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말씀요약] 2010년 1월-6월 설교요약 | 조회수 : 1261 |
성경본문 : | 설교일 : 2010-01-03 |
설교자 : 김성진목사 | |
첨부파일: 2010년 설교요약-1.hwp(96K) |
~ 2010-07-05 AM 9:44:10
2010. 6. 27 버릴것과 취할것
제 목 : 버릴 것과 취할 것
성경말씀 : 에베소서 4 : 30 - 32
본문 30절 말씀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너희가 구속(救贖)의 날까지 인(印)치심을 받았노라"
"구속"(구원)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영혼 구속과 몸의 구속이다.
영혼 구속(구원)은
우리 인생들의 영혼이 자기 죄 값으로 저주를 받고
훨훨 타오르는 지옥 불바다의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자기의 목숨을 우리의 죄 값으로 내어주고
우리 영혼을 죄와 지옥 형벌에서 건져내서 천국 복락을 주
신 것이다. 이는 곧 구원(救援)이란 말씀과 같은 뜻이며
그 효력이 영원히 변치 않는 영원히 축복된 것이다.
몸의 구속(구원)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서 영혼 구원을 받았다 하여도
몸은 옛날 죄 된 습관과 언행심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부패하고 부정한 몸이다. 그렇기에 이 죄된 습관과 부패한
성질을 믿음과 말씀으로 다스리며 예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닮아 언행심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을 성화(聖化)라고도 하며 구원을 이루라(빌2:12) 하셨고
몸의 구속(롬8:23)이라 하셨다.
영혼 구원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단번에 완전무결하게
이뤄지지만, 몸의 구원은 인간자신의 중단 없는 노력 가운데
분투노력함으로 조금 씩 조금 씩 이루어진다.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은 이런 진리를 모르기도 하고
믿지를 않으며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음을 부인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을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 구속은 영혼 구속은 영혼 구속이 아닌 몸의 구속이다.
몸의 구속(구원)을 이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버릴 것> 31절
1. 모든 악독을 버려야 한다.
자기 자신의 이익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꾀하는 악독한 마음, 악독한 말과
악독한 행동, 이것들을 내버려야 한다.
2. 노함을 버려야 한다 .
상대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마음으로 미워하고 배척하면서
겉은 안 그런 척 하는 위선과 마음속에 노함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 비밀까지도 아시기 때문이다.
3. 분 냄을 버려야 한다 .
마음속 노함을 겉으로 표현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며
언어폭력이나 분 냄의 폭력적 행동으로 불안케 하는 행위를 버
리고, 또한 자기의 분 낸 것을 합리화 시키는 것도 버려야 한다.
4. 떠드는 것을 버려야 한다 .
떠든다고 할 때에 좋고 선한 말이 아닌 나쁜 말들을 뜻한다.
원망, 불평, 악평, 험단, 비판, 끼리끼리 나쁜 말을 주고받고
자기 자신들의 욕심과 이익을 위해 떠드는 일을 버려야 한다.
5. 훼방을 버려야 한다 .
분명 좋은 일임에도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나 경쟁 대상이
하는 일이기에 반대를 하고 못되기를 바라며 은근히 훼방하는
것을 버리고 서로가 함께하며 협력해야 한다.
6. 모든 악의 (惡意), 여러모양의 악한 뜻을 버려야 한다.
<취할 것> 32절
1.서로 인자(仁慈)함을 베풀라.
악독함 악한 뜻을 버린 대신 어질고 선한 사랑을 베풀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따스하고 진실한 사랑을 행하라.
2. 불쌍히 여기라.
노하고 분을 내고 떠드는 것을 버린 대신에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겨 너그러이 용납하고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이다.
3. 서로 용서하라.
모든 인생들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잘못하는 것이
있고 잘못할 때가 있다. 이 때 그 잘못을 용서해 주시 않으면
불화가 계속되고 그 인생과 가정의 삶은 불행한 삶이 된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서로 용서하라 하셨고, 용서를 하되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라 하셨다.
① 완전히 용서하라. 7~80%는 용서해 주고 2~30%는
남겨서 틈나는 대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고 100% 완전용서다.
② 모든 죄를 용서하라. 어떤 잘못은 용서를 해주는가 하면
어떤 것은 용서를 못하는 것이 아닌 모든 죄를 용서해 준다.
③ 무제한적으로 용서한다. 일흔 번씩 일곱 번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횟수에 관계없이 무제한적으로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가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해 나가면, 몸의 구원이
잘 이뤄져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는 축복을 받는다.
2010-06-28 PM 12:01:42
2010. 6. 28 말을 다 믿지 말라, 어리석게 된다.
제 목 : 말을 다 믿지 말라, 어리석게 된다.
성경말씀 : 잠언 14 : 14 ~ 17
우리는 말과 정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이나 타인이 잘못된 말 나쁜 말을 했을 때는 비교적
쉽게 인식을 하고, 아하 ! 잘못 말 했구나 ! 깨닫게 되는데,
정작 잘못된 말이나 정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다음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죄 된 것인지를 깨닫지를 못한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말을 잘못해서 망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그 보다도 잘못된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서
망한 사람들이 더 많다.
인류 최초 인간 아담과 하와가 최초의 범죄를 한 것도
그들이 잘못된 말을 해서라기보다 뱀(사단)이 잘못된 말을
한 것을 액면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 타락하고 범죄를 했으며,
사람이 최후적으로 망하고 지옥 불바다 형벌을 당하게 되는
것도 말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척하는
잘못된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 멸망을 당하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온갖 말을 다 믿는 사람은 이미 어리석은
사람이고 또 앞으로도 계속 어리석어 멸망을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믿고 받아들여야 될까 ?
첫째,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말이 있으나 크게 보면 세 가지의
말이 있으니 하나님 말씀과 사람의 말과 마귀의 말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다 기록이 됐고 이 성경말씀만이
완전무결하고 진실해서 말씀한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말씀 그대로를 순수하게 믿고 받아들
여서 순종하고 사는 것이 성공이며 축복이 된다.
그러나 마귀의 말이나 그의 조종을 받는 사람들의 말은
거짓되고 불행케 하기 때문에 믿고 의자말 바가 못 된다.
때로는 마귀나 그 세력권에 있는 사람들 즉 이단과 사이비
불신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용하고 사용하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악용하여 사람을
멸망할 길로 끌어가기 위한 것이므로, 그들이 전하는 것이
성경말씀이라 할지라도 이단들이나 사이비 또는 불신자들이
전하는 말은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 (창3:1~5, 마4:13~10)
그러므로 우리는 정통신앙에 앞서간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의 가르침과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감동감화로 믿음의 지혜를 얻어서
하나님의 말씀인가, 마귀나 이단 사이비의 말인가를 잘 분별
해서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따라야 한다.
믿고 받아들여야할 하나님 말씀은 배척 부인하고
마귀나 구원받지 못한 자들 이단과 사이비한 사람들의 말을
믿고 받아들이면 그 결국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다. (계21:8)
둘째, 진실만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에 통용되는 말들 중에는 사실적인 진실한 말들도
있지만, 사실이 아닌 거짓된 말들도 너무나 많이 있다.
그럴 것이다 하는 추측성 말과 어떤 사람과 사건을 매장하고
흐리게 하기 위한 악의적 거짓말들이 판을 치고 있으며,
사람을 미혹하고 유인하는 거짓된 말들이 수없이 많다.
이러함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전에
먼저 무의식적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잘못된 습관이 있다.
그래서 사기꾼에게 걸려들고 유괴를 당하거나 다단계에 빠져서
패가망신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에서 통용되는 말들을 다 믿지 말고
여러 각도로 사실인가 거짓인가 진위 여부를 진지하게 살펴서
정확한 사실 진실만을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유익한 말만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이라 할지라도 유익되지 못한 말이 수없이 많이 있다.
사람이 화가 나고 시기 질투 욕심에 사로잡히고 시험에 들면
육신의 부패한 성질을 따라 부부간이나 부모형제지간이나
교우들이나 이웃들 사이도 별별 못된 말을 다 하게 된다.
욕이나 모함 저주 협박 무시하는 말로 인격을 짓밟기도 하며
부부사이에도 이혼으로 끝장을 내자고도 한다. 이때에
그런 말들을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여 믿고 나가면 이미
어리석은 사람이고 앞으로도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그 인생의
삶이 불행해지고 실패한 삶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아무리 사실적인 말이라 할지라도
삶에 유익이 되지 않고 화평이 되지 않고 선하지 않은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다시 흘려 내보내야 한다.
유익되지 않은 말들을 다 받아들여 마음에 상처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걸려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온갖 말을 다 믿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축복받을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2010-06-21 AM 9:16:38
2010. 6. 13 말씀은 어둠을 비추는 등불
제 목 : 말씀은 어둠을 비추는 등불
성경말씀 : 베드로후서 1 : 19 - 21
19절 말씀에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둠을 비추는 등불"이라하셨으니
"더 확실한 예언"은 무엇을 뜻 하는가 ?
성경 곧 문자로 기록된 신구약 성경 66권 말씀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언"에 대하여 잘못 이해를 하고 있다.
예언이란 앞날에 일어날 일을 미리 내다보고 말하는 것인데
예언한 말이 100이면 100% 사실 그대로 이뤄져야 예언이지
그중 몇 개라도 틀려지면 이것은 예언이 아니고 거짓말이나
사기를 친 것이다. 왜냐하면 몇 개를 맞추고 못 맞추고 하는
그런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런 것들을
예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100이면 100, 1점
틀림이 없이 다 이뤄지므로 하나님의 말씀만이 예언이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구전 (口傳)이나 개인적인 신비한 체험으로 임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인 체험이나 구전으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개인에게는 적용이 될지라도 공식적으로 모두에게 적용될
표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더 확실한 예언은 아니다.
그렇기에 더 확실한 예언은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고
역사가 일어나는, 계시되어 글자로 기록된 성경 말씀이며
바로 이 성경 말씀이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다.
첫째, 영적 흑암을 몰아내고 밝게 비추는 등불이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말씀을 믿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영적 세계의 흑암에 갇혀서 분별을 못하기 때문에, 감히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마귀 사단 무리인 알라 부처 같은 잡신들과 비슷하게 여기고
생명의 주요 구원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멸망할 이단이나 사이비 등 잡종교 잡신앙과 같이 여긴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바르게 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말씀이 영적 세계를 밝히 비춰주고 흑암을 몰아내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 죄를 사하고 영생을 주신
예수님, 그의 보내신 성령님을 바로 믿고 섬기며,
멸망당할 잡신들과 잡종교 이단 등을 물리치게 된다.
둘째, 마음에 흑암을 몰아내고 밝히 비추는 등불이다.
마음의 흑암이란
근심, 걱정, 불안, 초조, 낙심, 두려움, 원망, 불평, 절망 등이다.
성경말씀의 바른 가르침을 받고 말씀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면
말씀의 밝은 빛으로 마음속에 있는 흑암이 물러가고
기쁨, 평안, 감사, 소망, 평화, 찬양 등으로 밝은 마음이 된다.
셋째, 삶에 흑암을 몰아내고 밝게 비추는 등불이다.
우리의 삶과 생활에서, 이 것이냐 저 것이냐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야 될 갈림길에 설 때가 많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받은 사람은 그 말씀의 지혜를
얻어 그 상황과 이치를 밝히 분별하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은
멀리하고 유익하고 복된 선한 것을 선택하게 된다.
이러므로 삶을 불행케 하는 어리석음과 탐욕 흑암은 물러가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자신과 이웃에게 복이 되는
행복하고 지혜로는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넷째, 미래의 흑암을 몰아내고 밝히 비추는 등불이다.
누구든지 미래는 잘 알 수 없는 불확실한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미래와 노년이나 죽음의 세계의
흑암에 갇혀 두려워하며 걱정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빛을 받은 사람들은
말씀이 앞길을 인도해 주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므로
미래나 노년이나 사후 세계를 밝히 내다보게 되고 오히려
천국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갖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 말씀에 이런 밝음이 있고 역사가 있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아무나 "사사로이"풀어서는 안 된다. (본문20절)
사사로이는 원어(이디오스)인데, 별개의 다른
스스로 따로 제 것 등의 뜻이 있다. 즉 신구약 성경 66권 말씀이
다 일맥상통하며 일목요연한데 그와 다른 별개의 해괴한 해석,
기독교 6천년 역사와 전통에 맞지 않는 스스로 제 것의 해석을
하지 말라는 뜻이며 스스로 가감할 때는 저주와 멸망을 당한다.
신천지, 통일교, 하나님의 교회, 여호와 증인, 몰몬교 등
수많은 이단들이 기독교의 역사와 전통을 부인하고 배척하며
마귀의 영을 받아 제 것으로 해괴망측한 풀이와 해석을 하는데,
이들은 멸망당할 자들로 주님이 이미 말씀하셨다(마24:3~5, 23~27).
이제 우리는 말씀의 등불로 밝히 분별하여
어둠의 세력들을 몰아내고 천국 축복의 길을 가야 하겠다.
2010-06-13 PM 9:52:37
2010. 6. 2 어렵고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
제 목 : 어렵고 힘들때 생각나는 사람
성경말씀 : 사무엘상 28 : 4-11
사울은 이스라엘 초대 왕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 3천년 동안 왕이 없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았는데 초대 왕으로 세움을 받았으니
사울은 그 만큼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나라가 안정되고 왕권이 견고하게 되니
사울 왕이 점점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기 영광을 위한 고집과 자기 뜻대로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를 통해서 여러 번 책망하고
권고하셨지만 왕이 계속하여 거역하므로 사울 왕을 버리기로
정하시고 이웃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침략케 해서
사울 왕과 그 세력들을 징벌하기로 하셨다.
사울 왕이 팔레스타인 적군과 마주하여 진을 쳤는데
적군의 수와 위용을 볼 때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두려워서
전전긍긍하다가, 하나님꼐 도우심을 청하고 선지자를 찾아
자문을 구함에도 응답이 없고 해결책이 없었다.
다급한 나머지 무당 신접한 사람을 찾았다.
무당 점쟁이들은 악령 잡귀들 영향을 받아 사람을 속이고
멸망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사울 왕 자신이 왕권으로 그들을
추방하고 죽이기도 했는데 이를 다시 찾은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죽어서 천국에 있는 사무엘을 불러내서 그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고자 했던 것이다.
이 때 사울 왕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절박한
것이었고 사무엘 선지자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고
적군들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사울 왕이 신접한 무당을 통하여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려는
것 자체가 마귀에게 속은 것이며 그 죄로 인하여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다. (대상10:13)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앞길이 막히고 어렵고 힘든 때, 이때라도 사무엘 선지자만
곁에 있으면 일이 해결되고 잘 될 거라는 사울 왕의 사무엘에
대한 신뢰인 것이다. 그렇다. 어렵고 힘든 때, 앞길이 캄캄
하지만 이때에도 누군가만 있으면 잘 될 것이라는 믿음 가
운데 생각이 나고 떠올려지는 그 사람,
그런 사람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이며
하나님 앞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상을 받을 사람이다.
사무엘이 사울 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은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중요한 두 가지만 살펴보면,
첫째, 사무엘은 말씀의 사람이었다.
"엘리"가문이 제사장 집안이나 혼미한 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열 살쯤의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을 주셨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가감 없이 바르게 전하고
선포해서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전하는 참 선지자임을 인정했고, (삼상3:1~31)
이스라엘 초대 왕을 예선하고 기름 부어 세웠으며
종교적 정치적 지도의 중심에 있었지만 권력이나 물질,
세상 시류에 영합하거나 사람의 비위를 맞추지 아니하고,
왕이든 귀족이든 그 누구에게든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선포하고 가르치고 인도했으며, 자신은 말씀 그대로를 붙들고
행동하는 삶을 살았다. (삼상15:1~35)
사울 왕이 어려움을 당하고 보니 그런 사무엘이 생각났고
이때에도 사무엘이 있었으면 바른 길로 인도해서 잘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찾아 나선 것이다.
둘째, 관용의 사람이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선포하면서도
인격적인 면에서는 이해심과 관용과 연민의 정을 가지고
엘리 집안에 대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또 사울 왕에
대하여도 너그러움을 베풀었다.(삼상15:28~35 16:1~5)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준이 돼서 자기와 다른 말이나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정죄하며 배척한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용납하면 안 된다.
고린도 교회는 관용이 지나쳐 범죄자까지도 두둔하다가
주님께로부터 책망을 받았다. (고전5:1~6)
그러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의 것은 서로가 판이하게
다르다 할지라도 너그럽게 받아주고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
우리 주님의 사역을 보면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움과 관용을
말씀하셨다. 인간적인 불완전과 실수나 서로 다른 것들을
지나치게 캐고 따지며 비방하는 것은 관용의 사람이 아니다.
우리도 누군가가 생각나고 그리워질 때, 그 사람은 나의
실수를 감싸주고 품에 안아준 사람이다.
2010-06-08 AM 9:42:06
2010. 5. 30 은혜 받을 자에게 은혜주시는 하나님
제 목 : 은혜 받을 자에게 은혜 주시는 하나님
성경말씀 : 출애굽기 33 : 17 - 23
오늘 말씀의 배경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세가
십께명과 계시의 말씀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갔고,
산 아래 있던 백성들이 타락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 이름하며 숭배하므로 이에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전멸시킨다 하실 때, 모세가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실 것과 사죄를 간구하는 내용이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 내용.
1. 함께 할 자를 구했다.(12절)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인도
하는데 자신 혼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도와줄 자를 구했고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사하시
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라고 간청을 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간청을 들어주셔서
친히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14절)
2. 하나님의 은총을 구했다.(16절)
모세가 자신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했고
또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증거로 다른 민족들과 자신들을
구벽해주시라고 간청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일도 들어주셔서
은총을 입혀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17절)
3. 하나님의 영광 보기를 구했다.(18절)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 주시라 간청했다.
첫째와 둘째 간청을 기쁘게 들어주신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간청은 들어줄 수 없다고 거절하셨는데 그 거절하신 이유가
다름 아닌 모세 자신을 위해서였다. (20절)
즉 모세의 간청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이유가
모세가 싫거나 미워서가 아니요 모세를 위해서이니
연약한 육신을 가진 인생으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보고
살 사람이 없이 즉사(卽死)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도 들어주실 때가 있고 응답이 없을 때도
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없을 때도 역시 우리를 위하신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세의 세 번째 간청에 답변하시면서
"나는 은혜 받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준다"고 친히 말씀하셨다.
은혜와 긍휼이 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과 축복이다.
은혜는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춘 성도에게 베풀어 주시는 축복인데,
1) 성삼위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하셨으니,
모든 자격의 기본이 믿음이다.
전지전능하시며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사 목숨을 희생하여 대속하여 주신 예수님,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덧입혀 주시며
인도하여 주시는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2. 사모해야 한다.
시편 107:9절에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 하셨으니,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간구해야 한다.
3) 순종해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역사는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서 이뤄지고 나타났다.
듣고 받은 말씀을 순종하므로 은혜위에 은혜가 임하게 된다.
긍휼은
자격은 없는데 불쌍히 여김 받아 사랑과 축복을 받는 것이다.
누가복음 18:9~14절에, 죄인인 세리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시여 불쌍히 여기소서 죄인입니다. 회개 기도할 때에
하나니께서 이 죄인을 더 의롭게 여겨 주셨다.
불의를 행하느라 금식기도도 못하고 돈이 아까워 십일조도
못해봤으며 주일성수도 제대로 못하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1) 성삼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2)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므로, 사랑을 받은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의 자격이 있으면 있는대로
자격이 없으면 없는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혜와 긍휼을
간구하므로 은혜와 긍휼히 여김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2010-05-31 AM 9:38:33
2010. 5. 23 아이 밴 자와 젖먹이는 자가 화 있다.
제 목 : 아이 밴 자와 젖먹이는 자가 화 있다.
성경말씀 : 마태복음 24:16 - 26
주님 재림 때와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또한 말세 때에 성도들의 신앙의 삶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내려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이다.
세상 끝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온 징조로
첫 번째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이다.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나와서 (이단 교주들)
많은 사람을 미혹하여 멸망으로 이끌어 갈 것이며,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가 서로 적이 되어 전쟁이 일어나고
각처에 기근과 지진으로 천재지변과 환란이 일어날 것 등을
말씀하셨다.
그때 성도들의 신앙과 삶에 대하여 16절부터 말씀하셨으니
1) 산으로 도망하라. 16절
역사적으로는 주후 70년경에 로마 대군이 예루살렘을 침략
하고 성전까지 침범하여 모독한 일이고 말세에도 전쟁과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 산으로 피난하여 화를 면하라는 것이며,
신령한 교훈은 산은 세상 것을 내려다보는 곳으로 즉 세상의
것들을 부러워하며 선망하지 말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세상 것들을 초월하여 내려다보고 살라는 뜻이다.
2)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17절
유대나라의 집들은 지붕이 평면인 네모난 집이 대부분으로
평면인 지붕 옥상을 기도 장소로 많이 사용했다. (행10:9)
말세가 되고 전쟁과 지진이 일어난다 해도 기도하는 생활을
중단하지 말고 잘하라는 뜻이다.
3)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려 뒤를 돌이키지 말라. 18절
밭은 마음인데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의 씨를
받아 잘 키워서 100배 60배 결실하는 곳이다.
겉옷이란 두루마기나 코트 같은 것으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다. 이 뜻을 하나로 연결하면,
자기 마음 밭을 가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 순종하고 열매 맺는 생활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세상 것들을 취하는데 마음을
빼앗겨 중단하지를 말고, 주님 앞에 자랑스럽게 설 수 있도
록 계속해 나가라는 뜻이다.
4) 아이 밴 자와 젖먹이는 자가 화 있다. 19절
각처에 기근으로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여기저기서 지진이 일어나며 죽고 죽이는 전쟁이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자기 한 몸 돌보고 보호하기도 힘든데, 잉태하여
만삭이 된 몸이나 젖먹이 아이가 있으니 행동도 부자유스럽고
피난하기도 힘들며 굶주림으로 먼저 화를 당하게 된다.
주후 70년 경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침략했을 때도
아이 밴 자와 젖먹이는 자가 피난을 못가서 화를 많이 당했고
말세에도 전무후무한 환란과 지진 기근 가운데서 임산부나
젖먹이 아이를 둔 자가 화를 많이 당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신령한 참 뜻은,
아이 밴 자는 : 욕심을 잉태한 자이고
젖먹이는 자는 : 죄를 키워가는 자이다.
야고보서 1 :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하느니라"
말세가 되고 주님이 재림하셔서 천하 만물을 심판하실 날이
가까이 왔는데, 여전히 욕심을 품고 그 욕심대로 죄를 짓고
그 죄를 키워가기에 그런 사람들이 화를 당한다는 말씀이다.
위 말씀을 멸망 받을 이단인 신천지 무리들은
젖먹이는 자의 젖을 말씀이라고 해석을 하여 (히5:12-13)
보통교회에서는 말씀을 가르치므로 화를 당할 것이고
자기들은 의의 말씀, 비유와 비밀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므로
자기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풀이하며 미혹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삐뚤어지게 풀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만 구원받음을 부인하기에 멸망 받을 이단인 것이다.
헬라 원어로 보면
마태 24:19절 본문의 젖먹이는 자는 (델라조)라 해서
여자의 젖가슴 유방 자체를 뜻한다. 이 단어가 사용된 예는
마21:16, 막13:17, 눅11:27, 23:29 말씀 등에 잘 나타나 있다.
히브리서 5:12-13절의 젖은 사람들이 보통 편하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물로서 우유나 젖을 뜻하는데 (갈라)로
고전3:2, 9:7, 벧전2:2절 말씀 등으로 먹고, 사모하라하셨다.
다시 정리하면,
한글로 보면 마태 24:19 말씀의 젖이나 히브리 5:12 말씀의
젖이 같은 것으로 보이나, 본뜻은 마태 24:19의 젖은 여자의
몸통에 붙은 젖가슴 유방이고, 히브리5:12의 젖은
우유 분유 밀크 같은 음식물로 밥에 비교되는 젖 이다.
이것도 구분 못하는 이단들이여 !
그대들에게는 감추어 졌고 멸망을 당할 것이다.
2010-05-23 PM 10:44:24
2010. 5. 16 다른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제 목 :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성경말씀 : 갈라디아서 1 : 6 - 11
갈라디아 교회는
사도 바울이 1, 2, 3차 전도 여행을 다니며 지나다닐 때
복음을 전하여 세운 교회로 지금의 터키 중앙부지역이다.
사도 바울이 어느 한 곳에서만 전도할 수 없었기에
여러 곳을 순회 전도하는 동안,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이
갈라디아 지방으로 와서 전하는 말이
"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니
할례와 구약의 여러 의식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 고
전했다. 그럴듯하지만 이는 다른 복음이다. 그럼에도
갈라디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참 복음을 떠나
저주받을 이단<理端)인 이 다른 복음을 따라갔다.
이에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다른 복음은 없다. 바울 자신 일행이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해도 바울 사도가 처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거듭거듭 증거 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전한 참 복음은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5 : 1-4절 말씀에 기록된 대로
1)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셔서 우리 죄 값을 다
담당하시고 우리 죄를 용서하셨으며
2)죽은 3일 만에 다시 살아 부활하셔서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음이다.
이 두 내용이 사도 바울이 처음부터 전한 참 복음이고
이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구원이란?
1)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 받았다.
2)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다.(거듭났다, 중생)
3)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4) 언제 어떤 모양으로 죽어도 천국의 영생복락을 누린다.
이것이 구원이며 이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되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 외에 그 어떤 것도 첨가해서는 안 된다.
만약 예수님을 믿는 믿음 외에 다른 것을 첨가한다면 이는
다른 복음으로 저주와 멸망을 받는 것이다.
실 예를 들자면
예수님을 믿어도 방언을 해야 구원을 얻는다든지,
예수님을 믿어도 헌금을 많이 해야 구원을 얻는다든지,
예수님을 믿어도 세례(침례, 영세)를 받아야 한다든지,
예수님을 믿어도 토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 외에 그 무엇을 더해야 구원을
얻는다하면 이것은 다 다른 복음이며 저주받을 마귀집단이다.
신천지 이단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 받음을
부인하고 비유나 예언 비밀을 알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며,
말씀의 본뜻을 왜곡하여 풀이하고 그것을 모르면 말씀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한가지만으로도 그들이 멸망
받을 이단임을 스스로 나타낸 것이다.
신천지 이단들이 주로 인용하는 성구 요한복음 17: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여기"아는 것"은 그들이 미혹 주장하는 대로
비유나 비밀의 말씀을 알아야 영생 얻는다는 뜻이 아니고,
성삼위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을 알고 믿는 것을 뜻한다.
즉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요 천하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자 그 아들로서
우리를 죄와 지옥 멸망에서 구원하신 구주이시며,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님께로부터 오신 보혜사이신 것을
믿고 아는 것을 뜻한다.
"아는 것"의 원어 기노스코는 알다, 지각하다
인정하다, 라는 뜻으로 (요1:10-12, 4:1, 5:6, 6:15, 17:3, 7,
요17:8, 25) 등에서 예수님이 인간 예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고
믿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 (마16:13-19)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는냐?" 이에 제자들 답변이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 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의 물음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대답하니
"베드로야 네가 복이 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며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축복하셨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을 바르게 알고 믿은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며 영생이고 영원한 축복이다.
이것을 부인하면 다른 복음이고 저주와 멸망을 받는다.
2010-05-17 AM 9:24:44
2010. 5. 9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제 목 :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성경말씀 : 신명기 33 : 29
본문은 능력의 종 모세가
천국으로 부름을 받기 직전 이스라엘 12지파의 대표들을
호명하며 그 믿음의 분량대로 축복하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와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 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들을 밟을 것이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행복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욕심과 마음의 뜻대로 안 이루어지는 일들로 인하여
불행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본 말씀을 통하여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성도들이 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선언하고 축복하셨다.
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행복한가?
첫째,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창세전에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고
때가 되니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서 구원받은 천국 백성이
되었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용서 받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도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이 세상을 떠나면 천국 복락을 누리는데, 이러한 사랑과 구원을
받은 백성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무신론이나 미신적 잡 종교나 이단 사이비를 따르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
는데 이런 지극하신 사랑과 구원을 받았으니, 과연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방패시기 때문이다.
험학한 세상, 생각지 않은 불행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힘으로 그런 일들을 다 감당하기에는
지혜와 힘이 부족하다.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보호하시고 도와주는 방패가 되시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의지하거나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성삼위 하나님이 계시고 돕는 방패가 되어 주시니
행복하고 또한 행복한 것이다.
셋째, 영광의 칼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칼이란 싸움에서의 무기이다.
영광의 칼이란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영광의 칼이라
하는 것이다. 패전했다면 이는 부끄러운 칼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죄악과 마귀와 이단의 불의한 세력들과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해야 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크고 작은 모든 싸움에서
만능으로 도우시고 역사하셔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로 영광스럽게 해 주신다.
이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이다.
넷째, 대적을 복종케 해주시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수 대적 앞에서는
자기 자신을 떳떳하고 당당하게 세우고 싶어 하며
원수들에게 굴복 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수 대적들을
우리 앞에 굴복케 하여 주시고 우리는 당당하게 세워 주시니
진정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행복한 것이다.
다섯째, 원수들의 높은 곳을 밟게 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 불의한 세력들과 원수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명예, 권세를 얻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얻으며 높이 된 줄로 알고 목에 힘을 주고
으스댄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천국을 가면
이 세상 불의한 세력들과 원수들이 그렇게 높이고 귀하게
여기는 돈, 권세, 명예 등 보다 비교가 안 될 만큼 찬란한
영광과 고귀함이 있기 때문에, 원수들이 높이 알고 있는
이 세상 것들은 오히려 발바닥 아래 밟고 살게 된다.
이만하면 행복한 것 아닌가?!
이제 이 행복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현실의 삶에서 느끼며
누리고 살아야 한다. 성삼의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은
행복하고 나 자신도 행복하다.
2010-05-10 AM 9:42:31
2010. 5. 2 선하고 아름다운 것
제 목 : 선하고 아름다운 것
성경말씀 : 시편 133 : 1 - 3
선하고 아름답다고 인정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물며 하나님께로부터 선하고 아름답다고 칭찬 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며 축복 중에 축복된 일이다.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답게 보시는 일이 몇 가지 있으니
이사야 52:7절에 "평화와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는
그 발까지도 아름답다" 고 말씀하셨고,
베드로전서 2:19-20절에는 "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 하셨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다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을 생각하며
참고 이겨낼 때 이를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신다" 하셨다.
오늘 본문에서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 하고 칭찬을 하셨다.
여기에 "형제"는 육신의 혈족 형제를 뜻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 끼리를 뜻하고
가족과 이웃의 모든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다
형제자매임을 뜻한다.
위에 여러 예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외부적 용모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신 것이 아니고
외적 용모는 어째됐는지 그 속사람 마음의 중심과 행함이
어떤가로 아름다움의 기준을 삼으셨다.
믿음의 사람들이나 부모자녀형제자매가 연합하여 함께 생활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토록 선하고 아름답게 보시는데,
단순히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를 아름답게 보시는 것이
아니다. 함께 생활하면서도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다투며
생활한다면 이는 바라보기도 민망한 불행한 일이며,
함께 생활하며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고 아끼며 힘을 합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생활 사회적 생활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함께 생활한다고 할 때에
개성이 있고 취미가 다르고 삶의 터전이 다르고 생활수준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연합하여 함께 생활 한다는 것은
사랑이 전제 되어야 하고, 사랑에는 희생이 따라야 한다.
희생이 없이는 사랑을 할 수가 없고
사랑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답게 보실 연합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희생이 있는 사랑은,
첫째,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희생해야 한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수 십 억의 사람들이
그 얼굴과 용모가 다 다르듯 마음과 감정 또한 다 다르다.
그 다른 마음과 뜻과 감정을 가진 개체의 인생들이 연합하여
선한 생활을 하려면 먼저 자기의 마음과 감정을 접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마음이 안 맞고 성격에 차이가 나서 함께 못살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자기 마음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이기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대로만 하고자 하는 뜻과 감정을 약간씩
접고 희생해서 상대를 배려가호 조화를 이루어 갈 때
사랑하고 연합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생활을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아름답게 보시는 것이다.
둘째, 몸의 수고를 희생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다 해주기를 바란다. 이렇게 하면 연합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에 몸의 수고를
아끼지 않고 희생해 나갈 때에 상대도 감동을 받게 되고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는 연합된 생활을 이룰 수가 있다.
셋째, 물질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
옛날부터 근검절약은 생활에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것은 아끼며 한 푼도 쓰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물질은 얻어 쓰려 하고 공짜만 좋아한다면,
이런 사람과는 연합된 생활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물질로도 상대를 섬기며 베풀 때에
서로 가까워지고 사랑이 있는 연합된 생활을 할 수가 있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연합된 생활로
하나님을 섬기고 가정을 이루며 교회를 이루며 사회적 일들을
감당해 나갈 때에 이것은 그런 사람 자신들도 행복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답게 보시고 축복해 주신다.
이런 삶은 인생의 성공이며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2010-05-03 AM 9:09:25
2010. 4. 25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선물
제 목 :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선물
성경말씀 : 요한복음 1 : 14 - 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 전 하늘나라에 계실 때에는
삼위일체이신 성자 하나님이시며 또한 "말씀"이셨다.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시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그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람이 이 땅에 오셨으니
곧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왜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는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을 뽐내고 높임 받으러 오셨는가?
아니면 더럽고 추악한 인간나라를 심판하려 오셨는가?
아니다 ! 오늘 본문 14절 말씀에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려고 선물 보따리 두 개를 가지고 오셨
으니, 하나는 은혜의 보따리요 또 하나는 진리의 보따리다.
이제 그 선물 보따리를 풀어보자.
첫째, 은혜의 보따리
은혜란 무엇인가? 값없이 거저 주는 사랑이며 선물이다.
선물을 받았는데 그에 상당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며 또한 나중에라도 그 비슷한 값을 치러야
한다면 그 역시 은혜가 아니다. 은혜란 조건이 없이 아무런
값도 없이 그냥 베풀어주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은혜의 보따리를 풀어보자. 여러가지 축복의 선물이 있으니,
1) 선택: 우리를 사랑하고 축복하시려고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고 예정하신 것이다. 우리가 모태에서 잉태되기 전
선과 악, 그 어느 것도 행하기 전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과 그 영원한 축복에 참여시키려고 뽑아놓으신 것이다.
어떤 자격이나 기준 대가를 조건으로 한 것이 아니고 아무
조건이나 대가가 없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받을 대상으로
선택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은혜인 것이다.(엡1:3 롬9:11-14)
2) 믿음 : 우리가 성삼위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게 된 것은
우리 마음이 착하거나 스스로의 영적 눈이 밝아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믿게 되었고
또한 믿음으로 구원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엡2:8)
3) 회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다 죄인이다.
죄에는 형벌이 따른다. 그런데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회개를 촉구하는 감동을 시켜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를 한다.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다.
4) 사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의지하여 회개하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깨끗하게 용서를 받는데
이것이 다 값없이 거저 받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이다.
5) 중생: 거듭났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죄 값으로 그 영혼은 이미 죽어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죄를 용서 받으므로 죽었던 그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자녀들 양자가 된 것이다.
이것을 중생(重生) 또는 거듭났다 하며 오직 은혜로 된 것이다.
6) 칭의: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옳다"인정받는 것인데
"칭의"라 하며 이 역시 예수님의 은혜의 보따리 선물이다.
7) 부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이 있고 또 부활을 하는데 값없이 은혜로 되는 것이다.
8) 천국: 서울 강남에 고급 아파트가 60억이라 한다.
하물며 천국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세계와 환경의 가치는
이 세상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이 고귀하고 영광스런 것이다.
이 복 된 천국을 믿음으로 거저 들어가며 그 곳에서의 영원한
생명과 평화와 안식 등 다 주님 은혜로 거저 누리는 축복들이다.
둘째, 진리의 보따리
진리란 참 된 것으로 영원불변하며 영원무궁한 선과 의요
생명이며 빛이다. 하늘과 땅의 신령한 진리가 예수님을 통해
다 나타나고 이뤄졌으며 신구약 성경66권 말씀으로 기록됐다.
그렇기에 진리이신 예수님과 그 말씀을 믿고 따르면
하늘과 땅의 모든 참된 이치에 도달할 수 있으며 죄악을 벗고
마귀를 제압하며 참된 것을 이루고 누릴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갈림길에서 갈등하며 고민하고 있다.
이래야 좋을지, 저래야 좋을지, 참된 것 즉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면
모든 것을 옳게 하고 선하게 하고 참되게 할 수 있다.
무엇이 궁금하고 무엇이 고민인가?
예수님이 선물하신 진리의 보따리 성경 말씀을 살펴 따르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있으며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이는 자기가 사모하며 열심을 품고 분투노력하여
쟁취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선물 은혜와 진리를
붙들고 이뤄가는 삶이 인생 최고의 성공이며 축복이다.
2010-04-26 AM 11:45:55
2010. 4. 18 보배로운 이스라엘 12지파
제 목 : 보배로운 이스라엘 12지파
성경말씀 : 출애굽기 28 : 15 - 30
본문 말씀은 판결 흉패에 관한 말씀이다.
대제사장들이 "에봇"이라는 옷을 입는데 금색, 청색, 자색
홍색의 가는 실로 가로세로 한 뼘 되게 겹으로 천을 짜서
에봇 입은 위 가슴에다 잡아매는 표를 말한다.
판결 흉패의 "판결"은 원어 "미쉬파트"인데
공의(창 18:25), 재판(레 19:35), 판결(민 27:11) 등으로
하나님의 공명정대한 심판과 판결을 의미한다.
그 판결 흉패에 네 줄로 보석을 매다는데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며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며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합 12 보석이다.
이 12 보석에다 각각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을 하나씩
새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대제사장이 그 판결 흉패를 항상
가슴에 달고서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즉 판결 패 안에 있는 이스라엘 12지파는 그에 달려 있는
진귀한 보석처럼 참으로 보배롭고 존귀하다는 뜻이며,
곧 하나님의 심판권(審判權) 안에서 생활하는 성도들은
보석보다 보배롭고 존귀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권 곧 판결권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천하만사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공명정대하게 심판
하신다는 것을 믿고 생각하며 그에 따른 마음과 행동을 갖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에 눈앞에 이익이 안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공평하게 판결하셔서 반드시 상을 주시고
축복 하신다는 믿음으로 말씀 순종에 충성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그 나라와 교회를 위해 충성하며
헌신하고 선을 행한다. 그러나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눈에 보이는 축복이나 얻어지는 것도 없이 수고가 계속된다.
이런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등하고 고민을 한다.
이렇게 믿음 생활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나만 손해 보고 바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뒤로 물러가며 충성스런 믿음생활하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이 때 "그래, 당장 얻어지는 것이 없어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공명정대하게 판결하셔서,
말씀을 순종하고 충성하는 성도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고 축복
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함에
더욱 열심을 내어 충성하고 전진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삶의 자세가 곧 하나님의 판결권 안에 사는 것이요.
이런 성도는 보석보다 보배롭고 더 존귀한 것이다.
둘째, 죄의 충동과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부패한 성질이 있기에
자기 안에서도 죄 짓고자하는 충동을 시시때때로 받고 있으며
외부 환경적으로도 죄악의 세력에 끊임없이 유혹을 당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권 안에 사는 성도는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죄 짓고자 하는 여러 가지 충동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다스려 나가고,
외부 환경에서 다가오는 끊임없는 죄악의 유혹에서도
"내가 죄 짓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심판하실 것이니
내가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하면서 죄의 유혹을 이겨내고
물리치며 하나님의 뜻하심대로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이런 성도가 하나님의 판결권 안에 사는 성도이며
이런 성도가 진귀한 보석보다 보배롭고 존귀한 것이다.
셋째, 피해와 억울함을 참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삶은, 우리가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모양의 억울함과 해를 입기도 한다. 인격적 모독을 당하고
모함을 받기도 하며 나에게 돌아올 지위와 명예와 물질을
다른 사람이 부정당한 방법으로 가로채기도 한다.
이런 때 분노가 끌어 오르고 양심이 생겨나지만
"우리 하나님은 다 아시고 행한 대로 갚으신다. 내가 억울함을
참고 선을 행하면 그대로 나에게 갚으실 것이며, 나를 해한
그 사람에게는 공명정대하게 심판하셔서 또한 그대로
갚으실 것이다." 믿고, 모든 것을 참으며 계속적으로 선을
행하여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판결패 안에 있는
성도요 이런 성도가 보석보다 더 아름답고 존귀한 것이다.
나 자신은 하나님의 판결패 심판권 안에서 살고 있는가?
이런 삶은 나에 영원한 축복이 되며 영광이 된다.
2010-04-19 AM 9:31:34
2010. 4. 11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제 목 :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성경말씀 : 요한복음 16 : 30 - 33
험악한 세상,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어떤 불행한 사건이 또 일어날지 불확실한 현실이다.
주님께서는 이런 모든 것을 아시고,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었다 하실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기셨는가를 크게 네 가지로 살펴본다.
첫째, 시험 환란을 이기셨다.
간단히 말해서 시험 환란이고, 시험, 환란, 궁핍, 멸시,
천대, 모욕, 배신, 외로움과, 뼈와 살이 찢기는 고통 등
인간이 당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어려움을 다 당하셨다.
가난하고 궁핍해서 요셉부부가 해산할 방을 못 구해
마구간에서 출생을 했고, 청렴결백한 목수 요셉의 집에서
넉넉지 못한 생활로 소년과 청년기를 보내셨다.
30살에 그리스도로서 공적 사역을 감당하시면서도
제사장과 장로 서기관 등 당시 유대교 지도자와 헤롯왕에게
멸시 천대 조롱을 당했으며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배신을
당하고 온 천지에서 홀로 버림을 받은 수렁에도 빠졌으며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의 고통과 형벌을 당하셨다.
그럼에도 슬퍼하고나 괴로워하거나 원망불평하지 않고
이 모든 일들을 넉넉히 감당하고 다 이겨내셨다.
둘째, 모든 죄를 이기셨다.
예수님께서 몸으로는 우리와 똑 같은 인간성이 있는지라
죄 지을 환경과 죄의 유혹을 수없이 받으셨다. 그럼에도
우리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와 죄의 유혹을 다 이겨내고
한 걸음 나아가 의와 정결함을 지켜 온전히 의를 이루셨다.
셋째, 마귀 악령을 이기셨다.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실때
40일 금식기도에서 사단 마귀 귀신들의 유혹이 있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이 떡이 되게 하여 먹어라.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산다" 하시며 마귀를 물리치셨고
그 후에도 수많은 마귀 귀신의 술수를 간파하시고
그것들을 제압하고 이기셨으며 그에 시달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행복의 나라로 인도하셨다.
넷째, 죽음을 이기셨다.
창세 이래로 죽음을 이기고 승리한 생명이 없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우리 죄 값을 지고 죽으셨을 뿐 아니라
죽은 3일 만에 살아나셔서 죽음을 이기고 죽음에서도 부활하신
것이다. 모든 생명체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죽음,
죽으면 다시는 회생할 수 없는 그 무지막지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당당하게 부활하셔서 승리에 승리를 거두신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평안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시며,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 !"는 말씀엔 두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 너희도 이길 수 있다.
고전 10: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만 당하게 하시며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지 않으신다" 하셨다.
이 말씀은 곧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시험 환란, 죄의유혹,
마귀의 술수, 죽음의 두려움, 여러 가지 삶의 고통 등 모두를
우리가 이겨낼 수 있으니까 당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일들에 주눅이 들거나 두려워 떨
것이 없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내가 감당할 수 있기에 주셨다" 확신하고 현실에 당한 일들을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면 다 감당하고 이겨낼 수 있다.
둘째,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주님께서 이미 다 당해보셨고 이미 다 이겨내신 그 능력과
권세로서 우리가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는 뜻이다.
"피 할 길을 주신다"하셨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으며
사도 바울도 " 내게 능력 주시는 주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 당당하게 선포하며 모든 것을 이겨냈다.
인간으로서 당하는 모든 것을 다 이겨내고 승리하신 주님께서
만능으로 우리를 도우시는데 못 이겨낼 것이 무엇인가!!
우리 인생들이 당하는 그 어떤 일이든지 그에 주눅 들거나
고민하거나 우울해 하지 말고 당당하게 감당하고 이겨내자!
이미 승리하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함께 하며 승리케 하신다.
2010-04-12 AM 9:42:01
2010. 4. 4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제 목 :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성경말씀 : 마태복음 28:1 - 10
우리 죄 값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시신에 향이라도 발라드리려고 장사지낸 3일째
곧 안식 후 첫날 일요일 새벽,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몇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했다.
무덤에 이르니
지진이 나고 천사가 무덤 돌문을 굴려 내고 번개 같은 형상에
하얀 빛의 옷을 입고 여인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찾는구나,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 말씀하던 대로 살아나셨다
와서 그 시신이 있던 곳을 보라"
사람이 죽음을 이기고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전해줬고 열 한 사도와 많은 제자들에게 전했지만
누구하나 확신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후 40일간을
이 땅에 계시면서, 의심하던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시며 함께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그 의심하던 제자들이
확신을 가지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해서 오늘에 이르렀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부활절을 지킨 것이 한 해 한 해 거듭되며 그 것이 전통이 되어
해마다 3~4월이면 부활절을 지키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원인은 ?
첫째,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죽음이 왜 왔는가? 죽음은 죄 값으로 왔다.
죄 값으로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영혼, 영적 생명이 죽었고
육신도 어느 정도 살다가 죽게 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원죄도 없으실 뿐 아니라
출생한 후에도 완전무결한 의인이시기 때문에 죽음에 갇혀
있을 수가 없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이다.
둘째, 우리의 죄 값으로 대신 죽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 죽음의 고통과 형벌을 당하신 것은
순전히 우리 인생들의 죄 값을 대신 하신 것이다.
자신께서는 전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가 우리 죄 값으로
죽음의 고통과 지옥 불바다 형벌 당할 것을 불쌍히 여겨서
자신께서 죽음의 고통과 형벌을 친히 담당하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죄가 없는데 다른 사람의 죄 값을 대신 지고
감옥에 갇혀 있다. 그 사람을 석방해야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죄가 없으시며 우리 죄 값으로
죽으셨기 때문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은 필연적인 것이다.
셋째, 우리 죄 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들의 죄 값을 짊어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인생들의 죄 값을 다 치르지 못했다면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 인생들의 죄 값을
다 치르시고 해결하였기에 그에 대한 증거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시켜서 예수님이 모든 인생들의 죄 값
을 다 해결하였음을 천상천하에 공포하신 것이다.
넷째, 예수님은 생명이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며 무엇이든지 못할 것이 없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시다. 그에 대한 증거로 자신의 죽음
에서 자신 스스로가 살아나신 것이다.
죽어서 나흘이 되어 썩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으며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수 없이 많이 하셨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예수님 자신께서 이미
수 없이 말씀하셨고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하신 것이다.
즉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한 번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
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자신의 부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부활로 계속되어 진다.
예수님 부활은 나의 부활이요, 예수님의 승천 나의 승천
이며, 예수님의 무궁한 생명과 존귀 영광은 곧 나의 영생과
축복인 것이다. 이런 영원무궁한 축복을 주시려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님께 영원토록 찬송과 영광을 돌릴지어다.
2010-04-05 AM 11:18:20
2010. 3. 28 한계를 넘어서 승리하신 예수님
제 목 : 한계를 넘어서 승리하신 예수님
성경말씀 : 누가복음 23 : 33 - 38
금번 주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 죄 값을 짊어지시고 십자가 죽음의 형벌을 당하신
고난 주간이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과 형벌은
보통 인간으로서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인간 최대 최고의
고통과 형벌의 죽음이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인간 예수로만 생각하여 인간 중에
뛰어난 선각자요 해방자요 사랑의 실천자로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신으로만 생각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이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이 찢기고 피를 쏟는
죽음을 당했어도 아무 고통을 안 당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 두 생각은 다 잘못 된 것이요 마귀에게 속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참인가 ?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우리와 같은 완전한 인간이시고
영으로는 전지전능하며 완전무결하신 신이시다.
로마서 1: 1-3 절에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하였으니
과연 우리 예수님은 인간 다윗의 자손으로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신 완전한 인간으로 우리와 같은 오장육부를 가지셨고
우리와 꼭 같은 신경세포조직과 피와 살과 뼈를 가지셨다.
우리가 안 먹으면 배가 고프고 살이 찢기면 극심한 고통을
느끼듯, 침 뱉음을 당하거나 따귀를 맞으면 말할 수 없는 분노
와 모욕감을 느끼듯, 예수님께서도 똑같이 느끼시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초월하여 죽음까지 이기고 승리하셨다.
첫째, 죽음의 고통 중에도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셨다.
밤새도록 잠도 못자고 쉬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피곤하고 지친 몸, 새벽녘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이르러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살이 찢기고 뼈가
으깨지며 피를 쏟는 죽음의 고통을 당하신다.
자신을 그렇게 죽이는 원수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소서" 하시며 사랑과 용서를 베푸셨다.
따귀를 맞아 본 일이 있는가 ?
얼굴에 침을 뱉음을 당해본 일이 있는가?
잘못도 없이 살이 찢기고 피를 쏟는 고통과 형벌을 당해본
일이 있는가? 억울함과 모멸감에 밤잠을 못자며 분노하고
이를 갈며 저주하고 원수 갚을 생각을 하지 아니 했는가?
우리와 꼭 같은 육신을 가지고 모욕감과 분노와 고통을
느끼셨지만 예수님은 인간적이며 육신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그 원수들을 사랑하고 용서하신 것이다.
둘째, 배신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렸다.
마태 26:47 - 56절에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여 은 삼십에
팔고서도 겉으로는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랍비여 안녕 하십니까" 하고 친근하게 입을 맞춘다.
이 얼마나 가증하고 사악한 유다인가,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친구여 네 할 일을 하라"하셨고, 병정들이 칼과 몽치로
자신을 잡을 때도 베드로가 칼을 쓰니 유일하게 자기편에 선
베드로임에도 "검을 집에 넣어라"하며 만류하시고
자신은 배신을 당하고 잡혀 가시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뤄
드리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셨다. 이어서 모든 제자들이 배신
하고 도망가는데도 배신감에 치를 떨거나 미워하지 않고
"연약한 인생들이라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하시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셨다.
셋째, 죽음의 순간에서도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수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힌 3시간쯤 죽음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한 강도가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 하소서"
믿고 의지하니 "그래 오늘 네가 나와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며
그리스도로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명을 감당하셨다.
못 견디게 아파 본 일이 있는가? 그 때는 사랑하는 가족이라
해도 귀찮게 여겨지며 만사가 다 귀찮은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예수님은 인간으로 최악의 고통을 당하고 죽어 가시면서도
죄인을 구원하고 살려 내신 것이다.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의 몸을 가지셨음에도
인간의 육신적 연약함을 극복하고 초월하여 승리를 하신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벧전 2:21)
우리 죄 값으로 고난을 당하시면서 본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인간적 육신의 한계를 넘어 원수까지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며, 우리 맡은 사명을 감당해서,
승리를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이며 우리의 축복이다.
2010-03-29 AM 9:07:22
2010. 3. 21 너의 하나님 여호와만 섬겨라
제 목 : 너의 하나님 여호와만 섬겨라
성경말씀 : 출애굽기 23 : 25 - 33
오늘 말씀의 배경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는 광야생활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 족속들은 장대하여
그들에 비하면 이스라엘 족속들은 메뚜기같이 작게 보였고
가나안 땅의 실과는 포도 한 송이를 장정 두 사람이 어깨에
멜 정도로 컸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신들까지도 크게 보여서
그 신들을 섬길 우려가 있어 경계하신 말씀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만 섬겨라"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시며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주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들을
비롯한 천하 만물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성삼위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신이라고 하는 것들도
만물의 생사화복에 관여치 못하며 참된 행복을 주지 못한다.
하나님 외에 만물의 생사화복에 관여할 수 있는 신들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속이는 것이요
마귀의 술수요 멸망할 자들의 흉계이다.
이것이 사실이며 영(신)적 세계를 바로 아는 것이다.
죽은 조상도 신이 아니며 풍수지리나 사주궁합에 의존하는
것도 다 미신에 속하며 죄악이요 징벌 받을 일들이다.
하나님만 섬기면 받는 축복
첫째, 양식과 물에 복을 주신다.(25절 중)
양식과 물의 복, 곧 물질의 축복을 내려 주신다.
6.25 전에는 북한이 더 잘 살았다. 지하자원도 풍부했고
전력도 남한 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남한이 북한
보다 몇 십 배 잘 살고 있다. 남한에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고 북한은 김일성 부자 등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성삼위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는
선진국이며 잘 살고 있고, 성삼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이나 미신을 섬기는 나라는 어렵게 살고 있다.
둘째, 질병을 제하여 주신다.(25절 하, 출 15:26)
대부분의 질병은 사람이 먹지 말아야 될 음식을 먹거나
사람 자신들이 자기 몸을 잘못 관리해서 일어나는 것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섬기면 지혜와 평화를 주셔서 질병에
걸리지 않게도 하시고 또 질병이 쉽게 치료되게도 하신다.
셋째, 낙태치 않고 잘 잉태케 하신다.(26절 상)
자손의 번성과 사업에 복을 주신다.
세계 인구가 약70억, 이중에 5억 명쯤이 자녀를 잉태하려고
매일 노력하는데 50만 명쯤만이 성공을 한다고 한다.
즉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자손들이 번성하도록 복을 주신고
어떤 일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실패가 없도록 복을 주신다.
넷째, 죽음의 복을 주신다. (26절 하)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는 말씀은 불행한 사건사고나
중한 질병 등으로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 아니고, 평화로운
자연사로 죽음의 복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다섯째, 원수를 물리쳐 주신다.(27절)
"원수로 등지게 한다"는 말씀은 원수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치게 하신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사단 마귀 악령을 비롯하여 불의한 세력
죄악 된 세력들이 원수로서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
하나님만 섬기면 이런 원수의 세력들을 물리쳐 주신다.
여섯째, 앞길을 가로막는 세력을 쫓아내신다.(28절)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함에
있어 그 길을 가로막는 히위 족속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복지에 정착하도록 해주신다.
오늘날도 우리가 성삼위 하나님을 잘 섬기면
우리 축복에 앞길을 가로막는 세력들을 쫓아내 주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축복하심에도 순서가 있다.
29~30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해서 그 땅을 기업으로
쟁취해 나갈 때 그에 따른 복락을 누리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번성하는 것은 실력을 갖추고 능력이 있어야 번성한다.
실력과 능력을 키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에서 온다.
환경이 어렵고 열악해도 그때그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가면 영적 실력과 능력이 커져 번성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예비하신 축복을 더하여 주신다.
2010-03-22 AM 9:38:06
2010. 3. 14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라.
제 목 :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라.
성경말씀: 마태복음 2 : 1 - 11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실 때의 주변 배경을 기록한 말씀이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고대하고 있었는데 정작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그들은 외면당하고 버림을 받았으며, 오히려
먼 나라 동방 박사들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인생 최초로 영접하고 경배하는 영광과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어찌해서 이렇게 되었을까? 원인을 살펴보면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외면당하지 않고 주님 앞에
기쁨으로 설 수 있는 비결을 알 수 있게 된다.
박사들이 축복받고 이스라엘 민족이 외면당한 이유.
첫째, 박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붙들고 살았다.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게 되었을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르(동방) 지역 출신이다.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와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웠지만,
방계족속들은 동방 그땅에 남아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믿었으며 그 후손들이 동방박사들일수도 있고,
또 주전 721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면서
이스라엘 족속들이 동방 사방으로 흩어져 살면서 타향살이
피곤하고 지친 삶에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소망을 갖고
살 때에 동방 족속 중에 그 믿음을 받아서 말씀을 붙들고
산 후손들이 동방박사들인 것이다. 그 증거로 박사들이
"그 분의 별을 보고 그 분께 경배하러 왔다" 고백한 것이다.
민수기 24:17절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왕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나 모압 이편저편을 평정하며
왕권을 행사하실 것이다" 말씀하셨는데, 이런 말씀을 믿고
살다가 별이 나타나니까 그리스도의 탄생임을 알고 찾아왔다.
그러나 헤롯왕을 비롯한 유대 족속과 제사장 서기관들은
성경 지식으로는 그리스도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실 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말씀을 믿지도 않고 붙들지 않고
살았기에 예수님을 찾지도 않고 외면했으며, 자신들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림을 받은 것이다.
둘째, 징조를 살피지 아니했다.
그리스도 구세주가 오실 때에 한 별이 나타날 것을
말씀을 통해 알았고 별이 나타났을 때, 아하! 예전에 없던
새로운 별을 보니 예수님이 탄생하신 징조구나 하고 그 징조
그 별을 보고 예수님께 찾아 나왔던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만 왕의 왕이요 천상천하 만물을 심판
하실 주님으로 재림하실 것이 말씀을 통해 이미 나타나 있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의 징조가 세계 각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 이단과 사이비가 많이 나타나
택한 백성들까지 미혹을 하며, 난리와 난리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여 전쟁과 또는 총성 없이 싸우고 있으며
세계 각 곳에서 기근과 지진 폭설과 홍수 등 천재지변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마24:3-14)
그러나 이런 일들은 단순히 천재지변이나 자연재해가 아니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징조들이다.
셋째, 때를 맞춰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말씀을 붙들고 징조를 살펴 알았어도 그 때에 맞춰서
박사들이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만나 뵙지도 못하고
경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정상적인 기독교인들이라면 예수님의 재림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예수님 재림의 징조 역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때에 맞춰서
재림하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준비는?
첫째, 죄를 끊고 회개해야 한다.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잘못인줄 알면서도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서 하나하나
끊으며 회개를 하고 믿음과 말씀으로 바로 서야 한다.
둘째, 세상 것들에 대한 집착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세상 것들이 필요하기도 하다.
돈, 공부, 지식, 명예, 영광, 출세, 미모, 건강 등 그러나 그런
것들이 우리의 전부가 돼서는 안된다. (요일2:15-17)
셋째, 주어진 현실 삶의 터전에서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이단과 사이비들은 집단을 이루고 어느 특정한 장소에서
모여 있어야 된다 하는데 이것은 마귀요 멸망할 자들이다.
주어진 현실 삶의 터전, 그곳에서 성삼위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순종하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마24:40-42,30)
항상 주님의 재림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 준비하는 삶이다.
2010-03-14 PM 6:44:55
2010. 3. 7 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라.
제 목 : 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라
성경말씀 : 시편 148 : 1 - 14
본문 시편 148편은
천상천하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 찬양할 것을 말씀했다.
1. 천상(天上) 세계여 하나님께 찬양하라 (1~2절)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하며
사자와 군대여 찬양하라 하셨는데 이 말씀은 천상세계 곧
천국의 천사와 천군과 앞서 천국에 들어가 복락을 누리는
모든 생명들이 하나님께 찬양할 것을 뜻하신 것이다.
2. 우주세계여 하나님께 찬양하라 (3~4절)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하라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 물들도 찬양하라 하셨는데
이는 우주공간의 모든 물체들이 하나님께 찬양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3. 지상세계여 하나님께 찬양하라 (7~10절)
너희 용들과 바다와 땅이여 하나님께 찬양하라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광풍과 산천초목이며 짐승과 새와
기는 곤충과 가축이여 여호와께 찬양하라 이 말씀은 곧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 찬양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4. 인간세계여 하나님께 찬양하라(11~12절)
왕들과 모든 백성과 관리와 청년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셨으니 이는 곧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생존하는 모든 인생들이
성삼위 하나님께 찬양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5. 성도들이여 하나님께 찬양하라 (14절)
하나님을 친근히 하는 모든 성도여 찬양하라 하셨으니
과연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천상천하 만물이 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1) 천상천하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5절
사람이 어떤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하고 다른 사람이 못하는
어떤 재주나 기능과 예능을 가졌을 때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고 환호하며 따른다.
하물며 무한한 우주세계와 그 은하수 별들과
천상천하에 모든 것들과 신비로운 생명체들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어찌 찬양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그것들을 명하시고 운영하시기 때문이다.6절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사시사철이 어찌 이뤄지는가?
우주공간에 떠 있는 지구가 한 바퀴 도는 시간이 1년이다.
김연아 선수가 빙판 위에서 자기 한 몸 빙빙 도는 것에도
찬사를 보낼 때에 지구를 비롯하여 천체를 돌리며 질서 있게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마땅히 영광과 찬송을 받으셔야 한다.
3) 홀로 뛰어나시며 성도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13절
삼위일체 하나님은 천상천하에 비교할 급이 없이 뛰어나신
전지전능하시고 완전무결하시며 영원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천상천하 만물에게 생존하며 종을 이어갈 복을 주시며
특별히 성도에게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찬양하는 것이 좋을까?
첫째, 몸과 맘과 영으로 입을 열어 찬양한다.(골3:16)
몸과 맘과 영의 진심과 정성을 다하여 입을 열어 찬양한다.
몸과 맘의 찬양은 재능이나 감정적인 찬양으로 흐르기 쉽다.
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거룩하고 신령한 찬양을 한다.
세상의 타락된 문화를 받아들인 곡조나 가사의 찬양은
사람의 감정을 충동하여 사람들 스스로를 도취케는 할지언정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신령한 찬양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둘쨰, 모든 말과 일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골3:17)
우리의 처한 환경은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모두 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인이야 어찌 됐든 원망 불평하며 사는 것은 죄악에 속한다.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감사드리고 나쁜 일 역시 나쁜 일대로
감사함으로 받아 감당하는 것이 곧 그 일을 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 된다.
셋째, 맒씀을 지키며 순종하는 것이다. (잠28:9)
"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 기도도 가증하다"
하셨는데, 이 말씀은 곧 "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그 찬송도 가증하다"는 뜻과도 동일하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리를 떠나고 명하신 말씀을 지키지
않은 천사가 쫓겨나서 마귀가 되었다. (유다1:6)
우리 각자의 처한 환경과 자리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고 지켜 나가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2010-03-08 AM 11:58:20
2010. 2. 28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제 목: 주님은 내안에 나는 주님 안에
성경말씀: 요한일서 4 : 14 - 16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부부사이도
서로의 마음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고, 혈육의 정으로 맺어진 부모자녀 사이도 서로의
마음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면 행복을 누리기가 어렵다.
주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한다면
은혜가 충만한 신앙생활이나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축복 된
생활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살게 될까?
첫째,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고 시인하는 것이다.(14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인간 예수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공자나 석가나 마호메트나 인간 중 두드러진 사람들
중 하나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예수님은 분명히 인간이시다.
그러나 영으로는 전지전능하시며 천상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일체요 동등하신 분으로
우리를 죄악과 지옥 멸망에서 구원하여 천국복락을 주시는
완전무결한 생명의 주님이시다.
이 사실을 믿고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임하여
머무르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머무르는 것이 된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안에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안에 사는 것은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10절 상)
자녀들이 장성해서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잘 해드리면서
마치 자기가 먼저 부모님을 사랑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
부모님이 자기에게 베풀어 준 사랑보다 자신들이 부모에게
한 효도가 더 큰 것처럼 생각하고 우쭐댄다.
그러나 자녀가 태어나기 전 모태에서부터 부모가 먼저
자녀를 사랑했고, 출생 후에도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 것에
비하면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작은 사랑이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태에서 생성되기도 전 이미
창세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
우리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그 시간은 고작해야 100년이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고 우리가 죽으면
천국으로 불러서 영원토록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2) 우리가 죄인임에도 사랑해 주셨다. (10절 중)
사람들은 누구를 사랑할 때 사랑받을 자격과 조건을 갖춘
사람만을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사랑을 받을 자격과 조건을 전혀 갖추지 못한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더럽고 추한 죄인임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
3) 아들 예수님까지 희생시키며 사랑해 주셨다. (10절 하)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외아들 예수님까지 아낌없이
희생시키며 사랑을 하셨는가! 천상천하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위대하고 숭고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이 사랑을 알고 믿으며 사는 것이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머무는 것이 된다.
셋째, 주님의 계명 성경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요일3:24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말씀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사람의 본분을 다하며 축복 받을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그 말씀대로 살도록 소원하신다. 따라서
십계명을 비롯한 신구약 성경말씀을 지키며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나는 하나님 안에 사는 것이 되어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
주님이 내안에 나는 주님안에 살면 누리는 축복은 ?
1. 심령 천국을 누린다. (마5:3)
본문 18절에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하셨는데,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곧
마음과 영에 근심 걱정 불안 초조 실망이 없고 기쁨과 평화와
확신과 소망이 넘치는 심령 천국을 누리는 것을 뜻한다.
2. 구하는 대로 얻는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머물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그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의 의미를 알고, 말씀을 지켜 순종하면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사는 것이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면 구하는 그대로 다 주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이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라~~
2010-03-01 PM 7:50:14
2010. 02 .21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니라.
제 목 :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니라.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 6:15 -20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며 살고 있다.
자기가 자기의 소유, 즉 자기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것은 중대한 오류이며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은 누구의 것인가?
두말 할 것 없이 성삼위 하나님의 것이다.
그 이유는
1) 근원적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천상천하 만물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성삼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해 내셨다. 그러므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의 모든 물질은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것이다. 시편 24편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사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다" 고 하셨으니
인간 자신도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의 것이다.
2) 우리를 생존케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 각 사람은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다. 그렇다 할지라도
모태에서 우리가 잉태되도록 하신 분이 성삼위 하나님이시고
때가 되매 출생시켜서 생존케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나는 부모님의 것도 아니고 내 자신의 것도 아니며
나를 생존케 하신 그분의 것 곧 하나님의 것이다.
3) 값으로 샀기에 하나님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앞에 심판을 받고
그 죄 값으로 훨훨 타오르는 지옥 불바다의 형벌을 받는다.
예수님께서 이런 인생들을 사랑하여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 값을 지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형벌을 당하셨고
또한 우리 대신 죽어주셨다. 곧 자신의 목숨을 우리 죄 값으로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형벌에서 건져 내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소유 천국 백성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분문 20절에서
"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영과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셨다.
과연 그러하다. 지음을 받은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은?
첫째,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사람은 영혼과 육심으로 결합되어 있다. 또한 육신에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먼저 우리의 영으로
우리 영의 주인이신 성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이 성삼위 하나님만을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요 생명의 주님으로 믿고 섬기며 그 외의 잡신들은
그 어떤 것이든지 멸망할 것들로 여겨 부인하고 멀리하는
것이다. (요일 4:1-6)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둘째,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내 맘대로도 못하냐 내 맘대로 하겠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자유인이요 지성인이요 한 인격체로서 당연한
말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은 곧 자기 마음이 마치
자기 것인 양 착각한 것이요 진노를 받을 일이다. (엡 2:3)
내 마음도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처럼
생각하고 내 생각대로 좌지우지하려 하면 화를 부를 뿐이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기뻐 쓰실 수 있는 마음으로 가다듬고 내어 드려야 한다.
사람은 부패한 성질이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다보면
죄를 짓고 고민하고 고통하다 망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불순하고 악한 마음은 내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씀에 합당한 마음을 품어서, 그대로
이루고자 노력하는 마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셋째, 몸으로 영광을 돌려야 한다.
몸으로 영광을 돌린다 함은 몸의 옳고 선한 행위를 뜻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과 마음의 인도를 받아서, 몸으로
선하고 좋은 일들을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이 건강해야 한다.
요즘에는 음식을 못 먹어서 병약하기 보다는 음식을 과용해서
생기는 질병이 많이 있으니, 암을 비롯하여 각종 성인병이다.
몸이 건강하려면, 1)과식(過食) 2)속식(速食) 3)간식(間食)을
금해야 하고, 1)소식(小食) 2)서식(徐食) 3)채식(菜食)을 잘
해야한다. 식욕을 다스리지 못하고 성경에 금한 것들을 먹으며
운동을 하지 않고 몸 관리를 잘 못하여 병약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요 곧 죄가 되는 것이다.
2010-02-22 PM 1:23:59
2010. 2. 14 너를위하여 대사를 경영하지 말라
제 목 :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지 말라
성경말씀 : 예레미야 45 : 1-5
오늘 말씀은 유다 여호야김 왕 제 4년(B.C 605)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바룩에게 주신 말씀이다.
바룩은 예레미야를 도와 말씀을 기록하는 서기관이었다.
하나님께서 바룩에게 주신 말씀은,
"바룩아 네가 말하기를, 슬프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안치 못하다, 하는구나"
바룩은 자기 자신의 고통과 슬픔, 피곤하여 지친 것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렇게 탄식을 한 것이다.
이때 당시의 역사적 배경은,
북쪽 이스라엘 나라가 범죄로 인해 망한지 100년쯤 된 때이다.
그럼에도 남쪽 유다 나라가 믿음에 바로 서지 못하고 여전히
미신적 행위와 안식일을 범하고 죄악 된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 등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유다 족속이 죄악을 끊고 회개하여 바로 설 것을 권고 하셨다.
수 십 년간의 권고와 참으심에도
전혀 회개할 기미가 없으므로 더는 놔둘 수가 없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바벨론의 침략으로 유다나라가 망하여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70년이나 종살이를 하게 될 것과
그 고통스런 과정을 통하여 유다백성들의 죄를 깨닫게 하여
회개시켜서 참 신앙에 바로 세울 것을 선포하셨다.
예레미야 선지자로부터 이런 말씀을 받아 기록하던 바룩은
그 과정이 너무도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과정임을 생각하여
유다나라가 바벨론 침략을 받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그 일을 계획하고 동분서주하며 분투노력을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더 악해지고 타락하여
바룩의 수고는 헛일이 되었고,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
간다는 고통스럽고 슬픈 소식에다가 자신의 헛수고로 인한
피곤함이 겹쳐서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바룩을 향하여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다 그렇게 되었으니
바룩아! 너는 너를 위한 대사를 경영하지 말라" 고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바룩에게 왜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가?
첫째, 바룩은 자기 뜻을 이루고자 했다.
물론 사람들은 사람들 자신의 뜻이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고자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본문에도 말씀하셨듯이 천상천하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예정하고 경영하시며 하나님께서 심기도하고 뽑기도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우기도 하고 헐기도 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그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이루어 드리는
일을 해야지 사람 자기의 뜻을 정하고 이루고자 할 때는 헛된
일 헛수고로, 피곤하고 지치고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된다.
바룩을 비롯하여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도
자기 뜻을 이루려하다 안되니까 당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사람 자신의 뜻과 목표가 이루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지중에 자신의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목표와 수고를
했기 때문이지 결코 사람 자신의 뜻을 이룬 것이 아니다.
내 뜻대로 안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된 줄을 믿고
오히려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 자기 명예 영광을 위해 일했다.
바룩 자신의 힘으로, 바벨론 침략과 나라가 망하는 고통이
없이 유다백성이 회개하고 바로 서게 된다면, 자기 자신은 큰
지도자가 되고 이름을 날릴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명예 영광을 위해서 대사를 경영했던 것이다.
이렇게 자기 명예를 얻고 큰 지도자가 되고자 한 것이
실패하므로 낙심하고 피곤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주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
셋째, 자기 유익을 위해서 했다.
바벨론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고 재앙이 온다는 말씀을 듣고
자신의 목숨과 자기와 관계된 사람들이 생각났고 자신과 그들이
해를 받지 않도록 이기주의로 대사를 경영했다. 그 일이
잘 안 되니까 슬프고 피곤하고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바룩에게
"재앙이 있다 하여도 네 목숨은 노략물을 얻는 것같이 얻게
하고 보호해 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다.
노략물이란 무엇인가? 싸워서 이긴 자가 얻어 누리는 것이다.
과연 무슨 일이 있든지 주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만 확실하면
주님은 우리의 믿음과 그 충성을 통해서 우리로 승리케 하여
승리자로서 얻고 누릴 것을 누리도록 축복을 하신다.
2010-02-16 AM 10:18:18
2010. 2. 7. 내가 항상 여호와를 내 앞에 모심이여
제 목 : 내가 항상 여호와를 내 앞에 모심이여
성경말씀 : 시편 16 : 8 - 11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우리 앞에 모시고 살아야 함은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이 마땅한 일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것이 인생살이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함이 마땅한 일인데 잘 안되듯
부부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서로 아끼며 사랑함이 마땅한데
이 일이 잘 안되듯, 그래서 우리는 이따금씩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잘 안 되는 것을 찾아서
마땅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바로 세워 가야 한다.
"내가 항상 여호와를 내 앞에 모심이여"
우리는 위 말씀에서 "항상"이란 단어와 "내 앞에 모심이여"
란 말씀을 주목하여야 한다.
"항상"은 좋은 때나 나쁜 때,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
길이 열릴 때나 막혔을 때, 실패했을 때나 성공 했을 때,
기쁜 때나 슬픈 때, 한가할 때나 바쁜 때, 그 어느 때이든지
자기의 형편과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먼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며,
"내 앞에 모심이여"는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뒤에 세우고 자신의 앞서 나가며 하나님을 보고 감히
자신의 뒤치다꺼리나 하라고 하는 사람이나, 또한 하나님을
자신의 옆에 세우고 자신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다.
"내 앞에 모심이여" 에는 세가지 뜻이 있으니
1)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신임하여 믿고 의지함이 없는 것은 앞에 모심이 아니다.
2) 받들어 섬기는(경배) 것이다.
정성으로 받들어 섬기는 것이 곧 앞에 모시는 것이다.
3) 인도와 가르침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인도와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서 앞에 모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그 인도하심을 따른다
하면서도 자기들 육신적으로 좋은 일에만 따르려고 한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처럼 여겨 원망 불평 혹은 낙심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좋은 형편 좋은 곳으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고
험난한 곳 고통이 있는 곳으로도 인도를 하신다.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을 다 이렇게 인도를 하셨고
그 고통스럽고 험난한 일들을 통하여 믿음을 키우시고 복 받을
자격을 만드셔서 하늘에 신령한 축복 내리시는 것이다.
이렇게 항상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살면 받는 축복은
첫째, 하나님께서 내 우편에 계신다.(8절)
성경에서 말씀하신 우편은, 능력의 역사하심을 뜻한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우리 앞에 모시고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우편에 함께 계셔서 만능의 역사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 하는 일을 도우셔서 어떤 형편에서든지 넉넉히 감당하고
좋은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것이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운영하시는 그 전능하신 역사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신다.
둘째, 생명 길로 인도 하신다.(11절)
죄악과 그 멸망에서 구원하셔서 생명 길로 인도하시고,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을 주시며,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생명 길로 인도 하신다. 이는 또한 우리 인생길에서
어떤 험난한 일을 당하든지 거기에 굴복하거나 쓰러지지 않게
하여 최후에 승리자로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시는 축복이다.
우리 인생길에서 이런 일 저런 일을 만나도 다 이겨내게
하시고 최후에 승리자로서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으로의 복락을
누리게 하시는 축복, 이 축복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축복이며
너무도 감격스럽고 은혜가 충만한 축복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이미 이 축복을 보장하셨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첫째, 요동하지 말라.(8절)
항상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편에 함께 하시며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우리를 악에서 보호하고 좋은 열매를 거두게 하시며
생명 길로 인도하시고 최후의 승리자가 되게 하실 것이기에
어떤 열악한 환경이나 형편에서도 요동치 말고 믿음으로 나가자.
둘째,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하라.(11절)
죽어도 다시 사는 생명 길, 천국 복락의 길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인생길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게 하시는데
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
현실의 모든 환경은 우리가 최후의 승리가 되게 하는 발판이다.
어떤 일이든 기쁘고 즐거움으로 감당하자 !!
2010-02-08 AM 10:44:00
2010. 1. 31 오른편에 있는 자와 왼편에 있는자
제 목 : 오른편에 있는 자와 왼편에 있는 자
성 경 말 씀 : 마태복음 25 : 31 - 46
본문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의 말씀이다.
초림 때의 예수님은 베들레헴 마구간에 초라하게 오셨지만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권세 영광을 가지시고
위풍도 당당하게 천하 만물을 심판하시는 심판주로 오신다.
예수님께서 심판주로서 보좌에 앉으셔서
창세 이래로 생존했던 모든 인생들을 다 불러 모으시고
양(성도,의인)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불신자,악인)에
세우고, 행한 그대로 오른편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영생복락을
왼편에 있는 불신자(不信)들에게는 영벌을 받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오른편에 있는 양(성도)들에게는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었을
때 입히고 먹이고 돌보아 주었다"고 축복과 칭찬을 하셨다.
이에 대하여 양들은 그런 일이 없다고 주님께 아뢰니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일이 곧 주님께 한 일이
라"고 말씀 하셨다.
왼편에 염소(불신자)들에게는 "저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리고 목마르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지 아니했다"고
책망과 형벌을 내리셨다. 이에 대하여 왼편에 있는 자들은
"잘 공양을 했는데 어인 말씀입니까"하고 여쭈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질책을 하셨다.
주님께서 의인들에게 잘했다고 축복을 하시는데
의인들은 잘한 것이 없다고 온유 겸손하게 사양을 하고,
악인들에게는 잘못했다고 책망과 형벌을 내리시는데 악인들은
잘했다고 내세우니, 왜 이런 일이 전개 되었는가?
만왕의 왕이시오 심판장이신 주님 앞에서
의인들이나 악인들이나 그 누구든지 거짓을 말할 수는 없다.
주님께서 의인을 축복하시고 악인을 형벌하신 뜻은 ?
첫째, 의인들은 모든 선행을 믿음으로 했고
악인들은 인간의 사상에 의해 했다.
모든 인생들의 출처와 근본은 어디인가?
성삼위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존케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자신을 생존케 하신 하나님을 신임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한 삶이다.
이러므로 성삼위 하나님을 신임하며 섬기는 가운데 행한
것은, 그 어떤 일이든지 다 주님께서 인정하고 알아주시지만
성삼위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역하면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그 어떤 것이든 인정받지 못하고 죄악이며 멸망이다.
둘째, 의인들은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사랑으로 했고
악인들은 자기들의 의를 나타내고자 했다.
천사의 말에 방언을 하고, 산을 옮길 믿음과 능력이 있고,
자기 재산을 다 바쳐 구제하고 자기 몸을 내어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셨다.
여기서 의인들은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으로 선행을 하고 이웃을 섬겼기에
주님께서 알아주시고 칭찬하시며 축복을 내리셨다.
그러나 악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이 자기들 생각으로
자기를 자랑하고 인간 자신들의 의를 뽐내기 위해 한 것이기에
주님 앞에서는 인정받을 수가 없었고 정죄(定罪)받았던 것이다.
셋째, 의인들은 하나님 한 분 알아주시면 된다 하고 잊었지만
악인들은 사람에게 상을 바라고 자랑을 했다.
마태복음 6장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사람에게 나타내고자 의를 행한 것은 이미 사람에게 받았고
하나님께는 받을 것이 없다" 고 말씀하셨다.
의인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긴 것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명예 영광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요
오직 " 하나님 한 분 알아주시면 된다" 하는 믿음으로 했고
이웃을 섬기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임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신들의 행한 것은 다 잊어버렸다.
그러나 악인들은 선을 행하면서 자기들에게 그만큼의 얻을
이익을 생각하며 타산적으로 했고 이익이 없을 것 같은 선은
행하지를 않고 자기들의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선을 행했다.
이렇기에 의인들이 자기들의 선행과 의를 다 잊어버렸어도
주님께서 다 알아주시고 찬란한 천국의 상급과 복락을 주셨고
악인들은 그 어떤 것도 인정받지 못하는 죄악이 되어 오히려
훨훨 타오르는 지옥 불바다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믿음을 가진 의인들이다. 합당한 의를 행하자 !!
2010-02-01 AM 10:01:45
2010. 1. 24 뒤에 것은 잊고 앞에 것을 향해 달려가라.
제 목 : 뒤에 것은 잊고 앞에 것을 향해 달려가라.
성경말씀 : 빌립보서 3 : 10 - 16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 하였는데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과 영광이 찬란한
부활에 자기 자신도 참여하고자 함이라 하였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그 정도의 부활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로 무릎을 꿇게 하고
만왕의 왕, 만유의 주로 찬란한 영광을 누리시는 부활이었다.
그 부활에 참여키 위해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달려간다는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이자 결심인 것이다.
이 때 사도 바울은 1, 2,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으며 신약성경 27권 말씀 중
10 여권을 기록한 때였고 복음을 전하고 사명을 감당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이다. 즉 지금까지 이룬 믿음의 업적만
해도 타의 추중을 불허할 만큼 대단한 것인데도, 잘한 일이든
못한 일이든 뒤에 것은 다 잊고 예수님을 푯대로 하여
하늘에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나간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 자책하고
고통을 당하면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잘한 일들로 인하여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정죄하다가 버림을 받고 하늘에 상급을 놓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역시도 잘 한 일을 잊지않고 내세울 때는 교만하게 되어
잘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정죄하게 되고,
잘못한 일을 잊지 않고 생각할 때는 그것이 올무가 되어
우리를 슬프게 하고 낙심케 하며 전진을 못하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도 뒤에 것 지난 일들은 다 잊어야 한다.
나쁜 일 잘못한 일들은 철저한 회개의 과정을 통하여 잊고,
잘한 일 좋은 일들은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잊어야 한다.
그리하여 늘 새로운 마음으로
더 좋은 부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야 한다.
뒤에 것을 잊고 달려 나가되
첫째, 신앙적인 것을 잊고 달려 나가야 한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교회를 받들여 충성한 열매들이 있다.
이렇게 잘한 일들을 기억하고 내세우다 보면 교만해져서
교회 일들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 하거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정죄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또는
"그동안 잘했으니 이제 난 안 해도 된다"라는 생각도 오만한
것으로, 오히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잊어버려야 한다.
사람이 온전할 수가 없다. 잘못한 죄악도 있을 것이다.
이것도 잊어야 한다. 안따깝게 여기며 회개하고 잊어야 한다.
잘못한 일을 생각하다 보면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되고
자신 스스로도 용기를 잃고 실의에 빠져 전진을 못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의 죄과를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리 옮기시고 깨끗하게 용서하시며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
이렇게 잘한 일이든 못한 일이든 지난 일은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새 출발하여 예수님을 푯대로 삼고 본받아서
하늘에 예비 된 상(賞)을 위하여 앞을 향해 달려 나가야 한다.
둘째, 가정적인 일들을 잊고 달려 나가야 한다.
부부간이나 가족들끼리도 잘한 일들이 있고 못한 일이 있다.
잘한 일들을 내세우다 보면 역시 상대를 무시하게 되고
못한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주눅이 들고 겸연쩍어 서로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또한 상대가 잘못한 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는 상대가 미워지고 싫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부부사이나 부모자녀 또는 형제 친척 사이도, 지난 일은
잘한 일이든 못한 일이든 다 잊어버리고 화목한 관계 행복한
가정의 삶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셋째, 사회적인 일들을 잊고 달려 나가야 한다.
사회생활하며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 역시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들도 있다. 직장생활에서도 자신의 처신이나 동료들
문제에도 잘한 일들과 잘못한 일들이 있다.
사회적 잘못한 일들에 사로잡히다 보면 불평분자나 책임전가
자가 되고, 잘한 일들을 생각하다 보면 우월감을 가지고 교만
해져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다른 의견을 짓밟게 된다.
이런 일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할 일들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인 일들도 지난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건설적인 생각과 사회적 화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전진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사회가 건설된다.
2010-01-25 AM 9:55:04
2010. 1. 17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복 있다.
제 목 :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복 있다.
성경말씀: 누가복음 6: 46 - 49
"철수"가 집을 지었다.
50평에 방 4개 주방 1개씩으로 3층 집을 지었다.
땅을 깊이 파고 반석을 찾아 그에서부터 기초를 하느라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들고 고생도 많이 했다.
"허수"도 집을 지었다.
반석 위 기초도 없이 맨땅에 철수네 집과 같은 평수로
같은 구조로 3층집, 철수의 집과 똑같은 집을 지었다.
사람들은, 허수가 돈도 덜 들고 시간도 절약하고 고생도
덜 하고 철수와 똑같은 집을 지은 것을 보고 감탄을 한다.
"야~ 역시 허수는 대단해 짧은 시간에 돈도 덜 들고
고생도 없이 철수와 똑같은 집을 지었네! ~"
사실은, 허수 자신도 속으로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철수를 비웃고 있었다.
"땅을 파고 반석을 찾아 기초를 하느라고 고생하고 돈만 더
들었지, 내 집보다 나은 것도 없네, 난 역시 대단해~ "
얼마 후
폭풍우가 몰아치고 홍수가 일어났다.
반석위에 기초한 철수의 집은 아무 흔들림 없이 굳건하였고
철수네 가족과 재산을 보호해 주는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보통 때는 멀쩡하던 허수네 집은 폭풍우와 홍수에 힘없이
무너지고 물에 떠내려가 집과 재산 등 많은 손해를 입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그 믿음이 그 사람을 위험에서 보호해 주고 축복되게 하며,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사람은 모래위에 지은 집같이 되어
작은 시험과 사건사고에도 흔들리고 무너져서 그 집 사람과
재산이 많은 손해를 입을 것을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며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힘들고 어렵기도 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절제해야 하기도 하고
또한 자신이 하기 싫은 일들을 힘써서 해야 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것은 너무도 쉽고 편하고 자유롭다.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받을 뿐, 그것도 시간이 좀 지나면
무디어지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것이다.
평소에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나
듣고도 행치 않는 사람이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고 오히려
행치 않는 사람이 더 지혜로워 보이고 멋있게 보이며,
말씀대로 행하려 애쓰는 사람은 고지식해 보이고 미련하게
보이며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멋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인생길이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고
폭풍우가 몰아치고 지진이 일어나는 날이 오며, 주님께서
우리 생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날이 온다.
그 때 우리 믿음의 집은 과연 어떻게 될까?
우리 믿음의 집이 우리를 보호해주고 축복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후회케 할 것인가?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받는 축복
첫째, 영혼이 깨끗해 진다.(벧전1:22)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우리 영은 근원적으로 깨끗해졌다.
그렇다하여도 현실적으로는 말씀대로 순종할 때 우리의 영혼이
더 깨끗해진다. 순종하면 순종할수록 점점 더 거룩해진다.
둘째, 의롭게 된다.(롬 2:13)
" 하나님 앞에서는 말씀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하심을 받는다"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옳다! 옳다!
인정해 주고 알아주시며 풍성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셋째, 영혼이 자라난다.(엡 3:15-16)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거듭났을 때의 우리 영은
어린아이처럼 작은 영이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대로 영이
점점 자라나고 예수님의 온전하신 형상을 닮아 성장하게 된다.
넷째, 현세의 축복을 받는다.(신 28:1-6)
말씀을 듣고 행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하는 일마다 잘되고 들어와도 복을받고 나가도 복을받고
자손들까지도 잘되며 현실의 삶에서 축복을 받는다.
다섯째, 천국의 영광과 축복이 크다.(마 5:17-19)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삶이 다하면 천국으로 가는데 말씀을 순종한대로
천국에서 누리는 영광과 상급과 축복이 크고 풍성해진다.
아이티에 지진으로 사상자가 20만 명에 이른다 한다.
반석위에 집을 지었다면 많은 사람이 보호를 받았을 것이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2010-01-18 AM 10:02:48
2010. 1. 10. 부귀 영광을 얻는 비결
제 목 : 부귀영광을 얻는 비결
성경말씀 : 역대하 17 : 1 - 6
여호사밧은 유다 나라의 일곱 번째 왕이다.
아버지 아사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고 왕이 된 얼마 후에는
부귀와 영광을 크게 누리며 나라를 부국강성하게 만들었고
주위 여러 나라로부터 높임을 받으며 조공까지 받았다.
여호사밧이 어떻게 해서
이런 부귀영화를 누리며 높임을 받게 되었을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주신 축복이었다.(3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함께하셔서 축복하시는가?
첫째, 스스로를 강하게 하였다.(1절)
스스로 강하게 했다는 것은 인간적인 자기의 실력이나
지혜를 믿고 강했다는 것이 아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는 믿음을 기본으로 하여 스스로 강하게 했다.
오늘날의 현실은 지진과 한파 폭설 경제 불황과 고유가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으며, 또 언제
어떤 모양의 사건 사고가 터질지 불확실한 상태이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고 노래가 되시고
구원이 되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최고의 능력의 종 모세가 하늘나라로 갔다.
비서인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모세에 비하면 여호수아 자신은 연약한 지도자였다.
두려움이 앞섰다. 그런 여호수아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도 하나님을 신임하는 믿음 가운데
"스스로 강하게 하라"는 것이다. 신약에서 사도 바울도
"내게 능력주시는 주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강하게 하여 담대하게 증거를 했다.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할 것이 무엇인가?
물론 현실은 어렵고 힘들기도 하다. 또 우리는 연약하고
무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지혜나 실력으로가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우리 힘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도 자신 스스로를 강하게 세워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극복하지 못할 장벽은 없다. 다 정복할 수 있다.
둘째, 오직 하나님께 구했다.
여호사밧이 왕이 되어
"바알들에게 구하지 않고 오직 그 하나님께 구했다"는 말씀은
천상천하에 오직 성삼위 하나님만이 전전전능하신 참 신이요
그 어떤 것도 신으로 섬길 대상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다른 잡신과
토속적 미신을 신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과 거의 동등시 했다.
그러나 이는 큰 죄악으로 하나님께 징벌과 멸망을 당할 일이라,
잡신 나부랭이와 조상신들이 다 헛된 것임을 알고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며 하나님께만 구했다. 오늘날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으로 인정하는 것은 죄요 악이 된다.
셋째,계명을 행했다.(4절)
계명이란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뜻하면서도
특별히 십계명을 뜻한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믿음으로 천국복락을 누리는 구원과 축복을 받았다.
즉, 죄 사함 받고 천국에 가려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이미 죄 사함 받고 천국복락을 누리는 천국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지키는 것이다.
십계명 중에서도 주일(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하여
성삼위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소원을 아뢰며 사죄의 은총과
찬송과 기도의 응답을 받아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어서
천성을 향해 전진해 나가는 것이다.
넷째,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하는 것이다.(4절)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는 땅덩어리도 크고 세력도 크지만
세상의 타락된 문화와 미신적 풍속을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탈선된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말씀 중심의 참 신앙을 이루어 간 것이다.
오늘날도 수많은 교회와 큰 세력들이 이스라엘의 신앙을
따르면서 그것이 참 신앙인 것처럼 미혹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말씀 중심의 참 신앙을 지켜가야 한다.
우리도 여호사밧처럼 위 네 가지의 신앙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도우시므로 금년 한 해가 우리 삶에서
축복된 한 해로 아름답게 장식될 것이다.
2010-01-10 PM 7:14:23
2010. 01. 03. 기쁨으로 물을 길어라.
제 목 : 기쁨으로 물을 길어라
성경말씀 : 이사야 12 : 1 - 3
소망이 넘치는 2010년이
마음을 설레게 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내놓은 경제적 동향이나 뉴스를 보면
폭탄 테러와 자연재해와 금융위기 등의 여파가 여전하게
우리를 두렵게 하고 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세상의 불투명한 환경이나 흉한 소식에 두려워 말고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어라” 고 말씀하신다.
그에 대한 격려로 1절부터 말씀하셨으니
첫째, 하나님의 노가 그쳤고 안위하여 주신다. (2절)
“ 그날에, 전에는 내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그 노가 그쳤고”
여기 말씀하신 “그 날” 은
1) 역사적으로는 예수님께서 구속(救贖)을 완성시킨 날이다.
2) 예수님을 내 죄를 사하시고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을 주신 주님으로 믿는 날이다.
3) 새해 새날을 맞이하여 새로운 믿음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성삼위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새 출발을 하는 날이다.
이날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잘못에 대한 진노를
그치시고 안위(安慰) 곧 평안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 함이니
이제 2010년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새로운 믿음과 각오로 새 출발하는 우리에게도 평안을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을 의뢰하고 두려워 말고 나가라. (2절)
하나님께서 노를 그치시고 평안과 위로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기 때문에, 올 한 해 우리 앞에 어떤 돌발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하여도 전혀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성삼위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뢰하고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역사하셔서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시고
우리를 해하려는 세력들을 물리쳐 주시고 평안을 주신다.
셋째,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2절)
하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힘이 되어 주신다.
천상천하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경영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와 경영의 힘,
천상천하 그 어떤 것이라도 단번에 제압하고 굴복시켜서
승리의 영광을 취하시는 만능의 힘을 가지시고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힘으로 삼는 자에게 힘이 되어 주신다.
넷째, 하나님은 나의 노래시다. (2절)
하나님은 우리 즐거움의 원천(源泉)이시며 즐거움을 공급해
주시는 희락의 주체이시다. 이는 우리의 계획하고 노력하는
일들이 잘되도록 하셔서 즐거움을 누리게 하신다는 뜻도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만이 영원한 행복의
즐거움임을 알고 하나님을 내 즐거움의 원천으로 삼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양하며 살아야 한다.
다섯째,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2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이미 완전무결하게 구원하셨다.
과거 현재 미래의 억만 가지 죄악과 그 형벌에서 구원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천국복락을 누리게 하셨다.
육신적으로도 지금까지 불행한 사건과 사고에서 건져서 보호
하여 주셨고 금년 한 해도 예기치 않은 위험과 사고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구주(救主)이시다.
이렇게 성삼위 하나님께서 진노를 그치시고 안위하시며
우리 힘이시고, 노래시며, 구원이 되시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두려워 말고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어야 한다.
“구원의 우물들”이란
예수님께서 구원해 주신 구속의 은혜와 성경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 속에는
우리가 영생의 축복을 받을 참 진리가 충만하게 내재되어 있다.
마귀의 술수와 훼방을 물리치고 이겨내며,
죄악의 유혹과 올무에서 벗어날 구원의 말씀들이 있고,
난관을 돌파하고 승리할 능력의 말씀들이 있으며, 영 육간에
질병에서 치료받고 평강을 누릴 치유의 말씀들이 있다.
인간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할 지혜의 말씀들이 있고,
선을 행하기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할 만능의
말씀들이 있다. 이를 기쁨으로 받아 배우고 익혀서 자신의
실력이 되게 하고 자신의 믿음의 업적이 되게 하여 영 육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어내는 것이다.
이 일을 기쁨으로 한다면 금년도 축복된 한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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