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설교요약] 2011년 7월-12월 설교요약 | 조회수 : 1655 |
성경본문 : | 설교일 : 2011-07-03 |
설교자 : 김성진목사 | |
첨부파일: 2011설교요약-2.hwp(103K) |
~2012-01-02 AM 9:47:15
2011.12. 25 평강의 왕을 모셔라
제 목: 평강의 왕을 모셔라
성경말씀 : 이사야 9 : 1 - 7
즐겁고 복 된 성탄절이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왜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축하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채
그냥 선물을 주고받고 분위기와 쾌락으로 들떠서 지나간다.
이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라도 바로 알고 기뻐해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여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때 당시 유다 족속들은 하나님 은혜를 배반하고 잡신을
섬기며 안식일을 범하여 부정하고 타락된 길을 걸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비롯하여 여러 선지자들을 세워
유다 족속의 타락을 경고하며 바로 설 것을 말씀하셨지만 유
다와 이스라엘 족속은 거역하고 나갔다.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징계로 주변 강대국들이 유다를 침범토록 하여,
유다 민족들이 고통과 멸시를 당하고, 답답하고 캄캄한 흑암
의 생활을 하게하고, 그 죄 값으로 인한 사망의 그늘진 생활
을 당케 하고, 압제자들로부터 무거운 멍에와 채찍과 막대기
로 맞게 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전에 고통을 하던 자에게 흑암이 없게 하고”
“멸시를 당하던 자를 영화롭게 하고”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게 하고”
“사망에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고”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막대기를 꺾으셔서”
“추수할 때의 즐거움과 승전 물을 나누는 즐거움을 더하셨다”
어떻게 이렇게 하시는가?(6~7)
“ 한 아기,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보내신 것이
다.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은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고 : 천
상천하 만물을 경영하고 다스리시는 왕이시고, 기묘자라:신
비한 분이시고, 모사라 : 지혜가 충만하신 분이고, 전능하
신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고, 영존하시는 완전무결하신 분
이시며, 평강의 왕이신 것이다.
이제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평강을 주시
고 어떻게 평강의 왕이 되셨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우리 죄와 그 형벌을 다 해결하시고 평강을 주셨다.
모든 인생들은 그 누구나 다 죄인이다.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원죄”가 있고, 자신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저지르는 자범죄(自犯罪)가 있다.
사람에게 왜 고통이 오고, 흑암이 오고, 무거운 멍에와 사망이
왔는가? 왜 멸시가 오고, 채찍과 막대기가 왔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죄 값으로 왔다.
또한 그 죄값으로 육신의 죽음과 더불어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지옥 불바다 형벌을 받아야 하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대신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담당하
시고 해결하여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는데, 그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날이 바로 성탄절인 것이다.
하늘 보좌를 내놓으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형벌, 즉 지옥불바다 형벌까지 다 담당하고 해결하여
평강을 주셨으니, 그 예수님의 탄생의 절기에 어찌 우리가 즐거
워 하지 않으랴!! 과연 기쁘고 축복된 성탄절인 것이다.
둘째, 마귀의 궤휼과 권세를 깨뜨리시고 평강을 주셨다.
이사야 당시에도 하나님을 불신하는 사람들에게는 악령이
술수를 부렸고, 오늘날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전에는 사탄,
악령이 술수를 부린다.(엡 1:1-3)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탄, 마귀, 악령, 귀신 등의 술수를 깨뜨리고
정복하여,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마귀의 술수와 권세에서 해방
시켜 평강을 주셨고, 귀신을 제압할 능력도 주셨다. (막16:17)
셋째,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새 생명으로 평강을 주셨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피할 수가 없고,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 죽으신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
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하셨을 뿐만 아니라, 주님
을 믿는 모두에게도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생명을 주셨다.
사람이 왜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무서워하는가?
가장 큰 원인은, 위에 말씀한 죄로 인한 징벌과, 마귀 사탄의 술
수와, 그 죽음으로 인한 지옥 형벌과 고통의 공포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과
그 죽으심으로 단 번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사죄의 은총과, 마귀 귀신을 제압할 권세와, 죽음을 이기는 부활
의 생명을 주셨으니 이런 축복과 평강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그렇기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 찬송을 하며,
평강의 왕이신 우리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2011-12-26 PM 5:42:46
2011.12.18 너희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제 목 : 너희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성경말씀 : 고린도후서 13 : 5 - 9
“너희가 믿음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려진 자니라.”
위 5절의 “너희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라”는 말씀의
“시험하고”의 원어 페이라제테는
시험하다, 유혹하다, 부추기다, 시도하다, 등의 뜻으로
창세기 2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 단어이며
마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에도 같은 단어요 문법이다.
“확증하라”의 원어 도키마제테는
시험하다, 분별하다, 증명하다, 등의 뜻으로, 두 단어가 다
2인칭 복수 명령법 현재 능동태 동사로, 어느 개인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
이며, 1회만 믿음을 시험해 보고 확증하라는 뜻이 아니고,
현재적으로 계속해서 반복하여 자신이 믿음에 있는지 시험하
고 확증하라는 뜻이며, 수동적으로 마지못해서가 아니고 능
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이다.
위 말씀은 당시의 고린도 교인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
곧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주신 명령으로 우리도 우리 믿음
이 어느 정도인지 계속하여 자신이 시험해보고 확증하여 나
가라는 말씀인 것이다.
또한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해야할 이유를 말씀하셨으니,
①믿음을 시험해 보지 않고 확증하면 버려진 자다.
5절 끝에 “버려진”의 원어 의 아도키모이 는
자격을 상실하다. 실패하다, 가치 없는, 등의 뜻으로,
자신의 믿음이나 하나님께 상 받을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무
관심한 사람으로, 상 받을 자격을 상실하고, 실패 했으며, 가
치 없는 믿음의 소유자라는 뜻이다.
② 바울도 자기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면서 쓰임 받는다.
6절에, 우리가 버려진 자가 아닌 것을 알라, 는 뜻은 바로
사도 바울 일행도 자기들이 믿음에 서 있는가를 수시로 시험
해보고 확증하면서 가치 있고 상 받을 믿음으로 전진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는 뜻이다.
③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7절)
자기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사도 바울이 자신에 좋은 믿음을 나타내며 자랑하려거나,
못하는 사람을 멸시하거나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각자
시험을 통하여 자기 믿음의 정도를 알아서, 악은 하나씩 버리
고 선은 하나씩 더해 나가기 위함이라는 갓이다.
④ 진리를 위해서이다. (8절)
각 사람이 자기 믿음을 시험해 보고 확증해 보는 것은
곧 진리를 위해서이고 진리 말씀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서이다.
⑤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이다. (9절)
믿음을 시험해보고 확증해야 하는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상 받을 자격자로 온전하게 만들
어지는 것이다. 믿음을 시험하고 점검하면서 자신에게 숨어 있는
부정하고 불완전한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서 자신의 믿
음을 점점 온전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믿음을 시험해 보고 확증해볼 기준은 무엇인가 ?
첫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자신이 성경 말씀을 얼마나 배우고 익히며, 과연 현재 생활
에서는 어느 정도나 실천하고 순종 하는가 ? 이것으로 자기
믿음을 시험해 보고 점검하고 확증해 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언행심사의 생활을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아 점검한다.
셋째, 고난으로 시험한다.
고난, 역경, 실패, 궁핍, 중한 질병을 만났을 때,
그에 좌절하느냐 ? 아니면 주님을 믿고 의지하여 극복하느냐?
원망불평이냐 ? 아니면 감사 찬송이냐? 로 점검한다.
넷째, 전도 활동으로 시험하고 확증해 본다.
확실한 것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 형벌이다.
그렇다면 내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들을 불신상태로 그대로
둘 것인가 ? 기도하고 전도하고 사랑해서 믿음의 길로 인도해
야 한다. 그러나 이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해야한다.
하나님을 사항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내 믿음의 성장을 위해.
2011-12-19 AM 11:36:12
2011. 12. 11 축복을 하고 축복을 받아라.
제 목 : 축복을 하고 축복을 받아라
성경말씀 : 사무엘하 6 : 18 ~ 23
다윗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통합 왕이 된 후,
여러 가지 할 일이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 먼저 행할 일로
하나님의 궤, 즉 언약궤를 왕궁으로 모셔 오는 일이었다.
언약궤에는 십계명 두 돌 판, 제사장 아론의 싹 난 지팡이,
하늘에서 내려준 양식 만나 항아리가 들어 있었다.
이 언약궤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빼앗겼으나.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
시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언약궤 모시기를 감당치 못하고
다시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모셔 보냈다.
그 후로 이스라엘 산골에 사는 아비나답이란 사람이 언약궤를
모시고 20여년이란 세월이흘렀다.
이를 죄송스럽고 안타깝게 여긴 다윗 왕이 언약궤를 왕궁으
로 모셔 오는데 처음에는 실패를 하여 사람까지 죽게 되었고,
두 번째로 다시 모셔오는데 하나님의 법도와 말씀에 맞게 궤를
모시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허락하시고 많은 은혜를 내
려 주셨다. 이에 다윗 왕이 너무도 기쁘고 감사해서 언약궤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모셔다가, 왕궁 존귀한 처소에다
안좌시키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겼다.
다윗 왕이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여 함께한 백성에게 축복을
하고 떡과 고기를 나누어 주니, 백성들도 감사하며 자기 집
으로 돌아갔고, 다윗 왕도 이제 자기 가족들에게 축복을 하러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18~20절)
위 말씀을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오늘 말씀에 핵심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위 말씀에서
1) 다윗 왕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했다.
2) 자기 가족에게 축복하러 집으로 돌아갔다.
성경 역사를 보면 선지자나 제사장은, 백성이나 믿음의 사람
들에게 축복을 많이 했지만, 왕으로서는 백성이나 자기 가족
에게 축복한 예가 드물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이
백성과 가족에게 축복 한 일을 받으시고 말씀으로 까지 기록
하셨으니, 이는 곧 다윗 왕뿐 아니라 후세의 모든 믿음의 사람
들도 다윗처럼 축복하는 삶을 살라는 뜻인 것이다.
자칫 다윗 왕에게만 이런 축복 권을 허락하신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다윗뿐만 아니라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
모두에게 이런 권세를 허락하셨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베드로전서 2:9) 이 말씀에 의거하여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축복할 수가 있다.
다윗이나 위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확신해야 할 것은
첫째, 나에게도 축복할 권세가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는 그 누구든지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다른 사람이나 가족들을 축복할 수 있는
특별한 권세가 있다.
우리의 2011년도 교회 표어 말씀이 축복하는 말씀인데,
여러 성도들이 생각하기를 그냥 교회 표어로 정하고 낭독하니까
자기도 따라 하는 것이지 정작 자신에게 이렇게 축복할 권세가
있음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무엇보다도
“나에게도 축복할 권세가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며,
이 특권을 사용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축복을 해야 한다.
둘째, 믿고 축복해야 한다.
믿고 축복한다는 것은,
“나 같은 사람이 축복을 해도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신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다. 대게 자신의 삶의 부족함이나 부정함을
생각하여 나 같은 사람이 축복한다고 해서 무슨 축복이 올까?
하고 의심이나 회의를 가진다. 그렇다! 우리 자신은 부정하여
축복을 내려줄 권세나 능력이 없다. 그러나 내 능력이나 내
권세로 축복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축복할 권세만 있고,
정작 축복을 내려주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셋째, 진정으로 축복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할 권세를 주셨고, 나 같은 사람이
축복을 해도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려 주시니, 이제 우리가 진정
으로 축복을 해야 한다. 진실로 우리 마음의 정성을 다해 상대
가 축복 받기를 소원하며 진정한 마음으로 축복하는 것이다.
상대가 축복 받을 만한 자격이 없거나, 나와의 관계가 악화
되어 있어도,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도 축복 하라 하셨으니,
우리는 상대를 가리지 말고 주위 모두에게 축복을 해야 한다.
상대가 우리의 축복을 받을 만한 자세를 가졌을 때는 우리의 축
복함으로 상대가 축복을 받으니까 좋고, 상대가 우리 축복을
받을 자격이나 그릇이 못 될 때에는 우리가 빌어준 그 축복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하셨다. (롬 12:14, 마10:11-13)
시작을 축복으로 하는 것도 좋으나 한 해의 마무리를 축복하며
마무리하는 것 역시 좋은 일이다. 축복하는 사람이 되자.!!
2011. 12. 4 다윗이 왕이 되기 까지
제 목 :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
성경말씀 : 사무엘하 5 : 1 ~ 5
다윗 왕은 기독교 역사나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훌륭한 통치를 한 성군 중에 성군이다.
다윗의 환경은 그리 좋지가 못했었다.
다윗은 소년 때의 양을 치는 목동이었고,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을 세우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기름 부
을 때도 다윗의 일곱 형제만 그 자리에 참여 했고, 다윗은 그
축에도 끼지도 못한 막둥이로 그런 처지였다.
즉 다윗이 사람들에게는 기대할 만한 그런 인물이 못되어서
좋은 자리에서는 소외당하는 그런 형편이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의 바른 것을
보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소년으로 이스라엘의 제2대
왕에 예선되어 기름부음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다윗의 하나님 보시기에 중심이 좋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영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15세
쯤 되는 그 나이로도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왜냐면 7세에 왕이 된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왕하 11:21)
이러함에도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다윗은 30세에 유다 왕이 되고, 7년 후 37세에 이르러 비로소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었으니, 이스라엘 왕으로 선정된 후
22년쯤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실제적 이스라엘 왕이 된 것이다.
다윗 개인으로 보면,
15세쯤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을 그때에, 이스라엘 왕으로 바로
등극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다윗이 왕이 되지 못한 채로 22년쯤의 세월을 보내
도록 하신 분도 다름 아닌 우리 하나님이시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을까?
첫째, 다윗을 단련시키기 위해서였다.
단련(團練)이란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망치로 두드려서
아주 센 강철을 만드는 과정이며, 이것이 반복될수록 더 강
한 쇠가 되고 여기에서 보검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듯 사람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시련, 실패, 질병, 배신,
고통 등을 당하게 하여 그런 과정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이겨내
는 힘을 길러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곧고 굳게 세워서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고
연단 받는 사람 자신을 더 복되게 하심이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 하시느니라“(잠언 17:3, 이사야48:10, 히브리12:11)
둘째, 실력을 갖추도록 하심이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통치력과 전투력과 포용력 등 실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소년으로 전쟁터에 있는 형들에게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다가
그 무섭고 용맹한 적군 대장 골리앗과 싸우며 전투력을 길렀고
후에도 끊임없이 침략하는 주위의 적군들과 싸우며 장군으로서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통치력과, 이런저런 사람,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수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포용력을 갖추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살아나가는 위대한 왕으로서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런 실력을 갖추므로 다윗은 이스라엘 왕으로서만 아니라,
당시에 중동지역 여러 나라를 통합하여 다스리는 왕국의 부흥을
이루었으며, 또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드리고,
백성들을 위한 훌륭한 왕으로 인류 역사를 빛내게 되었다.
셋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시간을 주신 것이다.
다윗이 유다 왕이 될 때도 불신하는 세력들이 있었고,
유다 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열한 지파는 아예 다윗을 배척
하고 사울 왕의 후손들을 따랐었다.
그러나 다윗이 유다 왕으로 7년 6개월간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을 보고, 또 그전에 장군으로 활약하며 이스라엘 승리로
이끌었던 시절의 다윗을 생각하며, 이제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족속들과 장로들이 이스라엘의 왕으로는 오직 다윗뿐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누구 한 사람 반대가 없이 다윗이 이스
라엘 왕으로 찬사를 받으며 등극 하게 된 것이다.
왕이 된 후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백성들의 존경아래
승승장구하여, 당시 중동의 많은 나라들을 통합하고 인류사에
훌륭한 왕으로 발자취를 남기에 되었다.
결국은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도 23년 쯤 후에야
뒤 늦게 이스라엘 왕이 되었지만, 23년 쯤의 왕이 되지 못하고
지내던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고 훌륭한 신앙 인격을 갖추게 되었고, 왕으로서
좋은 업적과 부강한 나라를 건설해 나가는데 꼭 필요하고 유익한
시간들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 직분에 감당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소원하는 직분에 아직 세워지지 아니했어도, 현재의 시간들을
이런저런 일들을 통하여 연단을 받고, 하나님께나 사람들에게
쓰임 받을 실력을 갖추며,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찬사를 받을
직분자로서의 자격을 만드는 시간들로 가꾸어 가야 한다.
2011-12-05 PM 10:13:15
2011. 11. 27 하늘 벽성을 도운 자와 해한 자
제 목 : 하늘 백성을 도운 자와 해한 자
성경말씀 : 신명기 23 : 3 ~ 6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이집트에서 400여 년 동안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폭적인 역사로
해방되어 광야생활 40년에 가나안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할 여러 가지 계명과 생활의 규칙을 말씀하셨는데
그 중에서 암몬 족속을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
올 수 없게 하신 것이다.
모압과 암몬 족속이 누구인가?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 멸망을 당할 때에
그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구원받은 생존자 롯의 자손들이며,
손들로서, 바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일가를 이루고 있
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일가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 족속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명하신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로 말씀을 하셨으니,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이 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진행하던 중 모압 암몬 족
속들이 사는 땅까지 오게 되었고 모압 평지에다 장막을 쳤다.
그동안 종살이만 하다가 나왔기 때문에 변변히 준비하거나 저
축한 것이 없었고 광야 생활에 피곤하고 지쳐 있었다.
그러나 모압 암몬 족속들은 400여 년간 자유를 누리며 터전을
잡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족속에 비하면
비교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모압 암몬 족속들이 이스라엘족속과 똑같은 조상을
둔 한 일가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로서, 어렵게 광야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과 떡으로 대접하고 위로해 주며
따뜻하게 도와줬어야 했다. 그런데 이를 외면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모압 암몬 족속들의
이런 몰인정과 무자비함을 죄로 지적을 하신 것이다.
모압 암몬 족속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한 일가 친적이라
할지라도 자기들의 터전이요 자기들 소유의 땅을, 무단으로
점령하고 장막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괘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건과 사물에 대한 판단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님께서 판정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보고 사람 쪽에서 판정하는 것이 아니다.
모압 암몬 족속들은 사람인 자기들 쪽에서 판정하고, 이스라엘
족속들이 자기들의 땅을 무단으로 점령한 것으로 알아 이스라엘
족속을 박대 했지만, 정작 모압 암몬 족속이 차지하여 살고 있는
그 땅도 실상은 모압 압몬 족속들의 땅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땅이요 하나님의 소유라, 인생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서로 돕고 도우며 살아야할 그런 터전인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했기 때문이다.
속담에 “동냥을 주지 않으려면 쪽박은 깨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모압 암몬 족속들은 일가 친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발람이라는 선지자에게 뇌물을 주고 동원하여
여러 번 저주까지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하나님께서 지도
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는 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셔서 지도하시는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 된다.
위 두 가지 잘못으로 인하여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할
때에 구원 받은 롯의 자손이며 아브라함과 일가를 이루고 있는
축복을 받을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 여호와의 총회에는 영원히
들어올 수 없는 저주 받은 백성들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
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 고 하셨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창세 이후로 말세까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백성들에게 적용
되어서,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롭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저주를 하시게 되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에서 하는 일들을 도와주고 협력해주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하나님의 교회와 믿는
사람들의 일을 반대하고 해롭게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징벌
하시고 저주를 내리신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교회와 믿음의 사람들을 모욕하고 저주를
해도 감정으로 대할 것이 없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모욕과
또한 우리는 어찌하든 하나님 교회에서 하는 일을 돕고 협력
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와 믿음의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후손들까지도 복을 받게 된다. (삼상15:1~7)
2011-11-28 AM 10:57:51
2011.11.20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 있다.
제 목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 있다.
성경말씀 : 마태복음 5:1~12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시점에서 우리들이 받아 누릴 수 있는
여덟 가지 복, 즉 팔복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다. 그중에
첫 번째 복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에 대한 말씀이다.
가난한 것은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오히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심령이란 무엇이냐 하면, 마음과 영혼이 결합된
상태를 심령이라 한다. 육신적으로 물리적으로 가난하고 궁
핍한 것은 힘들기도 하고 고통이 따르기도 하지만 마음과 영
의 가난한 것은 축복이 되는 것이다.
가난한 심령의 상태를 3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이다.
가난하다 할 때에 정말 모든 것이 없어서 가난하기도 하지
만, 자신이 영, 육간에 갖추고 소유한 것이 많이 있다 하여도
그에 자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줄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무능함을 느끼고, 무지함을
느끼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갈
망하는 상태, 이것이 가난한 사람의 심령 상태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 많이 있고, 자기가 영 육간에 이룬
업적이 많이 있다하여도,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줄 알고, 주님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하며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열심을 내는 것이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시42:1~2) 갈망하면,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시107:9) 그래서 복이 있는 것이다.
둘째, 온유 겸손하다.
육신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이 교만할 수 있겠는가?
어디를 가든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으스대거나 뽐내지를
않고, 설혹 자기의 잘한 일이 있어도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어디 어느 일에서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순응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것이다.
잘한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룬 업적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식도 많고 소유한 것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섬기며, 사도 바울이 고백한 대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하고
성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신약 성경 27권 중 절반이 넘는 14권을 기록
했고, 1, 2, 3차 전도 여행을 다니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할 만큼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했다. 가난하고 없어서 겸손한 것도
좋지만, 많이 갖추고 소유하고 느리면서도 온유 겸손한 것은
더 훌륭하고 복이 있다.
셋째, 작은 것에도 감사한다.
몇 백억 몇 천억을 소유한 부한 사람들이나 학식이 뛰어난
수재나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은, 작은 지식이나 몇 천원의
돈은 아주 우습게 알고 고맙게 여기를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몇 천원이나 하찮은 지식에도 크게 여기고 감사
하게 생각 한다. 우리 집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어려운 분들
이 있다. 그들은 천 원 한 장, 밥 한 그릇에도 크게 여기고
감사를 한다.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것이 많이
있음에도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심령이 욕심으로 차 있고,
더 많고 더 큰 것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한글도 모르는 분들이
한글을 배워 길을 걸으며 간판을 읽는 것을 그렇게 고마워하며
기뻐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보통 하찮은 일에도 감사하고
일상적인 일에도 감사를 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
이것이 가난한 사람의 심령 상태이다.
이렇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으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 하셨다. 여기서 말씀한 천국은, 하늘나라
천국을 뜻함이 아니고 마음과 영혼의 심령 천국을 뜻한다.
성경에서 말씀한 천국에는 네 가지가 있다.
1) 하늘나라 천국.(마8:11)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죽으면 즉시로 들어가는 하늘나라 천국이다.
2) 천년왕국 천국.(계20:4~6)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천년 동안 지상천국을 말한다.
3) 교회천국. (마3:1~2)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신약시대
생명을 살려나가는 교회운동을 천국이라 하셨다.
4) 심령천국. (마5:3) 마음과 영혼의 천구을 뜻한다.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하며 열심을
내고, 이룬 업적과 소유한 것이 많아도 주님 은혜라 생각하며
온유 겸손하고, 작은 것 하찮은 일에도 감사를 드리면, 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귀히 여기셔서, 좋은 것으로 채우시고
은혜를 충만하게 내려 주셔서 그 사람의 마음과 영은 늘 기쁘고
평화롭고 소망이 있고 힘이 있어서 하늘나라에 아직 가지 아니
했어도 마음과 영혼이 천국의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2011-11-21 PM 12:25:07
2011.11.13 감사할 것을 찾아 감사하라.
제 목 : 감사할 것을 찾아 감사하라
성경말씀 : 다니엘 6 : 6 ~ 10
다니엘은 지금부터 2,570년 전 사람이다.
자기 나라 이스라엘이 망하고 부모형제와 헤어져서
나이 어린 소년으로 바벨론나라 적국에 포로로 잡혀갔다.
다행스럽게도 왕궁에서 학문을 배우는 자로 뽑혔다. 바쁘고
힘든 생활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잘 섬기며 믿음을
지키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지혜롭게 하여 바벨론제국에
총리대신이 되었다.
그러나 바벨론 사람과 왕의 교만으로 하나님께서 징벌하시니,
바벨론 제국이 망하고 메데 바사, 곧 페르시아제국이 세워졌고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오 왕이 다니엘의 뛰어남을 알아보고
페르시아제국의 세 총리 주 첫째 총리로 세웠다.
이에 바벨론과 페르시아 본토의 대신들과 관리들이 다니엘을
시샘하여 총리자리에서 떨어뜨리려고 여러 가지 술수를 썼으나
다니엘에게서 흠을 잡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다니엘의 신앙을
이용하여 다니엘을 처치할 법을 만들었다. 왕의 재가를 받아
옥쇄를 찍어 전국에 선포하였으니, 그 내용은
“앞으로 30일 동안 페르시아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를 한다면 사자 굴에 던져 맹수의 밥이 되게 한다.”는
법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을 말살하려는 마귀의
술책이며 다니엘의 신앙을 무너뜨리거나 처형하려는 술수였다.
다니엘은 이런 법이 선포되고 자기를 죽이려는 술수인줄 알
면서도 전에 행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다니엘이 자기의 처지나 형편을 보면 도저히 감사를 드릴
형편이 아니었다. 총리로서 그 어마어마한 자리에서 쫓겨 날
수도 있고, 자기의 가족들도 다 해를 입을 수 있으며, 자신의
몸도 굶주린 맹수 사자에게 갈기갈기 찢겨서 비참한 죽음을
당할 처지인데 그 상황에서 어찌 감사를 드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니엘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전혀 요동치 않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으니, 다니엘 이러한 위대한 신앙은?
첫째,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다니엘은 이미 지나온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당하는 모든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합쳐서 선을 이루고, 유익이 되게 하시고,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이미 체험을 했다.
그렇기에 자기가 현재 당하는 죽음의 위험 앞에서도
슬퍼하거나 낙심할 일이 아니며, 원망 불평할 일이 아니고,
주님께 감사할 일이요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할 일임을 알고
오히려 감사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과연 그러하다. 오늘날도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이 그 어떤
일이든지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그 모든 일, 곧 실패든지, 물질의
손해든지, 인격 모독이든지, 중한 질병이든지, 심지어는 죽음
까지도 합쳐서 우리에게 복이 되게 하시고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것이다.
둘째,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축복임을 믿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 놓은 위험한 일들은 다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것이며 믿음의 정절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 이렇게 주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다가 고난을 당하고
사자 굴에 들어가서 찢겨 죽는다할지라도 이는 주님께 더 큰
사랑을 바치는 것이기에, 주님은 그것을 알아주시고 자신에게
더 큰 축복을 하실 것을 믿고, 다니엘은 자기 자신을 이런 큰
축복을 받을 자리에 세워 주신 것을 감사드린 것이다.
“나(예수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클 것이라”(마5:10-12)
셋째, 육신 위해 살지 않고 영이 잘되는 중심으로 살았다.
다니엘이 육신이 잘되는 중심으로 살았다면,
현재의 총리 자리를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우리와 같은 몸과 마을을 가지고 살면서도
육신의 몸이 잘되는 것보다 영적 생명이 더 잘되는 것을 중심
으로 살았기에, 자신이 한 평생 쌓아올린 육신의 모든 것을 빼
앗기고 포로로 잡혀온 자신으로서는 꿈에서도 오를 수 없는
총리대신의 부귀와 영광을 다 빼앗긴다 하여도, 오히려 자신의
목숨까지 빼앗기는 죽음의 위험 앞에서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육신의 생명은 잠간이며, 영혼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기에
육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믿음을 지키고 계명의 말씀을 지킨다면
자신의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영원무궁한 상급과 영광을 누릴 것
이기에 이를 소망하고 바라보면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추수감사절이다. 어떤 이는 자기는 감사할 일이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다니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길 죽음의
위험 앞에서도 감사드리는 위대한 신앙을 우리는 정녕 본받을
수 없는가? 우리도 감사드릴 수 있는 조건을 찾아보자!!
2011-11-14 PM 5:47:35
2011. 11. 06 온전케 하는 성경말씀
제 목 : 온전케 하는 성경말씀
성경말씀 : 디모데후서 3 : 15 ~ 17
모든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계시와 감동으로 기록이 됐다.
“계시”란 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열어서
보여 주신다는 뜻이며, “감동”이란 말은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절대적으로 도우셨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신, 구약 66권 성경말씀은 완성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은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간이 가감하거나 평가할 수 없는 온전한 말씀이다.
이렇기에 성경말씀은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교훈)
잘못 된 것을 지적 하여 깨달아 알게 하시며, (책망)
바르게 살도록 하기에 유익하니,(의로 교육하기에 유익)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
에 온전케 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온전케” 라는 말은 “완전무결하다”는 뜻이 아니고
“준비 시킨다”는 뜻이 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온전한 사람도 없으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은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잘못을 깨닫게 하여 바르게
살도록 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 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준비 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말씀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성경말씀으로 온전케 되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첫째, 성경말씀에다 자신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KBS, MBC, 또는 어느 방송에다 체널을
고정시키면 타사 방송은 들을 수 없이 그 회사 방송만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과 눈과 귀를 성경말씀에다 고정시
켜서, 성경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받아 그 말씀
의 인도와 주장을 받고 그 말씀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을 세상 것에서 돌이켜서
하나님의 말씀에다 고정시키고, 그 말씀에 가르침대로, 그 말
씀에 요구하시는 뜻대로, 그 말씀에 원하시는 그 대로 순종하
여서 점점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눈과 귀와 마음을 어디에다 고정시키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얻고 느끼는 것이 좋게 혹은 나쁘게 되기도
하는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눈과 귀를 하나님의 말씀에 고정시키면
우리의 깨달음과 감정이 좋아지게 되고
우리 깨달음과 감정이 좋게 되면 우리 삶의 언행이 좋게 되고
우리 삶의 언행이 좋게 되면 우리 한 평생의 삶이 좋게 되어
우리가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들여다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과 모본으로 삼아
우리 자신의 언행심사와 삶을 비추어 본다는 것이다.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면,
옷을 단정히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얼굴에 검정이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 머리가 헝클어졌는지 안 헝클어졌는지,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습을 거울에
수시로 비추어 들여다보아 자신을 가다듬고 단장을 하듯,
우리의 삶과 언행심사를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수시로 비추
고 들여다보아 우리 삶과 언행심사의 어디가 잘되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살펴서 말씀에 합당하고 곱게 비춰지도록 늘
단장을 해야 한다.
더럽고 추한 것을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듯,
말씀에 비춰진 우리 죄와 악을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고
의지하여 회개하므로 사함을 받아 우리 자신을 항상 깨끗이
하고, 말씀에 합당하고 아름다운 것은 더 아름답게 행하고 가
다듬어서 우리 인생의 삶에서 더럽고 추한 것이 없도록,
말씀이라는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춰보고 들여다보아야 한다.
셋째, 말씀을 주로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님이시다.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며, 이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으니 곧 예수님이시다.
이렇기에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고, 책망을 받으며 그 인도와
주장을 받은 것은, 곧 그 말씀이자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주로 믿고 그 인도와 주장을 받는 것이며 섬기는 것이 된다.
부모님 말을 잘 듣고 따르는 것이 부모님을 섬기는 것이 되는
것처럼, 성경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것은 성삼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요, 성삼위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잘 믿고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성삼위 하나님을 주로 섬긴다고 할 때에
어떤 형상과 실체가 보이거나 만져져서 섬기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경말씀이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성삼위 하나님을 알고, 보고,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서 쓰시는 축복된 사람이 된다.
2011-11-07 PM 1:34:04
2011. 10. 30 지혜, 총명, 넓은 마음
제 목 : 지혜, 총명, 넓은마음
성경말씀 : 열왕기상 4:29 ~ 34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 인간의 생활에서
지혜와 총명과 넓은 마음은 너무도 필요하고 귀중한 것이다.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지혜가 없어서 일을 그르친 일이 있고,
총명 분별력이 없어서 오판하여 해를 본 일이 많이 있으며,
넓은 마음이 없어 갈등과 분열과 다툼으로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기도 한다.
인류 역사를 볼 때에
솔로몬처럼 지혜롭고 총명하며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없다.
솔로몬의 이러한 지혜 총명 넓은 마음은 어디서 왔는가?
천성으로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노력과 수고로 얻은 것인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노력과 수고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왜 솔로몬에게 지혜 총명 넓은 마음을 주셨으며
솔로몬은 하나님께로부터 어떻게 하여 이 축복을 받게 됐는가?
첫째,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다. (왕상3:3~4)
번제란, 하나님께 제물을 통째로 불살라 바치는 제사이다.
일천번제를 드렸으니 곧 양이나 소 일천 마리를 불태워 바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다. 일천 마리의 가축을 끌어오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고 그 제물을 불태울 나무도 만만치 않
았을 것이다. 제물 한 마리 한 마리를 깨끗하게 하여 불태워
바칠 때, 그 몸의 수고와 마음의 정성과 물질의 가치를 생각
하면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매우 존귀한 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은혜를 입을 일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건축물이나 자기의 이름을 떨치고 기념이 될
만한 조각물을 세우는 일에는 물질을 아끼지 않고 쓴다.
그러나 번제는 다 불태워 없어지는 것이라 기념이 되거나 솔
로몬의 이름을 낼만한 어떤 형태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일천의 번제물을 돈으로 환산을 해보니 “양”으로 해도 수억이
되고 “소”로 하면 몇 십억에 해당이 된다. 이 많은 번제물을
불태워 바치면 재가 되어 사라지는데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받아만 주시면 된다는 일념으로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긴 것이다.
둘째, 필요한 것을 구했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었으나
그 많은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는데 필요한 것, 즉
자기의 처지와 형편에 합당한 것을 구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현실의 삶에서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임에도 정작 우리에게는
없어서 쩔쩔매는 일들이 있다. 그것이 없다고 포기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주신다.
또 안타까운 것은 필요치도 않은 것인데 욕심으로 이것저것
많이 원하고 구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
셋째,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여 구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어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네가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부도 구하지 않으며
자기를 위하여 원수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백성들을
인도할 지혜를 구했은즉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라“ 고
하셨다.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사람을 마음까지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되
자기 명예 영광을 위해서 구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서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주신 것이다. (고전 10:31)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넷째, 자기가 구했다.
여러 성도들이 각각의 형편에 따라서 목사에게 기도를 요청
하고 자기들을 위해서 기도 해 주기를 부탁한다. 좋은 일이다.
자기의 어떤 소원이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에 자기 혼자 짐을
짊어지지 말고 당연히 목사에게 기도를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목사에게 기도의 도움을 요청하고서 정작 자기
자신이나 기도 요청에 관계된 사람은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목사에게 기도 요청을 하고 믿음의 선진들에게 기도의 도움을
청하되 더불어 자기 자신들도 같이 기도를 해야 한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역사해 주신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性情)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기도한즉
비가 안 오고 다시 기도한즉 비가 왔다.” 엘리야 선지자도
완전무결한 성품을 가진 것이 아니고 우리와 같이 비슷한 성품
과 감정을 가졌는데 그의 기도도 들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도 들어 주신다는 것을 뜻하신 말씀이다.
지혜, 총명, 넓은 마음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절실하게 필
요한 것들이다. 우리도 솔로몬처럼 구해서 응답을 받고, 구하지
못한 것들까지도 복으로 받아 누리도록 해야 하겠다.
2011-10-31 PM 2:32:30
2011. 10. 23 속지 말라
제 목 : 속지 말라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 15:33 ~ 38
속지 말라!! 인생의 삶의 한 면을 보면
속고 속이며 사는 것에 연속이라 할 수도 있을 만큼
이렇게도 속고 저렇게도 속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바울을 통
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속지 말라”는 말씀이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
속는 것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까이 있는 동무들
의 미혹으로 인하여 의심 없이 쉽게 넘어가는 일이 많이 있다.
여기서 “악한 동무”는 누구를 뜻하는가?
첫째. 자신의 마음에 욕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범죄하고 속고 속이는 이유를
어떤 사람 누구 때문이라고 하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
한다. 그러나 정말 양심적으로 생각하면, 누구 때문도 아니고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닌, 자기 마음의 욕심 때문인 것이다.
자기 마음의 욕심이 자기를 위하는 동무인척 제법 친근하게
속삭인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돈을 벌어야 할 것이며,
뇌물을 주고 윗사람에게 아부를 해서라도 승진을 해야 하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잡고 출세를 해야 하고, 바로 거
기에 인생의 성공이 있고 인생의 행복이 있는 것처럼 친근히
속삭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악한
동무로서 자신의 선한 행실을 가로막고 패망 길로 이끌어 가는
인간의 부패한 기질이며 또한 마귀의 속삭임인 것이다.
중동지역 리비아의 “카다피”라는 사람을 보면, 장장 42년간
철권통치를 하며 170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돈을 모았는데,
그 결과는 그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자기 백성에게 총 맞아
죽어서 그 시체가 정육점 냉동 창고에 보관되어 있고, 그 아
들들도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인 삼성그룹 회장의 재산이 8조 몇 천억
이라 하니, “카다피”의 재산은 그 20배나 되는 것이다.
그 돈을 모으느라고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고혈을 짰으며
그 얼마나 많은 거짓과 부정을 저질렀으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가?
아마 그 돈을 모을 때는, 어떤 짓을 해서든지 돈을 모으고 그
어떤 짓을 해서든지 대통령 자리를 지키면, 그것이 자기 가문
대대로의 번성과 행복을 보장해 줄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최후는 짐승의 죽음처럼 죽임을 당하고, 그 가문도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 것이다.
그 누가 카다피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의 마음의 욕심이 유혹을 하는데
그것을 친근한 동무나 하는 권유쯤으로 받아들여 속아 넘어가서
그렇게 된 것이다.
둘째, 악을 행하고 잘 된 주위 사람들이다.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주위를 살펴보면
악을 행하고도 잘되어서 큰소리치며 사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이들이 알게 모르게 선한 믿음의 사람들을 충동 한다.
“너희가 하나님 섬긴다고 하면서 너희 사는 그 꼴이 무엇이냐?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될 수 있겠으며, 과연 그렇게 해서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할 수 있겠느냐?” 비웃으며 속이려 든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구나, 죄인이 백번 악을 행하고
장수하기도 하거니와 정녕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며 바르게
사는 자가 축복을 받을 것이다.”(전도서 8:11~12)
인생이 범죄하고도 얼마간 잘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죄악을
모르시거나 혹은 그 죄악을 징벌할 능력이 없으셔서가 아니고,
징벌로 인하여 육신의 죽음과 더불어 그 영혼이 훨훨 타오르는
지옥 불바다 형벌 받을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참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여 잘 된 주위
사람들에게 속지 말고 믿음을 지키며 선을 행해야 한다.
셋째, 시대의 분위기와 흐름이다.
이 시대의 분위기와 흐름은 물질만능주의로 나가고 있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보이고, 돈이 모든 것의
위위에 있어 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잡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뛰기도 한다.
오죽하면 인사가 “부자되세요”인가. 그러나 카다피의 예를
보았듯, 돈보다 권력을 잡는 것보다, 출세를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믿음으로 바르게 사는 것이다.”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을 보라. 그 자리가 대단한 자리로
교육계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자리다.
그 자리가 탐이 나서 경쟁자를 매수해서 그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몇 개월 만에 들통 나서 감옥에 갇혀 있다.
시대의 분위기와 흐름이 타락이 되어, 목적만 달성한다면 그
과정은 어찌됐든 괜찮은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심판하셔서 행한 대로 갚으시기에
시대의 분위기와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속는 것이다.
돈을 덜 벌고, 승진을 더디 하고, 다른 사람위에 뛰어나게
출세하지 못했어도, 믿음으로 바르게 살다가 그리됐다면 이것은
무능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칭찬 받고 상급을 받을 일이다.
2011-10-24 AM 10:08:47
2011.10.16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제 목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성경말씀 : 요한복음 21:14~17
예수님께서 우리 죄 값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3일 만에 살아나셔서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에게 3번째
나타나셨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밤세워 그물을 던졌
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하시므로
그대로 순종했더니 큰 물고기를 153마리나 잡았다.
잡은 생선을 불에 구워 떡과 함께 아침을 드셨으니, 이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체를 확신시키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 아침을 드신 후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니
베드로가 “주여 그러합니다.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답한다.
주님께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하시고, 두 번째 물으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그러합니다. 주께서 아
십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로
다시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베드로가 근
심하며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니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답한다. 주님은 다시금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주님과 베드로의 이 대화에서
주님이 말씀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의 첫 번과 두 번째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을 말씀했다. 베드로의“예, 주를 사랑합
니다.”의 첫 번과 두 번째의 대답은 “필리아”사랑이다.
헬라어 문법과 문화에는 “아가페”목숨까지도 희생하여 베
풀어 주면서도 보상을 바라지 않고 기뻐하는 숭고한 사랑이다.
“필리아”친구간의 우정의 사랑이 있고, “스톨게” 민족적 동족
적 사랑이 있으며, “에로스”남 녀 간에 애정적 사랑이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아가페”사랑을 요구하신 것인데, 베드로는
“필리아”사랑으로 계속 답했다. 세 번째는 예수님께서도
“그래, 네가 “필리아” 사랑으로라도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베드로가 근심하며 “주여 모든 것을 아시니 내가 주를 사랑
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답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와 오늘날 우리들에게 “아가페” 사랑을
요구하신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미 우리에게“아가페”사랑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요한복음 3:16, 로마서 5:7~8)
기독교 사적을 보면 베드로의 아내가 먼저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는X십자가에 거꾸로 처형당하는 아가페 사랑을 했다.
베드로가 주님께 목숨을 바치는
“아가페” 사랑을 하면서도 왜 “필리아”사랑으로 답했을까?
베드로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사람이다.
주님께서 우리 죄 값 대신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다고 하실 때,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주를 버리지 아니
하겠습니다.”(마26:33)호언장담 했으나. 몇 시간 후에 주님이
처형당하러 잡히셨을 때는 주님을 모른다고 맹세 저주까지 하며
부인했다.(마26:69~75) 이런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베드로는
주님의 “아가페”사랑의 물음에 감히 “아가페”사랑으로 답할 수
없어 겸손하게 “필리아”사랑으로 답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침내는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아가페”
사랑을 하며 생을 마쳤다.
여기서 주님께서 명하신 것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양을 먹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양을 잘 먹이려면,
첫째, 자신부터 잘 먹어야 한다.
주님의 양을 잘 먹이려면 자신부터 잘 먹고 강건해야 한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서 그 말씀이
자기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자신의
삶을 가꾸어 가는 것이다. (눅8:15)
또한 교회에 제도와 여러 모임과 활동에 협력하고 참여하여
더불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때에 자신이 강건해 진다.
둘째, 어린 양을 먹여야 한다. (15절)
어린 양이란 나이가 어린 유아나 소년도 어린 양이지만,
70살이라 해도 신앙생활을 한 년 수가 짧으면 어린 양이다.
어린양은,1)분별력이 없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듯,
이단인지 사이비인지 마귀의 장난인지 성령님의 역사인지....
2)결단하고 추진할 능력이 없다. 좋은 일을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도록 옆에서 가르쳐 주고 도와주며 인도해 줘야 한다.
3) 자신을 보호하거나 방어할 능력이 없다. 죄악과 마귀들과
이단과 사이비한 것들에게서 보호해 주고 지켜줘야 한다.
셋째. 양을 먹여야 한다. (16~17절)
여기서 양은, 어린 양 뿐 아니라 모든 양들을 총칭한 것이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어른 양들도 때로는 옆길로 나가고 시험과
삶의 고통으로 주저앉을 때도 있다. 이런 때 말씀으로 권면하고
기도해 주고 도와주며 그들을 일으켜 세워, 천성을 향해 전진
하도록 살펴 줘야 한다. 이렇게 해서 양을 잘 먹이면,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며,(약5:19~20, 단12:3)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히
비취며” 천국의 아름다운 상급과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
2011-10-17 AM 9:23:56
2011.10.9 날아가는 두루마리와 저주받을자
제 목 : 날아가는 두루마리와 저주 받을 자
성경말씀 : 스가랴 5 : 1 ~ 4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양의 가죽을 손질하여
종이처럼 만든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 면에는 도적질하는 자가 받을 저주와 징벌에 대하여 쓰였고
또 한 면은 맹세하는 자가 받을 저주와 멸망에 대해 쓰였다.
“스가랴”는 페르시아제국 다리오 왕이 통치하던 시절
주전(B.C) 518년경에 활동하던 선지자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70년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무너졌던 성전과 성읍을
건축해야하는 시기에 사역을 했다.
무너져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해야 하는데
아직 때가 안 되었다고 핑계를 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무리가 있었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거짓
된 무리들이 있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
하여 그들과 그 후손에 대한 경고로 오늘 말씀을 주신 것이다.
두루마리에 기록된 도적질하는 자와 맹세하는 자들은
같은 종류로 도적질을 하면서 하나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는
자들인데,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 이단들이다.
도적질에는 일반적 도적질과 특수한 도적질이 있다.
일반적 도적질이란 사람에게나 하나님께나 물질을 도적질하는
것으로, 이는 회개하고 바로 하므로 얼마든지 용서 받을 수
있는 죄이며, 새롭게 출발하여 은혜를 받을 수가 있다.
본문에서 말씀한 저주와 멸망 받을 도적질은
근본이 용서를 받지 못할 것으로 특수한 도적질을 뜻하는데,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도적질 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도 기근과 칼로 망
하리라“(예레미야 14:14~16)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보내지도 아니하였고 명하지도 아니하셨는데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도적질해서 사용하는 이단 사이비들, 곧
신천지 이만희, 여호와 증인, 안상홍 하나님의교회, 박태선
천부교, 정명석, 박명호 등등 마귀 앞잡이들을 뜻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하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하나님의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거짓 꿈과 예언을 하며 내 백성을 미혹하는 자들을 내가
치리라”(예레미야 23:30~34, 마태복음 7:22, 23:1~4)
오늘날도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지도 않으면서, 믿는다 해도
자기들의 악한 목적과 야욕을 채우고 이루기 위해서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도용하는 마귀와 그 앞잡이들이 있는데
이 역시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 집단들을 뜻한다.
셋째, 사람들의 영혼을 도적질 하는 것이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되어 있다. 몸은 흙에서 왔다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고
천국복락을 누리게 되는데, 마귀와 그 앞잡이 노릇을 하는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 무리들이 백성들의 영혼을 미혹하여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해서, 자기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따르는 사람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 (마태복음 7:15, 23:13~15, 살후 2:9~12)
넷째, 하나님의 종의 직분을 도적질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지 아니하셨음에도 자칭 선지자나 사도라고
칭하고, 교회에 합법적인 제도를 통하지도 않고 자격을 갖추지
아니했음에도, 자기들끼리 자칭 선지자, 선교사, 목사, 원장,
장로, 교사라고 불법적으로 명칭을 사용하여 활동하는 것이다.
(계시록 2:2, 고린도후사 11:13~15)
다섯째,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일들이 잘 되고 크고 좋은 업적을 이루었다 해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저는 무익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과 찬송을 받으소서.” 하고 하나님께 영광 찬송을 돌린다.
사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짓 선지자와 이단들은 모든 것을 자기 영광 공로로
돌리고 자기가 높임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여
자기들이 누린다.(이사야 42:8, 사도행전 12:21~23)
이렇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적그리스도와 마귀들의
앞잡이인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과 사이비한 것들은 영원한
지옥 불바다 둘째 사망에 들어가고 (마 7:15~23, 13:41~42,
계시록 20:10, 21:8). 성삼위 하나님께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참 성도들은 그
의를 인정받고 천국의 상급을 누린다. (마 13:43, 계 21:1~7)
2011-10-11 AM 10:35:58
2011. 10. 2 산아!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제 목 : 산아!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성경말씀 : 마가복음 11:20 ~ 25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는데
베드로가 “예수님!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
하고 예수님께 여쭙는다. 전날 예수님께서 그 길을 지나시다가
무화과 열매를 맛보시려는데 무화과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
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저주를 하셨다.
예수님께서 저주하실 때 제자들은 설마 저렇게 푸르고 무성
한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을 리가 있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
했는데, 이튿날 무화과나무가 죽은 것을 보고 놀란 것이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어라”고 하셨으니, 이는 곧
너희가 놀랄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믿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믿고 구한 그대로
이루어 주시고 역사 하신다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신 것이다.
이는 무화과나무를 통하여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날
믿는 사람들에게 교훈하심이니, 곧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가 말라진 것처럼, 외적인 신앙생활을 그럴듯한데
신앙의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신자들이 버림받을 것을 뜻
하신 것이다.(요15:1~6, 갈5:19~24)
또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셨으니, 이는 백두산이나 한라산 같은 산을 뜻하기보다는
첫째,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 크고 무거운 장애물을 뜻한다.
개인이나 가정이 천성을 향해 나가는데 앞길을 가로막는 산
처럼 크고 무거운 장애물들이 있다. 이것들로 인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인데
이때 좌절하고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하나님이 도와주시
면 큰 산 같은 장애물들이 없어질 것을 믿고 기도하라는 것이
다. 믿고 의심 없이 구하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니까 그대
로 마른 것처럼 하나님께서 산 같은 장애물을 멀리 던져서
성도의 앞길을 열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둘째, 우리에게 당한 크고 복잡한 문제들이다.
이리저리 얽히고 꼬여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될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밤잠을 못 자게 하는 복잡한 문제들이 있
다. 산처럼 육중한 무게로 우리를 짓누른다.
내 지혜나 내 힘으로는 어찌하지 못하여 전전긍긍하는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깨끗하게 해결될 것을 믿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힘써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렇게 복잡하고 힘들게 하던 문제들도
실타래 풀리듯 풀리게 하시고 산이 바다에 던져진 것처럼
멀리 떠나가게 하신다는 뜻이다.
셋째, 우리가 감당하고 짊어져야할 무거운 짐이다.
누구에게나 감당해야할 짐이 있다.
어떤 직책에 대한 짐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담당할 짐도 있고,
업무나 사무에서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여 능력을 발휘해
야할 짐들도 있다. 벗어버릴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이때에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얼마든지 감당하여 태산 같은
무거운 사명이나 짐도 넉넉히 감당 할 줄 믿고 기도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무겁고 큰 사명이라 해도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처럼 능히 감당하고 완수하게 하여 주신다.
넷째, 우리를 해하려는 악의 세력들이다.
믿음의 길에는 방해하는 악의 세력들이 있다.
마귀와 사이비 이단 세력들이 있고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악한 인간 세력들이 있다. 이들이 호시탐탐 틈을 엿보고
있으면 산처럼 크고 무서운 세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무서워할 것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믿음으로 기도하면 아무리 크고 무서운 마귀의
세력과 그 앞잡이 세력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벌하시고 물리쳐
주셔서 산이 바다에 빠져 없어지는 것처럼 그 세력들이 힘을
잃고 물러가게 해 주시는 것이다.
다섯째, 우리를 괴롭히는 크고 무서운 질병들이다.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크고 무서운 질병들,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가로막고 큰 산처럼 버티고 서 있다.
의약품과 의술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그것으로는 안 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아무리 무서운 질병
악성 종양이라 하여도, 죽어서 나흘이 되어 썩어서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의 능력이 임하시면 못 고칠 병이 없는 줄
알고, 믿고 주님께 구하는 것이다. 산처럼 압박하며 괴롭히던
질병도 산이 바다에 빠지는 것처럼 떠나가고 몸이 회복되어
건강한 몸이 되는 것이다.
스가랴 4 : 6~7 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신으로 되나니
큰 산아!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말씀하셨다.
오늘날도 그 어떤 산이라도 믿음 앞에서는 평지가 될 것이다.
2011-10-04 AM 9:05:50
2011. 9. 25 강대하고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제 목 : 강대하고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
성경말씀 : 신명기 9:1-6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광야 방랑생활 40여년,
이제는 요단강을 눈앞에 두고 건너편 가나안 땅을 바라본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강대한 자들이
거하는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복된 땅을 주시겠다고
거듭거듭 말씀하신다.
가나안 땅 아낙 자손들에 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작고
무기도 없고 초라하여 스스로 약해져 있었으며, 감히 그 땅
족속들과 싸울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름다운 땅을 얻게 하시는가?
첫째,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며 역사하여 얻게 하신다. (1~3)
본문 3절에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앞서 나가시며 가나안 족속을
깨뜨릴 것을 말씀하시고 그대로 역사하셨다”
과연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의 뒤에나 계시고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앞서 나가시며 해를
막아주시고 보호하시며 갈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앞서 나가시며 인도하시는 분임을
증거 했고(창24:7).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사자를 앞서 보내어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고 멸하여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얻게 하겠다고 하셨다
(출33:1~3).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에 앞서 나가시며 역사하
시고 그 발걸음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앞서 나가시며 역사하신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앞서 인도하심으로 아무 일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나가시며 역사를 하셔서 사람으로서 당해야
할 고통과 어려움과 여러 가지 시험은 다 당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일에 거꾸러지지 않고 잘 감당케 하여
합력하여 선이 되고 유익이 되고 복이 되게 역사를 하신다는
뜻이다. 오히려 아무 일도 안 당했을 때보다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하므로 그런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
고 믿음이 자라나서 하나님 앞에서 더 좋은 상을 받을 신앙
인격으로 만들어져 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크고 두려운 일을 만난다 해도
우리가 상대하기에 너무 큰 막강한 세력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내 앞에 앞서 나가시며
역사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야 한다.
둘째, 긍휼히 여기셔서 역사하신다.(4~5)
아름다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얻었을 때에 행여나
자신들의 의로움을 인하여, 혹은 자신들의 진실함이나 깨끗함
때문에 얻은 것으로 생각지 말라 하셔싸.
악한 것으로 하면 가나안 땅 족속들이나 이스라엘 족속들이나
거기가 거기요 비슷하지만, 이스라엘 족속들은 성삼위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잘못을 회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긍휼 곧 불쌍히 여기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얻어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가나안 족속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멸망할 죄 인줄을 모르고 회개함도 없이 계속하여
악을 행하기 때문에 망하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 가지다. 믿음의 사람들이나 불신자들이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성품을 보면 비슷비슷하다. 진실하지 못
한 것이나 의롭지 못한 것이나 성질부리는 것이나 얼마 차이가
없이 오십 보 백 보이다. 그래도 믿음의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죄 인줄을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필요한 은혜와 더불어 영원 무궁히 찬란한 천국 복락으로
인도를 받고 그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셋째. 언약대로 이루셔서 얻고 누리게 하신다.(5절)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젖과 꿀이 흐
르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구히 주시겠다고
(창13:14~18). 약속하신 때로부터 약500년이 지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그대로 가나안 복된 땅을 이스라엘 자
손에게 주신 것이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한 번
말씀하신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변치 않으시고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어 나가신다.
신, 구약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언약하신 기록이다.
말씀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님을 내 죄 값 대신
죽으신 주님으로 믿으면, 어떤 흉악한 죄라도 모든 죄를 깨끗이
용서 받고 새 생명을 얻어 천국 복락을 누리게 된다.
이는 우리의 진실함 때문이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인하여 누리는 축복이다.
2011-09-26 AM 9:27:38
2011. 9.18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제 목 :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 13: 8 - 13
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아시아 7교회에 대하여 말씀했다.
비록 7개 교회뿐이지만 말세에 수 천, 수백만의 교회의 모형을
7개 교회중의 한 유형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오늘은 그 네 번째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의 나타나신 모양.
1) 그 눈이 불꽃같고 =
천하 만물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전지하신 통찰력.
2) 그 발은 빛난 주석과 같다 =
천하 만물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심판장이신 주님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심판하시는 주님께서는, 먼저
두아디라 교회의 잘한 일들을 알아주시고 칭찬하셨다. (19절)
① 선한 사업을 많이 했다. ② 사랑이 많았다.
③ 믿음이 좋았다. ④ 섬기는 일 봉사를 잘했다.
⑤ 어려운 일이나 못마땅한 일에도 잘 참는 인내가 있었다.
⑥ 처음보다 나중 행위가 더 좋아졌다.
잘못한 것을 책망하셨다. (20절)
① 자칭 선지자 여자 이세벨을 용납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아내로서 즉 왕후이다. 황후의 지위를
이용하여 바알과 아세라 잡신 우상을 섬기면서 자칭 선지
자라 하였는데 이것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받아들였다.
② 음행을 했다.
우상을 섬기는 이세벨의 초청에 응하여 미인계를 넘어가서
유혹을 받아 간음하는 음행 죄를 저질렀다.
③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
바알 아세라 등 잡신 우상을 섬기는데 참여하여 그 제사의
제물과 음식을 먹음으로 믿음의 정절을 더럽히고 타락했다.
주 예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셔서 잘한 일은 잘한
일대로 상을 주시지만, 잘못한 일은 잘못한 일대로 징벌을
하신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잘못에 대한 징벌을 무조건적
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세우신 종들을 통하여 말
씀으로 잘못을 지적하며 권고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 후에
징벌이나 심판을 하신다는 사실이다. 오늘 본문 21절에서도
“보라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러나 회개치
아니함으로 무섭게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노아 홍수로 온 세상이 심판을 당할 때도
노아의 방주 짓는 기간 70여년을 통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 성읍도 40일전에 심판을 예고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니느웨 성읍은 심판 예고를 받고 회개
하여 죄를 용서 받으므로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었으나,
노아 시대는 회개치 않음으로 인하여 홍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알게 모르게 죄를 범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우리를 즉각적으로 심판 하시는 것이
아니고, 먼저 회개할 기회, 용서 받을 기회를 주신다.
그러므로 비록 죄를 지었다 하여도 회개할 기회에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회개하므로 용서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회개할 때 그 기회는 언제인가 ?
첫째, 죄를 범했음에도 형통하게 잘 되는 때이다.
죄를 지어서 마음에 찔림을 받고 양심의 가책을 받음에도
자기 자신의 일이나 가족들의 일이 순조롭고 형통하게 잘 되어
나간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죄를 모르셔서도 아니요, 범죄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하시거나 용납하셔서도 아니요,
혹 그 죄를 벌할 능력이 없으셔서가 절대로 아니며, 오로지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사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둘째, 하나님 말씀의 권고를 받을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우신 종(목사)들을 통하여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 하시며 은혜도 주시고, 또한 죄에 대한 책망도 하신다.
이때 그 책망의 말씀에 반항하거나 노엽게 생각을 하지 말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구나 하고 감사함으로 받아서 회개를
하면, 어떠한 잘못이라도 사함을 받게 되며, 새 은혜를 받는다.
셋째, 이런 저런 작고 하찮은 손해를 볼 때이다.
회개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죄를 지은 본인 자신이 무심하게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를 하도록 경고를
하시는데, 그것이 곧 작고 하찮은 일들이 얽히고설키며 손해를
보게 하거나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 이때에 우연히 당했다든지
재수가 없어서 당했다든지 라고 다른 것에 대한 핑계를 대면
안 되고, 아하 ! 하나님께서 나의 잘못을 회개하라고 경고를
하시는구나 생각하고 지체하지 말고 회개를 해야 한다.
연약한 인생들인지라 죄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회개를
하면 된다. 옷이 더러워졌는데 세탁을 안 할 것인가?
회개를 하면 어떤 죄이든 사함을 받고, 새 은혜를 누리게 된다.
2011-09-19 AM 9:36:00
2011. 9. 11 믿음 소망 사랑 (기회를 선용하라)
제 목 : 믿음 소망 사랑 (기회를 선용하라)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 13:8-13
많은 사람들이 명절 증후군으로 어려움을 당한다.
주어진 현실의 상황에 어찌할 수 없이 끌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오히려 주어진 현실의 상황을 적극적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현할 좋은 기회
로 선하게 사용해 나가야 한다.
고린도 교회는 지상 교회에서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다 안고 있는 복잡한 교회였다.
특별히 이전 12장에서는 성령님의 은사에 대한 논란이 있어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
이겠는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을 하는 자이겠느냐, 고 질책하며
제일 좋은 은사며 제일 좋은 길인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13장에 이르러 1~3절은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했고,
4~7절은 사랑의 내용에 대해 말씀했으며, 오늘 본문 8~13절
말씀은, 사랑의 최고성과 영원성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8절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시도 폐하리라“
신자들이 예언이나 방언이나 말씀의 지식을 중요시하여
집착하며 우월감을 갔는데 이런 것들은 다 부분적인 것들이고
“온전한 것이 오면”다 폐하게 되며, 사랑만 하늘나라에까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잠간 있다가 없어질 그런 은사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토록 축복이 되는 믿음, 소망, 사랑을 항상
실현하라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도 믿음이 어렸을 때는 방언
이나 병 고치는 은사 등이 제일인줄 알고 행했으나 믿음이
장성하고 보니까 그런 것들은 버리고, 제일 좋고 더욱 더 좋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믿음, 소망, 사랑을 택하였다는
말씀이다. (9~12절) 그래서 14장 18~19 말씀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방언을 잘 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다” 하면
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다섯 마디 말하는 것이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말씀했다.
여기서 “온전한 것”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1) 신구약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된 것을 뜻한다.
2) 우리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를 뜻한다.
3) 예수님 재림으로 천년왕국이 이뤄졌을 때이다.
성경 말씀이 완성된 지금, 그 계시된 말씀대로
믿고, 소망하고,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거나, 예수님 재림으로 천년왕국이
이뤄지면, 이 세상 살 때에 이미 완성되어 있는 신, 구약 성경
말씀을 통해서 믿고 소망하며 사랑하던 것이 다 이뤄져 있어서
이 세상 삶에서 부분적으로 알고 행하던 일들은 필요가 없어 지
고, 말씀 그대로 완전하게 이뤄진 복락의 세계를 누리게 된다.
그리하여 믿고, 소망하며, 사랑하는 것만이 충만하게 된다.
그렇기에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그렇다.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 하셨으니,
이 추석 명절에도 우리가 어디 있든지 믿음 소망 사랑을 품고
나타내는 생활을 해야 한다.
첫째, 믿음을 품고 나타내야 한다.
추석이 무엇인가? 그 유래는 신라시대에 궁중에 여인들이
두 편으로 나눠 길쌈을 하여 겨루는 “가베”라는 놀이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점점 변형되어 조상신들이 있다고 가정
을 하고, 그에게 차례와 제사를 하는 미신주의로 기울어 졌다.
이때 우리는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나타내어
미신주의와 잘못된 풍습을 사양하고 멀리하여 믿음의 정절을
지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
둘째, 소망을 품고 나타내야 한다.
이 세상이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실패도 있고 질병도 있으며
험산준령과 앞길이 꽉 막힌 절망적인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이 있음으로 절망치 말고
소망과 희망을 갖고 힘차고 당당하게 전진해 나가야 한다.
때로는 시험과 역경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천국복락의 아름
다운 소망을 품고 다른 사람에게도 소망과 희망을 심어주고
보여주며 기쁘고 즐거움으로 살아가야 한다.
셋째, 사랑을 품고 베풀어야 한다.
사랑은 수고와 자기희생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추석 명절을 통하여 자기 유익을 보려고 하지 말고, 몸과 마음과
물질의 수고를 하여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생활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거나 우리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주님께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에게서 믿음, 소망, 사랑을
찾으시고, 그에 따르는 상급과 영광을 누리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항상 있을 것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실천하여 이번 명절을 선을 행하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한다.
2011-09-13 PM 2:26:51
2011. 9. 4 하나님께서 격노하신 일을 기억하라.
제 목 : 하나님께서 격노하신 일을 기억하라
성경말씀 : 신명기 9 : 7 - 21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 광야 생활 40여 년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때 모세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안착하거든, 너희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하시며,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싫어하시는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라는 뜻을 말씀하신 거다.
과연 그러하다. 사람들 사이에도 같이 생활하다보면
상대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에 민감하게 화를 내고 못 견뎌
하는지 알게 되고, 상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화를 내는 그
부분은 건들지 않고 비껴가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며 행복한 삶의 지름길이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격노하시며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그 사건과 말씀은 어떤 것이었는가?
“하나님 외에 다른 신 곧 우상을 숭배한 일이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40주야 금식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받을 때에 산 아래 있는 백성들이 견디다 못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이라 칭하며 섬겼다. (출32:1-6)
이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려고
하셨다. 이때에 모세가 책임을 지고 사죄의 은총을 구하여
용서를 받았으나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대노 하신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어떤 모양의 형태든지 우상을 섬기지 말고
오직 성삼위 하나님만 믿고 섬기라는 것이다.
또한 오늘 본문 1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서 우상을 섬기게 되었는가를 지적하셨다.
첫째, 스스로 부패해서 우상을 섬겼다. (12절)
대게의 경우 목숨에 위협을 가하면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하기를 강요하므로 어쩔 수 없이 우상숭배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불이익이나 목숨의 위협도
없고 누가 강요하지도 않는데 자기들 스스로가 신앙이 타락
되고 부패해서 우상을 섬기게 된 것이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바벨론 왕이 칠 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
화형을 시키겠다고 위협을 하고 실제로 맹렬히 타는 풀무 불
에 집어넣었지만 그래도 우상을 숭배치 않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고 승리를 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역시 큰 불이익이나 목숨에 위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부패해서 잡신 미신 우상을 섬기는 것은 아닌가?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떠나 우상을 섬겼다. (12절)
우리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진행시켜 나갈 때, 내 생각이나
하고자 하는 일들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가를 항상
견주어 보아서 하나님 말씀에 합당치 않을 때는 주저주저하고
망설이고 살펴보며 계획과 실행에 옮겨서는 안 된다.
그러함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1,2,3, 계명을 떠나 우상숭배
함에 있어서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속히
실행했던 것이다. 오늘에 우리는 어떠한지? 말씀에 합당치
않을 때는 망설이고 또 망설이며 자제를 해 나가야 한다.
셋째,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 섬겼다. (12절)
자기를 위하여 라는 것은 자기들 육신의 눈을 만족케 하려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뭔가를
보고 느끼기를 좋아 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백팔 배나 천 배
삼천 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뭔가 그럴듯한 형상물이 있기에
그걸 보고 자신의 감정을 충족시키며 절을 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오늘에 기독교인들도 십자가 형상이나 주님에 초상
화를 앞에 두고 기도하면 기도가 더 잘 되는 것 같고, 은혜가
임하며 큰 도움을 받을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전혀 아니고 모두가 인간들 자기들의 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진노를 살 일들이다.
넷째, 목을 곧게 하여 우상을 섬겼다.(133절)
목을 곧게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고나 누구의 조언도
듣지를 않고 교만 방자하게 자기 고집대로 나갔다는 것이다.
사람이 잘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회개를 촉구하면, 잘못을 깨달아 자기의 생각을
굽히고 굴복할 줄을 알아야 한다. 권고나 조언이 있음에도 계속
자기를 내세워 목을 곧게 하여 나가면 멸망하는 지름길이 된다.
이러함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목을 곧게 세워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거리낌 없이 나가므로
하나님께서 격노하셔서 멸하시려고 하신 것이
2011-09-05 AM 10:55:21
2011. 8. 28 여호와의 군대장관
제 목 : 여호와의 군대장관
성경말씀 : 여호수아 5 : 13 - 15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가운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광야생활 40여년의 방랑 끝에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 능력의 종 모세는 하늘나라로 가고, 가나안 족속들은
그 세력이 크고 강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그 족속들을
감당할 힘이 없어 불안한 가운데 대기하고 있었다.
이때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여호수아,
가나안 땅의 첫 관문인 여리고 성을 정복해야 하는데 눈앞이
캄캄하고 자신이 없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로서 통솔력
도 보여야 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종으로 자신을 이스라
엘 백성 앞에 나타내기도 해야 하는데 길이 안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자기를 도와줄 사람과 세력을 찾고 있는데
마침 천사가 나타났다. 여호수아가 물었다. “너는 우리를 위하
느냐 ?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이에 천사의 대답은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이다”이 말은
나는 너를 위한 것이 아니고, 대적을 위한 것도 아니며,
1)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그 명령을 이루어 드리러 왔으며,
2)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그 영광을 위하여 왔으며,
3) 또한 누구 편이냐 하면,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편에
서서 도울 것이다. 라는 뜻이다.
천사가 이어 말하기를 “너는 네 발에 신을 벗어라” 하였으니
실제로 발에 신을 벗으라는 것과 또한 그 숨은 진리가 있으니,
첫째, 죄를 회개하라는 뜻이다.
이때 당시의 신은 오늘날처럼 좋은 신이 아니었고 짚신 비
슷한 것이나 가족에 끈을 맨 정도로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이
잘 묻는 더러움을 잘 타는 것들이었다. 신을 신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이 묻은
것처럼, 그 신을 신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여러 가지 죄들이 있는데 이를 찾아 회개하라는 것이다.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아니면 죄를 용서받을 길이 전혀 없는 줄 알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사죄의 은총을 받는 것이다.
먼저 죄 용서를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도 없고
어떤 일에 승리를 하거나 성공을 할 수가 없다.
둘째, 자기를 벗으라는 뜻이다.
자기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고,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어서,
모든 일을 자기 위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어찌 보면 이성을 가진 자유인으로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하고, 자기가 하기 싫으면 안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하여
자행(自行) 자제(自制)할 수 있지만, 어떤 인간이든지 인간은
불완전하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므로, 인간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하기 싫은 대로 안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어떤 사람이든지 잘 되기는커녕 죄악을 저지르게 될 뿐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게 된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기가 중심이 되거나 자기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로지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 말씀이 “하라” 하면 자신은 싫다 하여도 그대로 행하고
하나님 말씀이 “하지말라” 하면 자기는 하고 싶어도 절제하는
그런 삶을 살라는 것이다.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갈 곳, 못 갈 곳 가리지 않고 마음대
로 오가던 그 신발을 벗는, 곧 자기를 벗어 버리라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종이 되어라.
당시의 생활 풍습은, 종은 주인 앞에서 신을 신을 수가 없이
벗고 있어야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이제 하나님의 종이 되라는 뜻이다.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기쁘게 하며, 자기 뜻을 이루어,
자기가 영광을 받아 누리고자 하는 그런 자리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뤄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종이 되라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자신을,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 나타내고
여리고 성을 정복하여 하나님의 쓰시는 종으로 자신을 보여주고
세워 나가려하기보다 우선적으로 제일 먼저 할 일이,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고 여호와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이에 여호수아가 신을 벗었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난공불락의 요새 여리고 성이 무너져
여호수아는 대승을 거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훌륭한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이루고자
하여 누구의 도움을 받고 싶고, 누가 내 편이 되어줄까 찾기
전에, 먼저 할 일이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는 일이다.
신을 잘 벗는 대로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역사 축복해 주신다.
2011-08-29 AM 10:43:00
2011.8.21 말씀과 법도를 지켜야할 이유
제 목 : 말씀과 법도를 지켜야할 이유
성경말씀 : 신명기 7 : 12 - 16
사람이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복락을
누리는 구원을 받음에 있어 수많은 사람이 혼동을 하고 있다.
즉 사람이 어떤 선한 행실과 의로운 일을 행하고 법도를 지킴
으로 얻어질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와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을 보자.
아브라함은 지금부터 4,000년 전 사람인데
아브라함 시대에는 기록된 성경 말씀이 전혀 없었고,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이나 규례의 말씀이 하나도 없었으며,
다니엘서나 계시록 같은 말세 예언의 말씀이 한 절도 없었고
예수님의 비유 말씀이나 기록 된 진리의 말씀 자체가 없었다.
(최초의 기록된 성경과 십계명과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고
모세는 지금부터 3,500년 전 사람이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성삼위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자기 후손을 통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믿
었고,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므로 인간 최고
의 축복 “믿음의 조상”이라는 지위를 얻고 천국의 대표주자가
되었다.(마 8:10-12, 눅 16:22-25, 갈 3:5-7, 9)
즉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이 말하는 비유나 계시의 말씀을
전혀 몰랐었고, 방언이나 어떤 능력과 기적을 행하지도 아니
했으며, 다니엘서나 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
었음에도 오직 믿음과 때를 따라 주시는 말씀을 순종함으로
축복을 받았고 천국의 대표가 된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뿐만 아니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도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는다“고(갈3:9)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성경말씀을 전혀 모르고 다니엘서나
계시록 예언의 말씀과 복음서의 비유의 말씀을 전혀 몰라도,
“창조주 하나님”과 “권의 주 예수님”과“사랑하시는 성령님”
의 역사하심을 믿는 백성들은 아브라함처럼 죄 사함을 받고
죽었던 영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의 천국복
락을 누림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 613가지와 신구약 성경
66권의 말씀은 왜 익혀야 하며 지키고 순종을 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본문에서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인애(仁愛)를 받기 위함이며,
이를 본문에서 말씀하신 대로 자세하게 풀어보면,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함이다. (13절)
이미 성삼위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천국백성이요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과 율법을 모르고 지키지 않거나
불순종하고 나가면, 현실의 삶에서 받아야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고 오히려 책망을 받게 된다.
둘째, 복을 받기 위함이다.(13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복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복을 구분하셨다. 복이란 무엇인가?
손해가 없이 일들이 평안하게 잘 되어 나가면 이것이 곧 복이다.
13절에 우리의 소생 곧 우리 자손들에게도 복을 주시고,
14절에 만민보다 우승한 복을 주신다 하셨다. 만민보다 우승한
복이라는 것은 곧 영적 축복을 더하여 주시겠다는 뜻인데,
이러한 복이 말씀과 법도와 규례를 지킬 때에 임하게 된다.
셋째, 번성하기 위함이다.(13절)
밭의 소산과 곡식과 포도와 소와 양의 번식과 풍성함
자손들의 번성함에 이르기까지 물질에 축복과 육신에 축복, 곧
우리의 육신의 삶에 필요한 직장과 사업의 모든 풍요의 축복이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며, 십일조와
헌금 헌물 등 열심을 내어 충성하고 헌신하므로 임하게 된다.
넷째, 질병에서 벗어나 평강을 얻기 위함이다.(15절)
몸에 질병이 있으면 자신에게도 어려움이 따르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며 물질에도 손해가 온다.
따라서 건강한 몸과 마음은 우리 삶에서 행복의 한 조건이 된다.
이렇게 질병이 없이 건강하게 사는 지름길은, 하나님의 말씀과
십계명과 율법을 지키고 순종하므로 받을 수 있는 축복이다.
다섯째, 원수를 물리쳐 주신다. (15절)
우리를 미워하고 해하려는 원수들을 이겨내려면, 우리가 원수
보다도 더 강하게 더 악독해야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미
우리는 성도로서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짓게 되므로 설사 원수를 이겼다 해도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과 계명과 법도를 지켜 나가면 굳이 우리가
원수를 갚으려 아니해도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를 갚아주시고
원수를 징벌하여 주신다.
성삼위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들은, 말씀과 율법을 순종
하고 지켜 나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은혜가
너무 크고 존귀하게 여겨져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기쁨으로
순종하게 되고 오늘에 말씀하신 축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2011-08-22 AM 10:57:58
2011. 8. 14 하나님과 인간의 의와 죄의 관계
제 목 : 하나님과 인간의 의와 죄의 관계
성경말씀 : 욥기 35 : 1 - 8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생활로
동방에서 가장 큰 자요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귀의 시샘으로 시험을 받아 수천억의 재산을 다 날
리고, 일곱 아들 세 딸이 한 번에 다 죽고 자기는 온 몸에
병이 들어 성한 곳이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는 찬송을 받으소서” 하고 하나님께 찬송을 하니
아내를 비롯하여 친구들이 욥을 비웃으며 “네가 죄가 있어서
이런 징벌을 당한 것이니 회개를 하라”고 압박을 한다.
이에 욥이“나의 가는 길이 하나님이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
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리라” 고 하면서 자신을 변호
하고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굳게 지켜나갔다.
그러므로 “엘리후”라는 사람이 오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욥 네가 하나님보다 의로운 자냐?”
“네가 범죄 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
시겠느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
과연 그러하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자기가 의롭고 선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
뭔가 잘한 일이 있고 좋은 업적을 이루었을 때에,
그 일이 하나님께 큰 유익이나 도움을 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자만심을 가지고 우쭐대며 자신이 높임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이 제아무리 선을 행하고 잘했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 스스로들에게 유익을 주거나 도움을 줄 뿐,
하나님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와
전지전능하심에도 전혀 유익이 되지 않는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완전무결하시고, 영원불변
무궁하신 하나님으로 이미 그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능력이
“자 충만”하시고, “자 충족”하시고, “자 충분”하셔서, 천상천
하에 그 누구의 도움이나 공로가 전혀 필요 없이 자신스스로
완전무결하시고 완전 충만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흉악한 범죄를 했다하자,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되거나 해를 받는 것이 아니다.
물론 믿음의 사람이 범죄 했을 때,
세상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까지 비방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시며 전지전능하시며
완전무결하신 그 영광이 훼손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범죄를 하거나, 그로 인해 감히 하나님을 비방한 인간들
스스로에게 해를 주고 심판을 자초할 근거가 될지언정,
하나님의 완전무결하심과 그 존귀 영광 권세에는 전혀 영향을
까치지 못하고 오로지 영원무궁이 찬란하게 빛나신다.
그러므로 인간이 제아무리 좋고 선한 일을 했다 하여도
첫째, 교만하면 안 된다.(대상 16:23-29)
인간 자신의 한 일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여도,
그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셨고, 그 자신과
그와 관계된 사람들에게나 유익을 줄 뿐, 하나님께는 전혀
유익이 없고 어떤 도움도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진정 하나님을 위해서 잘한 일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영광을 마땅하게
돌려 드린 것일 뿐 하나님께 유익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겸손해야 된다.(눅17:7-10)
선하고 좋은 일로 교회를 받들고 큰 업적을 이뤘다 하여도
그 역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비하면 반에 반도 못
한 것이며,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한
것이요 오히려 무익한 종이기 때문이다.
셋째, 감사드려야 한다.(살전 5:16-18)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 써 주신 것과
인간 자신이 그 선하고 좋은 일에 쓰임 받았다는 사실, 이 모두
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송을 돌려야 할지언정, 인간 자신이
영광을 누리려 하거나 높임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악을 행했다 하자.
그것이 자기를 해롭게 하고 가족들을 해롭게 하고 주위 사람과
그 사회에 악을 끼쳤기 때문에,
1) 믿음의 사람으로 자신과 이웃에게 해를 끼치고 잘못한 일에
대하여 슬퍼하고 원통히 여겨야 한다.
2)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3) 바른 믿음으로 살 것을 결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말씀의 인도와 주장을 받아 나가야 한다.
혹시 악을 행하고 죄를 범했다 하여도 낙심하여 주저앉거나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서해 주시고 새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2011-08-15 PM 5:28:54
2011. 8. 7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라
제 목 :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라
성경말씀 : 신명기 6:18-25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는 자기가 정직하고 깨끗하다고
제법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 자신이 보기에 정직하고 깨끗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깨끗하냐? 하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께서는
심령을 감찰 하시느니라“(잠언 21:2)
“정직”이란 히브리 원어 “하야샤르” 인데,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바르고 곧게 행하는 것을 뜻한다.
확실한 사실임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한다하여도
그에 따른 바르고 곧은 삶을 살아가지 아니한다면 그는 곧
정직한 것이 아니고 거짓된 것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정직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인정하고 섬기는 것이다.
천지만물의 근원에 대하여 수많은 사람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과학이라는 이름아래 수백 가지의 학설을 만들어 냈다.
그 중 다윈의 진화론이 유력하게 작용을 하여 수많은 사람을
미혹하여 멸망 길로 끌어가고 있다.
진화론이 과학적이 아니면서도 과학적인 것처럼 위장했는데
그 증거가 다윈의 진화론이 나온 후로 시간이 흐를수록
우주만물과 생물들의 연대가 수시로 변하고 있다. 그 예로
우주만물의 기원이 언제 20억만년이 되었다고 했다가
또 언제는 40억만년이 되었다고 했다가 이제는 200억만년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것이 또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과연 이렇게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과연 과학적인가?
또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면 지금같이 급변하는
세상에, 지금도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되는 과정이 있어야
되고, 다른 생물들도 진화되는 중간과정이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후로 지금까지 어떤 생물의
진화되는 과정 중간 형태가 나타난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
다. 또한 천하 만물은 그 어떤 것이든 자연 상태로 놔두면
진화는커녕, 오히려 퇴화하고 소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진화론은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인생들이
우주의 근원에 대하여 궁금한 나머지 상상과 추측으로 조합
하여,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우주의 기원에 대하여
궁금하게 생각하는 인간들을 미혹하는
허구적인 것이며 완전에 가까운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천지만물은 어떻게 해서 생성 생존케 되었는가?
바로 우리 성삼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다.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로 진화한 것이 아니고, 생존 처음부터
하등생물은 하등생물대로, 고등생물은 고등생물대로, 어류는
어류대로, 조류는 조류대로, 천상천하 만물의 모든 것을 각기
종류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다. 이 엄염한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따라 믿음으로 바르고 곧게 사는 것이 정직이다.
둘째, 천지만물을 하나님께서 경영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들을 비롯한 천지 만물들의 생사화복과 생성쇠멸과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모두다 우리 하나님께서 운행하시고
경영하신다. 천하만물이 자연스레 진화되기도 하고 퇴화하기도
하다가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천상천하 만물이 모두 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에 따라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
며, 흉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정직한 것이다.
셋째, 인생을 죄악과 멸망에서 구원하신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든 인생이 다 죄인이다.
죄인은 죄의 값을 따라 죽음과 더불어 지옥형벌을 받게 되었고
이에 벗어날 인생은 그 누구든 하나도 없이 다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의 형벌을
자기의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담당하게 하셨고, 그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천국백성으로 삼아
주셨다. 이렇게 지옥 불바다에서 형벌을 받을 인생들을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건져서 천국 복락을 주시는 분을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성삼위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믿으며
그에 따른 바르고 곧은 언행심사를 가지는 것이 곧 정직이다.
넷째, 하나님꼐서 심판 주이심을 인정하고 따른 것이다.
인생들을 비롯한 천하만물은 생성되어 쇠멸될 때가지의
생존하며 행한 것의 과정이 있다. 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고...... 이에 대하여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상을 주시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대로 벌을 주시는 분이 성삼위 하나님
이시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믿으며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언행심사를 가지는 것이 곧 정직한 사람이다.
위 네 가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이든 거짓말쟁이요 마귀의 장난에 놀아나는 사람으로
멸망 받을 사람이며, 이 사실을 믿고 인정하며 믿음으로 사른
사람은 그 누구이든 하늘에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받게 된다.
2011-08-08 AM 8:55:56
2011. 7. 31 축복하기를 좋아하라.
제 목 : 축복하기를 좋아하라
성경말씀 : 시편 109 : 16 - 20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옷 입듯이 저주를 당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에서 저주를 하지 말고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할 근거를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금년도 우리교회의 표어 말씀인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네게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는 민수기 6장 22-27 절까지의 말씀은,
단순히, 예배시간에 표어로만 낭독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고
우리가 금년 한 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를 지시하
신 말씀이며, 곧 축복하는 삶을 살아라, 고 주신 말씀이다.
금년도 상반기가 끝나고 벌써 8월에 접어들고 있다.
돌이켜 보면 연초에는 표어 말씀대로 축복하는 삶을 살려고
제법 힘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살펴보면 축복의
표어는 연초보다 더 많이 낭독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축복을
하는 생활은 그만큼의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축복하지 못하고 제 자리에 머무르는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의 삶의 기본적 자세가
바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기본
자세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야구나 골프나 축구 등 모든
운동에서 심지어는 노래하는 창법에서까지, 기본자세가 바로
돼있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있고, 기본자세가 바로 되지
않으면 아무리 힘써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이 실패를 하듯,
우리의 삶과 신앙에서도 기본자세가 바로 되지 아니하면
축복의 삶을 살 수가 없고 실패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축복의 삶을 살기 위한 바른 자세는 무엇인가?
첫째, 판적 자세를 버리고 협력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나 사건이나 사물을 생각할 때에,
먼저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해하고 협력하며 조화를 이루려 하기보다 먼저 생각하는 것이
못마땅하게 여겨 비판부터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축복할 생각도 못하는 것이고 축복을 할 틈이 없다.
가족들끼리도 회사에서도 교회에서도
누구를 보든 어떤 사건을 대하든지 서로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
을 버리고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며 상대가 잘 되기를 바라며
축복하는 삶으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
둘째, 부정적 자세를 버리고 긍정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무엇이든지 “안 된다” “싫다” “못 한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보는 사람은 축복하는 삶을 살 수가 없다.
세상 모든 일이 다 부정적인 면이 있고 긍정적인 면이 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여도 단점이 있고,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한 편으로는 장점이 있다. 이럴 때 부정적인 면을 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인 면을 살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좋다” “잘 한다” “잘 되겠다”하며 그 사람이나
그 일들이 잘 되도록 축복을 하며 살아야 한다.
셋째, 불평하는 자세를 버리고 감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원망 불평을 하는 사람은 축복을 할 수가 없다.
마음과 말에 불평과 원망이 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원망 불평하는 자세를 버리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람에 대하여도 감사를 하고, 사건에 대하여도 감사를 하고,
감사할 때 축복을 할 수가 있고 축복을 할 때에 자기 자신도
축복을 받을 수가 있다.
넷째, 의례적이 아닌 진정성을 가지고 축복을 한다.
우리 교회의 금년 말씀은 표어로나 의례적인 어구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려고 축복할 문구까지
명백하게 계시하셨으며, 우리가 그 말씀대로 축복을 할 때에
축복한 그대로 복을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말씀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한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진정으로
축복받기를 원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해 축복을 해야 한다.
진정으로 하는 축복만이 서로에게 축복을 가져 온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상대가 축복 받을만한 자격이나 자세를 갖추지 못했을 때도
축복을 해야 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물론 해야 한다.
그렇다. 우리가 축복하는 것은 상대의 자격 여부에 따라서
진행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그 집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그 집에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이러므로 상대를 따라 축복할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축복을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도 축복을 받는 비결이다.
2011. 7. 24 지옥 불바다에서 멸망 받을 이단
제 목 : 지옥 불바다에서 멸망을 받을 이단
성경말씀 : 베드로후서 2 : 1 - 3
“이단”이란 정상적인 것과 비슷한데
끝이 다르고 그 결과가 다른 것들을 일컬음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저주와 멸망을 받을 이단인 것이다.
복음이란,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내 죄 값을 지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내 죄는 완전 깨끗하게 용서를 받았고,
예수님이 죽으신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셔서 나에게
죽어도 다시 사는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다.”
이 복음, 즉 예수님을 믿으면,
1) 누구든지 모든 죄를 다 완전하게 용서를 받고,
2) 죄 값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3)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어,
4) 천국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 이를 구원이라 하는데
이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성립되며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
이 복음에다 무엇을 더하거나 제하면
이것이 다른 복음이고 곧 멸망 받을 이단인 것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 받기에 부족하니,
헌금을 많이 하든지 돈을 내고 속죄 표를 사야 한다든지,
제 칠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거나 침례를 받아야 한다든지,
방언을 하거나 어떤 신비한 은혜를 체험해야 한다든지,
신천지처럼 비유나 비밀의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면
이것들은 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들로 모두가 다 저주 받을
이단들이다.(갈 1:6-10)
위 말씀에도 사도 바울이 개척해서 세운 갈라디아 교회에도
이미 저주 받을 이단들이 활동을 했고, 오늘 본문에서도
베드로 사도가 사역하는 그 곳에도 벌써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이단을 끌어들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멸망 길
로 끌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오늘날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여러 가지 표적과
기적을 행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망할 길로 끌어가며
택하신 백성까지 미혹하려 한다. (마 24:3-5, 10-12, 23-26)
이런 이단들과
사기꾼, 스파이, 마귀 세력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 위장을 하고 가만히 들어온다.(1절)
겉으로 보면 선지자요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들인데
속에는 사람들의 영혼을 노략질하여 망할 길로 끌어가는 이리
들인 것이다. (마7:15)
오늘날의 이단들도 마찬가지다. 쉬고 있는 선지자나 선생으로
위장을 하고, 이사를 와서 다닐 교회를 찾는 성도인 것처럼
위장을 하기도 하며, 또는 기도에 효험이 있는 기도일군처럼
자기들의 신분을 감추고 가만히 들어온다.
마치 사기꾼이 사기꾼임을 감추고, 스파이가 스파이 신분을
감추고, 자기들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고 접근을 하듯
이단들과 마귀의 세력들이 이렇게 접근을 한다.
둘째, 감언이설로 속인다. (3절 상)
사람 듣기에 달콤한 말을 하며 이단설로 사람을 속인다.
자기들에게만 비유나 비밀의 말씀을 깨달은 것이 있고,
자기들에게만 천국에 들어갈 비밀이 있으며, 자기들과 함께
해야만 죄 사함을 받고, 자기들에게만 거듭남의 비밀이 있는
것처럼 속이며, 자기들을 떠나가고 자기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멸망을 당할 것처럼 은근히 위협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들에게만 비유의 말씀이 있고 천국 갈 비밀이
있으며, 자기들에게만 죄 사함의 길과 영생이 있다고 하며,
자기들과 함께 하지 않고 자기들을 떠나면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자기들이 멸망 받을 이단임을 증거 한 것이
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혼이 거듭나서 천국복락을 누리는 것이지, 어디에 누구에게
어떤 교파에 속해야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들을 자기들의 이익의 도구로 삼는다. (3절 중)
입으로는 사람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탐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자기들의 이익의 재료나 도구로 삼고, 이익을 얻을
것이 없으면 내버리는 것이 이단이나 사기꾼들의 습성이다.
넷째, 멸망을 당한다. (1절, 3절)
자기들도 멸망을 당하고 따르는 사람들도 멸망케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지 아니했으나
그들이 사람에게 거짓으로 예언을 하도다. 그들도 멸망하고
따르는 백성도 멸망을 당하리라“(예레미야 14:14-16)
이단을 주창하는 자들이나 이단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미
저주와 멸망을 당하기로 작정된 자들이다. (살후 2:9-12)
2011-07-25 AM 11:33:09
2011.7.17 내 말과 마음의 묵상을 열납하소서
제 목 : 내 말과 마음의 묵상을 열납 하소서
성경말씀 : 시편 19 : 9 - 14
“열납”이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거두어 주심을 뜻한다.
본 말씀은 다윗이 자기의 생활의 체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한 말씀인데, 다윗은 현실의 삶에서
자기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그에 대한 응답이 임하시기를 소망하며 이 말씀을 기록했다.
다윗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어떠했기에
이렇게 당당하게 하나님의 열납 하심을 소망했을까?
첫째,.허물에서 벗어나고자 말과 묵상을 했다.(12절)
12절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위 말씀의 “허물”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지은 죄를 뜻한다.
죄란 무엇인가?
“하나님과 그 말씀을 거역하거나 순종해도 부족한 것이다.”
이럴진대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지은 죄,
자기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잘못인줄을 알지 못하고
저지르는 일이 많이 있다. 이것을 “허물”이라 한다.
이렇게 모르고 지은 죄도 그 벌을 면할 수가 없는데(레5:17)
다윗은 그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짓는 죄 허물에서 벗어나기를
마음에 소원하고 말로 하나님께 아뢰었으며, 자신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범하는 죄가 없도록 마음의 묵상과 함께
실제 생활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며 살았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지은 죄에 대하여
생각해 봤는가? 그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며 그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죄 짓는 일이 없도록 얼마나 묵상하며 실제 생활에서
노력을 하였는가?
둘째, 고범죄를 짓지 않을 말과 묵상을 했다.(13절)
고범죄란 죄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허물이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범하는 잘못인 반면,
고범죄는 본인 자신이 잘못인줄 알고 또 그 죄를 저지르면
징벌이 있을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또는 계획
적으로 저지르는 죄악들을 뜻한다.
다윗의 말과 마음의 묵상은, 이 알면서도 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분명히 잘못인 줄을 아는데 자기 욕심과 부패한 성질
에 휘말려서 고의로 죄를 지을까봐
그런 죄가 자기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마음의 묵상을 하고
말로 다짐을 했으며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라고 소망을 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죄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쩔 수가 없어
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잘못한 일들을 합리화 시키지는 않는지?
과연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른 일에 대하여 얼마나 생각을 하고
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는지?
이제 우리도 좀 더 진지한 자세로 묵상을 하고 말에 다짐을
하며 힘써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말씀대로 살고자 말과 묵상을 했다.(9-11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도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도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른다는 것은
곧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도 영원하다는 뜻이며,
조금도 추함이나 부정함이 없이 다 의롭게 하는 말씀이기에,
순금보다도 세상에 그 어떤 보물과 가치 있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가치가 더 크고 존귀함을 알고,
꿀과 송이 꿀보다도 더 달콤하게 여겨서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겠다고 마음의 묵상을 하고 말의 다짐을 한 것이다.
이런 말과 마음의 묵상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아주실 것이기에 다윗은 이렇게 당당하게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을 주께서 열납 해주시라”고
청원했던 것이다.
우리의 입의 말과 우리 마음의 묵상은 무엇인가?
우리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은 대부분이 돈이나 승진이나
출세 권력 등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거머쥐고 누리는데 있으니
심히도 안타까운 일이다. 하긴 우리가 몸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상 이런 것들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세상 것들은 얻고 누린다 할지라도 잠간 있다가
없어질 것들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순종한 일들은
영원하여 천국에서까지 큰 상급과 찬란한 영광이 될 터인즉,
이제 우리도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을 바꾸어 가야 한다.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짓는 죄가 없도록, 또한 알면서도 짓는
죄, 즉 내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죄에 사로잡혀 범죄
하는 일이 없도록 깊은 묵상을 하며,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 주시리라.
2011-07-20 AM 9:17:41
2011.7.10 사사 입다
제 목 : 사사 입다
성경말씀 : 사사기 11: 1 - 11
사사(士師)는 이스라엘에 정식으로 왕이 세워지기 전,
왕의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였다. 선지자 모세와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사울과 다윗이 세워지기전까지 약 400
년을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한 사람들이다.
입다는 뛰어난 사사였는데 그의 삶에 환경을 보면,
1) 기생의 아들이었다.
기생이라 할 때도 여러 종류가 있다.
웃음과 술을 파는 기생도 있고, 기예 즉 춤이나 노래를 파는
기생도 있으며, 또한 몸을 파는 기생도 있다.
입다는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윤락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지금같이 인권이 밝은 세상에서도 어떤 집에 윤락녀의 자식이
있다고 할 때에 그는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멸시천대를
받을것인데, 그, 까마득한 시대 아예 태어날 때부터 천대를
받았고, 자라면서도 계속 천대와 조롱을 받으며 자랐다.
2)집에서 쫓겨났다.
입다가 성인이 되자 집안 형제들과 장로들이 입다를 집에서
쫒아냈다. 윤락녀의 자식으로 어려서부터 천대를 받으며 밥
한 끼도 편히 먹을 수 없었다. 이제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했
으니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한 처지인 것인가?
3) 잡류들과 함께 생활했다.
집에서 쫓겨났지만 마땅히 갈 곳도 없어“돕”이라는 땅으로
가서 잡류들 즉 불량배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동안도 틈만 나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괴롭히던 암몬 족
속이 또 이스라엘 침략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막아낼 힘이 없
어 전전긍긍하다가“큰 용사” 입다의 소문을 들었다.
한 때는 자기들이 합세해서 쫒아낸 사람이지만 이모저모로
살펴보니까 이런 위기에서 이스라엘을 구해낼 인물은 역시
입다 뿐이라 의논을 하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입다를 정중히
청하여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다.
기생의 자식이라 태어나면서부터 멸시천대를 받던 입다는
이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인 사사가 되어, 암몬 족속들을
몰아냈으며,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넘보는 적들과 싸워 적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평안케 하였고 이스라엘 나라를
강성케 하는 뛰어난 지도자가 되었다.
멸시천대 받던 기생의 자식이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으니, 인간 최고의 출세요
존귀와 영광과 함께 누리게 되었다.
이렇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첫째, 입다는 믿음으로 자신을 잘 가꾸었다.
기생의 자식으로, 출생하면서부터 멸시천대를 받은 입다,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을 부인하고 멀리하는 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입다는 그럴수록 자신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시라 믿고 하나님을 잘 섬겼다. 그 증거가
장로들이 입다늘 초청했을 때,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될 것을
믿었고(9절), 사사가 되어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으며(11절),
여호와의 신 성령님이 함께 하셨다(29절)
둘째, 용사로서 실력을 가꾸었다.
멸시천대 따돌림을 당하며 누가 입다를 가까이 하려고도
아니 했을 것이며, 무예를 익힐 스승을 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입다는 그런 열악한 환경 가운데도 꾸준히 자기 무예
실력을 키운 것이다. 어떤 일이든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며
오랜 세월을 갈고 닦을 때에야 인정을 받는 큰 용사가 되는데,
입다는 그 오랜 세월 좌절하지 않고, 게으름을 부리지도 아니
했으며, 자기를 쫓아냈던 사람들도 인정할 만큼의 실력을 갖춘
큰 용사가 된 것이다.
셋째, 좋은 성품을 가꾸었다.
아무리 무예 실력을 갖추었어도 입다의 성품이 포악했다면
이스라엘 장로들이 입다를 최고 지도자인 사사로 세우지를
아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입다의 성품이, 자기를 천대하며
쫓아냈던 사람들이 와서 초청함에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온화하게 대한 것을 볼 때, 이미 입다는 좋은 성품을 갖췄음을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입다가 집에서 쫓겨나서도 불량배 잡류들과 생활을 했다.
망나니 같은 그들과 생활하면서도 나쁜 것에 물들지 아니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좋은 성품을 갖추었던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싶지만 환경이 허락지 않는다고 핑계대고
좋은 실력과 성품을 갖추고 싶지만 주위의 여러 조건이 맞지를
않는다고 주위 여건 탓을 한다.
그러나 입다를 생각해 보라! 우리의 환경과 여건이 좋지
아니해도 입다의 환경과 여건에 비하면 훨씬 좋은 환경이다.
핑계대지 말고, 게으름 부리지 말고, 우리의 믿음과 육신적
실력과 좋은 성품을 갖춰서 주님께 존귀하게 쓰임을 받자!!
2011-07-11 AM 8:52:33
2010. 7. 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제 목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성경말씀 : 마태복음 5 : 13 - 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이 말씀은, 신자가 소금이라는 뜻이 아니라, 믿는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소금의 기능과 역할을 하라는 말씀이다.
소금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 소금의 맛을 낸다.
사람이 섭취하는 모든 음식물은 소금이 적당량 들어있어야
맛이 있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하다못해 물에도
적당량의 염분이 있을 때 물의 맛이 좋고 사람에게 유익하다.
이렇게 소금은 요긴한 것인데, 만약 소금이 맛을 내지 못
하면 아무 쓸데가 없어 밖에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밟히게 될
뿐이라 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소금이라 하셨으니, 우리 역시 소금의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맛을 내야 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의 삶에서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맛을 내고
좋은 맛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나 자신으로 인하여 내 가족들이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는
살맛을 느끼게 해야 한다. 나로 인하여 나의 직장 사람들이
직장을 다닐 맛이 나게 하고, 나로 인하여 구역가족들이
신앙생활을 할 맛이 나게 해주고, 나로 인하여 여전도회,
남전도회, 찬양대, 주일학교 등이 살맛이 나고, 일할 맛이 나
게 해주며, 함께 할 맛이 나게 해줘야 한다.
소금이 맛을 내려면 녹아져야 하듯, 우리가 맛을 내려면
우리 자신이 녹아져야 하는데, 녹아진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뜻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현실의
삶에서 내 자신의 몸과, 마음과, 물질을, 희생하여 주위 사람
들을 섬겨 나가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녹아지고 희생하므로
주위 사람들이 나로 인해 좋은 맛, 살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둘째, 소금은 부패를 방지한다.
여러 가지 식물을 오래 저장할 수 있는 것은 소금의 역할로
인해서이다. 소금에 절여 놓으면 불필요한 세균의 활동을 막
아주고 썩거나 변하는 것을 막아줘서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
우리가 소금이니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세상이 온갖 죄악으로 가득 차 있고, 타락된 문화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을 그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여 이 세상을 썩어져 가게하고 있다.
이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경건한 생활을 해서, 타락된 문화와
죄의 습관으로 인해 부패해져가는 이 세상에 모범을 보이고
썩어져 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때로는 우리의 그런 역할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아주
무관심이 되고 좋은 역할을 해주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 한 사람이라도 믿음으로 바로서서 경건한 생활을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
구약에 “롯”이 소돔 고모라에서 그 시대에 그 주위에 있는
사람 아무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심지어는 부인은
소금 기둥이 되고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겨 자기 가족까지도
다 구원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약 2천년이 지나서
베드로후서 2:7에서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 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라는 말씀으로 롯을
의인이라 하시고 칭찬하시며 귀감으로 삼으셨다.
셋째,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준다.
사람의 몸은 0.9%의 소금이 포함되어 있다. 혈액이나 눈물
침에 까지도 다 소금이 있는데, 바로 이 소금이 혈액순환과
몸의 신진대사를 도와 노폐물은 빠져나가게 하고 새로운 힘이
순환되도록 해서 사람으로 건강하게 해 준다.
방목을 하는 가축이나 몽골이나 고산 지대의 가축들에게도
주기적으로 소금을 먹여주어 신진대사가 잘 되고 힘을 내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지 있는 그곳에서, 사람들
상호간에 소통이 원활하게 잘 되도록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잘못 된 일들은 버려지고 좋은 일들이 잘 진행이 되도록 협력
하고, 위나 아래로 또는 수평 관계에 있어서도 어디나 막힘이
없이 좋은 관계가 이뤄지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소금의 위치>
위와 같이 소금이 요긴하게 쓰임 받고 좋은 역할을 함에도
그 대접 받는 위치는 보잘 것이 없다. 그 누구든지 소금을
금 그릇에다 담아 놓는 사람이 없으며, 금 그릇이 아니라 해도
비교적 좋은 그릇에다 담아 놓지도 않는다. 보통 이하이든지
보통 쓰는 용기에 담아놓고, 놔두는 자리도 누가 손 댈까봐
조심하고 귀하게 여기는 자리가 아니라 그냥 편한 자리에 둔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믿음의 사람들 각자가 소금처럼 좋은 역할을 하고 요긴하게
사용됐어도 그로 인해 뽐내거나 대접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좋은 역할을 한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주실 상만 바라보고 나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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