4절
안정된 직장도 없고 삶의 터전이 없이 이리저리 방황을 한다.
이걸 해도 시원치 않고 저것을 해봐도 마땅치 아니해서 안정
을 하지 못하고 마음과 몸이 다 갈등을 하며 헤매게 된다.
이 때 신세 한탄이나 세상에 원망의 화살을 돌릴 것이 아니고
바로 이때가 하나님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의 베푸실 은혜를 사모할 때인 줄 알고 갈급한 마음으
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 주셔서
삶의 터전에서 안착하여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
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때로는 자녀나 가족 또는 가까운
주위 사람들이 안정을 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도 있다.
그때에도 아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그리하면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둘째, 주리고 목마르고 영혼이 피곤할 때 은혜를 사모하라. 5절
일반 생활도 그렇지만 신앙생활에서도 늘 은혜가 풍성한 것이
아니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때도 있지만
캄캄하고 답답하며 감동이 없는 피곤할 때도 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의 확신이 없고, 찬송을 해도 찬양의 즐거움이
없으며, 말씀을 들어도 말씀의 깨달음이 없고 감동이 없고 은혜가
없다. 그러나 그때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할 때인 줄 알고,
주실 은혜를 사모하며 뜨거운 마음을 품고 신령한 은혜를 구
해야 한다. 누구나 신앙생활에의 굴곡이 있다. 은혜 충만하며
상승에 상승을 거듭 할 때도 있고,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으며
신앙의 즐거움이 없이 답답하고 무기력하며 만사가 시들할 때
가 있다. 이때도 주위 탓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
할 것이 아니고, 자신의 신앙생활에 게으름을 살피고, 교만함을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사모하는 것이다.
셋째, 근심과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 6절
이세상은 근심 될 일도 많고 고통스런 일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구약 말씀을 통하여 나타내신 뜻은,
그런 때에도 아무 것이라도 근심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오는 근심 걱정과 고통은, 죄에 대한 징벌과 마귀의
충동에서 오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걱정 근심 불안
초조 고통이 있을 때에는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부르짖을 때인 줄 알고,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주님께 나아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근심 고통 중에서 건져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넷째, 죄 값에 징벌을 받아도 하나님 은혜를 사모하라.10~20절
사람은 본의 아니게 또는 알면서 고의로도 죄를 짓게 된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죄 값에 따르는 징벌이 오는데, 때로는 그
죄에 따라서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도 되고, 모든 식물을 싫어하
여 물 한 모금도 넘기기 어려운 그런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동서남북 사방을 다 둘러보아도 나를 도와 줄 사람이 없고,
무인도에 단 한 사람처럼 외롭고 비참한 고단한 삶일 때도 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자살까지 하는 사람도 있으나,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은혜를 받아야 할 때인 줄을 알고
하나님 은혜를 사모하며 사죄의 은총과 돌보심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의 죄 값에 대한 징벌을 하심은
그 사람을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징벌을 통하여 죄를
깨닫도록 하여 죄를 회개시켜서 깨끗하게 바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록 우리가 범죄로 인한 징벌을 받는 중이라 하여도,
그 징벌이 설혹 죽음의 고통에 이르는 극심한 것이라 하여도, 그
때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회개하며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하게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 할렐루야!!
2012-06-18 PM 12:01:26
2012. 6. 10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
제 목 :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
성경말씀 : 마태복음 25 : 1- 13
유대교의 결혼식은 3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먼저 당사자의 부모를 통한 결혼하자는 서약의 단계가 있고,
두 번째는 당사자의 가족들이 함께한 약혼식이 있으며,
이 기간은 약 1년쯤으로 이때에 결혼할 준비를 하게 된다.
세 번째는 결혼식으로, 1주일의 축제 끝에 신랑 친구들이 횃불
을 들고 신부 집으로 찾아가면 신부도 등불을 들고 기다리다가
신랑을 맞이하는 것으로 마쳐지는데, 예수님께서 이런 당시의
결혼 풍습을 비유로 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성도들의
신앙자세를 말씀하신 것이다.
첫째, 성령의 기름으로 재림의 주님 맞을 준비를 하라. (1~4)
오늘 말씀에서 공통점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공통점은, 10명이 모두 다 처녀인 것이다. 신랑 앞에 흠이 없
는 정결한 처녀로, 곧 예수님의 재림을 마지 할 성도들의 순결
한 신앙의 준비 자세들을 뜻한 것이다.
신랑을 맞이할 열 명의 처녀는 꼭 열 명을 뜻한 것이 아니고,
10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채워진 수, 가득 찬 만수로, 신약과
구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을 뜻한 것이며, 이 열 처녀가 다같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알고 함께 기다린 것이다.
또한 3~4절에는 열 처녀가 다 같이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으며,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잔치 집에 문이 닫혔을 때, 미련한 다섯 처녀도
“주여! 주여!” 호칭하며 “문 열어 달라”고 애원한 것이다.
다른 점은, 열 처녀 중 다섯은 슬기로운 자라 했고, 다섯은
미련한 자라고 했으매, 슬기로운 자는 등에 있는 기름
외에 별도의 기름을 함께 준비했고, 미련한 자는 등과 등에 있
는 기름만 준비한 것이다. 여기서 등과 등에 있는 기름
별도의 기름을 준비한 것은 곧 슬기로운 자이며, 등과 등에 있
는 기름만 준비한 것은 미련한 자였다.
그렇다면 기름은 무엇인가?
“기름”은 등불을 밝히는 재료이며 “등불”은 밤의 어둠을 밝혀
주는 빛이다. 성경에는 밤이나 어둠은, 죄악으로 물든 캄캄하고
답답한 환란의 시대를 뜻한다. 즉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
께서는 낮에 좋은 때가 아니고, 캄캄하고 답답한 와중에, 죄악
과 환란이 가득한 시대에 재림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등불”은, 죄악으로 캄캄하고 답답한 어두움을 환하게
밝혀주는 빛이며 곧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뜻한다. (마5:16)
이제 “기름”은 등불을 밝히는 재료이니,
캄캄하고 답답하여 죄악으로 물들어 가는 시대에
옳고 선한 일을 하여 밝은 빛을 비출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성령님의 은혜”를 뜻하며 “그로 인한 믿음의 실력”을 뜻한다.
성도들의 옳고 선한 경건한 행위, 즉 믿음의 실력은,
성도들 자신 그 개인의 의로움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령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믿음과 말씀 순종으로 사모하여 성령님의 은
혜와 은사를 계속적으로 공급 받아야 하며, 성령님의 그 은혜로
인한 믿음의 실력으로 인하여, 주님 재림하실 때에도, 선하고
옳은 믿음의 빛을 계속 비추어 나가야 한다.
평소 환경과 조건이 좋을 때, 성령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믿음의 실력을 키워서, 캄캄하고 답답한 죄악과 환란이 극심한 때,
곧 주님의 재림 때에도 선하고 옳은 행실을 잘해야 한다.
둘째, 철저한 믿음으로 주님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5~7절에, 신랑이 더디 오므로 열 처녀가 다 졸며 자는데,
한 밤 중에 “신랑이 온다. 맞이하러 나오라”는 소리가 났다.
주님의 재림은 죄악이나 환란의 초기에 오시는 것이 아니고,
죄악이나 환란이 가득 찬 아주 어둡고 캄캄한 시대에 오신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게는 계속하여 불을 환하게 밝힐 기름, 곧
성령님의 은혜와 믿음의 실력이 있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계속하여 불을 밝힐 기름이 없어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그때서야 기름을 얻으려고 기름 빌려 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 누구 아무에게도 기름을 빌릴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믿음생활하기 좋은 때에 열심을 내서
성령님 은혜를 받아 믿음의 실력, 기름을 비축해 놓아야 한다.
현재만 아니라, 한 밤 같은 죄악과 환란이 극심한 주님 재림
의 때에도, 선한 믿음의 행실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재림이 임박하면 기름 준비할 시간이 없다.
셋째, 재림의 주님을 내 주님으로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미련한 처녀는, 기름이 부족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서
기름을 빌릴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미련한 처녀이다.
성령님의 은혜로 만들어진 자기 믿음의 실력은, 누구에게 빌려주
거나 또한 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나 자기에게 임하신 성령님의 은혜는 자기의 것이며,
그 은혜로 만들어진 믿음의 실력 역시 완전하게 자기의 것이다.
부모나 형제 또는 믿음의 실력이 좋은 사람에게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믿음과 성령님의 은혜로
자기 스스로가 믿음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 이것이 지혜이며,
그 때에 재림의 주님을 자기 주님으로 맞이할 수 있다.
2012-06-12 PM 3:48:37
2012. 6. 3 모범이 되는 좋은 교회
제 목 : 모범이 되는 좋은 교회
성경말씀 : 사도행전 13 : 1 ~ 12
성경에 모범이 되는 좋은 교회가 많이 나타나 있다.
그 중 하나로 모범이 되는 좋은 교회가 본문의 안디옥 교회다.
안디옥 교회는
첫째, 말씀이 충만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선지자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새롭게 계시 받거나
이미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시시때때로 적용시켜
풀어 전해주고 사람들을 그 말씀대로 인도하는 사역을 하였고
교사는, 선지자들이 이미 받은 말씀이나 풀어 전하는 말씀을
그 뜻대로 다시 자세하게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사역을 하였다.
그런데 선지자들, 교사들이라고 말씀해서 안디옥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전하며 가르치는 사역자들이 많았고
또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에서 충만하게 선포되고 역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게 선포되고
역사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 인데, 오늘날 교회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말씀이 많이 선포되고 가르침이 있으나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순전하게 선포되지 않고 인간의
지식과 사상에 의해서 훼손되어 선포되고 있다는 것이다.
딤전 3:15절에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 하셨고,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된 사도 바울도
“우리는 수다한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전한다.” 고
증거하고 있다. (고후 2:17) 그러므로 말씀이 충만하되 하나님
의 순전한 말씀 그대로 충만한 교회가 좋은 교회인 것이다.
둘째, 차별 없이 하나가 되어 협력하는 교회였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파송된 사역자며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은 흑인이고, 마나엔은 분봉왕 헤롯의 젖
동생이니 왕가 젖을 같이 먹고 자랄 만큼의 망족인 것이다.
사울은 사도 중에 맨 나중에 부름 받은 사람이니, 다 각각 출신과
환경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인데, 인종의 차별이 없고 민족이나
귀천의 차별이 없으며, 유무식이나 선후의 차별이 없이 하나가
되어 협력해 나가는 교회였다.
오늘날의 교회도 이렇게 차별이 없이 하나가 되어 협력하고
주님을 섬기며 세워 나가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다.
생각이 좀 다르고, 믿음의 정도나 수준이 다르고,
출신 배경이 다르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교회의 일이라
할 때에는 서로의 다름을 접고 하나로 뜻을 모아 받들어 나가고
협력하여 세워 나가는 것이다.
셋째, 기도하는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 “주를 섬기기 위해 금식까지 하며 기도하는
교회였다. 우리는 금식하는데 대개 자기 목적과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도 할 때가 많다. 순수하게 오로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금식하는 기도를 얼마나 해봤는가? 하나님 말씀을 받들
어 이루어 드리기 위해 나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금식하며
기도를 해야 된다.
넷째, 성령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교회였다.
성령님의 거룩한 영은 눈으로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주장을
받는가? 오늘날도 성령님의 주장과 부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로 모든 진리 가운데
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
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성령님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저희가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즉 하나님 아버지 말
씀 성경 말씀이 진리이다. 성경 말씀 가운데로 인도 받는다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와 주장은 받는 다는 것이 된다.
다섯째, 선교하는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는 초대교회 최초로 선교하는 교회 선교사를 파
송하는 교회였다. 바나바와 바울이 최초의 선교사며 안수 받
아 선교사로 파송됐다. 그러나 거짓선지자 들의 비뚤어지고
왜곡된 가르침은 인간의 사상, 지식, 철학과 인본으로 가르치
고 마귀의 영을 받아서 멸망 길로 이끌어가는 속임수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는데 본문에서도 바예수라는 거짓 선지자가 바
울을 반대하고 복음을 대적했지만 바울의 전도로 총독이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수하게 충만하게 역사하는 교회
차별 없이 하나가 되어 협력해나가는 교회
주님 섬기기 위해 금식하는 교회
성령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교회
전도하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면
우리교회도 생명의 교회 더 좋은 교회로 나갈 것이다.
2012-06-05 AM 10:11:40
2012. 5. 27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충성하라.
제 목 :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충성하라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 12 : 27-31
본문 말씀에 배경은 당시 고린도 교회에
은사와 직분으로 인하여 은혜롭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직분과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우월감에 사로잡혀 뽐내며
좋은 직분과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일이 있었고,
직분과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들을 비하시키고 교회의 일원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여
조화와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27절에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직분이 있든 없든 은사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셨으며,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이나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이나 통
역을 하는 자이겠느냐“ 하시면서,
어떤 좋은 직분이나 은사를 받았다 해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한 부분일 뿐 뽐낼 것이 아니요, 연약하고 은사나 직분
이 없다 하여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부분으로 모두 다
존귀하며 서로 협력하며 하나를 이루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위 말씀을 현실에서 적용할 때에
신앙의 일이나 일반 사회적인 일에서 뽐내며 다른 사람을 무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가볍게 여겨서 비하시키며
어떤 사람과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하여 선망하고 동경을 한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 한다면 “사대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말에 “남의 손에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나, 외제 명품이라
면 몇 배의 바가지를 쓰면서라도 사려고 안달을 하고, 직장인
중, 자기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은 20% 쯤 이고 그 20 % 중에
서도 반절쯤이 기회가 되면 다른 직장으로 옮길 마음을 갖고
있다는 통계니, 결국 직장인 10명 중 자기 직장을 만족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1명쯤으로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면,
첫째, 우리를 적당하게 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한다.
천하만사 모든 것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참새 두 마리 떨어
지고 안 떨어지고도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되는데, 하물며
창세전에 택하시고 예수님의 보혈로 사신 우리를 아무렇게나
존재케 하시겠는가? 잠언16: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 나온다. “ 하셨고,
4절에는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으니
악인도 악한 말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 고 하셨다.
즉, 사람이 계획한다 해도 그 결정은 하나님께서 하셨으며,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임
믿음의 사람들에게 어찌 적당치 않게 환경과 조건을 만드시겠는
가?! 우리가 욕심으로 생각하고 잘 몰라서 그렇지, 사실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과 조건과 우리 몸과 재능과 우리와 연관
된 가족관계나 인간관계까지도 다 적당하게 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이 눈병이 있어서 사도로서 아주 불편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주님께 세 번 간절히 기도했는데 주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고 하셨으니, 이는 곧 “바울아 ! 네가
눈병이 있어 불편하고 부끄럽다 해도 나는 너에게 적당한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이다. “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적당한 신체 구조와 재능과 환경과
인간관계를 갖게 하신 주권을 믿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일이나
다른 환경을 선호하지 말고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둘째,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의 우리에게 가장 적당한 신앙 환경과 삶의 조건으로
존재케 하심을 믿을진대, 이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과
인간관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나 불평하지를 말고,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 감사드림은 물론이요,
인간관계에서도 남편이 아내를 보고, 아내가 남편을 보고, 아하 !
나에게 가장 적당한 남편과 아내로 주셨구나! 서로에게 감사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도 가장 적당한 자녀와 부모를
주셨구나! 감사하며, 자기의 신체 조건이나 재능이나 사업이나
직장이나 신앙 환경도 자기에게 가장 적당하게 해주신 줄 믿고,
다른 것을 동경하지 말고 자부심을 갖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셋째, 충성해야 한다.
나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적당하게 해 주셨음을 믿고,
감사할진대,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환경과 조건과 신앙과 주어진
일에 충성해야 한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 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적당하게 맡겨 주신 일이고 환경이라
우리의 당한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 우리도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하겠다.
넷째, 사랑을 더하라.
본문 31절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하시며 이어진 말씀이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적당하게 해주신 주권을 믿고, 감사하며,
충성하고, 그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한다. 사랑하면 행복해 진다
2012-05-29 PM 5:59:35
2012. 5. 20 갈렙의 신앙과 그 축복
제 목 : 갈렙의 신앙과 그 축복
성경말씀 : 여호수아 14 : 6 - 15
“갈렙”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 할 때에
이스라엘 12의 각 지파에서 뽑힌 12명의 정탐꾼 중 유다지파
에서 뽑힌 정탐꾼이었다.
12명의 정탐꾼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모세에게 보고를 하는데, 10명의 정탐꾼은 두려워 떨며 원망
불평을 한다. “가나안 땅에는 크고 강한 아낙 자손이 살고 있
으며 그들에 비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 어깨에 매달린
메뚜기처럼 연약하여 싸워봤자 그들의 밥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말을 듣고 낙심하여 공포를 떨고 있는데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이 우리의 밥이 될 것이다.“ 하며 모세 지도자
에게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기를 청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갈렙의 믿음을 보시고 갈렙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좋은 곳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로부터 40여년 광야에서 이리저리 방랑 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약속하신 땅의 분배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갈렙의 신앙의 살펴보자.
첫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신앙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많이 알고 있다. 심지어는 잡종교인들이나 무
신론자나 철학자들까지도 성경 말씀을 읽으며 자기들의 사상이나
논리에 이용한다. 그러나 정작 그 말씀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이는 정통 기독교인들도
비슷하다. 성경말씀은 신화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전능하셔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하신 그대로 일점일획 어김없이 이뤄지는 생명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헤브론 산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은 45년 전에 말씀이었다. 10년 20년 30년 광야에 방랑
생활을 하면서 언제 헤브론 땅을 얻을 것인지 기약이 없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방랑생활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전진하는 생활을 했다.
이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땅을 분배 받을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이뤄질 것임을 믿고
헤브론 산지를 나누어 달라고 청원하였다.
이러므로 약속하신 말씀의 45년에 이르러서 그대로 이뤄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신구약 성경말씀을 통해서 수많은 약속을
하셨다. 어떤 죄라도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의지하여 회개하면
깨끗하게 용서해 주시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천국복락을 주신다. 영광중에 구름타고 재림하시며 우리는
천사들처럼 신령한 모습으로 부활을 한다.
말씀하신 그대로 당장 이뤄질 말씀도 있고 45년 혹은 100년
또는 500년 1,000년에 걸쳐 이뤄질 말씀도 있으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하신 그대로 100%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둘째, 마음에 성실한대로 보고한 신앙이다.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뽑힌 12명의 정탐꾼이 함께 하며 정탐을
했는데, 10명의 보고는 “가나안 족속들은 크고 강하여 그에 비
하면 이스라엘 족속들은 사람 어깨에 달린 메뚜기 같아 가나안
족속을 당할 수가 없고 그들의 밥이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고 공포에 떨며 원망불평을 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아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크고 강하
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가나안
족속 그들이 우리의 밥이 될 것이다. 고 담대하게 말했다.
이렇게 보고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10명대 2명, 5명대 1명,
현신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 5명이 반대하는 일에 나 혼자 1명이
찬성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 5명이 찬성하는 일에 나 혼자
1명이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인하여 반대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보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하든,
마음에 있는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
하는 것은 성실한 신앙의 사람이며 축복받을 사람이다.
셋째,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신앙이다.
온전히 좇았다는 것은, 히브리 원어로 보면 가득 채웠다는 뜻이
있다. 즉 갈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채워 나갔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하신 것은 일점일획 변합없이 이루어 질 것을
믿고, 고난과 역경에도 하나님 뜻을 순종하며 채워 나갔다.
우리의 신앙도 진일보해야 한다. 성경 66권의 말씀은 그 어떤
말씀이든지 말씀하신 그대로 변함없이 이뤄질 것을 믿고,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말하든지 그에 영향을 받지 말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채워 나가야 한다.
갈렙의 신앙으로 받은 축복은,
1. 가나안 좋은 땅을 먼저 받고 강건한 축복을 받았다.
2. 하나님 말씀 성경에 믿음의 용사로 기록되고 칭찬을 받았다.
3. 천국에 영광과 상급을 크게 누리게 되었다. 할렐루야~!!
2012-05-20 PM 10:30:50
2012. 5. 13 부활과 그 오해
제 목 : 부활과 그 오해
성경말씀 : 마가복음 12 : 18 ~ 27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은
다른 사람도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불가능하게 여긴다.
그러나 자기가 못하는 불가능한 일을 다른 사람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이 못 하는 일들을 자기 자신은 할
수 있는 것이 오늘날 인간세상의 현실들이다.
한 예로 스마트폰의 효용성은 얼마나 대단한가? 손바닥
안에 드는 그 작은 것에 책 몇 천권의 내용을 담을 수 있고,
아무 선도 없는 그것으로 전파를 이용하여 미국에까지 화상
통화를 할 수 있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다 하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지만
전문가들은 그 이상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들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이겨내고 다 부활하는 것을 잘 믿으려
하지를 않는다. 사람 자기들이 죽음을 이겨내지도 못하고
부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부활을 시키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다면
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성경을 알지 못하고 오해한 것이다.
본문에 사두개인들은 구약 다윗 왕 시대에 “사독”이라는 유명
한 제사장의 후손들이다. 다윗 왕 시대에도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계급이었고 신약에 이르러서도 이스라엘의
지도 계급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들은 인간의 이성과 지식을 중요시해서 인간의 이성과 지
식과 상식과 합리적인 것을 뛰어넘은 것은 믿지를 아니했다.
그렇기에 부활도 없고 영도 없고 천사도 없다고 생각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활을 부정하고 배척 했다.
그렇다, 사람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부활이 전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는 우리
생명의 하나님께서는, 부활뿐만 아니라 그 어떤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완전무결하게 이루시는 만능의 하나님이시다.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
.첫째, 사람은 부활한다.
사람에게 죽음은 왜 왔는가? 죄 값으로 왔다.
그렇다면 죄 값을 해결한다면 죽음을 극복할 수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께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인생들의 모든
죄 값을 다 담당하고 해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 그 누구든지
예수님을 내 죄 값 대신 죽으신 주님으로 믿기만 하면,
믿는 그 사람에게는 모든 죄 값을 담당해주신 예수님의 공로가
덧 입혀져서,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를 깨끗하게 용서 받고,
죄 값으로 죽었던 영혼이 즉시로 살아(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 자신께서 대속(代贖)의 죽음과 부활을 이루시고
믿는 사람들을 부활시킬 것이기 때문에 사두개인의 비난 질문에
너무도 당당하고 확실하게 부활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 천사들처럼 부활한다.
이 부활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지는데, 그 때는
육신의 연약함과 부정함은 완전히 뛰어넘어 천사들처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무엇을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고, 시공을
초월한 완전하고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시공을 초월한다는 것은, 지금은 미국을 가려면 배나 비행기를
이용하여 그만큼의 시간과 물질과 수고가 따르는데, 부활의
몸은 미국을 가려는 마음을 먹으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나
구애를 받지 않고 그 즉시로 미국에 가 있는 것이다.
또한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남 여 간에 이성의
구분이 없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형제애로서 유지된다.
부활의 모습도,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의 제일 좋은 때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부활되어 신체적인 결함이 없이 되고, 각자
의 개성의 아름다움을 갖춘 최상의 형태로 부활을 한다.
한 예로 소아마비로 태어난 사람이나 교통사고로 온 몸에 장애
가 있거나 폐암으로 죽었다 하여도 죽을 때의 늙은 모습이나
장애가 있는 모습이 아닌 완전한 몸으로 천사들처럼 부활한다.
셋째, 천국에서 살다가 부활한다.
사람은 누구나 눈에 보이는 형체 육신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러다가 영혼이 육신을 떠나게 되면
육신이 숨을 멈추게 되고 이것을 죽음이라 하는 것이다.
육신은 흙에서 취했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장례절차를 치르게
되고, 그 영혼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에 즉시로 올라가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자들은 그 영혼이 자기 죄 값을 짊어지고 즉시로 지옥 불바다에
떨어져서 그 무시무시하고 처참한 지옥 형벌을 받는다.
이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성도들은 몸의 죽음과 더불어
그 영혼이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올라가서 복락을 누리다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려 재림하실 때에, 그 예수님과
함께 천사와 같은 산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이 세상에 온다.
우리에게는 이런 천국의 복락과 부활이 있다. 할렐루야 !
2012-05-13 PM 10:51:51
2012. 5. 6 행복하게 사는 비결
제 목 : 행복하게 사는 비결
성경말씀 : 잠언 6:6 - 11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고 축복을 예비해 놓으셨다.
이에 비해 사람들이 그 축복을 받아 누릴 자격을 만들지를
못하고 지체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는
“ 개미에게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하셨는데
말씀에 나타난 개미를 살펴보면,
1) 성실하다.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충성한다.
2) 발적이다. 감독이 없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한다.
3) 때를 맞춰 일한다. 때를 놓치지 않고 때에 맞춰 일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가 얻어야할 교훈은
첫째,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어렵게 사는 이유 중 하나가
게으름을 부리고 핑계 대며 성실하게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에는 귀천(貴賤)이 없다. 고 말하면서도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 빈둥거리는데 이는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분수 이상 편하고 좋은 일만 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 중소기업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외국 근로자들이
쓰고 있고 그도 여의치 않아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는 사람들 마음에서 성실히 일해야 한다는 건전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이기주의와 안일한 생각들이 자리 잡은 때문이다.
또 성실히 일한다는 것은 무조건 일에만 몰두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통계를 보면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이 제일 많다. 그런데 생산성은 제일 떨어진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일하는 시간에 비해 그 내용이 성
실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성실히 일한다는 것은, 일을 하되
가장 효과적으로 좋은 열매를 거두게 일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국가나 회사차원의 큰 일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설거지 하나를 해도, 가장 쉽고 안전하고 빠르고
깨끗하게 물을 절약하며 설거지를 했다면 이는 성실하게 일
한 것이다. 이렇게 하찮은 일에서 큰일까지 성실히 행하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살게 하는 지름길이 된다.
둘째, 돈을 쓰는데 성실히 써야 한다.
돈을 성실히 쓴다는 것은, 먼저
수입이상의 지출을 하지 않는 것이다. 월수입이 300만 원인
사람이 350만원을 지출하면 이는 돈을 성실히 쓴 것이 아니다.
오늘날 지자체 도시들도 수입이상의 돈을 빌려다가 쓴 것으로
인해 재정 위기를 겪고 있으며 유럽의 여러 나라가 경제위기에
몰려 있는 것도 수입이상 지출을 하여 돈을 성실하게 쓰지를
아니했기 때문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수입이상의 돈을 쓰다
보면 그것이 누적되어 파산에 이르고 이는 곧 불행과 직결된다.
또한 돈을 쓰되 꼭 필요한 곳이나 선한 일에 돈을 우선 쓰는
것이며, 같은 돈을 써도 그 효과가 크고 많이 나타나는데 써야
한다. 돈을 성실하게 쓰는 것은 행복한 삶에 비결이다.
셋째, 성실하게 사랑해야 한다.
가정은 사랑의 근원지이며, 실천하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네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의 표현을 잘
못하고 있으며, 사랑하는 언어와 표현을 쑥스러워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에, 사람이 어떤 표현을 아니 해도
마음 속 비밀까지 다 아시고 그에 따라 역사를 하시지만,
그러나 사람은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마음에는 사랑을 해도 그 사랑의 외부적일 표현이 없을
때는, 상대는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고
나 자신도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실히 사랑을 한다는 것은 마음에도 진실한 사랑을
갖출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외부적으로 잘 표현을 해야 한다.
부부 사이는 인간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친밀하고 허물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여야 한다. 그러나 어떤 남편은 아내와
30~40년을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사랑한
다는 말을 한 번도 아니했다고 한다. 반대로 아내 역시 남편
에게 사랑한다는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며 더디 한다.
이렇게 해서도 한 평생 함께 살 수는 있겠지만 본인 자신들도
행복한 삶이라고는 느끼기는 힘들며, 보는 사람들도 과연 그런
부부사이를 행복한 부부라고 말할 수는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실히 사랑한다는 것은
가정이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랑의 표현을 잘하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형이 동생에게 동생이 형에게, 친구들이나 또한
교우들끼리도 따스한 사랑의 언어를 잘 사용하는 것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돈을 쓰며 사랑을 하되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 우리 하나님께서
본을 보이고 명령하신 것이기에 기쁨으로 자원해서 해야 한다.
때를 놓치지 않고 하는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2012-05-07 PM 12:00:54
2012. 4.29 네 일을 밖에서 다스려라
제 목 : 네 일을 밖에서 다스려라
성경말씀 : 잠언 24:23-29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맞물려서
무엇이든지 개성을 살려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 27절 말씀에서는 이를 바로 하도록
3가지로 말씀하셨다.
첫째, 네 일을 밖에서 다스려라.(27절 상)
“네 일을 밖에서 다스려라”는 말씀은
어떤 일이나 말과 행동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말고
자기 생각에 좋게 여겨진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다 할 것이
아니라, 밖에서 볼 때에, 즉 제 삼자나 객관적으로 볼 때에도
“옳다”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말과 행동으로 자기의 일을
계획하고 경영해 나가라는 뜻이다.
옛 어른들도, “집안에 있는 사람은 그 집의 삐뚤어진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집 밖에서야 밝히 보게 된다.”고 말하였다.
실례로, 정치권에 최시중 전 방통위장이 10억대의 뇌물을
받아서 선거 자금과 정치권에 로비자금으로 썼다고 한다.
그들의 세계에서 보면 정치자금으로 모금하여 대통령에 당선을
시켰으니 일등공신이요 그런 공로로 인해 실세로 행세를 했겠
지만, 과연 국민들의 입장에서나 법에 적용할 때에도 그렇게
좋게 보아줄 수 있는 일인가? 그것은 아닌 것이다.
삼성가에 법정투쟁도 자기들 나름대로는 얼마나 억울하고 섭
섭하면 법정소송까지 하겠는가? 당연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 사람은 꿈에도 생각 못할 수천억의 재산,
또한 형제간에 법정 싸움을 하는 것이 과연 바른 일인가?
재벌들의 문어발 지네발 식으로 골목 상권까지 휘어잡는다.
그들 입장에서는 사업 확장이요 번영이라 하겠지만 그 일이
과연 공공의 차원에서 볼 때에도 공감할 수 있는 일인가?
위에 말한 예들은 규모가 큰일들이라 그 잘못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규모가 작아서 자기만 좋으면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지, 객관적으로야 어떻게 됐든지
상관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그 일이 잘못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합리화 시켜 나간다. 그러므로 자기가 기준이
되거나 사람의 생각이나 사상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 모든 일들의 기준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며
밖에서 볼 때에도 그 말씀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둘째, 밭에서 예비하라(27절 , 눅8:5-15)
“밭”은 곡식을 심어 거두는 밭에 비유하여 마음을 뜻한다.
신약 복음서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씨”라 하였고 “밭”은
사람의 마음이라 했으며 “옥토(沃土)”는 착하고 좋은 마음이라
하셨다. 즉 사람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서, 그 말씀에 합당한가? 아니한가? 그 말씀에 비추어보며
자신의 말과 행동과 어떤 일들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언행과 이루고자 하는 일들은 먼저 마음에서부터
계획이 되고 시작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지 사람
마음에서 잘못 계획이 되고 시작이 되면 그 말과 행동도 잘못
되고 그 이루고자 하는 일들도 삐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말하고자 하는 것과 어떤 행동과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먼저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살펴서
그에 합당하게 예비하고 준비하여 계획하라는 것이다.
셋째, 그 후에 네 집을 세워라. (27절 하)
언행심사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밖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때도 바르고 합당한 일이 되도록
마음 밭에서부터 잘 살피고 예비를 하였다면, 이제는 그 생각
하고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망설이지 말고 추진하여 행동하고
실천에 옮기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이루고자 하는 일들에 함께 하여 도와주시므로
우리의 말과 행동과 진행시키는 일들이 잘되고 좋은 열매를
거둬서 우리에게는 축복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라 할 때에
본문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몇 가지 말씀을 하셨다.
1.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주지 말라. (23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듯이 많은 사람이 자기와의
친분 관계나 금전의 유익으로 인하여 사리분별을 잘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쳐 나간다. 그러므로 분별과 판단을 잘 해야 한다.
2.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다, 하라. (24절)
생명이요 삶의 표준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합당한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고 하며 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것을 선택해서 나가야 한다.
3. 행한 대로 갚는다 하지 말라. (28절)
행한 대로 갚으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무결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의
도리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너그러움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
이와 같이 작은 일에서 큰일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이뤄 나가면,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승리하고 축복을 받는다.
2012-04-30 AM 9:42:24
2012.4.2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제 목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성경말씀: 고린도전서 10 : 29 - 33
지음을 받은 사람으로서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인간으로서 최대의 축복 받는 일이다.
본문 말씀의 배경은,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잡신들에게 제산한 음식(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설과 먹으면 안 된다는 설의 대립이 있었다.
먹어도 된다는 설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인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허깨비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에게 제사한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그 음식을 먹어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기에
얼마든지 그 제물을 먹어도 된다는 이론이었다.
먹으면 안 된다는 설은 =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인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이 확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잡신을
하나님과 똑같은 신으로 믿고 섬기기 때문에, 잡신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신을 인정하고 섬기는 것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위 두 이론에 대하여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그렇다. 먹고 마시는 기본적인 하찮은 것에서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면 행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것은 하지 말라.” 는 뜻이며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것을 확실하게 나타내셨다.
“영광”은 원어로 어원을 살펴보면
“하나님께 대하여 언제나 좋은 생각, 좋은 태도를 가진다.”는
뜻이며, 이 어원에서 “찬미” “찬양” “영애”라는 말이 파생
되었다. 그렇다. 먹고 마시는 하찮은 일, 우리 일상생활에서
보통으로 이루어지는 일들, 술, 담배, 도박, 마약, 컴퓨터
게임중독, 채팅중독, 과식으로 인한 비만이나
과도한 다이어트로 자기 몸을 망가뜨리고, 운동이나 자기 몸
관리를 안 해서 허약해지고 병이 들었을 때, 과연 이러한 일
들이 하나님께 좋은 생각 좋은 태도를 가진 것이며, 진정
오히려 욕이 되고, 하나님 이름에 누를 끼치는 일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야 하는데 이는 너무 광범위하고 막연하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을 크게 몇 가지로 요약해보면,
첫째,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세로 살아야
하는데, 연약하고 부정한 인생들인지라 그렇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특별히 예배드리는 날과 예배드리는 시간이 정해졌다.
“예배”는 원어로 프로스퀴네오 인데
“엎드려 입 맞추다”는 뜻이며, “경배하다” “절하다” “예배하다”
는 단어로 번역되어 성경말씀에 기록이 되었다.
예배(엎드려 입 맞추다) 에는 또한 이런 뜻이 있으니,
1. 신임합니다.
신뢰, 신임, 곧 믿고 의지하고 우리 모든 것을 맡깁니다.
전지전능하시며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우리 죄 값을 다 담당하시고 부활의 생명을 주신 구주 예수님,
믿음을 주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보혜사 성령님, 믿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믿고 예배를
드릴 때에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예배가 된다.
2. 사랑합니다.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사랑을 바치는 예배만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3. 굴복합니다.
나의 지식, 지혜, 사상, 자존심, 체면, 목적, 다 버리고 주님께
굴복합니다.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버리고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 가장 고상함이라.
4.순종하겠습니다.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옵소서. 내 형편, 내 생각에 안 맞아도
무엇이서든지 말씀에 순종 하겠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의 자세는)
1. 하나님께 예배드림을 가장 존귀하고 기쁘게 여겨야 한다.
2. 하나님께 예배드림을 제일 우선으로 먼저 해야 한다.
3. 하나님께 예배드림에 맘과 뜻과 모든 정성을 다해야 한다.
둘째, 십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
셋째, 잘못한 것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해야 한다.
넷째, 거리끼는 사람이 되지 말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도, 걸림돌,
거리끼는 자가 되지 말고,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고 협력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신다.
2012-04-23 PM 5:22:38
2012.4.15 아름다운 포도원
제 목 : 아름다운 포도원
성경말씀 : 이사야 27 : 1 - 6
포도원은 구약에서도 (이사야 5:1-4, 요한복음 15:1-5)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뜻하고, 신약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성도들을 뜻하는데
교회와 성도의 가정과 성도들이 함께하는 모임들을 뜻한다.
2절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노래하리라”고 하셨는데
곧 교회와 성도의 가정이 아름다운 포도원이 되어
즐거워하며 찬송하며 주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낙원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포도원을 이루는 데에는 ?
첫째, 하나님을 포도원지기로 모셔야 한다. (3절)
요한복음 15장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말씀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포도원의 주인이요 농부시며, 포도원을
돌보아 주시는 포도원지기이심을 나타내셨다.
그렇다. 우리가 아름다운 교회,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성도들의 모임을 이루려면, 교회 건물이 크고 웅장해서도 아
니며, 성도들의 수가 많거나 돈이 많아서도 아니며, 그 첫째가
곧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의 주인이요 포도원지기로 모시는 것
이다. 이러함이 없이는 우리의 그 어떤 것도 아름다움을 이룰
수가 없고, 또한 행복을 누릴 수도 없다.
물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지도 않고 주인이나 포도원지
기로 모시지 않고도 무엇을 이룰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영원한 지옥형벌이라 아름답게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외부적인 적을 물리쳐 아름답게 하신다.(1절)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포도원지기도 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포도원을 해하려는 외부적인 적을 물리쳐 주신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도 외부적인 적이 침입을 해서
싸움이 일면 파괴되어 그 곳은 아름다운 곳이 될 수가 없다.
본문에 날랜 뱀 리워야단, 꼬불꼬불한 뱀, 바다의 용, 은 모두
마귀 사단과 그 영향을 받은 악한 세력 즉 외부적인 적들을
뜻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크고 강한 칼로 심판하셔서
교회와 성도를 해하려는 외부적인 적을 징벌하시므로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시며 아름답게 지켜 나가신다.
셋째, 때를 따라 은혜를 주셔서 아름답게 하신다.(3절)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해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위 말씀에 “포도원에 때때로 물을 준다.”는 뜻은 곧 포도원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때를 따라서 곧 그 때에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때에 맞게 도와주신다는 말씀이다.
몸이 아픈 성도는 몸이 아픈 그때에 맞는 은혜를 내려 주시고,
어떤 일을 시작하려는 성도에게는 그 시작하는 일이 잘되도록
그에 맞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아들이 군대에 간다면 또한
아들의 군대생활에 합당한 은혜를 내려 주시고, 출장을 간다면
출장에서의 일이 잘되도록 그때에 맞는 은혜로 도와주신다.
사업을 한다면 그 사업에 합당한 은혜를 주시고, 출장을 간다면
출장에서의 일이 잘되도록 그때에 맞는 은혜로 도와주신다.
사업을 한다면 그 사업에 합당한 은혜를 주시고, 학교에 간다면
학교생활에 합당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시험을 본다면 또한
그 시험에 알맞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때에
알맞은 은혜를 적절하게 베풀어 주시므로, 교회와 성도 가정과
그 모임을 아름다운 곳이 되도록 가꾸어 나가신다.
넷째, 내부적인 적을 제압하여 아름답게 하신다.(4절)
“질려와 형극이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질려와 형극은
포도원에 자생하는 가시떨기 나무와 쓴 뿌리들을 뜻한다.
이것들이 포도원인 교회나 성도들의 모임에 기생하면서 포도
나무인 성도들을 꾹꾹 찌르고 괴롭히며 시험을 일으키는데,
이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모아
불태우는 심판을 하셔서, 하나님 자신의 소유인 포도원을
평화롭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신다.
다섯째, 하나님과 화친케 하셔서 아름답게 하신다. (5절)
포도나무인 성도들 중에, 질려와 형극이나 날래고 꼬불꼬불한
뱀이나 용의 영향력을 받아 잠시 교회나 성도들의 모임에 해를
끼친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의지하여 회개토록
하시고, 또한 그 회개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깨끗이 용서하셔서
포도원인 교회와 성도들의 모임을 아름답게 해 나가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포도원을 아름답게 하시므로
야곱이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이 움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혀서 포도원과 그 주위까지 아름답게 해 나가게 된다.(6절)
곧 오늘날 교회나 믿음의 성도들의 모임에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셔서 외부적인 적과 내부적인 적들을 징벌하시고,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때에 맞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므로, 성도들의 믿음이
점점 좋아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충성, 온유, 절제를 잘 이루고,
기도와 찬송과 전도와 봉사의 열매 등을 잘 맺혀 나간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회와 성도들의 모임을 더 아름답게 하시며,
그에 따르는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고 축복하여 주신다.
2012-04-16 PM 6:53:27
2012. 4. 8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사는 길
제 목 :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사는 길
성경말씀 : 요한복음 11:17-27
천하 만물을 비롯하여 모든 인생들은
한 번 태어난 이상, 또 한 번 죽어야 한다. 이 죽음은 그 어떤
인생이든지 피할 수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도이다.
본문 말씀의 내용은, “마르다” “마리아”라는 두 자매와
“나사로”라 하는 삼남대가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안계시고
탈선할 수 있는 환경임에도 삼남매가 예수님을 잘 믿고 섬기며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나사로가 죽을병이
들어서 멀리 다른 지방에 계시는 예수님께 기별하여 속히
오셔서 나사로의 죽을병을 고쳐주시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시지를 않고 다른 일을 보시다가
나흘 후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장사지낸 다음에야 오셨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이하여 “주님께서 여기 계셨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고 살았겠습니다. ”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 것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곧 자신이 모든 생명을 생성(生成)하는 생명의 근원이시고
죽어도 다시 살게 하는 부활의 원동력임을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왜 생명이시고 부활이신가?
1.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그 자체가 생명이고 부활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신 전지전능하신 주님으로서
모든 생명체를 만드신 분이고 존재토록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생명체든지 예수님께서 만드셨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존재하며,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생명을 만드셨기에
이미 존재하는 생명체는 죽었다할지라도 얼마든지 다시 살리고
부활시키는 전능하신 능력의 주님이시다.
2. 우리 죄 값의 형벌을 담당하고 새 생명을 주셨다.
인생에게 죽음은 왜 왔는가? 죄 값으로 왔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억만 가지 죄악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 값을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을 죄 값의 형벌을 다 받아 주셨고, 그러한 예수님
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사죄의 은총
을 베풀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을 구주로 믿기 때문에 모든 죄를 용서 받게 되고,
모든 죄를 용서 받으니까
죄 값으로 찾아왔던 죽음을 이겨내고,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이 되어 하늘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3.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병들어 죽어 나흘이 되어 무덤에 장사지내고,
시신이 점점 상하고 썩어가며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나사로야 나오너라.” 라는 말씀 한 마디로 살려내신 예수님.
어리석은 인생들이 예수님 자신께서 생명이요 부활이심을 모르고
살아가므로, 인생들에게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보이시려고,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도 일부러 지체하며,
죽고 썩어 냄새가 나도록 하였다가, 다시 살아나기가 전혀
불가능한 시체 나사로를 살리셔서, 자신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부활이요 생명임을 보이셨고, 예수님 자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함을 보이신 것이다.
4. 자신께서 친히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
우리말에 “의사가 남의 병은 고쳐도 제 병은 고치지 못한다.”
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도 살려
내시고, 자신께서 우리 죄 값을 지고 죽으셨다가 죽으신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다시 부활하셨다. 그 부활하신 때가
바로 1980여 년 전 이때쯤이라, 이 역사적 사실로 인하여
우리가 지금 부활절에 축제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하므로 우리 예수님께서는 여느 사람들처럼,
말만 하고 이루지 못하는 그런 무능한 사람이 아니고, 부활이며
생명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죽어도 산다.” 이 말씀에 “죽어도”는
육신이 죽는 것을 뜻하고, “산다”는 영혼이 산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연결하면, 어떤 사람이 죽어가면서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죄 값으로 죽었던 영혼이 즉시로 살아나고
죽어서 소멸된 육신도 때가되면 다시 살아나 부활한다는 것이다.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현재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 활동하면서, 예수님을 내 죄 값
대신 죽으신 구원의 주님으로 믿으면, 죄 값으로 죽었던 영혼이
즉시로 살아나고, 비록 육신이 죽는다 하여도,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살아난 영혼은 죽지 아니하고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그런 축복된 사실의 말씀이다.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는,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사는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믿고, 성삼위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 나가야 할 것이다.
2012-04-10 AM 9:41:53
2012. 4. 1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
제목 :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
성경말씀 : 베드로전서 2 :21- 25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을 누리시다가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이 당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모든 고난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하시고 죽기까지 하셨는가?
첫째, 우리를 위하여 우리 대신 고난을 당해 주셨다. (21절)
우리가 부족하고 더럽고 추한 것이 많아서 하나님께로부터
또는 이 세상으로부터 삶에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완전무결하여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
셔서 인생이 당하는 모든 고난을 다 당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셔서 하늘보좌 영광을 누리시는 분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것부터가 고난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사람이 출산할 곳이 없어서 마구간에서
출산을 했다면 이 얼마나 고난을 받은 것인가? 오늘날처럼
현대식 마구간이 아니요 어둠침침한 곳에 배설물로 질컥거리며
냄새가 진동하는 곳, 아기 예수님을 뉘일 곳이 없어 구유에
뉘일 수밖에 없는 그런 곳에서 출산이 되신 것이다.
가난한 목수 집안에 태어나 궁핍의 고난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인생이 당하는 모든 고난을
다 당하시며 우리를 위해서 감당하신 것이다.
둘째, 우리 대신 능욕을 당하셨다. (22절)
이 세상에 우리와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 나의 잘못 때문에 욕을 먹어줄 사람이 누가 있는가?
내 잘못 때문에 침 뱉음을 당하고 따귀를 맞아주고 가죽 채찍
을 맞으며 능욕을 당해줄 사람이 그 누구인가 ?
내 가족과 친족들을 비롯하여 친구와 동창 동료와 회원들,
나를 좋아 하면서 가까이 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내 대신 능욕을 받고, 내대신 가시관 쓰고,
내 대신 멸시와 천대를 받고, 내 대신 손가락질 받고,
내 대신 수모를 당해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나를 대신하여
사람이 당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다 받으시고 멸시 천대 비웃음
조롱과 가죽 채찍의 쓰라림과 능욕을 다 받아 주셨다.
셋째, 친히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우리 인생들은 다 죄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두가 다 죄를 지었는데, 죄의 값은 사망이며 지옥형벌이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 죄 값을 짊어지시고 십자
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감당해 주셨다.
“예수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같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예수님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5-6)
허물 : 알지 못하고 지은 죄, 죄악 : 알면서도 지은 죄.
즉 예수님은 우리의 알지 못하고 지은 죄나, 알면서도 지은
죄 값을 짊어지시고 찔림을 당하시고 상함을 당하시고 십자가
죽음까지 당하시어 우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희생해 주셨다.
이를 대속(代贖) 또는 구속(救贖)이라고 하는데
바로 1980년 전, 이때쯤에 예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어서 죄 사함을 받고 천국 백성이 된
우리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21절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너희에게 본을 보여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예수님, 우리도 그 자취를 따라야 한다.
1. 예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고난을 당해보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예수님이 다른 사람을 위해 고난을 당
하셨으니,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해 고난을 당해보는 것이다.
2. 예수님을 위하여 욕을 먹고 이웃을 위하여 욕을 먹어보자.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을 위하여
일하다 욕을 먹어보고, 이웃 주위 사람들을 위하다가 욕을 먹고
선한 일을 하다가 좋은 일을 하다가 욕을 먹어보는 것이다.
3. 예수님을 위하여 희생을 하고 이웃을 위하여 희생을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죽기까지 희생
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위하여 희생을 하고 이웃 주위
사람들을 위하여 몸과 마음과 물질의 희생과 수고를 해보자.
이런 일들을 위하여 우리가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이 다 예수님 이름에 무릎
을 꿇고 주라 시인하게 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도 알아주시고 천국의 상급과 복락을 누리게 하신다.
2012-04-02 PM 9:03:57
2012. 3. 25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제 목 :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성경말씀 : 사무엘상 6 : 10 - 16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이
다곤 잡신을 섬기는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에서 대패를 하여
이스라엘 지도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빼앗겼다.
그러나 이런 부끄럽고 비참한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진행하심
가운데 이루어 졌으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징벌하고
바르게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었다.
이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는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의 다곤 신과 백성들에게 큰 재앙을 내리셔서
하나님자신 스스로께서 회복하시고 보존하고 성취하셨다.
팔레스타인이 자기들의 신과 백성들이 재앙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언약궤 때문임을 깨닫고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① 멍에를 매어보지 않은 암소 : 멍에를 매어 보지 않은 소는
멍에를 메면 아프고 답답하여 몸부림치고 벗어나려고 한다.
그런데 조용히 멍에를 메고 따르면 이는 하나님의 역사이시다.
② 새끼를 둔 젖 나는 암소 :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성본능이
강하여, 어미에게서 젖 먹이는 새끼를 떼어놓으면 어미가
새끼를 찾아 발버둥치고 멍에를 메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암소가 얌전히 멍에를 멘다면 하나님의 역사이시다.
③ 두 마리의 암소 : 전혀 멍에를 매어보지 않았고 젖 먹이는
새끼를 둔 처음 만나는 암소 둘이기 때문에 마음이 맞을 수
없고 서로가 배척하며 멍에를 벗어나려 몸부림치게 된다.
그런데 함께 멍에를 메고 맞춰 나가면 하나님의 역사이시다.
④ 두 암소에게 맡긴다 : 소나 말은 사람이 앞뒤나 옆에서
끌어주고 인도해 주어야 길을 제대로 간다. 그런데 인도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소가 하나님의 언약궤 수레의 멍에를 메고
길을 찾아 벧세메스로 바르게 간다면, 이 모든 일은 자연적
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신기한 기적으로 하나님께서
온전히 역사하셨음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확인한 결과, 한 번도 멍에를 메지 않은 젖먹이는 새끼를 둔
두 암소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자기들 스스로가
길을 찾아 하나님의 언약궤수레를 메고 이스라엘 벧세메스로
바르게 걸어감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 다곤이
거꾸러지고, 자기들이 재앙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이심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언약궤를 모신 수레의 멍에를 메고
이스라엘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들은 믿음의 사람들을 뜻하기도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암소들을 사람으로 비유하셨다.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호세야4:16)
“사마리아 산에 사는 바산 암소들아 들으라. - 너희는 가장에게
술을 가져다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구나.“(아모스4:1)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를 통한 교훈은?
첫째, 언약궤 모시는데 육신의 고통이 있어도 감수(甘受)했다.
멍에를 메고 수레를 끄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목이 아프고
답답하고 힘이 든다. 그래도 암소들은 단 마음으로 그 고통을
감당해서 언약궤를 끝까지 잘 모셨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고 받들고 이루어 나가는데 우리 육신에
어떤 고통이 따르고 불이익이 따른다 하여도 달게 받으며
생이 다할 때 까지 순종해 나가야 한다.
둘째, 마음의 고통을 감수하며 언약궤를 끝까지 잘 모셨다.
젖을 먹는 새끼가 있어 본능적으로 모성애가 발동을 하여
집에 가둬 논 새끼에게 달려가고 싶고 애가 타지만 그런 모든
마음의 고통을 감수하고 절제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
하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끝까지 잘 모셨다.
셋째, 감사하여 눈물을 흘리며 감당을 했다.
언약궤를 모시고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가 눈물을 흘리며
걸었다. 이는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라기보다, 소 같은 비천한
미물이 감히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게 된 일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인하여 흘리는 감격의 눈물이었다.
“피조물도 바라는 것은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롬8:19-23)
넷째, 몸 바쳐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여 감당을 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끝까지 잘 모신 다음에는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려졌다. 번제물이란 하나님께서 통째로
불살라 드리는 제물이니, 곧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영광도 없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것이다.
짐승, 미물인 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는데 이렇게 자신을
온전히 바쳐 쓰임 받았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입어 천국백성이 된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도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들고 이루어 드리기 위해,
몸의 수고와 마음에 고통을 감당하고,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는
사실에 감사감격하며, 끝까지 몸 바쳐 충성해야 할 것이다,
2012-03-26 PM 8:11:27
2012.3.18 스스로 영광을 취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
제 목 : 스스로 영광을 취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
성경말씀 : 사무엘상 5 : 1 - 12
지금부터 3.100년 전, 사무엘 선지자는 어리고,
“엘리”가 이스라엘의 최고 제사장이며 지도자로 있을 때에
팔레스타인 사람이 대군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침략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하여,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하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에다 앞세웠다.
언약궤 속에는, 십계명 두 돌 판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고, 이는 곧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
하심을 뜻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승리를 장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너무도 수치스럽게 이스라엘 민족의
참패로 끝나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쟁에서 죽었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빼앗겼으며, 그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곤”이라는 잡신을 만들어 섬겼는데
곡식의 풍요와 번성을 가져다주는 신이라 하여 크게 신전을
세워 섬겼고 이스라엘에서 빼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그 신
다곤 상 앞에 승전 제물로 바치고 축배를 들었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이 잡신을 섬기는 팔레스타인에게
진 것이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잡신 다곤 신에게 패한
것이 되고, 주위 여러 종족들로부터 이스라엘이 비웃음을 당
하고, 하나님의 영광은 땅에 떨어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
을 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고 모독을 당하는
비참한 일들이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진행시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곤 잡신과 팔레스타인 사람을 한순간에
멸할 수 있으시지만, 이스라엘백성의 죄악을 징벌하고 회개시
켜서 바로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그렇게 진행을 하신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소홀이 여기고 멸시했으며,
② 음란하여 성전에서 심부름하는 여인들과 동침을 했으며,
③ 이방 종족들이 섬기는 잡신 미신도 섬기며 타락해 나갔다.
④ 이런 죄악을 저지르고 방탕하면서도 회개할 줄을 몰랐다.
이런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자신의 명예와 영광이 훼손되고
모독을 당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을 징벌하시면서
그 죄를 회개시키시고 바로 세우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실추되고 모독당한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는
하나님자신 스스로께서 그 영광을 취하시고 보존하신 것이었다.
① 다곤 신상이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거꾸러지게 하셨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하고 언약궤까지
빼앗아 승전 제물로 다곤 신상 앞에 바쳤는데 그 다곤 신상이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거꾸러지게 하신 것이다.
② 다곤 신이 목과 손이 끊어져 언약궤 앞에 엎어지게 하셨다.
③ 아스돗 사람이 독종으로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당케 하셨다.
④ 가드 사람이 독종으로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당케 하셨다.
⑤ 에그론 사람이 독종으로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당케 하셨다.
팔레스타인이 언약궤로 인한 재앙임을 깨닫고 언약궤를 이곳
저곳으로 옮겨봤지만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재앙을 내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대승을 거두고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승전 제물로
바친 의기양양함은 다 없어지고,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무서워 벌벌 떨면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스라엘 본 곳으로
돌려보내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위 사건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징벌하시고 바로 세우심에 있어, 자신의 명예나 영광의 훼손과
관계없이 어떤 일이든지 진행시키시고, 정작 실추된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는 하나님자신 스스로께서 회복시키고 보존하신다.
오늘날도 그러하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하여 죄를 짓고 나갈 때는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없이 친히
징벌하셔서 믿음의 사람들이 실패와 고통과 모독과 짓밟힘을
당하게 하면서 바로 세우시고, 정작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는 하나님께서 친히 회복시키고 보존해 나가시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 자신의 죄를 살펴서 회개해야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께 예배함을 소홀이 하거나 무시하는 뜻은
없는지, 세상 물질과 타락된 문화에 마음을 빼앗겨 믿음의 일을
멀리하며 방탕한 일은 없는지, 우리 죄를 살펴 회개해야 한다.
둘째, 성경말씀 중심의 순수한 신앙으로 바로서야 한다.
세상 것이 더 좋아 보이고 잠시 곁길로 샐 수도 있다. 그러나
천국 백성으로서 어떤 길이 선한 길인지 다시 바로서야 한다.
에녹,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이사야, 다니엘 등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라 말씀 중심의 순수한 신앙에 서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과 찬송을 돌려야 한다.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천하 만물로부터 찬송과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하고, 우리는 마땅히 그에 합당한 영광과 찬송을 드려야
한다. 몸과 마음과 입술과 우리의 생활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
해야 하며, 여기에 우리의 영원한 축복이 있는 것이다.
2012-03-19 PM 5:11:43
2012. 3. 11 밟는 곳을 너희에게 주리라
제 목 : 밟는 곳을 너희에게 주리라
성경말씀 : 여호수아 1 : 1 ~ 6
능력의 종 모세가 하늘나라로 갔다.
모세의 종이었던 여호수아가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여호수아가 자신 스스로를 돌아볼 때에 자기로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부족하고 미약하
다고 여겨져 두려움과 근심 중에 있었다.
모세가 이집트 왕의 세력을 굴복시키려고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 여호수아는 그 중 한 가지도 행하지를 못했다.
뒤에는 이집트의 추격병, 앞에는 파랗게 넘실대는 홍해바다,
진퇴양난의 질곡에서 지팡이를 들어 홍해바다를 가르는 역사며,
낮엔 구름기둥 밤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여 백성들을 흡족케 한 모세,
십계명을 비롯하여 창세로부터의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계시
받아 오경(五經)을 기록한 모세, 그런 모세에 비하면 여호수아
자신은 너무도 미약하여 지도자로 나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친히 사명을 주셨으니,
첫째,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가나안복지로 가라. (2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정만 60만, 부녀자 노약자까지 하면
최소한 2백만 명이 넘는다고 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각자의 형편과 처지가 달라서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병든 사람, 출산을 앞 둔 사람, 삶에 회의를 느끼고 주저앉은
사람, 뜻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여호수아를 배척하는 사람,
그러나 여호수아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말씀은,
네가 미약하거나 무능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든 백성으로 더
불어 일어나 요단강을 건너서 한 사람의 낙오자도 생기지 않도
록 하여 다 같이 가나안복지로 들어가라는 말씀이다.
가나안 복지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400여 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다가 해방되어 광야생활 40여년을 유리방
황한 끝에 이제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 축복의 땅이었다.
이는 곧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1) 육신의 삶이 안정을 누릴 축복의 세계를 뜻함이고,
2) 마음과 영의 평화와 기쁨을 누릴 영적 은혜의 세계이며,
3) 이 세상을 떠나면 장차 누릴 천국 복락의 세계를 뜻한다.
이러한 세계에, 여호수아나 믿음이 좋은 지도자들만 들어가지
말고 모든 백성과 더불어 다 함께 들어가라는 말씀이다.
오늘날 우리의 가족이나 주위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외면하고 이런 은혜의 세계를 알지도 못하며
어느 정도는 알면서도 실제로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세계를 전해 주고
이제 우리가 다 함께 그 은혜와 축복의 세계 천국복락의 세계
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며 더불어 나가야 한다.
둘째,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주겠다.(3절)
이 가나안 복지를 주시겠다는 말씀은 최초에 아브라함과의
약속에서였다.(창13:14-18) 그 후에도 이삭과 야곱을 비롯하
여 모세에 이르기까지 약 500년 동안 수시로 말씀을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약속하셨던 땅을 그냥 얻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행동에 옮겨서 발바닥으로 밟고 실천해 나갈 때, 발바닥으로
밟는 그 곳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사람의 편에서 보면 안타깝고 무정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400여년 종살이에 광야 생활 40여년, 그 험난한 고생 끝에야
비로소 가나안 땅에 당도 했으니 그 가나안 땅은 그냥 편하게
얻게 하시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써서 발바닥으로
밟아 나가는 그곳을 주시고 또한 그곳만 주시겠다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앉아 있는 그곳만 주시고, 열 발자국 밟아
나가면 열 발자국 밟은 그곳, 천 발자국을 밟아 나가면 천 발
자국 밟아 나간 그곳, 만 발자국을 밟아 나가면 만 발자국을
밟은 만큼 그곳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읽기만 하고,
귀로 듣기만 하며, 마음으로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입으로
말을 잘하는데, 정작 실제 생활이나 행동으로는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에 느낌을 받고, 입으로 말을 했으면 이제는 현실의
생활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겨, 말씀대로 실천을 하라는 것이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그만큼 축복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셋째, 당할 자가 없이 함께 해 주신다.(5절)
위와 같이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모든 백성과 함께 더불어
일어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발바닥으로 밟아 나가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할 자들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신다는 말씀이며,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실천해 나가면 함께 하셔서 승리케 하신다는 말씀이다.
2012-03-12 PM 2:36:52
2012. 3. 4 비유말씀의 바른 해석
제목 : 비유 말씀의 바른 해석
성경말씀 : 마가복음 4:10-20
오늘 마가복음 4:10-12절 말씀은,
신천지 이만희 교주를 비롯하여 비유풀이를 하는 여러 이단들이
주 무기로 삼고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왜곡하는 말씀이다.
훨~훨~ 타오르는 지옥 불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이단괴수
이만희는, 본문11절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이 말씀 너희를,
이만희 자신을 비롯해서 신천지사람들이라 우겨대고,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여기 외인을 자기들과
함께 하지 않는 정통교회 신자들이라 왜곡 선전을 하고, 따라서
이만희 일파 자신들만 비유 말씀을 해석하고 풀이할 수 있기에,
자신들에게 속해야만 죄 용서를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미혹을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단설은 신천지 이만희만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고, 통일교 문선명, 천부교 전도관 박태선 일파, 구인회,
영생교 조희성, 장막성전 유재열,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구원파 권신찬과 박옥수 계통, 안식교 계통과 정명석 박명호,
새빛등대 김풍일 등, 모든 이단들이 아전인수 격으로 서로가
자기들만이 비유풀이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마귀설인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 11절 “너희에게” 너희는 누구를 뜻하는가?
본문 마가복음 4장1절에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무리가 모여들거늘"
에서“큰 무리는” 원어로 보면 많은 수에 최상급으로 수를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사람을 뜻한다.
예수님께서 여기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다 자기 갈 길로
돌아갔다. 남은 것은 10절에 나오는 12 제자와 함께한 사람들
이었는데, 바로 이들이 비유말씀의 뜻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
여쭤본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들을 가리켜서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주었으나” 라고 하신 것으로,
신천지 이만희나 유재열이나 김풍일이나 오늘날의 어떤 이단
의 괴수나 집단을 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서 “외인”도 당시에 12제자와 함께 한 사람들 외에
예수님을 떠나간 수많은 사람을 지칭한 것이며, 오늘날 신천지
이단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단 자기들을 따르지 않는 정통
기독교인들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위 사건에서,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함께한 사람들과
12제자들은 왜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함께 했는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믿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이 단순히 인간 예수나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죄 값 대신 죽으셨다가 살아나셔서
우리 죄를 다 사해주시고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새 생명을
주신 구원의 주님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에서도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를 거뒀을 때, 거기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로 했다.
오병이어 기적을 보니까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면 먹고살 것
은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상관이 없다 하시며, 예수님의 살은 참 된 양식
이며, 예수님의 피는 참 된 음료라 하시고 먹으라 하셨다.
이는 곧 예수님이 우리 죄 값 대신 몸이 상하실 것을 믿고,
우리 죄 값 대신 피를 흘리고 죽으실 것을 믿으라는 뜻이었다.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겠다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듣고, 이게 무슨 말이냐 우리가 무슨 식인종이냐? 하며
거의 떠나가고 12제자와 함께한 몇몇 사람들만 남았다.
예수님께서 남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려느냐? 물으시니,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오니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하고 예수님을 섬겼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나 위 요한복음 6장 말씀에서,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이미 구원의 주님으로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기 때문에 함께한 것이며,
비유의 말씀과 관계없이 이미 죄 사함 받고 천국복락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었다.
즉 말씀의 비유 풀이를 듣고서 죄 사함이나 구원 받은 것이
아니며, 유다를 제외하고는 이미 12제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
즉 비유 말씀을 하나도 모를 그 때에, 창세전에 택함을 받고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 사도로 세워진 것이다.
마태복음 8장에서도, 백부장이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주님으로 믿었을 때에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시며,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을 것을 말씀하셨지, 무슨 비유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죄 사함을 받거나 천국백성이 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본문 15~20절 말씀에서, 자신께서 친히
비유말씀의 해석을 해주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비유 말씀의 뜻을 알게 하셨다. 이러하기에 신천지나
기타 이단들이 말하는 것을 멸망 받을 이단설이라 하는 것이다.
2012-03-05 PM 3:21:48
2012. 2. 26 하나님께서 베푸신 잔치
제 목 : 하나님께서 베푸신 잔치
성경말씀 : 이사야 25:6-12
본문 말씀은 영적이며, 예언적이며, 시적 은유의 말씀이다.
즉 당시 사람들 육신에 관계된, 그 현실에 맞는, 직접적인 말씀
이 아니고, 영혼에 관계된 장래 이루어질 숨은 뜻의 말씀이다.
6절에, 하나님께서 연회(宴會)를 베푸신다 하셨다.
그 잔치의 이름은 “천국 잔치” “생명의 잔치” “구원의 잔치”등
여러 가지 좋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냥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잔치를
통해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고 천국복락을 누리게 된 때문이다.
어떤 잔치든지 잔치에는 음식과 음료가 있기 마련이다
음식과 음료의 질과 맛과 풍성에 따라 좋은 잔치가 되기도 하고,
소문난 잔치인데 먹을 것이 없다는 푸념을 듣기도 한다.
첫째. 잔치의 음식과 음료 (6절)
➀ 음식 : 골수로 가득 찬 기름진 것, 예수님의 우리 죄 값
대신 희생하신 몸을 뜻한다.
➁ 음료 : 오래 저장된 맑은 포도주, 예수님의 우리 죄 값
대신 흘리신 보혈을 뜻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 53-56)
위에서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것이며, “내 피를 마시고”라는 말씀의 뜻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것이 역시 내 죄 값 때문임을 “믿는” 것이다.
“오래 저장된 맑은 포도주”는,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죄 값
을 담당하신 것은 창세전 오래 전부터 예정하신 뜻대로 됐다
는 것이다. 이리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천국잔치는
“예수님을 통한 구속의 은혜” 즉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최상의 음식과 최상의 음료가 풍성하게 준비 돼서
누구는지 그 잔치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게 하신 것이다.
둘째, 모든 민족의 면박과 휘장이 제하여 졌다.(7절)
예수님의 구속(救贖)의 은혜를 통한 새 명을 얻는 역사는 이미
확실하지만, 그렇다하여도 구약시대에는 그 사실이 면박에
가려지고 휘장에 가려진 것처럼 희미했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율법과 여러 가지 형태의 제사의식에
가려져서, 예수님만을 통한 구원의 은혜가 확실하게 나타나지
아니했으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면박처럼 휘장처럼 가려졌던 구약의 제사
의식과 또 의문에 속한 율법에서 해방되어,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은혜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사망을 멸하시고 자기 백성의 수치를 제하셨다. (8절)
그 누구도 그 무엇이든지 생명이 있는 이상 사망을 피할 수가
없다. 사망은 죄 값으로 왔고, 죄는 율법을 어겨서 죄가 된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이 하늘 보좌 내놓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준행하시고 의를 이루셨으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죄인들의 죄 값을 다 담당하셨고,
죽은지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믿는 사람들에게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을 주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죄를 다 용서하
시고 사망을 이겨내게 하셨으며,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천국복락을 누리게 하셨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천국잔치를 베푸신 목적을 이루셨다.
이제 이런 지극하신 사랑을 입은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천국잔치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살을 먹고(믿고) 예수님의 피를 마셨다.(믿었다)
그러나 근본의 믿음위에 매일 매일의 삶에서 이 구속의 은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며 더해 나가야 한다.
또한 천국잔치에는 참여했으나 아직도 음료와 음식을 먹지 못
한 사람은, 내 죄 값 대신 희생하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믿어야
한다. 잔치에 참여하여 음식과 음료를 안 먹으면 되겠는가?
➁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믿음의 결과에 대한 아름다운 소망, 말씀을 순종한데 대한 상
을 바라보는 소망, 천국에 영광이 찬란한 축복의 소망하는 등,
여러 소망을 가지고 기쁘고 즐거움으로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➂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와 그
성도들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회사나
직장이나 사업을 사랑하고, 민족과 국가를 사랑하며, 우리와 관
계된 모든 것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 제일은
사랑이라. 한 평생 살고 남는 것은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며
사랑한 것뿐이며, 또한 이것만이 우리에 영원한 축복이 된다.
2012-02-27 PM 2:12:14
2012. 2. 19 기쁨의 지경을 넓혀라
제 목 : 기쁨의 지경을 넓혀라
성경말씀 : 누가복음 6 : 20 - 23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일에만 기뻐한다.
그러나 좋은 일에만 기뻐하는 것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나
무신론자나 미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하는 일이다.
천국에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뻐하는 일의 지경
곧 기쁨의 범위와 한계를 넓혀서 보통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
그런 일까지도 기뻐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 말씀에 나타난 기쁨의 때를 보면,
첫째, 미움을 받을 때 기뻐하라.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기독교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한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면, 그 때는 슬퍼하거나 갈등을 할 때가 아니
요 깡충깡충 뛰면서 기뻐하라는 것이다.
둘째, 사람들로부터 멀리함을 당할 때 기뻐하라.
오늘날 주위 사람들로부터 멀리함을 당 하고 소외당하고
왕따를 당하게 되면 그로 인해 괴로운 나머지 죽음까지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별로 잘못한 것도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소외를 당한다면 그 때 기뻐하라는 말씀이다.
셋째, 욕을 먹고 모함을 받을 때 기뻐하라.
사람이 잘해서 욕을 먹을 때도 있고 모함을 당할 때도 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전도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인생 최고의 잘하는 일이거늘 많은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욕을 하기도 하고 저주와 모함을 한다.
그때 억울해 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기뻐 뛰놀라는 말씀이다.
넷째, 악하다 하며 버림을 받을 때 기뻐하라.
성삼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며 진리 말씀대로 나가면
사람들은 자기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악하다고 정죄한다.
우상을 섬기지 않고 잡신 미신을 배척하고 참 된 것을 추구
하고 나가면 편협하고 배타적이요 악하다고 비방을 한다.
도덕적으로 성품이나 어떤 언행이 악해서가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자기들과 다른 생활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악하다고 하며
친교를 거부하고 버리는 것이다. 그 때 갈등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알아주시겠지” 하고 기뻐 뛰놀라는 말씀이다.
다섯째, 채찍을 맞을 때 기뻐하라 (행:40-42).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심과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이심을 증거하며,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유대교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한다고 복음을 전할 때에,
유대교 지도자들인 사두게인 바리새인들이 사도들 일행을 잡아
채찍질하며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위협을 하고 놓아주었다.
이때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채찍을 맞고 매를 맞고 능욕
당할 것을 아파하고 괴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 때문에 매 맞게 된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여섯째, 병이 있을 때 기뻐하라 (고후12 : 8-10).
사람이 건강하다가 병이 들기도 하고, 이유도 모르게 아픔을
당하기도 한다. 사도 바울도 눈병이 있었다. 눈가에는 눈물이
질질 흐르고 눈곱이 너덜너덜 붙어있고, 그걸 떼어내려면 눈이
아프기도 하고, 눈은 침침하니 잘 안보이고, 이러하니,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으로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눈병이 나을 수 있도록 주님께 세 번 간절히 기도드렸는데
주님께서는 눈병을 낫게 해 주신 것이 아니고,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시며 눈병을 그대로 감당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님의 뜻을 깨닫고는 사도 바울은 도리어
자기에게 눈병이 있는 것을 크게 기뻐하였다.
일곱째, 괴로움 당할 때 기뻐하라 (골로새 1:24)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당하는 괴로움
을 기뻐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인
교인들을 위하다가 영, 육간에 당하는 괴로움이 있는데, 그것을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였다.
가족들을 위하여 당하는 괴로움, 이웃을 위하여 당하는 괴로움,
사를 위하다가 당하는 괴로움, 하나님의 교회와 그 성도들을
위하다가 당하는 괴로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다
당하는 괴로움이 있다면 우리도 이런 괴로움을 기뻐하자.
여덟째,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났을 때 기뻐하라 (야고보서 1:2)
시험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것이다.
그러나 그 여러 가지 나쁜 일을 만났을 때 잘 참고 기뻐하라는
말씀이다. 여러 가지 시험, 여러 가지 나쁜 일을 당했지만, 그
일에도 주님의 선하신 뜻이 있는 줄 알고 기뻐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하여 우리가 기뻐하는 범위와 한계, 기쁨의 지경을
넓혀서, 성삼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드리고, 우리의
삶이 현재에서나 천국에서나 더욱 행복한 삶이 되어야 하겠다.
2012-02-21 AM 9:30:26
능력의 종도 잘못하면 징계 받는다.
제 목 : 능력의 종도 잘못하면 징계 받는다.
성경말씀 : 신명기 32 : 48 - 52
기독교 역사에서 신, 구약을 막론하고,
“모세”처럼 능력 있게 쓰임 받은 종이 없다.
물론 여러 선지자와 베드로나 바울 사도도 크게 쓰임 받았지만
능력 면에서는 모세를 능가할 만한 종이 없다.
400여 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데 하늘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바로 왕과 그
세력들을 굴복시키는 능력에 쓰임 받았으며, 그 출렁이며
넘실대는 홍해 바다를 지팡이를 들어 갈라서 마른 땅이 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한 사람도 상함 없이 건져내고, 이집트
군병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홍해 바다에 수장시킨 역사,
하늘에서 만나를 반석에서 생수를 내서, 장정만 60만 노약자와
여인네까지 최소한 200만 ~ 500만의 대부대를 먹이고 입혀
40 여년의 광야 생활 끝에, 이제는 요단강 건너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눈앞까지 인도했다.
모세가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준비한지 어언 80
여년, 이제 그 땅을 바로 눈앞에 두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 너는 그 땅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 한다” 하신다.
1~2년이나 5~6년도 아니고 80년 넘게 키워온 모세의 꿈을
하나님께서는 이루어주시기는커녕 오히려 막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만능으로 역사하였으면서도
왜 이렇게 모세의 꿈을 막으셨는가?
범죄 했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을 믿지 아니했다. (민 20:12상)
신 광야 가데스 므리바 에서 먹을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하고 불평할 때에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아 ! 물을 내라” 이렇게 명령하여
물을 내어 마시도록 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신과 원망에 분을 내어,
“패역한 너희여 !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반석을 쳐서 물을 내랴”
하면서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꽝, 꽝 쳐서 물을 냈다.
외부적으로 보면, 모세를 통한 능력이 또 한 번 나타났다.
그 넓고 단단하던 반석이 틈을 내어 생수가 강물처럼 넘쳤다.
백성들은, 아~ 하~ 모세의 능력을 봐라 ! 감탄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믿음 없다고 정죄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왜 믿음이 없다고 하셨는가?
모세가 성삼위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능력을 믿고
이제까지 제일 능력 있는 종으로 쓰임 받고 역사를 이뤘지만,
이 사건에 대하여서는 믿음 없이 행하였다는 것이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하나님께서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하셨는데,
모세는 “반석을 지팡이로 쳐서” 물을 낸 것이다. 이렇게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은 것은,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믿지 않은 것으로, 그렇기에 믿지 아니 했다고 정죄 하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 가지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크게 쓰임 받았다 해도, 어떤 사건에서 그 사건과 그때에 맞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린다면 그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믿지 않은 것이 된다.
둘째,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했다. (민 20:12 하)
모세가 “패역한 너희여 들어라”하며 반석을 쳐서 물을 낸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하며 반석을 명해서
물을 냈더라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자하심을 나타내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갔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이 말씀은 오늘날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뜻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이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종으로 쓰임 받고 있다.
받은 은사도 있고 능력도 있어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의 위 사건에서처럼 잘못하는 일은 없는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행사하면서도
어떤 일에서는 그 일에 합당한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사람 자기 뜻대로 하고 있지는 않은지?
행하는 결과는 능력이 나타나고 역사가 이루어진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이
나타나지 않게 하면 그것은 잘못이며 죄가 되는 것이다.
모세가 신 광야 가데스 므리바 물에서 이 사건 때와
본문 신명기에서 모세에게 그 죄를 물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라는 보되 들어가지는 못한다는 징계 시점은
약 20년 차이가 있다. 모세가 잘못을 하고 20년간 잘 지냈지만
2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그 잘못의 책임을 물으신 것이다.
크게 쓰임 받은 능력의 종도 잘못하면 징계하신다.
2012-02-13 PM 4:07:39
2011. 2.5 선한 일을 사모하라
제 목 : 선한 일을 사모하라
성경말씀 : 디모데전서 3 : 1 - 7
본문 1절 말씀에 “선한 일을 사모하라” 하셨고,
또한 “선을 행할 줄 알고도 선을 행치 않으면 죄라” 하셨다.
선이란, 착하고 좋은 것인데 근원적인 선이 있고 행위적인 선이
있으며, 근원적인 악이 있고 행위적이 악이 있다.
근원적인 선이란, ➀ 여호와 하나님을 친근히 하며,
➁ 여호와 성삼위 하나님만을 온전히 경외하는 것이다.
이 근원적인 선이 잘 이루어 질 때, 행위적인 도덕적 윤리적
선도 잘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 근원적인 선이 안 이루어지면
이는 근원적인 악을 이루는 것으로, ➀ 하나님을 버리게 되고
➁ 하나님만을 경외하지 않고 떠나서, 온갖 잡신 미신을 승상
하고, 행위적으로 도덕 윤리적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미 근원적인 선을 이루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행위적으로 도덕적 윤리적이며 영적인 선을
이루어 나가면 되는 것인데, 본문 말씀에 의거하면,
첫째, 하나님의 교회에서 직분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1절)
하나님의 교회에는 여러 가지 직분이 있다.
장로요 목사인 감독에서부터 처리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
집사, 권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분이 있다.
믿음의 사람으로서 이러한 직분을 얻으려고 힘쓰는 것이
바로 선한 일을 사모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회사에 들어갔다. 1년 3년 5년 시간은 가는데,
그래, 어영부영하다보면 시간은 가겠지, 월급 타는 만큼 일이나
하고 그냥 저냥 지내면 되겠지, 하는 것 하고,
아니야, 어차피 이 회사에 들어왔으니 열심히 일해서 계장도
되고, 과장도 되고, 부장도 되고, 전무도 되어야지, 결심하고
성실히 노력하여 업적을 이루어 간다고 할 때에, 이 둘 중에
누가 선한 일을 사모하며 이루어 나가는가? 물론 후자이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시간 나는 대로 영부영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그래, 나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교회에 여러 모양의 직분을 얻어 믿음의 업적을 이루어야지,
하는 것 중에 과연 어떤 사람이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인가?
논할 것도 없이 후자인 것이다.
“직분을 얻으려하면”은 원어로 보면 현재 진행형 문법으로
직분을 얻지 못한 성도(聖徒)도 직분을 얻으려고 현재적으로
항상 노력한다는 뜻이며,
이미 직분을 얻은 성도도, 그 직분에 부끄러움이 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충성 노력한다는 뜻과, 아울러 지금보다 더 큰
직분을 얻으려고 더욱 충성하고 헌신한다는 뜻이다.
둘째, 준비하는 것이다.(2~12)
어느 세계에서든지,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서든지, 시간만
가면 승진을 하고 직급이 올라가는 시대는 이미 지났고, 합리
적이 아니다. 시간이 흐른 만큼의 업적과 공로가 있어야 하며
자격을 갖춰야만 하는 것이다.
➀ 책망할 것이 없고 : 비난받을 것이 없으며,
➁ 한 아내의 남편이며 :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어야 하며,
➂ 절제하며 : 잘못 된 일과 잘못된 습관을 끊고 바로하며,
➃ 근신하며 : 자기 자신의 언행심사를 잘 가다듬으며,
➄ 아담하며 :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잘 가꾸며,
➅ 나그네를 대접하며 : 어려운 이웃을 잘 도와주며,
➆ 가르치기를 잘하며 : 자신이 모범을 보이며 가르치고,
➇ 술을 즐기지 않으며 : 술 옆에도 가까이 하지 않으며,
➈ 구타하지 않으며 : 말과 행위의 폭력이 없이 온유하며,
➉ 오직 관용하며 : 이해심이 많고 너그러우며,
⑪ 다투지 않으며 : 자신을 비우고 져주기고 하며,
⑫ 돈을 사랑치 않으며 : 돈을 정당하게 벌고 합당하게 쓰며,
⑬ 자녀를 잘 다스리며 : 수신제가 후 치국평천하
⑭ 새로 입교한 자가 아니며 : 신앙의 경험과 연륜이 있으며,
⑮ 의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 불신자에게서도 인정받으며,
⑯ 일구이언 하지 않으며 : 말에 신중을 기하고 책임을 지며,
⑰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 성경말씀대로 하면
양심이 깨끗해지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만 주신 비밀스런
믿음의 은혜가 있는데 이러한 성도이다.
위와 같이 자신의 신앙의 인격과 생활을 잘 갖추고
실력을 키워서 직분에 합당한 준비를 하는 것이 선한 일이다.
셋째, 시험을 당해보고 통과하는 것이다. (10절)
옛말에, 집안에 우환이 있어야 효자를 알 수 있고
나라에 난리가 일어나야 충신을 알 수 있다 하였다. 평소에는
다 효자이고 충신인데 우환이 일고 난리가 나면 진짜가 누군지
나타나듯, 시험을 당하고 이런 일 저런 일 당해봐야 그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험을 당해보고 잘 통과하는 것은 선한 일인 것이다.
위와 같이 하여 직분을 잘 감당하고 충성 봉사 헌신하면,
하늘나라에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게 되고,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
2012-02-06 AM 10:23:43
2012. 1. 29 얼굴을 숨기기도 하시는 하나님
제 목 : 얼굴을 숨기기도 하시는 하나님
성경말씀 : 신명기 31 : 14 -18
능력의 종 모세도 죽음의 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호수아와 함께 나오라 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잘 살게 될 때에,
하나님을 버리고, 잡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하나님과의 말씀
으로 맺은 언약을 거역하고 나갈 것을 예고하시며,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고
그들에게 얼굴을 숨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겠다.”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을 창세전에 이미 선택하셨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 안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는
어떤 경우에도 변치 않고 천국 백성으로서 지위가 유지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하나님을 버리고 잡신을 섬
겼기에,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시는데, 이는 이
스라엘 백성들이 육신적으로 험악한 일들을 만나서 파산되고
망하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뜻이다.
“얼굴을 숨기신다.”는 뜻은
사람도 자기 맘에 들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얼굴을 보여주고
맘에 들지 않은 싫은 사람에게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듯, 우리의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시는데 단순히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다기보다는 다음과 같이 행하시겠다는 뜻이다.
첫째, 일상생활에서 도와주지 않으신다.
우리의 일상생활, 즉 보통으로 하는 일들, 즉 밥을 먹거나
물 한 모금 마시는 일에서부터, 길을 걸어 오가며, 자동차를
운행하거나, 가정이나 직장에서 맡은 일을 감당하고, 의자에 앉
고 일어서며, 잠을 자거나 호흡하는 일 등 까지, 어느 것 하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어렵게 되고 헛수고로 끝나게
되는데, 이러한 일상생활에서의 여러 가지 일들을 도와주시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밥을 먹거나 체하기도 하고, 물 한 모금 마시다가
사래 들리기도 하고, 길을 가다 넘어지기도 하며, 의자에 앉
고 일어서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한다. 또한 수고하고 노력한
일들에 열매가 없기도 하며, 불행한 사건 사고 휘말려서 물
질의 손해와 많은 고통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천하만사 어떤 일이든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이다.
둘째, 영적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사랑과 그 은혜로 인하여 산다.
얼굴을 숨기시겠다는 뜻은, 영혼이 잘 될 수 있는 영적 은혜를
주시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들어도
그 말씀으로 인한 깨달음이나 즐거움도 없고, 예배에 기쁨이나
감사도 없으며, 장래에 대한 희망이나 소망도 없이, 심령이 답
답하고 쓸쓸하며, 신앙생활을 해도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어
의례적으로 마지못해 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셋째, 기도에 응답을 안 해 주신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라” 하셨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셔서 우리가 기도하면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 말씀을 버리고
잡신미신을 섬기는 사람에겐 그 사람의 기도를 받으시기는커녕
가증하게 여기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않으신다. (잠 28:9)
넷째, 신적 역사를 베풀어 주시 않으신다.
“신적 역사”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절대
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베
풀어 이루어 주시는 것을 뜻한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으며, 홍해 바다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
들을 진퇴양난에서 건지신 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시고,
반석을 쳐서 물을 먹이신 일등,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 두 바구니를 거두었으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죽은지 나흘이 돼서 썩어서 냄새가 나는
무덤에 장사한 나사로를 살리신 일등, 사람으로서는 전혀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전폭적으로 이루어 주실
때가 있는데 이런 신적 역사를 베풀어 주지 않으신다.
위 말씀과 성경에 모든 말씀은 당시의 사람들을 비롯하여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주셨으며 모든 인생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이제 우리는 성삼위 하나님만을 섬기며, 잡신 우상을 배척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서
익히고 또 읽히며 기쁘고 즐거움으로 순종해 나가야 한다.
그리하며 1) 일상생활에서 잘되도록 도와주시고,
2) 영혼이 잘되는 영적은혜 믿음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3) 우리 기도에 응답하여 우리 소원을 들어주시고,
4) 우리는 하지 못할 전능하신 신적 역사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영 육간에 행복을 누리게 하신다.
2012-01-31 AM 11:19:27
2012.1.22 생명과 복을 선택하라
제 목 : 생명과 복을 선택하라
성경말씀 : 신명기 30 : 15 - 20
인생의 삶을 한 편으로 말한다면,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어느 것이든 선택해야 하는
선택의 결단이 계속되는 것이 인생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매일 매시간 매사건마다 좋은 것을 선택하느냐, 나쁜 것을 선
택하느냐, 그 어떤 것이든 선택을 해야 하고, 이 선택을 잘했
느냐 못했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에 있어 삶과 죽음, 행복과 불
행이 결정 되므로 언제나 좋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앞길에
생명과 복, 사망과 화, 받을 길을 놓으시고 인생들로 하여금
사망과 화를 버리고 생명과 복 받을 길을 선택하라 하신다.
생명과 복을 받을 선택은 ?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16절 상)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되, 하나님을 사랑하여 믿고 섬
기느냐, 하나님이시니까 그냥 믿고 섬기느냐 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난다.
고전 13장 말씀에, 사람들끼리의 관계에 있어서도,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말과 방언을 하여도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고,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며, 자기의 모든 재산으로 구제하고 몸을 불사
르게 내준다 하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했다.
하나님과의 신앙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신앙하고 따르는 것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믿
고 따르는 것과는 은혜와 복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난다.
부부간에도 남편과 아내로 엮어졌으니까 그냥 사는 것과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은 그 행복과 삶에 질에서 많은 차이가
나고, 직장에 다니는 것도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것과, 그 직장과 자기의 하는 일을 사랑해서 다니는
사람과는 그 행복과 성과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우리가 우리에 삶에 있어서 생명과 복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 첫째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 어려울 것 없다. 그냥 하나님을 좋아
하고 또 좋아하면 된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좋고,
그 말씀을 읽고 듣고 살피기를 좋아하며, 기도하기를 좋아
하고 찬송하기를 즐거워하며, 그저 하나님과 교회에 관계된
일이라면 그냥 다 좋아하고 함께 하며 협력하는 것이다.
둘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16절 하)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셨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인 신, 구약 성경 66권의 말씀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서 즐거움으로 순종하고 지켜 나가는 것이다.
말씀을 순종하면 생명을 얻고 말씀을 순종하면 행복을 누린다.
사망과 화를 받을 선택은 ?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다. (17절 상)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여기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반항
하여 말씀을 톡톡 튕겨내며 반발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의
생각대로 하고자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걸림돌이 될 것 같아
아예 마음 문과 귀를 닫고 듣기를 거부하며, 자기 생각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다.
둘째,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다. (17절 하)
성삼위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통해서도 살고 죽기도 하며,
복이나 화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유혹을 받은 것이다.
어떤 미신적인 풍속이나 사주팔자, 또는 풍수지리나 잡신 숭배
등, 이런 것들이 사람을 잘 살게도 하고 못 살게도 한다고 여겨
그 풍속을 좇거나 다른 신들을 섬긴다면 이는 잘못된 선택으로
곧 사망과 저주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
생명과 복 받을 길을 선택했을 때 받는 복은 무엇인가 ?
1, 생존의 복을 받는다. (16절 중)
생존의 복이란, 그 사람의 삶이 아름답고, 평화롭고, 즐겁고,
보람 있으며, 가치 있고, 건강하게 잘 살게 되는 복이다.
2, 번성의 복을 받는다. (16절 하)
개인적으로 번성하고, 가문이 번성하며, 사업이나 직장 일이
잘되어 번성하고, 영적으로 믿음의 일이 잘되어서,
영혼이 잘되고, 영적열매가 잘 맺혀 나가는 복을 누린다.
3, 현재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복을 받는다. (16절 하)
이것을 해도 잘 안되고 저것을 해도 잘 안되고, 삶의 터전
이나 근거지를 이리 옮겨도 잘 안 되고 저리 옮겨도 잘 안
되는 그런 것이 아니고, 현재 활동하며 살고 있는 그 곳,
현재 자리 잡고 있는 그곳에서의 일이 잘되어 지는 복이다.
그러므로 현재 하고 있는 일이나 현재의 삶의 터전에서
방황하거나 고민 할 것 없이 순조롭고 형통하게 잘 되어지는
복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에서 말 한 마디, 마음 씀씀이,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과 어떤 일을 분별하고 크게 활동하는 것 까지, 우리는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매일 매시간 선택해야 하는데,
생명과 복 받을 길을 선택하고 사망과 화의 길을 버려야 한
다.
2012-01-25 AM 9:22:28
2012.1.15 형통하게 되는 비결
제 목 : 형통하게 되는 비결
성경말씀 : 신명기 29 : 1 ~ 9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고 바라는 것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순조롭고 형통하게 잘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런 소원에 따르는 형통하게 되는 길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며, 설사 안다고 할지라도 아는 그대로
실행하려고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오늘 말씀에서 형통케 되는
비결을 말씀하셨는데 그 형통케 되는 비결을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는 마음, 보는 눈, 듣는 귀가
없어서, 말씀을 불순종 하는 일이 많음으로 질책을 받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 하며 원망 불평하던 20세 이상의 사람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40여년의
광야 생활 중에 다 죽고 말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우리 생각이나 형편에
맞든지 안 맞든지, 깨달음이 있든지 없든지, 순종하는 그대로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되는데, 그렇다하여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그 섭리를 보고 깨달음을 얻어서 행하게 되면 더 힘이
있고 역사가 많이 일어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지 못했던 것은 무엇인가 ?
첫째, 하나님 말씀이 전지전능하심을 깨닫지 못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려고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하나하나가 사람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였다.
홍해 바다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은 한 사람 상함도 없이
건너게 하시고, 이집트 군병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물속에 수장
시키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 역사,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말씀대로 반석을 쳐서 나온 생수를 먹고 본 이스라엘 백성들,
“아 ~하 ~ !! 우리 하나님과 그 말씀은 전지전능하시구나.”
라고 깨닫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어야 하는데,
이 깨달음이 없었기에 조금만 어려움을 당해도 근심 걱정하고
원망불평하며 말씀을 거역하고 인간의 꾀로 나갔던 것이다.
둘째,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요 행복임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인생들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칫 인생들의 삶을 얽어매고
간섭하는 것으로 알 수도 있으나 이거야 말로 어리석은 생각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만물과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
이고 생명이 행복하게 잘 살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명기 10:13)
“하나님의 말씀을 얻는 자에게 말씀은 생명이 되며 그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잠언 4:22)
셋째,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심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곧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님”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 값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사랑
하시느라고 주신 말씀들이며 우리들끼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주신 말씀들이다. 이러함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자기들을 괴롭히는 무거운 짐인 것처럼
받아들여 단 마음으로 순종하지를 못하고 거역했던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이 천국의 상금이요 영광임을 알지 못했다.
우리 인생들의 삶은 현실의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죽으면, 육신은 흙에서 취했으니 흙으로 돌아가서 소멸
된다 하여도, 사람의 영혼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가서 자기 죄 값의 형벌을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사람은
그 영혼이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으로 가서 영생과 그 영광
의 상급과 복락을 누리게 된다.
그때에 천국에서의 찬란한 영광과 상급을 누리게 되는 근거는
바로, 이 세상의 나그네와 같은 삶에서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바르게 배우고 익혀서 순종했느냐, 순종을 아니 했느냐,” 로
결정이 된다.
이 세상 인간세계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의 부패한 성질과 타락한
세상의 흐름은 믿음의 사람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걷지 못하게
가로 막으며 유혹을 하고 있다.
그렇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익혀서 순종하면,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형통하게 되고,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에, 그 말씀대로 순종한 일들이
말씀을 순종한 그 사람에게 상급이 되고,
영원토록 빛나는 찬란한 영광과 행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형통하고 행복이 되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2012-01-10 AM 9:46:22
2012. 1. 1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면 복이다.
제 목: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면 복이다.
성경말씀: 예레미야 42 : 1 - 6
먼저 본문 말씀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주전 586년 경,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10지파의 나라는
앗수르의 침략으로 주전 721년에 이미 멸망을 당했고,
남쪽 유다와 베냐민 2지파의 유다나라도 바벨론의 침략으로
망하게 되어, 유다의 왕이 사로잡혀 두 눈이 뽑혀 쇠사슬에
묶여 잡혀갔고,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갔
으며 유나 나라에는 일부의 백성들만 남아 있었다.
바벨론 왕이 유다 사람들 중에서 “그다랴”라는 사람을 총독
으로 세워서 유다의 남은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이때에
유다 왕족 중에 “이스마엘” 이라는 사람이 “그다랴” 총독을
죽이고 자기가 지도자가 되어 유다 백성을 “암몬”나라로 끌어
가려하는데, 이미 죽은 그다랴 총독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요하난”이라는 지도자가 그다랴 총독을 죽인 왕족 이스마엘을
쳐 죽이고, 그 남은 백성들을 이끌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나아와 말하기를,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들의 갈 길과 할 일을 지시해 준다면 그 말씀대로 따르
겠다고 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이다.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않음은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러하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
시고 축복으로 주신 말씀이기에 그 말씀이 인생들에게 좋고
좋지 않음을 물론하고 청종(聽從)하면 복이 된다.
그러나 정작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을 때, 유다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고 거역하여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거기서 칼과 기근과 염병
으로 비참한 죽음들을 당하고 말았다.
“왜 그렇게 되었을 까 ?”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
지만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자기들에게 지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들의 생각과 자기들의 형편에 맞지 않았지 때문
이다. 그리하여 자기들의 생각에 좋을 대로, 자기들의 형편과
처치에 좋은 대로 행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현재 우리 삶에로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첫째, 우리 생각에 좋지 않아도 청종하면 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옮고 바르다 하면서도
청종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 말씀은 좋은데 그 말씀이 자기
들의 생각에는 맞지 않고 좋게 여겨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유다 백성들의 생각에는 바벨론 왕이 세운 그다랴 총독을
유다 왕족 이스마엘이 쳐 죽였으니, 바벨론 왕이 그 복수를 하
려고 다시 유다나라를 침략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유다 땅을 떠나지 말고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들의 생각을 더 좋게 여겨서 이집트로 내려 간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그대로 불행한 삶에
비참한 죽음뿐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어리석은 것이 사람보가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 (고전 1:25)
그러므로 현재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생각에 마땅치 않고
좋지 않게 여겨져도 그 말씀대로 청종만 하면 청종하는 모든 사
람에게 축복이 된다.
둘째, 자기 형편에 맞지 않아도 말씀을 청종하면 복이다.
사람들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지 하면서도
자기들의 환경과 형편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씀을 불순종
한다. 당시 유다 백성들의 환경도 바벨론과의 3년 전쟁으로
집도 무너지고 성곽도 무너지고 논밭도 잡초가 무성하여 폐허
그대로였다. 하나님의 말씀은“유다 땅에서 살라”하시지만,
그런 좋지 않은 환경에서 어떻게 폐허를 복구하고 살란 말인
가 ? 하고 자기들의 환경과 형편에 마땅치가 않음으로 말씀을
거역하고 이집트로 내려갔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의 환경과
처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씀을 불순종한 결과는 비참한 죽음뿐
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환경과 처치에 맞지 않아도 말씀을 청종하면 축복이라는 것이다.
셋째, 이해가 안 되고 깨달음이 없어도 말씀을 청종하면 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면서도,
이해가 안 되고 깨달아지지 않아서 순종을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가 되고 깨달아져서 순종하는 것
이 아니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무조건으로
청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이
해가 안 되어도 순종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축복이 되고
순종하여 축복을 받고 보면, 아~하!! 이래서 말씀을 순종하라
하셨구나 !! 하고 깨달아지고 이해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축복을 받고 싶으면 말씀을 청종하면 된다.
그러나 축복을 받기 싫으면 말씀을 거역하고 나가면 된다.
(1월 8일) 비밀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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