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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말씀요약] 2008년 7월-12월 설교요약 조회수 : 1044
  성경본문 :  설교일 : 2008-07-06
  설교자 : 김성진목사
  첨부파일:   2008설교요약-2.hwp(106K)

~ 2008. 6. 29.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자
 
제      목 :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자.

성경말씀 : 로마서 14 : 5 ~ 9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자"

이 말씀을 얼핏 생각하면 사람으로서 이렇게 산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하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생각이 된다.

   "아니 내 계획 내 목표도 있는데 내 인생은 무엇인가?"

그러나 사람으로서 주를 위해 살다가 주를 위해 죽는 것은

인생 최고의 가치 있는 삶이며 최대의 축복받을 삶이다.

   본문말씀에서

주를 위해 살다가 주를 위해 죽는 과정을 살펴보면

첫째, 날(日)을 주를 위해 살아야 한다. (5절)

   구약시대부터 당시까지 토요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통하여 일요 안식일(주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

자기가 지키는 날이 옳다고 서로 주장하며 서로 배척 하였다.

   그러나 안식일도 주를 위하여 지켜야하기 때문에

한 날로 통일하고 확정하여 주님을 위하여 지키라는 말씀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성삼위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고 인생들이 참 안식과

평화를 누림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에 따른

토요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는 참 안식과 평화를 누릴 수가

없다.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굳이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내놓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게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해결하시고 살아나셨으며

우리에게 사죄와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생명을 주셨기에,

주님이 구속(求贖)을 이루고 부활하신 주님의 날(일요일)이

찬송과 영광을 받으실 주님 안식일이며, 우리에게 참 안식과

생명을 주는 우리가 지켜야할 안식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주일(일요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요

하루하루 날을 보냄에도 있어서도 어떻게 하면 주를 위할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 먹는 것도 주를 위해서 먹어야 한다. (6절)

   레위기 11장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되새김질하며 쪽 발 갈라진 짐승, 예로 소나 양이나 염소

또는 비늘 있고 지느러미가 있는 고기는 먹어도 되지만

개나 돼지 같이 되새김질 하지 않고

여러 발가락이 뭉퉁그러진 동물의 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

   이유인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소나 양처럼

틈 있을 때마다 말씀의 뜻을 되새김질하여 자기 생명의 양식

으로 삼고, 쪽 발이 갈라져 분리 되고 구분이 된 것처럼

세상 더러운 것과 구별 분리된 생활을 하라는 뜻으로 이렇게

명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하시고

십자가 대속과 부활과 사랑으로 율법을 완수 완성하셨음으로

구약에서 내려온 의식과 규례의 모든 제도들은 다 소멸되고

그에게 해방되어 이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이 자유롭게 되었다. (디모데전서 4 : 1~5)

단 신약시대에도 금한 식물이 있으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짐승이다. (사도행전 15:29, 요한계시록 2:14~22)

   이러하기에 우리는 먹는 것도 주님을 위해서 먹어야 하고

술, 담배, 마약, 과식 등 우리 몸에 해로운 것들은 그 무엇이

든지 우리 주님을 위해서 먹지 않는 것이 주님을 위한 삶이다.

셋째, 일상생활에서 주님을 위해야 한다. (7~8절)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산다는 것은

교회나 기도원에서 기도나 예배만 드리는 것을 뜻함이 아니다.

자식이 부모를 위한답시고 매일 부모님 앞에서 노래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 과연 부모를 위한 것일까?

그보다도 자식들이 사회 각 분야의 맡은 일자리에서 분투노력

하여 모범을 보이고 앞 서 나가며 칭찬을 들을 때

그것이 부모를 위한 것이고 부모에게 자랑거리가 되듯,

우리가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등 삶의 여러 가지 형태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바르게 살며 땀 흘려 노력하여 좋은 열매를

거두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감사 생활을 하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주님을 위한 삶이고 축복이 되는 것이다.

   자기 욕심이나 자기 자존심 체면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은 잘 되었다할지라도 주님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도

위할 수가 없다.  왜냐면 주님께서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생필품을 비롯하여 승용차 주택 등 여러 가지

소유물이 있다.  이 소유물들이 주인인 우리들을 위하여

온전히 희생당하고 100% 쓰임 받고 가는 것이 그 물질들로서

최선 최고의 삶을 산 것이다.  한 쪽 구석에 처박혀 자리나

차지하고 있다가 수명이 다하고 끝나면, 편안한 것 같지만

그 물질은 그 물질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이 되듯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일상생활을 주님을 위해

살다가 생을 마치면 그것이 곧 주님을 위해 죽은 것이다.
 

 
 2008.6.22 사울에대한 오해

제      목 : 사울에 대한 오해

성경말씀 : 사도행전 9 : 26 ~ 31

   오늘 말씀은 사울(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반대하고 괴롭히며 핍박하다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다.

  처음 믿은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도들을 비롯해

여러 제자들과 사귀며 믿음의 일에 힘쓰고자 하였으나

사도와 제자들이, 사울을 예수님을 반대하고 핍박하는 못된

사람으로 오해하여 만나기를 피하고 따돌리며 소외시켰다.

  한 편으로 헬라파 유대인들은

사울이 유대교를 해롭게 하고 짓밟는 못 된 사람으로 오해

하여 사울을 미워하고 죽이려 하였으니

사울은 믿음의 사람들이나 불신앙의 사람들에게 다 오해를

받아 죽임을 당하기까지 할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본문에 나타난 것을 보면 오해의 결과는

사람을 죽이려고까지 하는 무서운 죄악임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 세 부류의 사람이 나타난다.

     << 오해를 하는 사람>>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제자들이며, 유대인들인데,

사도들이 누구인가?   그야말로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사역자들로서 성령님의 역사가 충만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사도와 제자들이 사울에 대하여 오해하고 멀리

하였으니, 사울이 과거에 행한 악한 일들과 그로 인한

선입관에 의해서, 죄를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선 현재의

사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멸망 길을 걸어가는 자신들을 사랑하여

구원코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는 사울을, 오히려

자신들을 해하려는 못된 사람으로 알고 죽이려 했으니,

   오해할 때 일어나는 공통점은,

*  한두 가지 일로 사람이나 사건을 전부 안 것처럼 생각하며,

*  잘못 생각하고 지레짐작한 것을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고,

*  성급하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 오해를 풀어주는 사람>>

  "바나바"라는 제자가 사도와 다른 제자들에게

사울이 다메섹 길에서 예수님을 뵌 것과 그 은혜로

회개하고 주님을 믿고 사역자가 된 것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오해하고 있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이 잘 설명해서 그 오해를 풀어주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이로 인하여 제자들이

오해를 풀고 사울과 하나가 되어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

     << 오해를 당한 사람 사울>>

첫째,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사울이 처음 믿은  기쁨으로 제자들과 사귀며 믿음의 일에

전진해 나가기를 소원하고 예루살렘에 왔기에 오히려 제자들이

기쁨으로 영접해야 할 것을, 오해를 하여 만나 주지도 않고

멀리하니 서럽고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슬퍼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으며 참고 이해하기를 기다렸다.

둘째,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했다.

  "아니 사도란 사람들이 내 진심을 몰라보고 오해하다니...

  그럴 수가 있나?" 원망 불평할 수도 있지만, 사울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며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자신이 이해를 하고 감당해 나갔다.

셋째,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했다.

  "잘 믿어보려고 했더니 이게 무슨 꼴인가?"

사도와 제자들은 그들대로 나를 따돌리고 만나주지도 않고

또한 유대인들은 유대인들대로 분노하여 나를 죽이려 하니

"차라리 믿지 말아버릴까!  내가 그만 두면 될 것을..."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은 다 아신다" "하나님이 아시면 됐지"

하는 믿음으로 모든 오해와 편견을 감수해 나갔다.

넷째, 담대하게 전진하며 사역을 감당했다.

   오해는 시간이 가면 풀리게 돼 있고

오해가 안 풀린다 하여도, 진실을 바로 알지 못하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잘못이지, 그들 때문에 내 생명의 주님과

나의 바른 믿음을 포기할 수 없고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그만 둘 수 없다!! 는 확신으로 담대하게 사역을 감당했다.

  이런 믿음과 중단 없는 전진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사도중 제일 늦게 부름 받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1, 2, 3차  전도여행에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고

신약 성경 27권 중에 반절이 넘는 14권 말씀을 기록했으며

사도 중 으뜸가는 훌륭한 사도가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서도

오해를 하기도 하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가정이나 교회,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런 일들이 거의

다 오해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바울 사도가 승리하고 축복받은 길을 우리도 걸어가자!!
 
 
 2008. 6. 15. 깃발을 달게 하여 주소서
 
제    목 : 깃발을 달게 하여 주소서
성경말씀 : 시  편  60 : 1 ~ 5


   인류 역사에 정치력을 통하여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징기스칸,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등 등
다윗은 이들을 훨씬 능가하는 위대한 왕으로 당시 중동전역을
지배하며 믿음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훌륭한 왕이었다.

   그러나 이런 다윗에게도 순조롭고 평탄한 길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죽음에 이르는 고통스런 일에서부터 사소한 일까지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다윗왕국에
아람 나하라임 사람들이 쳐들어와 그들과 싸우고 있었고,
또 한 편에는 아람소바 사람들이 침략하여 그들과 대치하고
있었으며, 그 한쪽에서는 에돔 족속의 공격에 요압장군이
맞서서 싸우고 있었다.
   이러므로 이스라엘 국력이 분산되고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하여 마치 사람이 포도주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어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것처럼 백성들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왕국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때에 다윗은 어떻게 했는가?
첫째,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다. (1~2절)

   이 나라 저 나라가 침략을 하여 정신을 차릴 겨를 없이
휘둘리고 있으며 이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이런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알았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들을 당하게 하셨는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구나! 하고 깨달았다.
   인생살이 행복하고 좋은 때도 있지만 이 문제 저 문제
이 사건 저 사건이 터져 힘들어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
이 때 누구누구가 잘못해서 이런 일을 당했다느니, 재수가
없어서라느니, 괴로워서 못살겠다느니, 하며 원망 불평이나
낙심이나 주저앉은 것이 아니고, 현실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권고로 받아들인 것이다.

둘째, 해결하실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았다. (11~12절)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일진데,
도와주시고 해결하실 분도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알았다.
   일반적으로 쓰는 말에도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 모든 일, 다윗이 당시 당하고 있는 일들을 도우셔서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뿐이심을 알았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하나님은 우리의
대적을 밟을 주이심이라" (11~12)
오늘날도 우리가 당하고 있는 모든 사건과 고통스런 일들이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해결이 되고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당할 수밖에 없는 줄 알고 하나님께 돌아와 믿고
의지하며 도움을 청해야 한다.

셋째, 주를 더욱 경외(敬畏)했다. (4절)

   이 사건 저 사건이 터져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다윗은 낙심하지 않고 주저앉지도 않고 하나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경외했다.
   믿음의 길을 가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대개
"괜히 믿었구나. 교회 다니고 예수님을 믿고 기도도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믿음을 포기하고 방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윗은 어려운 일들을 당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간구하고 도움을 청했다.
   이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승리토록 하였고
이에 승리의 깃발을 높이 달고 휘날리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역시도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과 영광을 돌리고, 어렵고 힘든 일에는
어렵고 힘든 그대로 하나님을 충성되이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을 만능으로 도우셔서
당한 모든 일들을 감당케 하고 승리의 깃발을 날리게 하신다.

넷째, 주를 더욱 사랑했다. (5절)

   다윗이 이 일 저 일 당하면서 체험해 보니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됐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보니 하나님을 더욱 뜨겝게 사랑하게
되었다.   하나님만을 제일로 알고 사랑하여 나가니
하나님께서 다윗을 더욱 사랑하셨고 다윗이 그 사랑에 힘입어
당한 모든 일을 이겨내고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게 되었다.
   로마서 8 :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런 역사는 얼마든지 일어난다.
이 일을 당하든 저 일을 당하든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모든 일을 감당하고 승리의 깃발을 날리게 된다.


 
 2008. 6. 8. 미약하니 사하여 주소서
 


제    목 : 미약하니 사하여 주소서
성경말씀 : 아모스 7: 1 ~ 6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에게
앞으로 행하실 여러 가지 일들을 계시로 보여 주셨는데
오늘 말씀은 그 중 두 가지이다.

   하나는,  풀이 베임을 당해서 새로운 움이 돋는데
황충이(메뚜기 종류) 나와서 새로운 싹을 다 뜯어먹어버렸다.
   이때 아모스 선지자가 "주 여호와여 사하여 주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간청하니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사하여 주셨다.
   두 번째는, 불이 바다와 육지를 태우고 집어삼키려하므로
아모스 선지자가 다시금 "야곱이 미약하니 사하여 주소서"
간구하므로 하나님께서 이 일도 사하여 주셨다.
   위 말씀의 풀이 베이고, 불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벌하실 것인데
아모스 선지자가 사죄의 은총을 구하므로 용서받은 내용이다.
   연약한 인생들, 범죄로 인한 징벌을 받을 자리에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큰 은혜요 축복 중에 축복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어떻게 해서 용서를 받았는가?
첫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시대를 분별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2절 말씀에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 날이 좋지 않겠다 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하여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고 책망하셨는데
아모스 선지자는 그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시대의 흐름과 인간생활을 선악간에 분별하고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이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며 선악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분별하여야 한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말세가 되면 처처에 기근 지진
홍수 등 재난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몇 년 전 동남아시아의  "쓰나미"나 최근에도
미얀마의 "싸이클론" 중국의 지진 등으로 수 십 만 명씩 사상자가
생기고, 고유가나 원자재의 부족으로 세계 각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단순히 기상이변이나
자원고갈과 자연재해로 보기보다는 천상천하 우주 만물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고 인간 세상의 죄악을
징벌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경영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둘째, 연약하고 가련한 인생을 알았다.
   아모스 선지자가 "야곱이 미약하오니"한 것은
하나님의 징벌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비참한가를
고백한 것이며, 믿음의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
앞에는 연약하여 감당할 수 없음을 솔직히 고백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자연 만물을 통하여 인간 세상을 징벌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과연 떳떳하게 설 수가 있겠는가?
미얀마의 대홍수 중국의 지진이 바로 우리 앞에서 일어난다고
할 때에 그 앞에 감사함으로 서서 인생을 마감할 수 있으며
천국에 들어갈 소망과 상급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자신들을 살펴보고, 아직도 상 받을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죽음 앞에 감사함으로 설 수 없는 자신들을 발견하여
우리 자신들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 긍휼하심을 구했다.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죄악상과
그 연약함을 알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즉 불쌍히
여기심을 구해야 한다. 인간들의 죄악상을 보면 마땅히 징벌을
받아야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그 징벌을 감당할 수 없고
그 앞에서 너무나 연약하고 가련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구하는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가 "야곱이 미약하오니 사하소서" 간구함도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구한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의 간구대로 긍휼히 여기셔서 재앙과 징벌을 거두어
주셨고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우리 개인이나 가정 또는 사업이나 직장, 한 걸음 나아가서
국가나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들에 있어
두려워하거나 근심 걱정할 것이 아니고 먼저 믿음의 사람들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으면 우리에 불행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할 수 있고 좋은 길로 나아갈 수가 있는데
하나님의 긍휼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 사람들 끼리부터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짓밟으려만 하지 말고
서로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긍휼히 여겨야 한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2:13)

 
 
 2008. 6. 1. 하나님의 은사를 사고팔지 말라
 
                       
 제     목 : 하나님의 은사를 사고팔지 말라
 성경말씀 : 사도행전 8 : 14 ~ 24

  신약 초대교회 시대, 북쪽 사마리아 지역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파송되어서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성령 받기를 구했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었더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은지라
 시몬이 사도들에게 돈을 주며 청하기를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함께 네가 망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네가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네 몫도 없느니라"

   위 말씀은 자칫 오해하기 쉬운 말씀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도 성령을 받지 못해서
사도들의 안수를 통하여 다시 성령을 받은 것처럼 보이나
이는 잘못된 깨달음과 해석이다.

 
   올바른 깨달음과 해석은, (고린도전서 12 : 3)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이미 성령님을 받은 것이요
성령님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도록 기도했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성령의 은사(恩賜)를 받도록 기도했다는 것이다.>>
   믿을 때 이미 보혜사 성령님을 받았고
성령님을 받았으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었다.
   믿을 때 임하여 계신 성령님께서 성도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시는데 이를 "은사" 곧 "카리스마"라 하며
이 은사에 대하여 대표적으로 고린도전서 12:4~11에 말씀
하셨고, 이 은사는 수 백 수 천 가지로 우리에게 내려오며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좋은 것은 다 성령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은사요 축복이다. (야고보서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이렇게 성령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은사(카리스마)는
절대로 돈을 주고 사거나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만약에 성령님의 은사를
돈으로 사거나 팔려고 한다면 이런 사람은 그 누구이든
그 돈과 함께 멸망을 당할 자이고 하늘에 축복에서 벗어난
가련한 자이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님께서 뜻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데
첫째, 믿음에 믿음을 더하는 자에게 주신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성령님께서 주시지만
이미 믿고 있는 성도가 믿음이 커지고 좋아지고 높고 넓은
고귀한 믿음으로 발돋움하고자 분투노력할 때에 성령님께서
은혜의 선물을 더하여 주신다.
   제 자리에 머무르고자 하거나 뒤로 물러가는 신앙인은
성령의 은사를 받기가 어렵다.  믿음을 발전시켜 전진하고자
힘쓰는 성도들에게 은사를 더하여 주신다.

둘째, 사명에 충성하는 성도에게 주신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신앙적으로 맡은 책임과 사명이 있다.
그 책임을 다하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자 할 때에
성령님은 은사를 내려 주신다.  우리도 게으른 사람에게는
좋은 선물을 주지 아니하듯 성령 하나님께서도 그러하다.
   성령님의 은사, 카리스마를 소유하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현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라!
주일학교 교사는 맡겨주신 심령들을 가르치고 돌봄에 충성하고,
구역장은 구역 가족들을 인도하고 섬김에 충성하고,
찬양대는 하나님 영광을 찬양하는 일에 충성하며, 각 자가
맡은 일에 충성하고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면,
성령님께서 그때마다 합당한 은사를 주시고 역사하여 주신다.

셋째, 필요에 따라 사모하는 자에게 주신다.
   필요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존귀 영광을 돌리는 일에
쓰고자 하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쓰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필요한 것이다. 이런 때는 근심 걱정하지 말고 열심을 품고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리하면 필요한 은사를 내려 주신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거나 이기주의적 명예 영광을 위하여
구하는 것은 사실은 필요한 것이 아니며 이는  죄 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도 성령님의 은사를
돈을 받고 팔려는 사람과 또 돈을 주고 사려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헌금을 강요하기도 하고 얽어매고 또 매이기도 한다.
  그러나 믿음의 감사 감격이 아닌 어떤 조건을 단 헌금,
헌물, 헌신 등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 된 것들이다.
 
 
 2008. 5. 25.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암 4:10~13)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 곧 나의 하나님이시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시기에 만물의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를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신
생명의 주님이시기에 우리 하나님 곧 내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가 내 하나님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기를 힘쓰고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을 만나 뵈려하지를 않고 하나님 만날 생각이나 준비를
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친히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고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을 만난다고 할 때에
사람이 사람과 만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체와 사람의 형체가
만나는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영(靈)이시며 온 천지에
충만하신 전능하신 분이시라 이미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을
하나님을 만난다고 표현한 것이다.>>
소원하고 바라던 기도의 응답이 있으면 하나님을 만난 것이요
복잡하게 얽혔던 문제가 해결되고 막혔던 길이 열렸다면
하나님을 만난 것이며
고통당하던 질병에서의 완쾌된 것도 하나님을 만난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 진리가 깨달아지고 기쁨을 얻음도 하나님을 만난 것이며
고난을 당하는 중에도 감사가 있다면 하나님을 만난 것이요
범죄로 괴로워하다가 회개로 평안을 얻었다면
이 역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이 외에도 하나님을 만난 현상이
여러 가지 좋은 모양으로 우리 현실의 삶에서 나타나는데,
본문에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벌하시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징벌이 아닌, 은혜 받을 준비를 하라는 뜻으로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고 하셨다.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을 만나 뵈려 힘쓰고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첫째, 회개(悔改)해야 한다. (사 57:15, 시 51:17)
사람이 높고 훌륭한 사람을 만나려 할 때도 온 몸을 깨끗이 씻고
여간 단장을 하여 흠이 없는 모양으로 만나보려 하는데
하물며 전지전능, 완전무결, 존귀 영광이 충만하신
하나님을 만나 뵈려 할 때에
어찌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만나 뵐 수 있을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주님을 구주로 믿을 때에
이미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 받았다.
그렇다하여도 현실에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들이 있고
이런 죄들을 그때마다 계속하여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또한 중심, 마음의 비밀까지도 아시는 분이시라
하나님께는 숨길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음을 알고
우리 언행과 중심에 더럽고 추한 죄까지도 낱낱이 고백하며
내 죄 값 대신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의 공로를 믿고
의지하며 회개를 해야 한다.
회개하므로 사죄 받고 사죄 받음으로 깨끗하게 됐기에 이는
이미 하나님을 만난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으로
앞으로 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는 비결이 된다.

둘째, 전심(全心)으로 구하고 사모해야 한다. (렘 29:12~14)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찾으면 만나주시겠다"고 친히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받고자 할 때
어느 정도는 기도하고 마음을 쏟기고 하지만 과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아쉬우니까 기도는 하는데
확신도 없이 중언부언하며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살펴서 확신을 가지고 전심으로 구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기뻐 응답하실 때까지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원만하게 되겠지만
도와주시지 않으면 큰일이 날줄 알고 사모하며 구해야 한다.

셋째, 선을 구하고 악을 멀리해야 한다. (암 5:14~15)
선이란 곧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과 말씀을 떠난 것은 모두 다 악이며 부정한 것들이다.
따라서 성경 말씀에 합당한 일들은 적극적으로 열심을 품고
이루어 가며, 성경 말씀에 합당치 못한 일들은
어려움이 있다하여도 끊어 버리고 멀리해야 한다.
십계명을 비롯하여 때를 따라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자신에게 잘 적용시켜서, 잘하는 일들은 더 잘하려고 분투노력하고
잘못된 일들은 끊어버리고 자제해야 한다.
도덕적으로도 이웃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고통을 당하는 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돕고 사랑하며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 선을 행하여 나간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 삶에서 역사하실 때
이것이 하나님을 만난 것이며 인생이 행복으로 넘치게 된다.

 
 2008. 5. 18. 여섯째 인(印)
 
    제     목 : 여섯째 인(印)
   성경말씀 : 요한계시록 6 : 11 ~ 17

   하나님께서
말세에 이루어질 일들을 기록 하셔서
첫째에서 일곱째까지 도장(印)을 찍어 봉해 놓으셨는데
이것을 펴서 밝히 보여줄 사람이 없어 애를 태우는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인봉한 것을 떼어서 밝히 보여주셨다.

   보여주신 것은
 "큰 지진이 나고 하늘의 해가 검은 담요같이 흑 빛이 되고
 달은 핏빛이 되었으며 별은 태풍에 선 과일이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지고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졌고
 왕과 장군 부자 강한 자들이 산과 바위틈에 숨어 하는 말이
 바위야 차라리 내 머리위에 떨어져 나를 즉사시켜다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앞에 우리가 설 수가 없구나"라고
절규하는 것이었다.
   얼핏 생각하면 "설마 이런 일들이 일어나랴" 의심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하신 그대로 현실에서 이루어
지며 그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다.
   몇 해 전에 동남아에서 일어난 쓰나미 지진과 해일,
얼마 전에 일어난 미얀마의 집중 폭우, 중국 쓰촨성의 지진,
등등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능하고 비참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자연재해가 아니고
여섯째 봉인한 책에서 말씀하신대로 인간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이신 것이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말세의
징조와 한 현상들인 것이다. (마 24:3~10)
   이런 일들이 지금은 부분적으로 간혹 일어나고 있지만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전체적으로 크고 강하고 빈번하게
일어나서 인간들은 참혹한 고통과 죽음의 늪으로 빠질 것인데
이때에 과연 성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중심이요 깨달아야할 진리이다.

첫째, 두려워하지 말라. (마 24:6)
   지진과 폭우 등으로 몇 만 명씩 죽어가고 수 십 만명이
몸이 상하여 고통을 당하고 참혹한 상태에 있지만, 또한
이런 일들이 우리 주위 가까운데서 일어난다 하여도,
믿는 성도들은 끝까지 보호하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며,
혹시 우리가 그런 과정에 죽는다하여도 그것은 우리 성도가
천국복락을 누리는데 통과할 한 과정이기 때문에
   절대로 두려워 말고
아!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구나!
하고 말씀을 붙들고 믿음에 더더욱 확신을 가져야 한다.

둘째, 모이기를 힘쓰라. (히 10:23~25)
   난리와 난리 지진과 재앙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당황하고
방황하며 각기 자기 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모이기를 힘써서 성삼위 하나님께 경배 드리며
서로 격려하며 돌봐주고 말씀으로 힘을 얻고 위로 받으며
승리의 길을 가야 한다.

셋째, 사람의 미혹을 주의하라.  (마 24:4)
   말세, 예수님의 재림 때가 되면 마귀가 자기가 활동할 수
있는 때가 다 된 줄 알고 할 수만 택한 백성들도 미혹하려고
성경 말씀을 왜곡하며 기적과 거짓 능력을 나타내며 자기를
따르도록 한다.  그래서 이단과 사이비한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가 많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기 때문에
이단과 사이비한 것들을 분별하여 물리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만도
이미 신천지 이만희를 비롯하여 몰몬교, 천부교, 통일교, 여호와 증인,
안상홍회, 정명석, 박명호 제칠일안식교 등등
수많은 이단들이 사람을 멸망 길로 끌어가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이들의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성경 말씀 중심의 순수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과대망상적 신앙이나 미신적 또는 기복적
신앙을 버리고 정통교회에서의 순수한 신앙에 서야 한다.

넷째, 말씀에 순종하라. ( 시119:55~56)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은 성도들이 말씀을 순종할 때에
강력하게 나타났고 말씀을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말씀대로 만들어진 것만이 천국에 영원한 상급이 되며
말씀대로 순종할 때 승리를 할 수 있다.

다섯째, 범죄는 즉시로 회개하라. (요일 1:9)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 임박해서야만 자신의 죄를 생각하며
정리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혹 범죄 했을 때는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바로바로 회개해야 한다.
   사람들끼리 잘못한 것도 미루지 말고 즉시로 화해하고
하나님께나 사람들에게 거리끼는 것이 없는  생활을 할 때에
어떤 재난과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가 있으며
주님 앞에 기쁨으로 설 수가 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대로 이루어진다.
 
 
 2008. 5. 11. 만인적응 (萬人適應)
 

 만인적응(고전 9: 19~23) 

   많은 사람들 각 자가
자기 생각 자기 뜻을 상대 쪽에서 알아주고 맞춰주기를
바라고 그리 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고 화를 내며
다툼을 일으킨다.
   부부간에도 남편은 아내가 자기 뜻에 맞춰주기를 바라고
아내는 남편이 자기 뜻에 맞춰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아니
한다고 다투고 불화가 일어난다.
   사회생활이나 직장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움을
당하는 큰 원인중 하나가 상대가 내 뜻을 무시하고 받아주지
않음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이에 따라 반목과 불화가 재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의 생활이다.
   그러나 이런 삶은 서로를 힘들게 하고 불행케 할 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인간의 행복한 삶을 사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은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특수 계층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자유를 누리며 자유롭게 행할 권리를 가진 자유인이었다.
   그렇지만 바울은 유대인을 만나면 유대인에 맞게,
율법에 투철한 사람들에게는 그에 합당하게 적응 했으며,
율법(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또 그에 맞게 대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약한 사람과 더불어 생활했으며,
여러모양의 사람들을 따라 자신을 여러 모양으로 변화시켜
자신을 각각의 모든 사람에게 적응시켜 나갔다.
   즉 다른 사람들이 사도 바울 자신의 뜻에 맞춰주기를
바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형편과
처지에 맞추어 갔다.
   이렇게 하면서도 바울이 확고했던 것은
자신의 올바른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한 참 된
신앙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바른 믿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적응시켜 나갔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런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첫째, 이해심을 가져야 한다.
   상대가 나와 내 뜻을 무시하고
나와 다른 생각 다른 행동으로 나아갈 때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상대가 왜 그렇게 하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가를 살펴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친근하게 살펴보면 어떤 경우는 내가
먼저 상대를 무시하고 힘들게 했기 때문에 상대가 그렇게 반응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원인을 찾을 수가 있으며
이런 상대를 잘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둘째, 관용해야 한다. (빌립보서 4 : 5)
   상대가 나와 다른 처지를 이해했다면
상대의 그런 상태를 너그럽게 받아주고 포용해야 한다.
상대가 내 뜻과 같아서가 아니라 여전히 나와 다르다할지라도
다른 그대로를 너그럽게 받아주고 함께하는 것이다.
상대가 어긋나게 나가다가 그것을 바로 해서가 아니고
어긋난 그대로이지만 어긋난 그대로를 수용해 주는 것이다.
상대가 잘못하는 것을 다 고쳐서 바로하고 내 뜻을 따라주면
그때에 받아주겠다는 것은 서로를 더 어렵게 하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를 관용하는 것이다.

셋째, 종이 되어 섬겨야 한다. (19절 하)
   상대의 다른 것을 이해하고 관용했다면 한 걸음 더 나가서
나 자신을 희생해서 상대를 섬겨야 한다.  종이 된 심정으로
상대를 받들어 주고 상대에 맞춰서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일들이 어려운 일이요 때로는 자기 자신의 자존심을
버려야 하고 희생과 수고가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며 사도들이 걸어간
길이며 믿음의 승리자들이 걸어간 길이다.

   위와 같이 하면 자신만 희생당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축복을 받는 일이요 더 잘되는 길이다.
1) 상대를 얻을 수 있다.
   나를 싫어하고 반대하며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감동을 받아 내 편이 되기도 하고 그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여기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영적으로 구원시켜 천국
백성으로 얻는 것 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2)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영광을 나타내신다.
   위와 같은 과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것이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신다.
3)내 신앙인격이 아름답게 만들어 진다.
   어그러진 상대라도 내가 이해하고 관용하며 섬겨 나기니
내 자신의 인격과 영혼이 아름답게 만들어 지게 된다.

 
 
 2008. 5. 4. 축복받은 교회
 
축복받은 교회
사도행전 7 : 44 ~ 50
 
오늘 말씀은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을 향하여 설교하는 중에
조상들로부터 시작된 교회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 증거의 장막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으로
완성되었고 오늘날 교회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구약시대의 증거의 장막이나 솔로몬 성전이
오늘날 교회와는 조금씩 다른 의미가 있으나 그 중심 뜻은
확실하니 교회의 원어 "에클레시아"는 불러냄을 받은 무리
곧 "멸망 받을 자리에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며
이는 증거의 장막이나 성전이나 교회가 다 같은 의미가 있다.

<< 교회의 기원>>
교회는 신약시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오늘 본문대로
이미 출애굽과 광야 생활할 때도 있었으며 거슬러 올라가면
창세 때로부터 시작 되었다.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이
모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렸는데 이것이 교회
의 모형이며 그들의 아버지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두 세 사람이 내(예수님)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하셨으니 이 말씀은 교회의 새로운
의미이며 구약이나 신약시대를 초월하여 상통하는 것이다.

<< 교회의 목적>>
교회의 방향 설정,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기독교 교리문답 제1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에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로 더불어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이다. 이며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 : 31) 하셨듯이
인생의 존재 목적, 교회의 존재 가치와 목적은 오로지
성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사람이 제 아무리 선한 업적과 믿음의 역사를 많이 이루고
인류와 교회를 위해 큰 공헌을 하고 이바지했다 할지라도
그 영광을 사람이 취하거나 누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사도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백했듯
우리 인생들과 교회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어떤 일들이 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받으실 존귀 영광을 사람들이 취하고 그 인기를
사람이 받아 누리고 있으며 사람이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축복받은 교회로서 가치를 상실한 것이며 불행한 일이다.

둘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내 자신이 영 육간에 행복을 누리고 그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전해주는 것에 교회의 존재 목적이 있다.

<< 교회의 유형>>
교회를 여러 가지 형태로 구분하는데
1) 가견적(可見的) 교회 : 눈에 보이는 교회 건물과 성도들 모임.
불가견적(不可見的) 교회 :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죄 사함 받고 거듭난(중생한) 영혼들의 연합체.

2) 개 교회 : 하나하나로 나누어져 있는 각 교회를 뜻한다.
세계적 교회 : 이단과 사이비가 아닌 이상 교파나 교회를
초월하여 영적 교회는 세계적으로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창세로부터 주님 재림 때까지 모든 교회가 다 하나이다.

3) 승리적 교회 : 예수님께서 이미 죄악을 이기고 마귀를 굴복
시키고 사망 권세를 깨고 부활 승리하신 교회다.
전투적 교회 :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것을 같이 이루기 위해
오늘날도 선한 싸움을 계속하여 나가는 교회이다.

<< 교회의 기능>>
교회에서 해야 할 일,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 성삼위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일이다.
물질과 몸과 마음, 영혼의 정성을 다하여 성삼위 하나님을
섬기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성취하는 일이다.
인간의 사상 이념 또는 감정을 충족하기 위한 인본주의가
아닌,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이 그 말씀을 바르게 이루어 드리는 것이다.

셋째, 생명을 살리고 키워가는 일이다.
복음으로 죽은 영혼을 살려내고, 믿음으로 이미 산 영혼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양육하고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넷째, 선한 사업을 하는 것이다.
이웃을 위한 선한 활동 봉사와 구제 등,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교회는 이미 이런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교회의 기능과 역할에 충성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 예비하신 축복을 다 받아 누려야 할 것이다.

 
 2008. 4. 20.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라
 
제  목 :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라
성경말씀: 여호수아 24 : 14 ~ 18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은 능력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광야 생활 40년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천국으로 불러 올리셨다.

   후계자로 세움을 받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복지에 인도하여 정착시켰는데 이제는 여호수아가
천국으로 부름을 받을 시점에 이르렀다.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천국에 들어갈 여호수아는
천국복락을 누릴 소망과 기쁨보다도 도리어 염려가 앞섰다.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겨야 자손만대의 번성과
축복이 있을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한 잡신을 섬기고 미신적인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여호수아는 단호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선언한다.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오늘날 너희도 너희 섬길 자를 선택하라."
백성들은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결단코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오히려
하나님만 섬겨야할 이유를 명확하게 밝혔으니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는 존귀한 깨달음이요 선언이다.

   <<하나님만 섬겨야할 이유>>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많은 사람들이 다윈의 진화론을 그럴듯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천지만물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
절대로 진화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사는 집, 아파트가 나무나 돌 철 등이
오랜 시간 진화되어서 저절로 세워졌다고 할 수 있는가?
편리하게 사용되는 자동차가 무쇠덩어리가 저절로 진화되어
굴러다닌다고 할 수 있는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사람이 땀 흘려 수고하여 만들어 낸 사람들의 창작물이다.
  그렇듯 우주 만물과 지구, 그 가운데 수많은 생명체들은,
빅뱅으로 인한 진화가 이니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로서 곧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다.
   따라서 피조물인 모든 생명체들과 인생들은
창조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만 경배함이 마땅한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며 복 받을 길이다.

둘째, 애굽 종 되었던 집에서 건져내셨다. (17절 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할때,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 구원하신 분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셨다.  이 뜻은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서 죄악과 마귀의 종살이를 하다가
지옥 멸망을 당할 터인데 이 멸망 가운데서 건져 구원하신 분
역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도 모든 잡신과 미신적 행위를 배격하고
오직 성삼위 하나님만 믿고 섬겨할 것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 이적과 권능으로 보호하셨다. (17절 하)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애굽 왕을 굴복시켰고
출렁이는 홍해 바다를 나눠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셨으며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이우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 마시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능으로 보호하셨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살펴보면 위기가 있었고 절망적인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를 도우시고 보호하며 인도하신 분은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그때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지켜 주지
않으셨더라면 오늘에 우리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천국복락까지 인도하시며 보호하실 분은 오직
성삼위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넷째,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셨다. (18절)
   가나인 족속은 본토민으로서 온갖 죄악을 행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생활을 방해하는 무리들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우리 속에 숨어있는 본능적인 부패한 성품을
뜻하며 이것들 역시 우리의 믿음생활을 방해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제압할 능력이 없으나 오직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제압할 능력과 은혜를 주시고 우리를 성화시켜
나가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세상 사람들이야 어찌하든 우리 모두도 성삼위 하나님만 믿고
섬기며 예비하신 영원한 축복에 다 같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2008. 4. 20. 에돔 멸망
 
    
     제      목 : 에돔 멸망
     성경말씀 : 오바댜 1: 1~7


    에돔은  "에서" 족속이며
에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장손(長孫)으로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의 뒤를 이어 믿음의 족장이
되어 영, 육간에 신령한 축복을 누릴 존귀한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에서 자신은 물론이고
그 후 1,000년이 지난 오바댜 시대인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이 멸망당할 것을 말씀하셨으니
존귀한 축복을 받을 자리에 있던 에서와 그 후손들이
어찌하여 이런 비극의 주인공들이 되었는가?

첫째,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하고 무시했다. (창 25:29~34)
    장자는 족장시대에 왕의 버금가는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자기 족속을 지도하는 최고의 자리였고, 그 후손으로
메시야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탄생시키는
인간으로서는 너무도 영광스런 어마어마한 축복의 자리였다.
    이런 축복 받을 자리를, 에서는 사냥하고 돌아오다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동생 야곱에게 팔아버렸으니
이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소홀히 여긴 때문이며
눈앞에 있는 작은 물질 때문에 영원한 축복이 되는 장자와
족장의 지위를 버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과 지위가
있으며, 천국의 찬란한 복락이 보장 되어 있는 "성도(聖徒)"
들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서 얻은
이 축복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축복된 것이며 존귀한 것
이다. 그러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의 존귀함을 모르고
돈 몇 푼과 세상 출세와 권세와 명예를 얻는데 급급하여
"하나님의 자녀"와 "성도"라는 지위와 명분을 버리기도 하며
하찮게 여기고 있는데 이는 망령된 일이니 너희는 그러지 말라
하셨으니 (히12:16),  우리는 에서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와 성도라는 명분의 존귀함을 알고 이 명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전진해야 한다.

둘째, 영적 축복을 소홀히 하고 무시했다.
    장자의 명분에는 육신적인 축복과 더불어
    하늘에 신령한 영적 축복이 있다.
오늘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누리는 육신적 축복으로 말하면
세상 사람들 보다 못한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신령한 하늘에 축복이 있다. (엡 1:3)
이 축복은 세상 그 어떤 부귀영화나 보물이나 권세로도 얻을
수 없으며 또한 그런 것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고귀하고
거룩한 축복으로서 오직 성도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것들을 희생하여 이 영적 축복들을
가꾸어 나가야 하는데 에서는 오히려 영적 축복을 희생하여
잠간이면 없어질 육신적인 것에 집착하는 우를 범하였다.

셋째, 축복받을 기회를 잃어버렸다. (히 12:16)
    어떤 사람이든지 축복받을 기회가 있으면 그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붙든 사람은 축복을 받아 누리고
그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은 불행과 더불어 멸망이 있다.
    우리 현실에서도 기회가 주어져 있고
축복이냐 멸망이냐 선택할 기로에 설 때가 종종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느냐?
    세상 흐름을 따라 욕심으로 나가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될 때에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축복
받을 기회를 붙든 것이요. 세상 욕심으로 나가면 축복 받을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 된다.  기회란 한 번 잃어버리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다.

넷째, 교만 했다. (오 1:3~4)
    에서가 비록 장자의 명분이나 영적 축복을 소홀히 하고
축복받을 기회를 잃어버렸다 하여도 그래도 아브라함의 자손
인지라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족속들에게도 어느 정도 육신적인
복을 누리게도 하셨다.  그런데 이들은 육신적인 복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의 공로로 알고
감히 하나님을 반대하며 교만하게 생활하고 있다.
    지금 중동의 산유국 족속들이 이스마엘 족속을 비롯하여
에서 족속과 모압, 암몬 족속들이 대부분이다.  그들 모두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기에 하나님께서 산유국으로 육신적 풍요
를 누리게 하셨는데 이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감히
하나님을 배척하고 잡신들을 섬기며 교만하게 나가고 있다.
이의 결과는 영원한 멸망일 뿐이다.
    우리는 에서의 행위와 멸망을 교훈 삼아
그리스도인으로서 축복받을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2008. 4. 13. 네 하나님께 돌아오라
 
  ▒네 하나님께 돌아오라 (호세아 14:1~7) ▒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인생들의 조물주이시기 때문에
천하 모든 인생들의 하나님이시고 또한 아버지이시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그 누구든지 간에 모두 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을 떠났다고 할 때에
아예 하나님 존재하심 자체를 부정하며 외면하는 경우도 있고
하나님을 믿으며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불의를  행하고 말씀을 거역하며 세상 것을 더 사랑하면
이것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모든 인생들에게 "네 하나님께 돌아오라"하시며
하나님께로 돌아올 방법을 말씀하셨다.

첫째, 말씀(복음)을 가지고 돌아오라. (2절 상)
    말씀이라 할 때에 포괄적으로 66권 성경 말씀 전체를
뜻하며 말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요 복음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요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
 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요 1:14)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다" (요 5:39)
    이렇기에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는 뜻은 곧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믿음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즉 인간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죽었던 영혼이 거듭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 천국 복락을 누리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믿음만으로 완전하여서
그 무엇도 필요치 않다는 믿음이다.
    만약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다면, 예로 헌금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나 방언이나
성경에 비밀이나 비유의 말씀을 깨달아야 된다고 한다면 이는
이단이요 하나님께 바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둘째, 회개하며 돌아오라. (2절 중)
    "불의를 제하시고" 이 말씀은, 죄를 사하시는 권세 능력이
오직 성삼위 하나님께만 있는 줄 알고 모든 죄악을 회개하며
사죄의 은총을 구하며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셋째, 선한 바를 받으소서. (2절 중)
    선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데 "선한 바를 받으소서"
했으니, 이제 믿음과 말씀으로 바르게 살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오는데 이런 선한 언행의 자세로 돌아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 아니다.

넷째, 입술의 열매를 드리며 돌아오라. (2절 하)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드리나이다" 이는
수송아지로 제물을 드리는 것처럼, 입술의 열매 곧 입술로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다.
위 네 가지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생활이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며
곧 축복 받을 신앙생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결심한 것이 있으니,
1)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겠다. (3절 상)
   앗수르는 당시 중동지역을 주름잡는 강대국이었기에
약소국인 이스라엘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직 성삼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여 그 은혜로 살겠다는 것이다.
2) 말을 타지 않겠다. (3절 상)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소나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고
말은 전쟁을 뜻한다. 따라서 말을 타지 않겠다는 것은 크게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시기, 분쟁, 다툼,
비방, 술수, 미워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겠다는 것이다.
3) 오직 성삼위 하나님만 섬긴다. (3절 중)
   이 세상에 신이라고 하는 것들은 사람의 상상물이나 사람이
만들어낸 가공한 신이다. 이제 이런 것들은 인정하지 않고
오직 성삼위 하나님만 믿고 섬기겠다는 새로운 각오이다.
4) 주님의 긍휼 도우심을 구했다. (3절 하)
   천하 만물이 주님의 긍휼,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으로 산다.
따라서 주님의 긍휼하심, 도우심 받아 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돌아오면 (4~7절)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패역을 고쳐 바르게 하시며,
즐거이 사랑을 베풀어 주시며, 이슬이 내려 백합화를 꽃 피우고
백향목을 자라게 하는 것처럼 돌아온 자를 축복하여 주신다.


2008. 4. 6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
 
 
    * 제     목 :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
    * 성경말씀 : 요한일서 2 : 15 ~ 17 *

   본물 15절 말씀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하셨다.
아니 그렇다면 세상 것은 모두 무시하고 사람끼리도 사랑을
하지 말라, 는 뜻인가?  하고 자칫 오해할 수가 있다.
   그러나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듯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을 하되
"하나님 보다 세상 것을 더 사랑하지 말라" 뜻으로 곧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고, 세상 것은 그 다음이며 -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먼저 사랑하고, 세상 것은 그 다음이며 -
하나님 사랑하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세상 것은 그
어떤 일이든 낮은 가치에 두고 적게 사랑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들은 논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우리 자신들도, 때로는 하나님을 사랑
하는 것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하는데,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은?
첫째, 하나님을 배은망덕 하는 일이다. (15절 하)
   하나님의 폭포수 같은 사랑은 창세전부터 우리와 함께
하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완성하셔서 우리들에게
이미 머물러 계신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 받았고, 죄 값으로 죽었던 영혼이
거듭 낳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천국 복락을 누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리를 사랑하심이 얼마나 지극하시고 위대하시면, 외아들
예수님까지도 아낌없이 희생시키며 우리를 사랑하셨을까!!
   우리 인생들에게 이런 고귀하고 거룩한 사랑을 영원토록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어찌 세상 것을 더 사랑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 것을
더 사랑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배은망덕한 행위이다 .  따라서
성삼위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하나님을 사랑함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최대로 사랑하며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배은망덕하고 잘 되는 사람이 있는가?
얼마간은 잘 될지 몰라도 그 결과는 불행 그 자체일 뿐이다.

둘째, 육신의 부패한 속성을 따른 것이다. (16절 상)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른 것이다.
   각자의 형편이 다르지만 정작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이미 공급해 주고 계시며, 더 필요한
것도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여 섬겨 나가면 우리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역사하시고 축복하여 주신다.   이러함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나가니 이것은
분명히 인간의 부패한 욕심과 타락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요셉"이나 "다니엘"을 보라.  그들이 출세하기 위해서,
명예나 권세를 잡기 위해서, 부자 되기 위해서, 세상을 사랑
하고 살았든가?  아니다!!  그들은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나
하나님과 그 말씀만을 사랑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셔서
당대에 최고의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도록 하셨다.

셋째, 마귀를 따르는 것이다. (16절 하)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온 것이 아니고
그 출처가 세상이라 했다.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해 있고
악한 자는 곧 마귀이다. (요일 5:19,  살후 2:9)  따라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곧 마귀의 충동을 받아 마귀에게 놀아
나는 것이 되므로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넷째, 세상 것은 잠간이면 끝이 난다. (17절 상)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제 아무리 좋은 것 같아도
잠간 사이에 지나가고 육신의 삶과 함께 허무하게 끝이 난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하도다"
옛말에도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 31:30) 하셨다.
   잠간이면 없어질
세상 것을 사랑하느라고 배은망덕하기보다는,
육신의 부패한 욕심을 따라 세상 것을 더 사랑하며 마귀의 종이
되기보다는, 구원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그 말씀을 사랑하여 순종과 실천에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우리의 영원한 상급이요 축복이요 영광이기 때문이다.

 
 2008. 3. 30. 부활을 가불한 엘리야
 

   제     목 : 부활을 가불한 엘리야
성경말씀 : 열왕기하 2:7~11

    기독교는 일반적으로 보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12바구니 남았다느니,
예수님이 귀신들을 다 제압하고 바다 위를 걸었다느니,
죽어서 썩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다시 살렸다느니,
예수님 자신이 우리 죄 값을 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하고 천국으로 인도한다느니,  등  등.

    그러나 모든 것이 사실이고
오늘 말씀도  역사에 확실한 근거가 있는 진실 그 자체이다.
  "엘리야"는 지금부터 약 2,880 년 전
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에 능력 있게 쓰임 받던 선지자이다.
그도 나이가 들어 이 세상을 마감할 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너는 죽지 않고 승천할 것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후계자인 "엘리사"에게 자신이 죽지 않고 승천할 것을 전하고
선지자 후보생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후계자인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엘리야를 따랐으나, 수많은 선지생도들은 생각하기를
  "아니 엘리야 선지자가  아무리 능력 있고 귀하게 쓰임
   받았다 해도 그 역시 사람인데 어떻게 죽음을 당하지 않고
  승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도 설마 살아 있는
  사람을 그대로 승천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고 의심했다.
얼마 후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 길을 가는데
신비스럽게 하늘에서 불 수레와 불 말이 내려와 두 사람을
갈라놓더니 회오리바람 속에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다.
살아 있는 그대로 승천한 것이다.
    이런 신비롭고 황홀한 광경을 본 수많은 선지 생도들은
그래도 엘리야의 승천을 믿지 못하고 엘리야의 시체가 어디
엔가 널브러져 있는 줄 알고 50명이 사흘 밤낮을 찾았지만
승천한 엘리야를 이 땅 어디에서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신약 마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 기도하실 때에, 천국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내려와
예수님께서 그들과 담화를 하셨다.
이렇게 해서 엘리야의 승천은 더욱 확실하게 증명 된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예수님을 믿은 이는 모든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에 그 영혼이 즉시로 천국복락을 누리며,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죽은 즉시로 자기 죄 값을 지고
지옥 훨~  훨~  타오르는 불바다에 떨어져 형벌을 받는다.
    그래서 죽음 당하지 않고 직접 천국으로 승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나 창세기에 "에녹"이라는 사람이 또 있으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 때 살아있는 성도들이 죽음을 당하지
않고 천사들처럼 신령하게 변화되어 하늘에 올라 (살전 4:14~
17)  예수님과 천국에서 온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한다.

    그 어떤 인생이든지
새 생명을 얻고 죽음을 깨고 부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단 한 분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요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엘리야의 부활 역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서 됐는데
엘리야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880년 전 사람이다.
엘리야 때에 예수님은 아직 이 땅에 오시지 않고 하늘나라에
계셨지만, 그 천국에서 엘리야의 부활 승천을 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부활은?
첫째, 엘리야는 부활을 가불받았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이뤄질 부활을, 엘리야는
구약시대의 성도들을 대표해서 "가불"즉 먼저 받은 것이다.
기독교는 허황된 것을 믿는 것이 아니고 성삼위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으며, 믿고 따르는 그대로 이뤄지는 것을 엘리야의
가불 받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확증하신 것이다.

둘째, 엘리야의 부활은 우리의 표본이다.
    누구든지 성삼위 하나님 즉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육신의 몸이 죽는다 하여도 엘리야와 같이 부활하며 승천할
것을 우리와 똑 같은 인간성과 연약한 육신을 가진 엘리야를
통해서 표본 즉 모델로 보여 주신 것이다.

셋째, 엘리야의 부활은 우리의 소망이다.
    우리 현재의 삶은 연약한 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의 삶이 다하면 우리 영은 천국에
복락을 누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엘리야나 천사들처럼
신령한 부활을 한다.  이 소망을 갖고 믿음의 승리자가 되자.!


  2008. 3. 23. 하나님 외에는 구원의 주가 없다.
 
                   
제      목 : 하나님 외에는 구원의 주가 없다
성경말씀 : 호세아 13:1~8  
 
   지금부터 2,550년 전
호세아 선지자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바알이라는 우상을 신으로 섬겼고
또 은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서 그것을 신이라고 숭배했다.

   이런 망령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 온 인류를 구원할, 참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가르치시며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만 경배할 것을 촉구하셨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 자신들을 구원할 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여러 가지 헛된 것들을 신으로 숭배하여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망할 길을 걸어가고 있다.
    통계를 보면 심지어는 기독교인들까지도 30~40%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미신적인 풍속과 다른 것을 신으로 같이
섬긴다 하니 이는 너무도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을 구원할 참 신은 하나님뿐이시라 했는데
구원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1)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함 받는 것이다.
    인간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저지르는 억만 가지 죄악이 있는데
그 죄의 고통과 형벌에서 건짐 받고, 용서 받는 것이다.

2)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돼 있는데 원죄 값으로
모든 인생의 영혼이 다 이미 죽었고 죽은 상태로 태어난다.
이렇게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구원이고
이것을 "중생" 또는 "거듭 낳다"고 한다.

3)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원죄로 인하여 그 영혼이 마귀 사단의 종으로
악령의 영향력 아래 생활하며 멸망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죄를 용서 받고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 하고
칭호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됐다.

    이것은
사람이 어떤 행함이나 자격을 갖춰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겠다
선언하셨고 그 선언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요1:12)

4) 천국 복락을 누리는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이 말씀의 영생은 천국 복락의 영원한 생명을 뜻하며
위 네 가지가 합쳐서 "구원"이다.

    "구원"이 이런 것이기에 구원은
사람이 받는 축복 중에 제일 거대하고 존귀한 축복이다.
사람이 인간적으로 제 아무리 훌륭하고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여도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는
마귀의 종노릇이나 하고 죄를 짓다가 훨~ 훨~ 타오르는 지옥
불바다에서 영원토록 형벌을 당한다.
    이런 인간의 최대 최고의 축복인 "구원"은
세상 그 어떤 신(神)이라는 것들로부터도 전혀 얻을 수 없고
인간의 그 어떤 권능이나 기술로도 절대로 얻을 수 없으며
오직 성삼위 하나님께로 부터만 얻을 수 있다.

    그 확실한 증거는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만 죄를 추궁하실 수 있고
    하나님께서만 죄를 용서하실 권능과 자격이 있으시다.
둘째, 죄 값을 담당한 구속주이시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내놓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바로 우리 인생들의 죄 값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신 것이다.  이러므로 성삼위 하나님께서만 구원
    하실 권세와 능력과 자격이 있는 것이다.
셋째,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주이시다.
    천하 모든 인생이나 신(神)이라고 하는 것들 중에
    우리 죄 값을 위해 대신 희생하고 죽었다는 신도 없거니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서
    부활했다는 것이 없다.

오직 예수님께서만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하고 부활하신
것이며,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매년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들을 구원하실
참 신은 오직 성삼위 하나님뿐이시다 !!

 
 
 2008.3.16.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제 목 :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1 : 10 - 17

본문 말씀의 배경은
 세례 요한이 헤롯왕의 불륜, 곧 이복동생의 아내(제수)를 취하여 아내로 삼은 것을
 회개하고 바로 하라고 선포하다가 헤롯의 미움을 사서 감옥에 갇혀 있기에,
사람들이 요한을 좋지 않게 볼 때였다.

예수님께서는 이때에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가 광야에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말씀 하셨으니
 이 “광야” 는 신약시대를 시작하는 세례 요한을 통한 초대교회를 뜻한 것이니, (마3:1-5) 이 말씀은 곧
“너희가 교회에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는 말씀이며,
이어진 말씀에 물음이 세 가지었으니,

 << 첫째,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 >>
바람이란 그 시대의 세속적 흐름이나 문화와 유행,
권세나 명예, 재물, 출세, 또는 위기, 풍파, 시련, 질병, 실패와
 풍요로움이나 성공 등을 뜻하기도 한다.
즉 세례 요한이 이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사람인줄 아느냐 ?
아니다 !! 라는 말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명예나 권세나 돈 출세를 따라서 아부하며 믿음이 흔들리고 있고
 위기나 질병이나 실패를 당하면 또한 그 앞에 벌벌 떨면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어떤 이는 또 성공하여 잘 되고
 승진하고 높은 자리에 가면 믿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교회가
 그런 시대의 바람에 흔들려서도 안 되고,
또한 교회에다 그런 바람을 따르라고 요구해서도 아니 되며,
이미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바람에 흔들려서도
 안 된다는 말씀이다.
고난 주간이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고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찬란하고 영광스런 하늘 보좌를 내놓으셨고,
낮고 천한 인생이 되어 멸시, 천대, 모욕, 십자가 형벌,
죽음에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다 이루셨다.
그런데 우리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니
 우리가 이렇게 믿음의 줏대가 없이 흔들려서야 되겠는가 ?
이 고난 주간에 주님을 향한 우리 믿음을 점검해 보자 !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말고 천성을 향한 우리 믿음의 길을 가자 !


 << 둘째,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냐 ?>>
“부드러운 옷”은 사치 허영에 들떠
 사람의 외모에만 치중하며 명품을 걸치고 연회를 베풀며 육신의 감정을 충족시키며
 육신의 쾌락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한다.
세례 요한은 사치와 허영심을 멀리하고 약대 털옷에
 메뚜기와 들 꿀을 주 음식으로 경건하고 소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교회와 그 목사들이 너무나 호화판이다.
사치 허영심에 들떠 세상에 타락된 문화와 도구로 꾸미고 그것이 목회 성공이라며
 그것을 자랑으로 삼고 으스댄다.
성도들도 사치 허영심에 사로잡혀 교회나 자신을 최고와 명품으로 꾸미고 자랑하며
 명품으로 갖추지 못한 작은 교회나 성도들을 얕잡아 본다.
이런 현실을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 하실까 ?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하지 않은 사치와 호화판을 벌리면서
 그것을 감히 예수님의 축복이라고 자랑하는 무리들을 . . .
그들은 왕궁에 있다고 하셨으니,
이는 곧 교회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역설적인 말씀이다.

 << 셋째, 선지자를 보려더냐 ?>>
옳다 !!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하셨으니,
세례 요한이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이는 선지자 중에도 뛰어난 선지자요
 곧 교회가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선지자란 무엇인가 ?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선포하고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 그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역할이다.
오늘날
 문화의 발달로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인터넷이나 방송 언론 등과 각 교회에서도 말씀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단들도 맹렬한 성경공부를 한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변화된 참 신앙의 삶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왜냐 ?
성경에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말씀 그대로 선포하지 않고
 거의가 <양적 부흥과> <세속적 성공과> <육신의 축복에> 초점을 두고
 말씀을 오용하고 변질시켜 전하고 있으며,
성도들도 그런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며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처럼 생각한다.
세례 요한이
 양적 부흥에 말씀을 맞추고 세속적 성공과 축복에 몰두했던가 ? 아니다.
의를 세우고 백성들을 바로 인도하기 위해
 헤롯의 왕권에도 아랑곳없이 헤롯을 책망하고 고난을 감수하며
 선지자의 사명을 다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가
 이시대의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양적 부흥이나
 세속적 성공이나
 육신의 축복에 이용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를 전하고 받으며 이루어 가야 한다.

나는 어떠한가 ?
하나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 양심에 찔림도 받고 회개하며
 잘한 것은 주님의 상급을 바라보고 더 잘하며
 내 삶에 적용시키고 삶을 그대로 이루어 가야 한다 !!
이것이 오늘날 예수님의 앞 길을 예비하는 것이고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2008.3.9.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복
 

 제 목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복
 성경말씀 : 말라기 4 : 1 ~ 3

 1절 말씀에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이 날은 세상 끝에 예수님이 재림하여 심판하실 날이며,
개인적으로 사람이 숨을 거두고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다.

그날이 오면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이미 죽었다 할지라도 맹렬히 타오르는 지옥 불바다의 심판을 다시 또 받고,
살아 있는 교만하여 악을 행하는 자들도 훨~ 훨 ~ 타오르는 불 심판을 받는다.
“교만한 자”는 성품 도덕적으로 교만한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부인하고 배척하며 자기들 생각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더 우월하다고 여기며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평소에는 제법 큰 소리를 치며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온갖 죄를 짓고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지만, 그날이 오면
 마른 풀이나 지푸라기처럼 여지없이 불사름을 당한다.
차라리 한 순간에 불사름을 당하고 끝이 나면 좋으련만
 영혼이기 때문에 불사름을 당하면서도 완전히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천 년 만 년 영원토록 지옥 유황불에 형벌을 당한다.

그날에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성도들은 ?
 << 첫째, 의로운 해가 떠오른다. >> (2절)
해가 떠오른다는 것은
 어두운 밤이 지나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는 것이니, 의로운 해가 떠오르니까 이것은 곧, 의롭고 좋은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고 펼쳐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나 우리가 개인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면,
우리에게는 그때 오히려 바르고 좋은 새로운 세계 천국복락이 시작 되는 것이다.
그 나라는 더럽고 추한 것이 전혀 없으며 부정하거나 굽은 것이 없고
 오직 바르고 정하며 좋은 것만이 가득한 복락의 세계다.

 << 둘째, 치료하는 광선으로 온전하게 회복 된다. >> (2절)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현실의 삶에서는 여전히 연약한 육신을 가진 안타까운 존재들이다.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기온이 떨어지면 추어서 벌벌 떨고,
독감이 유행하면 독감에 걸려 고통을 당하고 암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환란 풍파 시련과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지치기도 한다.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려다가 불신앙의 악한 세력으로 인하여
 멸시 천대 모독 조롱을 당하여 마음과 몸이 상처를 받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고 관절이 아파 걸음도 잘 못 걷기도 하며
 눈도 잘 안 보이고 이도 빠지고 귀도 잘 안 들려 성도로서 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구실도 제대로 못한다.
그러나 그 날이 오면 우리에게는
 주님께로서 치료하는 광선이 임하여 연약하고 불완전한 모든 것이 치료되고 온전하게 회복 된다.
그 누구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각각 자기의 제일 아름답고 좋은 모습으로, 개개인의 장점만을 살린 완전함으로
 치료되고 회복 된다.

 << 셋째,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기뻐 뛴다. >> (2절)
송아지가 외양간에 갇혀 있을 때는 제약을 받아 활동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외양간에서 나오면 넓고 넓은 광명 천지에 자유를 누리며 기쁜 마음으로
 활동할 수가 있다.
즉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는
 육신의 연약함에 제약을 받아 마음은 있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지만,
그날이 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천사들처럼 신령한 존재가 되어 시공을 초월하여 그 무엇이든지
 제약을 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가 있으며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넘쳐서 즐겁게 뛰는 것이다.

 << 넷째, 악인을 밟고 심판한다. >> (3절)
지금은 하나님을 불신앙하는 교만한 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을 핍박하며 악을 행하고 조롱하며 멸시 천대를 한다.
그러나
 그날에는 그들은 예수님의 심판을 받아 훨 ~ 훨 ~ 타오르는 유황불 형벌을 당하며,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 옆에 서서, 예수님과 더불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불신앙의 모든 악인들과 마귀의 세력들과 천하에 모든 것을 심판하는 것이다.
 (계시록 2:26-27, 고린도전서 6:2-3)

이러한 축복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예비 되어 있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도들끼리 만나면 주고받는 인사가 오직
“ 주 예수여 !! 어서 오시옵소서 !! ” 라고 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현실에서 당하는 모든 일들을
 말씀과 기도로 감당하여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면
 예수님의 재림이 비록 우리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하여도
 우리가 먼저 천국에 들어가서 성삼위 하나님을 뵙게 되고 천국 복락의 영광과 상급이 있으니
 오직 주 예수님께 감사 드리며
 이 믿음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자 !!

  2008.2.24. 없는 죄와 있는 죄
 
 제 목 : 없는 죄와 있는 죄
 성경말씀 : 호세아 4 : 1 - 7

지금부터 2,550 년 전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야할 것이 없음으로 없는 그것을 죄로 책망하셨고
 또한 없어야할 것이 있으므로 있는 그것을 죄로 책망하셨다.

1절 말씀에
 있어야할 것이 없는 것을 죄로 책망하셨으니
<< 첫째, 진실이 없음을 책망하셨다. >>
여기서 진실이라 함은 단순히 도덕적인 진실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진실함, 즉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신 것이다.
예를 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존재하시며
 천상천하에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는데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거나 불신하면 이것이 진실하지 못한 것이며 곧 진실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결합되어 있고,
죽음이란 결합되었던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것이며, 죽음과 더불어
 예수님을 믿은 영은 천국복락이요, 믿지 않는 불신자는 지옥멸망인데, 이 사실을
 부인하거나 불신한다면 이것이 진실하지 못한 것이며 거짓된 것으로
 이런 영적 진실함이 없는 것을 죄로 책망하신 것이다.

 << 둘째, 인애(仁愛)가 없음을 책망하셨다.>>
인애란 어질고 착한 사랑을 말하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육신적인 외모와 조건에 따른 사랑은 많지만
 진정, 어질고 착한 사랑은 없다는 것이다.
얼굴이 예쁘니까 사랑하고, 돈이 많으니까 사랑하고
 학벌이 좋고 직장이 좋으니까 사랑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사랑하던 사람도 버리고 달아난다.
부모님을 사랑함에도
 부모가 유산을 많이 물려줄 것 같으니까 사랑하고 물려줄 유산이 없으면 무시하고 외면을 한다.
인애란, 상대가 어렵고 힘들면 외면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상대가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착한 마음으로 베풀어 주고 희생하여 상대를
 위하고 감싸주는 사랑을 뜻한다.
오늘날도 이 사회를 보면 육신적인 사랑은 도를 넘어서서 부정에 부정을 더하는가 하면,
정작 필요한, 어질고 착한 사랑이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을 사랑함에도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구원의 주 하나님이시라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 왠 요구 조건을 그렇게도 많이 걸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어주시면 사랑할
 것처럼 하고, 하나님께서 안들어 주시면 믿음을 포기하고 게을리하니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도 어질고 착한 사랑으로 가꾸어야 한다.

 << 셋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을 책망하셨다.>>
6 절 말씀에도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한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왜곡하여 미혹하고 있으니, 특별히 이단들과 사이비한 자들이 이 말씀을 도용하여 미혹하고 있다.
이단들은 "지식"을 성경 말씀의 지식이나 어떤 비밀스러운 숨은 뜻이나 자기들만이 알고 있는 "비유"의 말씀이라 하여
 그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하며 자기들을 떠나면 구원을 못 받을 것처럼 미혹을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의 참 뜻은
 성경 말씀의 지식도 아니고, 비유나 숨어 있는 비밀스런 뜻도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근본 지식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천상천하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계명을 주어 사람의 살 길을 가르쳐 주시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셔서
 범죄 하고 거역하면 낱낱이 징벌하시고,
그 어떠한 죄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회개하면 깨끗이 용서하고 받아주시는,
사랑이 무한 충만하시며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이신 것 등,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원무궁한 천국복락이며,
성삼위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들은 영원한 지옥 불바다 형벌 등,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존재에 대한 근본 지식을 뜻한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 말씀을 주신 때는
 신약 성경 복음서에 비유의 말씀은 전혀 기록도 안 된 때였으며
 요한 계시록 역시 기록이 안 되었었고 구약의 성경 말씀도
 지금처럼 39권이 종합 편집된 책이 아니었고 예레미야서나 이사야서나 시편 잠언 등 부분적으로만 조금씩 통용될 때였다.
지금처럼 종이나 인쇄술이 거의 없던 때였고
 다만 서기관들이 조금씩 기록한 말씀들이 단편적으로 통용 되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신천지나 기타 이단 등이 말하는 "지식"이
 비유의 말씀이나 계시록 말씀이나 다니엘서 말씀한 2,300 주야나 70 이레나 예루살렘의 중건 등의 성경 지식을 뜻함이 전혀 아닌,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근본 지식을 뜻함이 확실한 것이다.

있어야할 것이 없음을 책망하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없어야할 것이 있는 것을 죄로 책망하셨으니, 곧
1) 저주 : 다른 사람이 못되기를 염원하고 욕하는 것이다.
2) 사기 : 온갖 거짓된 마음과 행동과 위조와 거짓말이다.
3) 살인 : 탐심과 원한을 가지고 미워하고 살인하다.
4) 도둑 : 물질이나 학문이나 명예 등 온갖 것을 도둑질한다.
5) 간음 : 이성이나 동성 간에 온갖 부정한 일을 행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 마음과 생활에서 전혀 없어야할 것들이다.
없어야할 것은 없애고,
있어야할 것은 잘 가꾸어 가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고
 우리가 축복받는 비결이다.
 
 2008.2.17.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라
 
 제 목 :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라
 성경말씀 : 다니엘 12 : 1 -4

 1절 첫 말씀에 "그 때에" 라는 단어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세 가지 뜻이 있으니
1) 이 세상 종말 말세 때,
2)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3) 재림하신 예수님이 심판하실 때를 뜻한다.

세상 종말이 오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며, 심판하실
 그 때에 일어날 일을 본문에서는 네 가지로 말씀하셨으니
<1, 성도들을 호위할 미가엘 천사들이 일어난다. > (1절)
천사들의 무리가 넷이니 "그릅" "스랍" 은
 하나님 보좌를 호위하며 제일 가까이서 수종드는 천사들이고
"가브리엘"은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들이고
"미가엘"은 군대 천사로 마귀 사단 귀신들을 물리치며 죄악의 세력들과 싸워서 성도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세상 종말이 오면 성도들을 사단과 악의 세력에서 호위하고 보호할
 미가엘 천사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말씀이다.

 <2, 전무후무한 큰 환란이 일어난다.> (1절)
창세 이래로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큰 환난이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신 일로,
천재지변 지진 홍수 해일 태풍 폭설 가뭄 기근을 비롯하여 전쟁과 살상 여러가지 전염병 등 화재나 테러와 흉악한 사건사고 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모든 인간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비참하게 하는 것이다.

 <3,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 구원 받는다.> (1절)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등 각종 사건사고와
 악의 세력들로 인하여 흉악한 일들이 일어난다 하여도
 성도들을 호위하는 미가엘 천사들이 먼저 일어나서 성도들을 보호하며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때문에
 창세전에 택함 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어디서든지 모두 다 구원을 받는다.
구원이란,
모든 죄를 용서 받는 것이며,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천국복락을 누리는 것인데,
생명책에 기록 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 어떠한 처지와 환경에 있든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다
 이 구원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된다.

 <4, 모든 사람이 다 부활하여 상, 벌을 받는다.> (2절)
사람이 죽으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몸은 흙에서 취했으니 흙으로 돌아가고
 성도의 영혼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즉시로 천국복락을 누리며
 불신자의 영혼은 즉시로 지옥 불바다의 형벌을 당한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천국에 있던 성도의 영혼이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으로 내려와
 천사들처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무궁한 천국복락을 누리며
 지옥 형벌을 당하던 불신자 영혼도 그 때 잠간 부활하여
 최후의 심판을 받아서 둘째 사망 영원히 훨훨 타오르는 유황 불 바다에 형벌과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 때에 다 예정하신 일들로
 변하거나 소멸 되지 않고 말씀하신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이제 성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 (3절)
영적 지혜를 얻어서 많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한다.
옳은 길이란 ?
 << 첫째, 믿음이 옳은 길이다. >>
성삼위 하나님께 대한 믿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바로 내 죄 값을 갚으신 것이요,
삼 일 만에 부활하심이
 진정 나에게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을 주셨음을 믿는,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천국과 지옥이 있으며
 예수님의 재림으로 최후의 심판이 있고 영생복락과 영원형벌이 있음을 믿는 진실한 믿음,
이미 이런 믿음이 있다면
 믿음에 믿음을 더하는 것이 옳은 길이요,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을 가지는 것이 옳은 길이다.

 << 둘째, 말씀 순종이 옳은 길이다. >>
학생이 교칙을 지키고,
국민이 나라의 헌법을 지키면 옳은 일이듯,
천상천하의 주인이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순종하고 지키는 것은 옳은 일 중에 옳은 길이다. 또한 말씀을 순종을 했어도
 순종에 순종을 더하여 온전히 행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 셋째, 회개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
사람이 잘못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잘못을 깨닫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하는 것은 사죄 받는 길이요 옳은 길이다.
잘못을 하고도 으스대며 뻔뻔하게 나가는 것은 나쁜 일 중에 나쁜 일이요
 망할 길 중에 망할 길이다.

이제
 나 자신부터 쉬임없이 옳은 길로 인도하고,
주위 가까운 사람부터 먼 곳 사람까지 하나 둘씩 옳은 길로 인도하자 !!
하늘의 별과 같이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과 상급이 있다.

 
 
 08.2.10. 사유하기를 즐거워하시는 하나님
 

 제 목 : 사유하기를 즐거워하시는 하나님
 성경말씀 : 시 편 86 : 1 - 5

본문 말씀은 다윗 왕의 기도이다.
다윗의 개인적인 형편과 처지에서 드린 기도이지만
 단순히 다윗 개인의 산물이 아니고 기도의 문구 하나하나가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시킨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말씀들이다.

 <<1절,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오늘날 우리도 영적으로나
 육신적인 환경으로나 가난하고 궁핍할 때 근심 걱정할 것이 아니고
 사랑이 많으신 우리의 하나님께 이렇게 믿고 의지하며 도움을 청해야 한다.

 <<2절,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지켜주소서>>
말씀을 순종하며 경건하게 산 것에 대하여 알아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라는 내용이니, 우리도 경건하게 살려고 힘쓰고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기를 바라며 또한 험악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주시기를 간절함으로 소망해야 한다.

 <<3절, 온 종일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쌍히 여기소서>>
교회나 기도원에 틀어박혀서 부르짖기만 한다는 뜻이 아니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혹은 잠자면서 까지도 애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바라는 것이다.

 <<4절, 주님을 우러러 보오니 종의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주님을 우러러 본 다는 것은
 주님을 높이며 주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겠사오니
 주님께서도 기뻐하시고 또한 기쁨을 주시라는 뜻이다.
사람들끼리도 자녀가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면 그 기쁨이 다시 자녀에게 돌아오는 것처럼.

 <<5절, 주님은 사유하기를 즐거워하시니 용서하여 주소서>>
그러하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죄악에 분노하시며 징벌을 하시기도 하지만,
인생이 죄악을 깨닫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죄의 용서를 구하면,
언제든지 그 어떤 흉악한 죄든지
 깨끗하게 용서하여 주기를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죄악을 회개할까 ?
 <<첫째, 마음의 죄악을 회개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겉모양은 멀쩡하고 정상적이다.
오히려 아름답고 고상하고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죄 된 생각을 다 품고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에 때문에
 겉은 그럴듯해 보여도
 마음에 숨은 죄악과 비밀까지도 다 아시며
 예수님께서도 겉모양은 지극히 정상적이라도 마음에 음욕을 품은 것은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정죄하셨다.
명절이라 가족 친지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겉으로는
 친절한 인사를 나누었어도 그 누군가를 마음으로 미워하고 싫어했다면
 이것이 마음으로 지은 죄이다.
한 예로, 부모님께 선물을 드리면서도 효도하는 진실함이 없이
 유산을 많이 차지할 욕심으로 했다면 겉은 효자로 나타났지만
 속은 탐욕이 가득한 마음의 죄를 지은 것이다.
우리 생활에서 이렇게 마음으로 지은 죄를 찾아 회개해야 한다.

 <<둘째, 행동으로 지은 죄악을 회개한다>>
마음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행동이 본의 아니게 잘못되는 일이 많이 있다.
마음은 술 담배를 끊고자 하는데 몸의 행동은 따르지 않는다.
마음은 성삼위 하나님만이 전지전능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다른 것들은 다 사단 마귀 악령의 졸개들이요 조상신도 없고 허탄하고 거짓된 신이라는 것을 바로 생각하고 있는데
 불신앙의 가족들이나 미신과 우상을 숭배하는 친척들이나 직장 상급자에게 휩싸여 그들의 우상숭배에 참여하게 된다.
천지만물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만물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로서 내려오는 줄 믿고 있는데
 잘못된 풍습에 젖어 조상신이 있는 줄 알고 제사를 지내는 불신앙의 사람들 틈에 끼어 우상을 섬기는데 참여한 것이다.
마음으로는 이제 바로해야지 바로해야지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어긋나게 나가는
 이런 행동의 죄악을 찾아 회개해야 한다.

 <<셋째, 마음과 행동의 죄악을 회개한다>>
성삼위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조상신이나 다른 종교의 신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행동으로도 숭배한 것이다.
하나님도 신이지만 다른 것들도 비슷한 신이라고 마음에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숭배 행동을 한 것이다. 이것이 마음과 행동의 죄악이다.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마음으로도 싫어하고 행동으로도 미워한다면 이런 죄들을 찾아 회개하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탐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그 물건을 도둑질을 했다.
이는 마음으로 죄를 짓고 행동으로도 죄를 지은 악독한 것이다.
마음에 악함이 있을 때 그것을 행동으로 옴기면 안된다.
행동하기 전에
 먼저 마음에 악함을 회개하고 정리해서 행동으로까지는 하지 말아야 한다.
행동이 악할 때
 마음까지도 악하게 가지면 안된다.
행동이 악하면 마음이라도 착하게 가지고 그 착한 마음으로
 행동의 악함을 회개하고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행동으로나 마음으로 죄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유하기를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어떤 죄를 어떻게 지었든지 불문하고
 언제 어디에서든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깨끗이 용서하여 주신다.
자 이제 모든 죄를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을 하자 !!
축복이 임할 것이다.

 
 2008.2.3.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제 목 :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 하소서
 성경말씀 : 시 편 119 : 49 -56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 하소서" 이 말씀은
 행여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신 말씀을 잊었거나 기억하지 못해서가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믿고 순종한 성도가
 상 받을 확신을 가지고 강력히 청원하는 말씀이다.

주의 종이란, 기름부음을 받은 선지자 등을 뜻하지만
 오늘날은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가 다 주의 종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라고
 칭호(稱號)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께서 종들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인가 ?
신, 구약 성경 66권 말씀이다.
성경 66권 말씀이 모두 다 종이자 백성인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기에
 우리도 이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붙들고 순종하여 상 받을 확신을 가지고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 하소서" 하고 청원을 하는
 영광스러운 신앙으로까지 자라나야 한다.

앞서간 믿음의 선배가 말씀을 지킨 내용을 보면 ?
-(첫째, 곤란한 중에도 말씀을 순종했다.)- (50절)
사람이 뭔가 순조롭고 일이 잘 될 때는 믿음과 말씀을
 제법 지키려 하지만, 곤란한 지경에 빠지면 힘들어 하고 말씀 순종하는 것을 등한이 한다. 그러나 참 성도는
 순조로운 때뿐 아니라 난관을 만나고 어려운 때에도 말씀을
 잘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 나간다.

-(둘째, 조롱을 당하여도 말씀을 지켰다.)- (51절)
무신론자들이나 미신 우상을 섬기는 잡종교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을 조롱하고 비방한다.
그들의 영은 사단 마귀의 인도를 받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서 당연히 그리스도인들을 싫어하고 조롱한다.
또 우리가 생활하는 활동 무대에 그리스도인들 보다는 우상이나 미신적 풍속을 따르는 사람들 혹은 무신론자들이 더 많이 있기에
 그들은 그들의 큰 세력을 의지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것이다. 그렇다할지라도
 믿음의 사람은 그에 아랑곳없이 말씀을 지켜 나간다.


-(셋째, 밤에도 말씀을 순종했다.)- (55절)
밤이란, 낮과 밤의 캄캄하고 어두운 밤을
 뜻하기도 하지만 밤이 아니라도 자신의 앞길이 캄캄하고 답답하게 꽉 막혀 있는
 진퇴양난의 상태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캄캄한 밤에는
 자기의 활동을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고 자기 가족들도 잘 모르는 것처럼
 자신의 활동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그런 환경을 말한다.
사람이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데서는 체면을 차리고 언행을 조심한다.
그러나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자기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행동한다.
그래도 믿음의 사람은 앞길이 꽉 막힌 답답한 때에나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그런 곳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신다는 믿음과 지혜로
 말씀을 잘 지키고 순종한다.

-(넷째, 소망을 가지고 말씀을 지켰다.)- (49,56절)
사실 타락되어 가는 현실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곤란한 때나 조롱을 당할 때나 밤에라도, 주님을 기억하고 말씀을 순종해 나가면
 하늘과 땅에 축복이 있고 금생과 내생에 상급과 찬란한 영광이 있다.
믿음의 사람은 이 소망을 가지고
 언제 어디에서든지 말씀을 순종하고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서
 하나님께 내어 놓을 것이 무엇인가 ?
벼슬이나 학문이나 재물은 이 세상 살 때에 필요한 것일 뿐,
세상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천국의 아름답고 영원한 축복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 말씀을 이루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다섯째, 즐거움으로 말씀을 순종했다.)- (54절)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말씀이 내 노래가 되었나이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 66권 말씀을 순종하고 이루는데 있어서 마치 흥에 겨워서
 노래하듯 즐거움과 기쁨으로 순종하고 이루어 드렸다는 뜻이다.
여느 일도 그렇지만
 특별히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함에는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이러할 때 "주여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고 축복하소서" 하는 간구를
 우리도 드릴 수가 있고 또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설 명절이다.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든지
 믿음을 지키고 말씀을 순종한 것만이
 우리의 상급이요 축복이 된다.

 
 2008.1.27. 기도를 시작할 때 벌써 응답하신다
 

 제 목 : 기도를 시작할 때 벌써 응답하신다.
성경말씀 : 다니엘 9 : 20 - 23

믿음의 사람 다니엘이지만 마음이 답답했다.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 생활한지가 수 십 년,
나라와 민족이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앞이 캄캄한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 범죄 한 것으로 인한 징벌임을 깨닫게 되었고
 이에 자신이 책임을 지고 조상들의 죄와 백성들의 죄를 고백
 하며 하나님 앞에 처절한 회개기도를 드렸다. (1-19절)

기도를 다 마치매
 하나님께서 보내신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22-23)
“ 다니엘아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말하러 왔노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 하며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줬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할 때에 큰 소리로 기도를 다 마쳐야
 그때서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 내용을 아시고
 그때서부터야
 기도에 응답하거나 역사하시는 줄로 아는데,
사실은
 우리가 기도를 드리기 전에 벌써 우리의 필요한 것을 아시고
 기도를 시작할 때 벌써 우리의 기도 내용을 아시고 (마 6:7-8)
우리 기도에 응답할 준비와 역사를 하신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 마음에 비밀과
 미래의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
그 누구나 절대적으로 기도를 드려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기도란 ?
1, 하나님을 신임(信任)하는 신앙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신임이란 믿고 맡기고 따른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셔서 우리 필요를 다 아신다 하여도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불신 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신임하는 사람에게는
 내 사정과 형편을 의논하며 그의 도움과 가르침을 받고자 하지만,
내가 신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바라보기도 싫고 말 한마디 하기도 싫어하지 않는가 ? !
따라서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에 그 누구든지
 예수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한다.

2,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부부가 대화를 하고 부모자녀 사이에 대화를 하듯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대화가 있는데 그것이 곧 기도이다.
부부나 부모자녀가 같이 살면서도 대화가 없다면 그 얼마나
 삭막하고 불행한 일이가 ? !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기도가 없다면 불행한 신앙생활이 된다.

3, 모든 은혜를 받는 통로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거저 받아 누리는 좋은 것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좋은 것들을
 하나님을 신임하며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는 자에게 주신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로,
실망한 자가 힘을 얻고, 무능한 자가 능력을 얻으며,
병든 자가 강건해 지며, 슬픈 자가 위로 받고,
불안하고 초조하던 자가 평안을 얻으며, 무지한 자가 지혜를 얻는 등 등 ...
이렇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나 기도를 해야 하는데
 막상 우리 현실에서 이뤄지는 기도의 응답은 더딜 때가 많이 있고
 혹은 1년 혹은 20년이 걸릴 때도 있으니,
그것은 어떤 연유에서인가 ?
1) 우리의 정성이 부족한 때문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2) 간구함이 부족한 때문이다.(기도의 흉내만 내지 말고 간절하고 애절하게 구하라)
3) 진실함이 부족하여서다. (위선적이 아닌 사실 그대로)
4) 하나님 뜻에 부응(副應)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대화라 했다.
따라서 우리 소원만 말할 것이 아니고
 과연 우리 생활의 처지와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깨달아
 하나님의 그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5)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주려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아들이 더러운 손에 더러운 그릇을 가지고 와서 음식을 달라고 조른다.
그 더러운 그릇에 음식을 담아 주겠는가 ?
6) 인내하며 자격을 만들라 하신다.
참음이 부족하고 자격이 미달이다.
때로는 오랜 세월 기도 생활을 했는데도 응답이 없을 때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모르시거나 응답하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우리가 당한 현실을 잘 참아내면서 자격을 만들 시간을 주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낙심하지 말고 기도를 중단하지 말고 끈기를 가지고 기도를 드려야 한다.
혹시 기도의 응답이 더딜지라도
 확실한 것은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 벌써 응답하실 역사를 하신다는 사실이다.
이래도 기도를 안 할 것인가 ?

  2008.1.20. 만물보다 부패한 것은 마음이다.
 

제 목 :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다.
성경말씀 : 예레미야 17 : 9 - 11

사람의 말과 행동은 마음에서 나온다.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말과 행동이 좌우되고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새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이 좌우된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사람이 지혜 지식이 있고
 겉모양을 아름답고 그럴듯하게 꾸미고 문화생활을 하니까
 사람의 속마음까지도 다 아름다운 줄로 여기는데
 오늘 본문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 마음이라” 하며
 야수나 들짐승 미물들보다도 사람 마음이 더 추하고 더러운
 것으로 말씀하셨다.

무엇이 그렇게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가 ?
 { 첫째, 욕심의 악함이다. }
모든 생명체에게는 다 욕심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징그럽게 여기고 싫어하는 뱀이나 쥐나
 야수라고 하는 호랑이나 사자 하이에나 같은 짐승들의 욕심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본능적인 것들이다.
사납고
 포학한 짐승들, 약육강식의 동물들이라 해도
 자기들 생존을 위한 본능적 욕심으로 굶주려 배가 고플 때만 다른 것을 해하고 삼키며, 자기들 먹을 것이
 며칠분만 있어도
 절대로 약한 것을 해하지 않고 공존공생을 한다.
그러나
 사람은 어떠한가 ?
며칠이 아니라 5년 먹을 것, 20년 먹을 것이 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욕심을 부리며 이웃을 해하려 하고
 수천억을 가진 부자인데도 어려운 사람 것을 도산시켜서라도 자기 배를 부르게 하고 자기가 더 많이 차지하려 한다.
뉴스를 보면
 어떤 여자가
 남편에 대한 보험을 많이 들어놓고 내연남과 짜고서 남편을 죽이고
 사고사로 위장하여 보험금을 타먹으려다 들통나서 감옥에 갔고,
서울에서 부자 집 부부가 불에 타 죽었는데
 조사하여 보니 그 집 둘째 아들이 부모에게 한을 품고 저지른 짓이었다.
우리가 징그럽게 여기는 뱀이나 쥐들도 이런 짓을 하지 않고
 하이에나 같은 잔인하고 야비한 맹수들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 마음의 욕심과 악함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고 야비한 것이다.

 { 둘째, 배반 배은망덕하는 것이다. }
개나 고양이 소나 말을 키워보면 그것들은 주인을 배반하지 않으며,
호랑이 사자 곰 같은 맹수들도 어려서부터 자기를 키워준 사육사를 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의 이기심을 따라서 부모를 배은망덕 하고 스승을 배반하며
 그 외에도 자기를 음으로 양으로 돌봐준 사람들에게 배반하기를 잘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아낌없이 희생시키시며 사랑을 주셨는데
 우리 인생은 쥐꼬리만한 이익에 눈이 멀어 믿음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배은망덕 하는 일이 허다하니,
오호라 슬프도다 !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내 백성을 나를 멀리하고 물러갔다” 고 이사야 1 : 3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과연 우리는 배은망덕한 일이 없는가 ?

 { 셋째, 변하기를 잘한다. }
인심은 조석변이라,
사람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것을 나타냈으며 사람 마음이 하루에 열 두 번도
 더 변한다 하니,
이런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은
 미물들이나 짐승들보다도 더럽고 추한 것이다.

우리 속에도 이런 거짓과 부패한 것이 숨어 있는데
 이것을 잘 다스리고 제압해야만 금년 한해가 축복 될 수 있다.
이제
 마음을 다스리고 제압하려면

1) 하나님 말씀으로 다스리고 가다듬는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
 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을 행하기에 온전케 함이라”

2) 회개한다.
마음을 말씀으로 가다듬고 다스리다가도 자칫 죄악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때 얼버무리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함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따라서 금년을 복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가 중요한데
 사람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거짓되고 부패한 것을 찾아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압하고 깨끗하게 정리하며 잘못된 것은 회개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말과 행위를 바르게 하자 !!
분명코
 보람있고 좋은 한 해, 축복된 한 해가 될 것이다 !!
 
 2008, 1, 13.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제 목 :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성경말씀 : 디모데전서 4 : 6 - 8

새 해 벽두,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소원을 가져 본다.
믿음으로는 어떤 계획을 세워 볼까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말씀 하신다.

경건이란 무엇인가 ?
 ( 첫째,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神話)를 버리는 것이다. ) 7절)
신화란 신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리스 신화나 로마 신화의
 제우스(하늘의신) 포세이돈(바다의신) 비너스(미의여신) 등 각 나라들마다 족속들마다의 신에 대한 이야기들이며
 우리나라에도 단군 신화 등 여러 가지 미신적인 설화와
 각 지방마다 전설이 있고 풍수지리 사주팔자 작명 택일 궁합 등 길흉화복(吉凶禍福) 등에 신(神)적 의미를 두고
 믿고 의지하거나 인정하고 따르는 이야기들을 뜻한다.
그러나 이런 신화나 설화나 풍문 등은
 다 거짓된 것으로, 망령되고 허탄한 것이며, 사람을 망할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이기에
 이런 것들을 버리고,
오직 살아 계셔서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만물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만 믿고 섬기는 것이 인간의 참된 생활이며
 경건한 생활의 첫 번째이다.

 ( 둘째, 말을 조심하는 것이다. ) 야고보1:26)
경건하다하면서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였으니,
원망 불평 비방 시기 질투하는 말이나 심술의 말을 버리고
 남을 해 하거나 분쟁을 일으키는 말, 악한 말, 더럽고 추한 말을 하지말고
 좋은 말, 선한 말, 이해하고 위로하며 힘이 되어주는 말,
이웃에 유익을, 주고 평안을 주고, 사랑을 주는 말을 하는 것이 경건한 생활이며 경건한 사람의 자세이다.
사람이 제일 쉽게 저지르는 죄가 입으로 하는 악한 말이며
 그러면서도 죄 의식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역시 입과 말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도
 자기 입에 파숫군을 세워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했으니
 우리도 말을 조심하고 잘 가다듬어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잘 해야 할 것이다.

 ( 셋째,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고 도우는 것이다. ) 야고보1:27)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보아 주는 것이라 했으니 이 말씀은 곧 나보다 어렵고 연약하고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돌보아 주는 것을 뜻한다.
경제적이나 지식적으로나 지위나 계급 또는 연령이나 건강 면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거나 멀리하지를 말고 친근히 여겨 배려해 주는 것이
 깨끗한 마음이며 경건한 삶이 되는 것이다.

 ( 넷째,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 야고보1:27)
세상의 타락된 문화와 습관과 유행 등에서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고 가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술, 담배, 마약, 도박, 컴퓨터 게임 등 희한한 옷차림이나
 몸단장과 머리 모양 등, 세상에 유행하는 여러 가지 타락된 풍습과 흐름, 노래와 춤 등에서 자신을 고상하고 정결하게 지켜 나가는 것이 경건한 성도의 삶인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세상의 타락된 문화나 유행의 흐름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 나가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소외되고 뒤쳐진 것으로 여겨
 부끄럽고 불행하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세상에서 모범이 되고
 건전하고 좋은 문화를 선도하는 위치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의 감정을 충동하고 흥분시키는 노래 가락을 복음송이다, CCM 이다,
워쉽 댄스다, 열린 예배다 하여
 교회에 들여와 행하고 있으며
 이런 것이 무슨 앞서 나가는 선구적 교회나 기독교 문화의 본질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이 역시도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우리는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지켜 나가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생활이요
 성도의 본분임을 알고
 우리 자신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잘 가다듬어 나가야 한다.

이렇게 경건한 생활을 하는 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하셨다.
한 두 번에 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잘 익숙해지도록 자꾸 연습하고 반복하라는 말씀이다.

경건에 이르도록 연습하고 이에 익숙해지면
 우리 삶에 있어서 범사에 유익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또한
 금생과 내생에 축복과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다.
자 !
이제 다시 시작해보고 다시 연습해 보자 !!
경건한 생활, 경건한 삶을 이루기 위하여 다시금 일어서 보자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며
 우리에게는 축복이 된다.
 
 2008. 1. 6. 주일 말씀 요약
 
 제 목 : 너는 두려워 말라
 성경말씀 : 이사야 43 : 1 - 7

 2008년 새해가 밝았다.
가슴을 펴고 희망을 가져 보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세계 곳곳에서 지진 폭설 홍수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서로를 살상하며 물고 먹는 전쟁이 여전할 것이며 기름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고
 미국의 금융 경제 불안과 중국과 러시아의 패권주의가 부활하고 북한의 동태 등 불안 요소가 도처에 기다리고 있다.
유가와 곡물가의 상승으로 국내 경제 사정도 좋지 않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지만 잘 해줬으면 하는 희망 사항일 뿐, 과연 잘 할 것인지 못 할 것인지는 미지수로서 불안하고 두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너는 두려워 말라" 말씀하신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은

[첫째, 앞일에 대하여 무지(無知)하기 때문이다]
한 달 후, 두 달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계획하고 힘쓰는 일은 어떻게 전개될지, 잘 될는지, 못 될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불확실한 미지수이기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고
 근심 걱정 두려운 것이다.
만약에
 금년 한 해 되어 질 일들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두려움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고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싸여
 두려워하는 것이다.

 [둘째, 무능(無能)하므로 두려워한다]
혹 우리가 앞일을 정확히 안다고 하자.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어떤 일들을 성공적으로 대처할 능력이 부족하다.
자, 암이 걸려서 고통당할 것을 알았다. 알았다 하여도 우리가 그에서 벗어나서
 고통당하지 않을 능력이 있는가 ?
8월쯤에 죽음이 찾아오게 되어 있다. 이를 알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 주변 정리 정도이지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
예를 더 들면,
학생이 시험에 나올 문제를 안다면 두려워 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험에 무슨 문제가 나올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며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제 문제를 알았다 하자. 시험 문제를 알았다 하여도 문제를 풀 지혜와
 능력이 없으면 두려운 것이다.
이렇게
 연약하고 무능한 인생인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두려워 말라 하시니 그 이유인즉,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든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가 해 받지 않도록 지켜 주실 것이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다.

 [셋째, 죄와 죄 값의 형벌 때문에 두려워한다]
그 어떤 사람이든지 사람이라면 다 죄가 있다.
알게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또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원죄가 있으며
 모든 죄에는 반드시 그에 대한 형벌이 따른다.
그 형벌은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도 조금씩 임하며
 목숨이 다하여 이 세상을 떠날 때는 그 사람의 생전에 지은 모든 죄의 심판과 함께
 형벌을 받게 된다.
이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확고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못하든지 인간의 사고(思考) 속에 잠재되어 있어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다”
라고 하신다.
구속이란,
우리 죄 값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 죽음으로 목숨을 바쳐서 우리 죄 값을 다 지불하셨으며
 사망과 죄의 형벌에서 건져내셨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를 온당히 받으셔서 우리를 천국 백성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이럴진데
 우리에게 잘못이 있고 죄가 있다한들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 성삼위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면 되는 것이다.
“자복하고 회개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요일1:9)
또한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사랑하신다” 하셨으니
 자 !
금년 한 해 우리의 앞날이 불확실하고 미지수이지만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떨 것이 없다 !!
출렁이고 넘실대며 금방이라도 우리를 집어 삼킬 강물이 있다하여도
 훨~훨~ 타오르며 우리를 태워버릴 듯한 불이 있다 하여도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서서 말씀을 순종하기만 하면
 주께서 함께 하시며
 우리 편이 되어 도와주실 것이니
 우리는
 기필코
 승리의 찬가를 부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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